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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아좋아좋아
1. 유승호
그 누구도 지나는 세월에 이길 수는 없어
여시의 할머니는 노령으로 인한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됨
그간 남부럽지 않게 장성한 아들들은 쇠약해진 어머니를 대학병원에 모셨고
아주 도탑진 않더라도 여느 손녀와 할머니같이
할머니와 제법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던 여시는 틈날때마다 병실로 발걸음을 함
삶의 경계에서 간신히 버티고 선 할머니를 보며
여시는 때때로 그 덧없이 연약하기만 한 투쟁에 치미는 울음을 삼킴
울지 말지.
…무슨 상관이에요.
여긴 울음이 너무 많거든요. 질려서.
…….
와, 말 잘듣네. 우리 엄마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닦아요.
그 날 역시 애써 꾸민 웃음을 얼굴에 덮어쓰고 할머니에게 작별을 고한 여시는
끝내 병원을 채 다 나서지 못하고 길가의 벤치에 앉아 고개를 떨굼
할머니의 깊게 패인 볼 안에 덕지덕지 묻은 것이 죽음임을 여시는 알았고
더 이상의 안녕이 필요치 않을 날이 제 뺨을 간질일만치 성큼 다가온 것이 서러웠음
한방울 두방울 손으로 어찌어찌 훔칠만 했던 눈물은
눈앞을 스치우는 지난 날들에 소나기가 되었고
결국 흐느낌으로 온 낯을 잔뜩 적신 여시의 옆자리에 누군가 다가와 앉음
고마워요.
누가 아파요?
…네.
그래도 앞에선 울음 꾹 참았구나. 착하다.
…근데 몇살이에요?
나? 열아홉.
내가 누난데.
…….
꽤나 되바라진 이 청소년과 여시는 간단하게 통성명을 함
제 이름은 유승호라며 밤같이 낮은 목소리로 첫 운을 뗀 소년은
열다섯에 처음 암판정을 받고 지금껏 투병하고 있다고 했음
말이 투병이지 사실 이미 반년전에 졌다며, 승호는 제 패배를 놀랍도록 담담하게 읊조림
근데도 엄마는 포기가 안되나봐.
…….
나는 이 어항을 죽어서야 나가려나봐요.
…….
간만에 새로운 얼굴 보니까 좋네.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요. 잘가요, 누나.
시냇물처럼 고요히 흐르는 이야기에 여시는 선뜻 대꾸할 말들을 찾을 수 없음
온전히 낯선 이들 사이에 고이기엔 지나친 슬픔에 여시는 그저 침묵을 지켰고
그것을 깨달은 듯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서둘러 제 얘기를 맺은 승호가 등을 돌림
여시는 천천히 멀어져가는 그 뒷모습에서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음
안녕.
어, 누나?
완전한 타인이 서툰 지인으로 변하는 것은 처음의 슬픔으로 충분했음
여느날같이 할머니 문병을 다녀오던 여시는
그때껏 제 안에서 메아리치는 승호를 외면할 수 없었고
어항속의 새로운 식구가 되기 위해 승호의 병실을 찾음
여시의 등장에 잔뜩 놀란 눈으로 여시를 맞던 승호는
곧 반가움으로 가득 차 여시에게 이것저것 말을 붙이고
여시가 병실로 발을 들이기 직전까지도 염려했던 서먹함은 그렇게도 시시하게 녹아버림
…그러더라구. 그래서, 조금 섭섭했어.
그랬어요?
응. 안그래야지 하는데 그냥, 어쩔 수가 없더라.
…누나.
응?
내가 더 어른이었으면 좋겠어요.
뭐야, 갑자기 왜?
그럼 누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텐데. 더 괜찮은 위로도 해주고.
…….
그런데 더 이상 자랄 시간이 없네.
승호야.
에이, 아쉽다.
종종 승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끝을 말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여시는 갈빗대 안께를 가득 메우는 무언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기 일쑤
그것은 그저 할머니를 볼 때면 느끼던 숱한 안타까움과는
조금 다른 성질의 것으로
조금 더 막막하고, 외로워 정말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드는 감정이었음
이럴 때면 여시는 저도 몰래 물에 빠진 어린 아이가 하듯
깡마른 승호의 손을 절박하게 움켜잡곤 했는데
제 손을 타고 번지는 온기조차도 실감이 나지 않게 아득해
끝내 눈물을 쏟곤 했음
아, 나 내일 고갱전 가는데. 혹시 갖고 싶은 기념품 같은 거 있어?
