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피렌체 베키오 다리 옆에 있던 '세 마리의 달팽이'에서 접대부로 일을 시작했으며 1473년 봄에는 주방에서 일을 하였다. 1478년 여름에는 친구인 보티첼리와 함께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 깃발'이란 이름의 술집을 지었으며,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궁정 연회담당자를 맡아 30년 이상 일을 했다. 또한 레오나르도가 직접 쓴 자천서의 내용을 보면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교량, 성채, 석궁, 기타 비밀 장치를 제조하는 데 본인과 견줄 사람을 다시 없다고 확신하는 바임. 회화와 조각에 있어서도 본인을 버금갈 사람은 없음. 수수께끼, 매듭 묶기에 있어서도 대가임을 자신함.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빵을 구워낼 자신이 있음.'
어쨌던 루도비코는 이 자천서를 읽고 연회담당자를 맡겼다. 레오나르도는 스포르차 궁정의 주방에 대대적인 보수를 했으며 자신의 발명품 또한 주방에 이용했다. 그 결과는 이렇다. 정확한 묘사를 위해 스포르차 궁전에 파견된 피렌체 대사 사바 다카스티글리오네 디 피에르트 알레만니의 보고서를 참고하도록 하겠다.
'레오나르도 선생의 주방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루도비코 각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사람의 노동력을 아끼기 위해 지난 수개월 노력해온 결과가 이렇다. 이전에는 주방에 요리사 스무 명만 있어도 충분했는데 이제는 근 백 명이나 되는 놈들이 바글거리고 있다. 내가 보기엔 요리라고 시늉이라도 내는 놈은 없고 하나같이 주방바닥과 벽을 차지한 거대한 기계에 매달려 있다. 어떤 기계도 원래 의도대로 작동하는 것은 없는 것 닽다. "......(생략)'
그 사건에 대해서 루도비코는 시골에서 루도비코의 연인 세실리아 갈레라니의 초상화를 그리라고 명했으며 그 그림은 현재 크라코비아 차르토리스키 박물관에 소장되어있으며 족제비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는 이 사건 외에도 많은 사건을 벌였으며 이 외의 내용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한 천재의 은밀한 취미(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김현철 옮김)'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상당히 괴팍했다.)
첫댓글 이... 이런... 다 빈치와 보티첼리가...[OTL]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친구가 템페라 물감으로 그림그렸던 보티첼리구나....멋진 사람들의 교류가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