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선각자 유길준의 유품을 많이 갖고 있는
미국 세일럼 피보디박물관에서 19세기 조선 부채를 본 적이 있다.
평범한 쥘부채인데 겉에 한시(漢詩)와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조선 이수정(大朝鮮 李樹庭).
1882년 수신사 박영효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남아서
개신교 신자가 된 사람이다.
1885년 부활절 새벽에 두 명의 파란 눈 선교사가 인천항을 밟았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온 최초의 선교사들이었다.
두 사람의 손에는 한글로 된 '마가복음'이 들려 있었다.
이수정이 일본서 번역한 성경이었다.
▶개신교 역사에서 한국은 선교사가 오기 전에
이미 자국어(自國語) 성경을 갖춘 희귀한 나라다.
그만큼 초기부터 교회와 성경의 관계는 끈끈했다.
한국인 기독교 신자들에게 성경은 신앙생활의 중심이었다.
성경을 읽고 외우고 성경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한국 신자들을 보고
외국 선교사들은 '성경의 연인(Bible Lover)'이라고 부르곤 했다.
▶지극한 성경 사랑은 성경 보급과 필사(筆寫) 열기로도 나타났다.
1911년 신약과 구약을 합한 '성경전서' 발간 이후 지금까지 나온 성경이
4200만 부에 이른다.
신약·구약 성경을 직접 손으로 베껴 썼거나 쓰고 있는
기독교 신자의 수도 45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쓰기 전에 한 번 읽고, 마디마디 끊어가며 읽고, 쓰면서 읽고,
쓰고 나서 확인하며 읽고…" 한 번의 필사는 성경을 4~5번 읽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지난 주말 서울 목동 CBS기독교방송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교회 성경 필사본 전시회'는 관람객 열기로 뜨거웠다.
전국에서 318명이 보내온 필사본들은 제각각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성경들이다.
한글 성경은 보통 구약 140만 자, 신약 44만 자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어떤 이는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봐야 할 만큼
깨알 같은 글씨로 이 많은 글자를 썼다.
어떤 이는 또박또박 한글 붓글씨로 5년을 들여 완성했다.
▶죄를 짓고 감옥에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군대 간 아들의 안녕을 빌며,
사업이 잘돼서, 사업이 망해서, 몸이 아파서…. 필사의 동기도 가지가지다.
그러나 인간사의 희로애락만으론 성경 필사의 초인적인 정성과 몰입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려시대 한 자 새기고 삼배(三拜)하고,
또 한 자 새기고 삼배하며 나무판 8만여 장에
5200만 자의 불경을 새겼던 선조들의 위대한 공력이 떠오른다.
절대자를 향한 믿음을 찾아 때론 방황하며
자신을 던지는 인간의 모습은 옷깃을 여미게 하는 무엇이 있다.
보고 싶은 병아리들
글 : 오소운 목사
관악여상의 교목실장으로 재직 시절 이야기니까,
어느덧 4반세기가 훨씬 지난 옛날 얘기다.
여름방학 직전 전교생 예배 시간에,
무슨 설교를 해야 할까 기도하던 중,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영감 주셨다.
성경말씀 쓰게 하라, 하는 말씀이었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딤후 3:15)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다가,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분, 이유 없이 짜증날 땐 어떻게 하나요?”
병아리들의 대답은 가지가지 모두 달랐다.
“이유 없이 짜증이 날 땐 이렇게 하세요.「방콕」에 가서 성경을 쓰세요.”
무슨 말인지 얼른 못 알아들은 병아리들은
동그란 눈알만 대굴대굴 굴리고 있었다.
“자기 방에 콕 박혀서 성경을 쓰란 말입니다.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거예요.”
병아리들은 까르르…, 교사들도 빙그레….
나도 빙글빙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짜증날 때 엄마에게 앙탈을 부릴 것인가? 짜증난다고 동생을 들볶을 것인가?
화 난다고 밖으로 나가보세요.
유혹의 거미줄이 천지사방 걸렸고,
돈은 없고 할 건 많고 더욱 짜증나서,
새침장이 골로 빠질 확률이 높답니다.
그래서 내가 개발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방콕에서 성경쓰기」입니다.
성경을 베끼다가 맘에 와 닿는 말씀이 있거들랑,
붉은 볼펜으로 느낌도 적어보세요.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내말대로 하든 말든 그것은 여러분들의 자유.
그러나 내 말을 기억하세요.