고갱? 누구랑요?
어? 뭘 누구야, 그냥 후배지.
남자?
얘 봐. 남자면 어쩌게.
고갱 뭐 그리 대단하다고. 별로야. 가지 말고 나랑 놀지?
허이구, 맨날 고갱 고갱 노래를 부르더니 무슨.
내가 언제?
됐어, 걔 여자야. 갖고 싶은 거 정말 없다고?
…그냥, 뭐. 엽서 같은 거 있으면 갖다줘도 좋고.
승호야.
응, 왜요.
…아냐.
승호의 세계는 만족하기엔 너무나 작았고
때문에 승호는 제 좁은 공간에 책을 가득 채웠음
정규교육과정을 모두 마친 여시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승호의 입술엔 활자의 형태를 한 세상이 무수했는데
여시는 승호가 그것과 결코 직접 맞닿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
기를 쓰고 각종 전시회나 체험전에 참가하곤 했음
혹여나 승호에게 전할 것
하나라도 놓칠 세라 모든 감각을 있는대로 곤두세우고
작품을 음미하다 보면 퍽 서글픈 기분에 빠졌는데
그 연유는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이 승호가 아니라는 것
운디네 (물의 정령), 또는 파도 속에서
나 왔어.
재미있었어요? 전시회?
그렇지 뭐. 여기 선물.
…운디네(Undine)네.
응, 그냥 이게 제일 눈에 들어오더라.
가엾죠.
그렇지.
운명을 거슬러가면서까지 사랑했지만…, 결국 돌아갔어야 할 곳으로 가고 말았잖아요.
슬픔을 알았어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나는 그게 엄청 바보같다고 생각했는데.
…….
지금은 알겠어요. 왜 그랬는지.
…….
파도가 덮칠 수 밖에 없을 것을 알아도, 후회하지 않아….
*운디네(Undine)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여시는 계속 승호를 찾기 위해 병원에 드나듦
이미 돌아가시기 한참 전부터 저울의 무게는 바뀌었다는 것을 여시는 알고 있음
제가 승호에게 품은 것이 무엇인지 또한 모르지 않지만
온 몸뚱이에 번지다 못해 혀끝까지 선연히 물들이고 만 이 마음을,
여시는 고집스레 입 안에 가두어 둠
병마는 완벽한 점령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언젠간 다가오고 말 끝에서 여시는 승호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싶지 않았음
그저 만난지 얼마 안된 말벗으로, 조금 미련은 남더라도
웃는 얼굴로 훌훌 떠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여시는 진심으로 바랐음
정작 저 자신은 가족 모두가 곤히 잠든 밤에 울려퍼지는
시계초침소리가 못견디게 무서워 울면서도,
승호의 가는 길만은 가벼웠으면 좋겠다고 여시는 생각함
짠!
어, 이게 뭐….
생일 축하해!
누나, 어떻게 알고….
어머님께 여쭤봤지, 뭘. 야 이거 내가 직접 구운 거야.
맛은 보장 못해도 정성은 보장한다 진짜.
누나.
아 맞다, 야 먹기 전에 먼저 소원 빌어야지!
승호에게 정을 붙일적부터 살짝 승호의 생일을 알아뒀던 여시는
이주일전부터 인터넷을 뒤져 케익 조리법을 싹싹 긁어 모음
워낙 솜씨가 없던 탓에 거부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억지로 잡아
여러번 똥인지 케익인지 모를 물질로 고문한 결과
당일날은 그래도 썩 그럴듯해 보이는 케익이 완성됨
괜히 눈오는 날 강아지처럼 들떠 소원을 재촉하는 여시의 얼굴을
잔잔히 웃으며 바라보는 승호는 그러나 어쩐지 퍽 서러워보임
응? 승호야 소원!
내 소원, 누나가 가져요.
어?
빌어봤자 이뤄질 리가 없으니까, 그냥 누나 줄게. 누나 거 해요.
승호야. 너 왜 그래….
누나가 대신 빌어줘. 내 소원.
승호야.
…….
