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이 와야 한다 (외 2편)
이영광
콩가루 집안도 싸움 나면 뭉치고
툭탁거리던 아이들도 딴 학교랑 축구하면 함께 응원을 한다
딴 동네 딴 도시 딴 지역과 다툼이 나면
한 동네 한 도시 한 지역이 된다
전라도와 사이가 틀어지면 경상도가 된다
경상도에 맞설 때면 전라도가 된다
북한과 다툴 때는 남한이 되고,
월드컵만 열렸다 하면 아우성치는 대한민국이 된다
그러므로 외계인이 쳐들어와야 한다
성간우주(星間宇宙)를 안마당처럼 누비고 다니는
외계 우주선들의 어마어마한 공습 앞에서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을 것이다
서방과 아랍이 연대할 것이다
아시아 제(諸) 국가들이 단결할 것이다
외계인이 와야 한다
모든 국경이 폐제되고,
기독교도와 무슬림이 형제가 될 것이다
모든 호모사피엔스가 하나가 될 것이다
인간과 사자와 뱀과 바퀴벌레 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스크럼을 짤 것이다
더 큰 적이 나타나고 더 큰 싸움이 나는 수밖에 없나?
외계인이 와야 한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잿더미가 되지 않을까?
외계인이 와야 한다
전 지구 생명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외계인이 와야 한다
다른 별들에서, 지구촌을 전율에 빠뜨릴 초호화 축구팀들이 공격해 와야 한다
부처나 공자나 예수보다 더 환상적인 외계 스타플레이어들이 와야 한다
은하계 별들이 두두둥둥! 자웅을 가리는
우주 월드컵이 열려야 한다
방심
그는 평생 한 회사를 다녔고,
자식 셋을 길렀고
돈놀이를 했다
바람피우지 않았고
피워도 들키지 않았다
방심하지 않았다
아내 먼저 보내고 이태째
혼자 사는 칠십대다
낮술을 몇 번이나 나누었는데
뭐 하는 분이오, 묻는 늙은이다
치매는 문득 찾아왔고
자식들은 서서히 뜸해졌지만,
한번 오면 안 가는 것이 있다
그는 이제 정말 방심하지 않는다
치매가 심해지고 정신이 돌아온다
입 벌리고 먼 하늘을 보며, 정신이
머리 아프게, 점점 정신 사납게,
돌아온다 그는 방심이 되지
않는다 현관에 나앉아 고개를 꼬고,
새가 떠나면 구름이 다가올 뿐인
먼 하늘에 꽂혀 있다
꽃 지자 잎 내미는 산벚나무 그늘 밑
후미진 꽃들에 들려 있다
그는 자꾸 정신이 든다
평생의 방심이 무방비로 지워진다
한번 오면 안 가는 것이 있다
저녁엔 퇴근하는 내게 또 담배를 빌리며
어제 왔던 자식들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뭐 하는 분이오? 침을 닦으며,
결코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겁
먼 곳에 슬픈 일 있어 힘없는
원주 토지문화관의 저녁이다
속 채우러 왔다, 슬리퍼 끌고
해장국이 나오길 기다리며 신문을 뒤적이다
누군가의 소식을 읽고,
아⸺ 이 사람 아직 살아 있었구나!
놀라고 다행스러워하는 마음이 된다
허기가 힘을 내는 것이 우습다가
문득 또, 누군가 내 소식을 우연히 듣고
아⸺ 그 사람 아직 살아 있었구나,
놀라길 바라는 실없는 마음이 돼본다
다행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만한 용기는 없다
허기는 아무래도 쓸쓸한 힘,
뭘 바라지 못하는 순간이 좋다
밥보다도 더 자주 먹는 이
겁에 의해,
오늘도 무사하지 않았느냐고
무사한 사람,
무사한 사람,
중얼거렸다
겁도 없이
중얼거렸다
⸻시집『끝없는 사람』(2018. 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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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 1965년 경북 의성 출생. 고려대학교 영문과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8년 《문예중앙》에 「빙폭」 등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끝없는 사람』. 현재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