가장 많이 쓴 사람에겐 내가 좋은 선물을 주겠습니다.”
모두들 시큰둥해 보이더니만,
선물을 준다니까 순진한 병아리들은 우와 ~ 하면서 반응을 보였다.
방학이 끝나자 병아리들이 우르르 교목실로 달려와서 노트를 냈다.
“목사님 말씀대로 짜증날 때마다 방콕에서 성경을 썼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칭찬해서 좋았어요. 과일까지 깎아다 주셨다니까요.”
“저는 엄마에게 착하다고 칭찬 받고 선물까지 받았어요.”
“목사님, 저는요, 여름내내 교회행사에 참여하여,
별로 짜증나는 일이 없어서 조금밖엔 못 썼어요. 그래도 선물은 주실 거지요?”
나는 그들 모두에게 내가 지은 책들은 선물하였다. 그리고 큰 결심을 하였다.
— 이 어린 햇병아리 딸들에게 신구약 성경 전체를 쓰게 하리라.
그리고서 커다랗게 방을 만들어 교내 곳곳에 붙였다.
— 교목실에서 알려드립니다. 다음과 같이 <성경쓰기 운동>을 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쓰는 게 효과적>이라고 하여,
옛날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직접 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오기까지에는,
무수한 이런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쓰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혜택이 주어집니다.
①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만을 쓴 사람에게는
한 학기분의 장학금을 줍니다.
②신약성경 전체를 다 쓴 사람에게는 한 학년분의 장학금을 줍니다.
③신구약성경 전체를 다 쓴 사람에게는 졸업 때까지
수업료 전액을 장학금으로 줍니다.
<다만> 여기 소요되는 예산은 독지가의 후원으로 하기 때문에,
예산이 넉넉지 못하여,
가장 먼저 나에게 노트를 제출한 학생에게만 줄 수가 밖에 없습니다.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주후 198X년 관악여자상업고등학교 교목실장 오소운 목사
방을 붙여놓고 나는 기도하였다.
참여 학생이 없으면 크나 큰 망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음이 곧 증명되었다.
참여의사를 알려오는 병아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퇴근하여 학교 바로 옆에 있는 관악아파트 내 서재에서 작곡을 하고 있는데, 학생들 셋이서 찾아왔다.
“목사님, 저 4복음서 다 썼어요. 여기 있어요.”
“장하다. 어디 보자.”
내가 노트를 받아들고 보고 있는데, 안달이 난 병아리가 묻는다.
“제가 1번인가요? 먼저 써 온 학생 없어요?”
“네가 1번이다. 축하한다. 다음 학기 장학금을 예배 시간에 주겠다.”
“우와, 넌 좋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쓸 걸….”
같이 온 학생들이 후회를 하였다. 그러는데 전화가 왔다.
“목사님, 관악여상 학생인데요, 목사님 말씀대로 4복음서 지금 막 다 썼어요.
내일 가기고 갈게요.”
“아이구, 이를 어쩌니, 지금 한 학생이 노트를 가지고 우리 집으로 왔는데….
” …… !”
실망한 학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곧 명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좋아요. 저 계속하여 신약전서 쓰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꼭 장학금을 받겠어요.”
“그래, 장하다! 낙심하지 말고 부지런히 신약전서 써서 가져오너라.”
곁에서 내 전화를 듣던 병아리들은 묘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탈락한 친구에 대한 연민과, 장학금을 탄 학생에 대한 부러움,
이런 것들이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다음 토요일 전교생 예배 시간에 장학증서와 등록금 납부 영수증을 주며 나는 전교 학생들에게「아직 늦지 않았다. 기회를 잡아라」하고 격려하였다.
교목실로 돌아오자, 병아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목사님, 너무 해요. 얘 장학금 현금으로 타면 떡볶이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영수증을 수시다니, 너무 해요.”
“목사님이 누구신데? 우리가 알겨먹을까봐 영수증을 주신 거지. 그치요? 목사님.”
“네 말 맞다. 현금으로 주면, 벌 떼같이 덤벼드는 병아리들에게 다 뜯겨 등록금 내는데 차질이 올까 걱정돼서 그랬다. 내가 잘못했냐?”
“아니, 잘 하셨어요. 하지만, 우리 파티 계획이….”
파티가 물 건너 간 병아리들은 저마다 삐약삐약 난리들이었다.
“떡볶이 값 정도야 내가 쏠게. 이거면 되겠니?”
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자, 장학금 탄 병아리가 얼른 나를 막는다.