내 소원은, 내가 또 케익을 굽는 거야.
…….
내가, 네 생일 축하해주려고…. 또 고생고생하면서 이거 만드는 거야.
…….
들어줄거지….
쉬이 떨어지지 않는 긍정이 야속해 여시는 애원하지만
승호는 끝내 여시의 소원을 빙자한 억지에 화답해주지 않음
여시와의 모든 순간에서 항상 못이기는 척 한발 물러섰던 다정함이
무섭도록 선명한 미래 앞에선 완고하게 등을 돌림
그러나 어쩐지 여시는 이 순간, 결국엔 모두 우스운 촌극이 되고 말
지금 바로 여기에 머물러 머뭇대는 약속을 포기할 수 없었고
한참을 말없던 승호는 결국 장난스레 웃음
에이, 안되겠다. 취소.
승호야.
소원 그냥 내가 가질래. 가만 생각해보니 아깝네.
…….
자, 불 붙여요. 우리. 노래도 부르고.
소원이…, 뭔데?
아직. 나중에 쓸래요.
끝이 다가오고 있었음
차마 거역할 마음 한조각조차 품을 수 없을만큼 압도적이고 자연스러운 끝이었고
안그래도 뼈마디마디가 도드라지도록 말랐던 승호의 몸선은
더욱더 위태롭게 날카로워짐
툭하면 눈물이 괴던 여시의 눈은 그러나 외려
승호의 뺨 아래로 맺힌 그늘이 짙어질수록 강인해짐
…그래서, 그런 거야. 진짜 어이없지?
누나.
응?
무서워요?
…….
괜찮아, 말해봐요.
…응, 조금.
언젠가부터 여시는 혹여나 둘 사이에 침묵이 덩그러니 놓일까 두려워
쉼없이 온갖 이야기들을 지껄이곤 했음
과장된 몸짓과 지나치게 들뜨고 극적인 어조는 덤
이것은 결코 어색함을 이유로 한 공포가 아님
아주 짧은 시간들만을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승호와 여시는 햇살과 함께 가만히 내려앉은 정적을 제법 즐기는 편이었음
분주하게 음성을 교환할 때보다
더욱 온전히 서로의 존재를 실감하며 안도했던 순간,
기억은 여즉 생생하나 감각은 꿈처럼 아득함
무서우면 안되는데.
미안해, 승호야.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요. 누나는 아무리 겁에 질렸어도,
…….
충분히 예쁘니까.
세계가 얌전히 침잠할 때면 시계의 초침은 몸을 더욱 크게 떨어가며 울었고
여시는 전력을 다해 이편으로 돌진해오는 시간과
그의 등에 올라타 거무죽죽하게 낄낄대는 죽음을 마주함
신경질적으로 시계의 건전지를 빼놓아도
사방의 모든 것이,
야릇하게 제 몸을 살랑이는 나뭇잎이
가습기 끝에서 허우적대다 종내 흩어지고 마는 습기가
호흡을 위해 가늘게 달막이는 승호의 어깨가
어떤 방식으로든 동작하는 모든 것들이 시간의 경과를 똑똑하게 증언함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 여시는 죄인처럼 속삭였고
꼭 신과도 같은 자애로움으로, 승호는 여시를 다독임
오늘, 재밌었어요?
어, 야 진짜 오늘 배 터지는 줄 알았어. 다시 봤어, 유승호.
다시 봐봤자지, 뭘.
왜, 난 오늘 정말 감탄했는데!
그래서.
…….
내가 다르게 보여요?
…….
그늘의 기미를 한점도 찾을 수 없는 날이었음
승호는 여시가 병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농을 걸었고
단단히 작정을 한 듯 제대로 망가져가며 익살을 떪
승호의 급작스런 변신에 여시는 놀랄 새도 없이 목청을 높여가며 깔깔댔고
공포는 병실 안을 가득 메운 웃음에 질식해 사라짐
뭐, 됐어. 아무튼 재밌었다니 다행이에요.
어? 어. 진짜 완전 고마워, 승호야. 나 진짜 웃다가 죽는 줄 알았어.
나도 오늘 엄청 노력했어요.
그래, 너 아주 제대로 망가지더라.
겁에 질린 누나도 예쁘지만.
……
진심으로 웃는 누나는 넘치도록 예뻐서, 진짜 다행이에요.
…….
혹시나 모자라게 예쁘면 어쩌나 걱정 좀 했는데,
아주 꽉꽉 채울 것 같아.
승호야?
누나.
…….
이제 오지 말아요.
승호야.
여시는 저도 모르게 애걸하듯 승호를 불렀으나
승호는 웃는 낯을 하고서도 작별을 번복하지는 않음
당연히 함께 목도하리라 여겼던 끝은
여시가 그간 했던 수백수천번의 다짐과 각오가 무색하게
승호의 입술 하나로 굳게 걸어닫힘
여시는 가지에 오도카니 남은 잎새처럼 무섭고 서러워져
말 한마디 못내놓은 채 어쩔 줄을 모르고 승호만 바라보았으나
승호는 그저 다시 한번 나긋하게 고개를 저어보임
누나.
…….
나, 이제 준비해야 되는데.
…….
누나만 보면 준비를 못하겠어요.
…….
해둔 것도 자꾸 흐트러져서 엉망이 돼.
…….
난 그동안 우리 엄마 아빠 삶을 고생으로 너무 많이 더렵혀놔서,
끝은 깔끔하게 가고 싶거든.
…….
이해하죠? 누나는 똑똑하니까, 또 착하니까 내 마음 알거야.
승호야.
아, 나 피곤하다. 누나, 마지막이 예뻐서 참 좋아요.
그게 나 때문이어서도 좋고.
…….
잘가요, 안녕.
그후로 승호는 정말 여시를 만나지 않음
그리움에 못이겨 몇번이고 찾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그때마다 마주하는 건 잔뜩 미안한 얼굴로 사과하는 승호의 부모님 뿐
하염없이 병실의 복도를 서성이던 여시는
굳게 닫힌 문이 꼭 승호의 마음만 같이 느껴지고, 결국 답답증과 울음이 일어 그마저도 포기함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병원 밖, 승호를 처음 만났던 벤치에 앉아
손톱의 반절만도 못하게 까마득한 창문을 바라보는 게 전부
날이 궂든 맑든 짧게라도 시간을 내어 창문에 눈을 붙박길 한달
여시는 여전히 묵묵하게만 존재하는 그 조그만 창을 보며
돌연 죄책감을 느낌
제 절절한 마음을 깨달아놓고도 끝내 털어놓지 못했던 까닭은
바로 승호에게만은 가볍고 산뜻한 이별이 되기 위했던 배려심이었음
허나 지금 차곡차곡 생의 모든 날들을 정리하며
최후를 맞이하는데에 박차를 가하는 승호에게
여시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철없고 어리석은 무게가 되고 있는가를 생각함
여시는 승호를 처음 보았던 그때처럼 벤치에 걸터앉아 오랜 시간을 서럽게 흐느낌
눈시울을 적시며 흐르는 모든 것이 승호가 짙게 서린 미련이고 추억이라
여시는 쉬이 울음을 거둘 수 없음
행인의 눈길마저 잡아채는 가련함이 차츰 잦아들고
줄을 타듯 위태로운 휘청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병원에선 여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
여보세요.
[여시씨, 나 승호 엄마예요.]
아, 어머님.
[네, 그간 잘 지냈어요?]
승호 어머니의 안부에 여시는 잠시 주저함
누구의 발길도 채 닿지 못한 호수처럼 평온한 음성은
화살같이 싸늘하게 괴로운 예감이 되고
덜컥 겁이 난 여시를 알아챈 듯
승호의 어머니는 한결같이 따스한 음성으로 여시를 달래며
낯선 역에서의 약속을 잡음
어머님. 여기….
네, 맞아요.
…….
승호, 여기 있어요.
여시는 승호의 어머니를 만나고서도
선뜻 승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함
승호의 어머니 역시 자상한 낯으로
진부한 인사와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을 뿐
승호에 대해서도, 목적지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이 없음
제가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마다
불안과 절망이 그득 고여 찰랑이는 것을 여시는 고집스레 외면하지만
단정하게 솟은 건물, 벌써부터 온몸을 벌벌 떨며 묻는 여시에게
승호의 어머니는 가볍게 고갯짓을 하며
승호의 죽음을 긍정함
승호야, 여시씨 왔다.
…….