“목사님, 저도 부모님께 축하금 받아 왔어요. 그 돈 도로 넣어두세요.”
병아리들은 우르르 몰려 나갔다.
판에 박힌 교직생활, 시간은 참으로 화살 같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오후, 또 다른 학생이 신약전서를 다 쓴 노트를 가지고
아파트로 찾아왔다. 아주 정성껏 또박또박 썼다.
내가 감탄을 하며 노트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4복음서 필기 때 기회를 놓친 그 학생이었다.
“목사님, 신약전서 이제 다 썼어요. 지금 가지고 가려는데….”
나는 난감했다. 누구 말마따나,「우째 이런 일이?」였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 학생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번에도 늦었나요?”
“이를 어쩌니, 지금 나는 신약전서를 다 쓴 학생의 노트를 들고 있단다.”
병아리의 한숨소리…. 나는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내 돈으로 해줄까, 하다가 네 학기분이 거금임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한동안 침묵하던 그 병아리가, 명랑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이젠 성경전서 쓰기에 도전하겠어요. 저 이제 창세기부터 쓰겠습니다.”
기나긴 겨울 방학이 지나고, 개학을 하였다. 내일이 졸업식, 졸업식 준비에 한창 바쁘게 돌아가다가 집에 오니 전화가 왔다.
누군지 이름도 모르지만, 목소리로 보아서 성경전서 쓰는 병아리 같았다.
“목사니~임,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아, 너! 이름은 모르지만 목소리는 기억한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전서 다 썼니? 아직은 다 쓴 학생이 안 왔는데…. 다 썼으면 빨리 가지고 와.”
“열심히 쓰느라고 했는데, 이제 졸업식 때까지 다 쓸 수가 없겠어요.
방금 아모스서를 끝냈거든요.”
“졸업식 끝나더라도 상관없다. 빨리 써 오너라.”
“저 3학년이거든요. 내일 졸업인데…. 이젠 장학금 받을 일 없잖아요?”
이런 때는 뭐라 해야 하나?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너 3학년 몇 반, 이름은 무엇이냐? 네게 나는 큰 빚을 진 것 같아,
무언가 해주고 싶구나.”
“목사님, 아니에요. 저는 목사님께 정말로 감사드려요.
목사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성경전서를 다 쓰겠어요? 저는 성경을 쓰면서 목사님이 주시는 상금 그 이상으로, 큰 은혜를 받았어요. 목사님, 사랑해요.”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지금 같으면,
발신인 번호가 찍혀서 회신도 할 수가 있지만, 그 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예쁜 병아리…. 지금은 씨암탉, 엄마가 되어서 어디선가 그 때 저 또래의 딸과 함께 신앙생활 잘 하고 있겠지.
자기가 낳은 병아리에게도 성경쓰기를 시키지는 않을까?
그 때 그 병아리가 너무도 보고 싶다. 혹시, 이 블로그에서 이 글을 읽는다면, 꼭 내게 연락을 다오. 늙은 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이 땅에서 우리 저녁이라도 함께 먹으며 그 때 일을 얘기하자꾸나.
▶붙 임◀
1985년, 나는 서울 종로에 있는 중앙감리교회의《베다니 찬양대》지휘자로 부임하였다.
나는 찬양대원들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자손들에게 성경을 쓰게 하고,
또 자신들도「마음 상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성경을 쓰라고 권고하였다.
이에 가장 먼저 호응한 사람이, 내가「글로리아(Gloria)」라고 별명을 지어준 김영화(1931~ ) 권사였다.
「영화」는 헬라어로「Gloria」아닌가. 나하고 동갑내기인데, 생일이 늦어서, 나를「오라버니」라 부르는 김영화 권사는,
대학노트에 달필로 성경전서를 써서, 정영관(鄭泳寬, 1935~ ) 담임목사에게 제출하였다.
담임목사는 이를 복사하여 원본과 복사본을 예쁘게 제본하였다.
주일 낮 예배 시간에, 제본한 원본을 돌려주면서,
기념으로 성서원에서 출판한 가정용 대형 성경전서
《훼밀리 성경(The Big Color Family Bible)》를 선물하였다.
많은 성도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부러워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오늘까지 해마다 여러 사람이 성경전서를 써서 제출함으로써,
나태한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간에도 우리 교회 성도 누군가가,
성경을 정성들여 쓰면서 묵상하리라 생각하니, 나는 기쁘기 한량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