여시의 눈높이와 딱맞는 유리창 안에, 승호가 있음
뭐가 그리 좋은지 사람좋게 웃고 있는 승호의 사진을 보며
여시는 아주 짧게, 그러나 지독히도 선명하게
자신의 숨과 시간과 세계가 멎어 쓰러진 것을 느낌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금 아스라이 먼 곳의 별들이 운행을 시작했으나
여시는 제가 지금껏 알았던 모든 세상이 죽어 없어진 것을 알았고
새로 태어난 세상은 너무도 낯설고 무서워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함
망연히 승호의 얼굴만 바라다보기를 한참,
여시는 꼭 무언가에라도 이끌리듯 시선을 옮겼고
한가득 푸르게 메워진 제 시야에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함
운디네,
그 언젠가 제가 승호에게 주었던 엽서였음
사실은 많이 고민했어요.
…….
여시씨는 아직 너무 젊고, 견뎌내야 할 날들이 너무 많은 사람인데.
…….
나는 이게 너무 잔인한 짓인 것만 같아서….
…….
미안해요. 그런데 승호가, 내 아들이….
너무 불쌍해서, 내가 너무 못돼서…. 여시씨.
…….
그냥 버려도 좋아요. 정말 미안해요.
여시는 납골당을 다녀온 후로 상실을 이기지 못하고 닷새를 꼬박 앓음
끝을 모르고 치솟는 열과 온몸에 번진 오한이 고통스러워
여시는 차라리 꿈속을 헤멤
그러나 꿈 또한 역시 승호로 가득 차있고
닿을 수 없는 신기루에 지친 여시는 결국 죽음을 갈망하나
결국 회복되고 만 제 몸뚱이를 저주하며 무너짐
식음을 전폐한 여시의 몸뚱이는 날이 갈수록 애처롭게 야위고
아무렇게나 누워 멀거니 천장을 응시하던 여시는 문득,
가방 새로 튀어나온 usb를 발견함
승호의 어머니가 헤어지기 직전,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한없이 가여운 모양으로 건네주었던 usb임
홀린 듯 노트북을 열고 연결한 파일엔
수십개의 음성파일이 날짜별로 정렬되어 있었고
여시는 그 중 가장 위에 위치한 파일을 클릭함
20140911
누나, 안녕.
오지 말라니까 왜 왔어요.
아무리 보고싶어도 그렇지, 누나 그렇게 그냥 보내고 나니까
나도 마음이 안좋네.
응? 그런 너는 내쫓은 주제에 왜 녹음기에다 이런 짓이나 하고 있냐고?
음…. 사실은 나도 보고싶어서,
나도 누나가 보고싶어서, 이런 짓 해요.
…(중략)…
깜깜한 방 안을 또렷하게 밝히는 승호의 목소리에
여시는 또다시 왈칵 눈물을 쏟음
하나 둘 다정한 승호의 음성을 타고
여시가 보지 못했던 승호의 날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름
날씨, 활동, 치료, 가족, 식사 등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승호의 일상을
여시는 마치 신탁을 듣듯 한없이 진지한 태도로 귀를 기울임
이별이라 여겨 내도록 외로웠던 시간조차 실은 함께였음을,
보고싶다는 승호의 담담한 고백은 여시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위로임
20140921
누나, 밖에 추워요.
감기 걸리게 왜 거기 앉아있어요.
차라리 안에…, 아니다. 그냥 오지 말지.
…(중략)…
20141025
…(중략)…
누나, 그런데 누나가 안보여.
안경을 써도 없네. 어디 아파요?
…(중략)…
20141108
이제 안오는구나. 그래, 잘 생각했어요.
괜히 날도 차가운데 헛고생을 뭐하러 해.
…(중략)…
20141112
나 오늘 너무 아파서 그래, 좀 봐줘요.
누나…, 진짜 이상하지.
준비 못한다고 누나 그렇게 보내놓고, 있잖아….
이제 더 이상 누나도 안오는데, 누나 정말 어디에도 안보이는데,
진짜 이상하게 나 왜 준비를 더 못하겠지.
왜 이렇게 자꾸 지저분하게 구는지 모르겠어.
나 한심하지, 그치?
…(중략)…
20141115
…(중략)…
누나, 나 사실은 아직도,
엄마한테 이거 전하지 말란 말 못했어요.
아니 사실은 안한 것도 같아. 미안.
내일은, 아니다 내일 모레엔 꼭 할게.
잘자요, 안녕.
20141118
이제 진짜 얼마 안남은 것 같아.
빨리 말해야 되는데, 이거 누나한테 절대 전하지 말라고.
보자마자 버려달라고 해야되는데….
20141121
보고싶다.
20141125
누나,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쉴새없이 다음 파일을 재생하던 여시의 손이 어느 순간 멈칫함
하나, 이제 오직 하나의 음성만이 듣지 못한 채 남아있음
여시는 반사적으로 녹음 날짜를 확인하고
승호가 죽기 나흘전인 것을 알자 망설임은 더욱 길어짐
허나 결국, 가늘게 떨리는 여시의 손가락이 파일을 클릭하고
승호의 마지막 목소리가 나직하게 여시의 귓가로 나부낌
누나, 안녕.
갈 때가 됐나봐요.
그냥, 느껴져.
오늘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잘까 했는데,
그러면 영영 작별 인사 못하게 될까봐 녹음해요.
엄만 옆에서 자고 있어. 이제 우리 엄마 고생도 끝이야.
자식 하나 잘못 낳아서, 안그래도 약한 사람이 맨날 울기나 하고.
아빠도 괜히 강한 척 하느라 울지도 못하고, 참.
나 가고 나면 둘이 오순도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동생이 생겨도 좋고, 아님 강아지라도 하나 데려다 키웠으면 싶어요.
둘 다 나같이 못된 아들 이렇게 사랑해줄만큼 착한 사람들이니까
강아지도, 우리 엄마 아빠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중략)…
한참을 조곤조곤 인사를 늘어놓던 승호가 갑작스레 입을 다물고
여시의 얼굴은 온통 눈물바람임
생의 끝자락에서, 이미 작게 여윈 불꽃이 간신히 바람을 견디듯
간헐적으로 헐떡이는 승호의 숨소리가 여시의 고막을 가득 채우고
여시는 온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여선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끅끅대면서도
창을 닫지는 않음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왜 그렇게 발버둥을 쳤는지 몰라.
…누나, 나 근데 정말 노력했어요.
어린 티 내고 싶지 않아서,
나 진짜 이렇게 철없이 굴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게 그냥 소원 가져가랬잖아, 그 때.
여시는 꼭 지금의 자신처럼, 승호 또한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챔
한번도 본 적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영영 볼 수 없을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여시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깨묾
경련하듯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려는 듯
또 한차례의 침묵이 밀물처럼 둘 사이로 찾아듦
여시는 혹 승호의 숨 한줄기조차 놓칠까 애써 울음을 죽이고
곧이어 죄책과 서러움으로 잔뜩 얼룩진 목소리가
오직 어둠만이 처절하게 웅크린 여시의 공간 속으로
연약하게 울려퍼짐
누나, 정말 미안해요….
…….
근데 나, 도저히 자랄 시간이 없었어.
…….
여시야.
…….
좋아해….
2. 김우빈(김현중)
어김없이 카페에 얼굴을 들이미는 여시
한창 신참때야 음료도 몇 번 쏟아보고 우유도 기깔나게 태워보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만
눈물을 쏙 빼놓을만치 매서운 교육과 꾸지람에 열심히 가공당한 결과
제 아무리 복잡한 주문과 손님 네팀 동시 입장 등 각종 혹독한 상황에도
눈 한번 깜짝 않고 손을 놀리는 베테랑으로 거듭남
아이스핫초코 주세요.
예?
아이스핫초코 하나 달라고.
아…, 손님 그러니까 아이스초코 말씀이시죠?
아니.
어, 그럼 핫초코….
귀가 먹었나?
예?
아.이.스.핫.초.코. 달라고.
세상살이가 오로지 노력으로만 원만하게 굴러간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뭐 걷다보면 똥을 후려맞을 때도 있고 지뢰를 밟을 때도 있고 하는 게 인생
그런데 또 이렇게까지 똥내나는 지뢰는 또 처음이라
여시는 한껏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입술만 달싹임
그 와중에도 참신한 진상은 그런 여시의 나약한 모습에 기세등등해져
당장 자신에게 아이스핫초코를 대령하라며 지랄의 강도를 차근차근 높여갔고
오갈 데 없는 난관에 여시의 눈시울은 차츰 뜨뜻해지기 시작함
내 주문부터 먼저 받아요.
아니, 어디서 이런 근본 없는 새끼가….
뭐.
아니, 내가 먼저 주문을 지금….
내가 좀 바빠서. 미안하게 됐네.
여시가 쩔쩔매는 내내 마뜩찮은 표정으로
진상의 뒤에 서있던 남자가 급기야 진상을 밀치고 덥썩 카드부터 내밂
2차 건수를 잡은 진상이 게걸스런 눈빛과 함께 몸뚱이를 빙글 돌렸으나
머리 하나 반 정도는 족히 높은 눈높이와 매서운 생김새
한없이 느슨하나 결코 틈은 보이지 않는 말투에 다소곳이 물러남
아이스 초코, 핫초코 각각 하나씩 줘요. 페퍼민트 티도 하나 주시고.
아, 핫초코는 미지근하게 해주세요. 그럼 그냥 초콘가? 뭐, 어쨌든.
어, 가지고 가세요?
아니. 먹고 갈 거예요.
이 세개를 다요…?
아니, 먹기는 하나만 먹을 거고.
그럼 두잔은 테이크아웃….
세잔 다 비우기 전까지는 안나가요.
…….
계산 안해요?
아, 죄송합니다. 16700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리송한 남자의 말에 여시는 당혹을 감추지 못하며 카드를 긁음
남자는 길게 뻗은 팔다리만큼이나 시원한 동작으로 서명을 했고
진동벨과 영수증을 받고서도 자리에 앉지 않고 계산대 옆에 기대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진상을 빤히 응시함
잠시 눈치를 살피던 진상은 남자의 침묵에 자신을 얻었는지
다시금 계산대에 답싹 달라붙어 지랄을 야무지게 재개함
시발, 야 너 골이 비었냐?
아니, 손님 그러니까 음료의 온도만 말씀해주시면….
야 내가 뭐 못할 말 했냐? 깐따삐야어를 했어?
이런 시발, 아이스핫초코 달라면 줄 것이지 뭘 자꾸 물어?
그게 저희 카페에는 아이스핫초코라는 음료가 없고요….
뭐? 시발! 그럼 내가 지금 헛소리 한다 이거야?
옘병 너 지금 나 무시해? 이런 별 병신같은 년이….
나 바쁘다고 했는데, 분명히.
…예?
음료 안만들어요?
진상의 무차별적인 공세에 울기 일보 직전인 여시를
조용히 응시하던 남자가 별안간 입을 열어 음료를 채근함
진상 역시 돌변해 아까와 같이 나긋한 자태로 정적을 유지하고
여시는 도망치듯 주방으로 들어가 허둥지둥 음료를 제조함
그 와중에도 진상은 남자가 입을 다물기가 무섭게
여시의 등에 대고 쉴새없이 욕설을 지껄이는데 여념이 없음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핫초코, 아이스초코, 페퍼민트 티 맞으시죠?
네, 정확하네요. 미지근한 거 맞죠?
네, 온도가 마음에 안드시면 다시 조절해드릴게요.
아냐, 딱좋네. 괜찮아요.
야 썅년아, 이제 그럼 내 주문…!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걸쭉한 육두문자와 함께 달려들던 진상이
제 머리 위로 대차게 쏟아진 아이스초코에 우두커니 멈춰섬
여시가 미처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남자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과 우아한 손놀림으로
미지근한 핫초코를 진상의 얼굴에 정면으로 후려치듯 퍼부음
자, 아이스핫초코. 맘에 들려나 모르겠네.
이, 이게 지금 무슨….
내가 너같은 새끼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기엔 좀 바쁘다고,
말했잖아요. 아까.
이 새끼가 보자보자 했더니…!
왜, 나한테도 진상 떠시게? 어유, 그럼 곤란하지. 해결해 드려야겠네.
딱봐도 싸구려 같은데 세탁할 필요가 뭐 있어. 그냥 다 버리고 새로 사요.
내가 넉넉하게 줄게.
니 얼굴도 하나 사서 갈아끼우면 참 좋겠는데, 그건 안되죠? 아쉽네.
뭐, 한 백이면 되나? 싫어? 그럼 삼백?
이 시발새끼가 근데!
왜, 부족해? 이야, 보던대로 거지새끼가 따로 없네.
그럼 나한테 좀 맞을래요? 내가 한몫 단단히 챙겨줄게. 원하는대로.
…….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후자가 좀 더 끌려. 어쩔래요?
…….
싫음 이거 받고 꺼지시고.
분에 못이겨 온통 일그러진 얼굴로 갈비뼈를 들썩대던 진상은
결국 남자의 압도적인 체구와 눈빛에 못이겨
수표 몇장을 받아든 채 쿵쾅이며 퇴장하고
그제야 여시는 저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내쉼
감사합니다….
됐어요, 기다리는 거 짜증나서 그런 거니까.
이거나 좀 닦아요.
네, 네. 금방 청소하겠습니다. 편히 앉아서 드세요.
얼음과 음료가 처참하게 널브러진 현장을 부랴부랴 치우며
여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남자를 힐끔힐끔 훔쳐봄
진상을 압박할 때에는 한없이 사나웠던 표정이
뜨거운 차와 얼마 되지 않는 겨울의 햇살을 받으며
오수처럼 나른하게 누그러졌고
그 순간, 여시는 제 심장이 좀전보다 조금 급하게 박동하는 것을 느낌
저기, 이거 드세요.
이게 뭐예요?
저희 카페에서 제일 잘나가는 케익인데요, 아까, 저기, 너무 감사해서….
내가 딸기를 좀 좋아하긴 하는데.
…….
나한테 반하지는 말지.
예뻐서 구해준 거 아니니까.
열받은 거 푸는데 그쪽이 얻어걸린 거예요.
네, 저도 안예쁜 거 아는데…. 명심하겠습니다.
어쨌든 잘먹을게요.
시발
제대로 껄떡대기도 전에 참혹하게 바스라진 쿠크를 붙들고
여시는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계산대로 돌아옴
정곡을 아주 확실하게 찔린 탓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치심을 막을 길이 없어
여시는 계산대 뒤에 주저앉아 머리를 헝클고 가슴팍을 갈기고 개난리를 피움
아무리 애꿎은 제 몸뚱이를 폭행해도 쪽팔림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고
여시는 동료가 교대하러 오기가 무섭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황급히 짐을 챙겨 뛰쳐나감
어서오세요. 주문 도와드리겠….
페퍼민트티 하나랑, 그때 주신 케익도 하나 주세요.
어, 저기, 드시고….
네, 드시고.
후유증이 가시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음
고작 이틀뒤에 남자는 다시 카페로 발을 들였고
채 아물지 못한 수치심과 당황스러움에 버벅대는 여시와 달리
남자는 지극히 차분한 태도로 음료와 케익을 주문함
저번과 같이 남자는 창가에 앉아 약 한시간 가량을 머물다 떠남
마주친 눈길 한조각도, 맞닿은 문장 하나도 없이 나가는 남자를 보며
혹시 모를 기대 한줄기를 살그마니 품었던 여시는 어깨를 처량히 늘어뜨림
어서오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페퍼민트티랑 케익, 주세요.
드시고 가시죠?
네.
남자는 꽤나 잦은 빈도로 모습을 드러냈으나
한결같이 건조한 태도에 여시는 이미 희망을 버린 지 오래
뜨끔거리는 마음을 담백한 태도로 능숙하게 감출만큼 시간은 흘렀고
창가에 기다란 다리를 꼬고 앉아 차를 마시는 남자의 모습은
겨울에 잔잔히 나리는 눈처럼 당연한 풍경이 됨
유독 날씨가 얄궂은 날이었음
분명 해가 쨍쨍하더니 순식간에 들이닥쳐 온 세상을 타척하는 빗방울에
멍하니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던 찰나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림
남자였음
마침 이곳으로 오는 길이었던 듯 쫄딱 젖은 것은 아니었어도
제법 비를 맞은 것 같아 보이는 남자는
그러나 여전히 고인 감정 하나 없이
메마른 얼굴로 계산대에 서 태연하게 차와 케익을 주문함
저기, 좀 닦으세요. 수건 한장 더 내드릴까요?
반하지 말라고 했는데.
예? 아니, 의자가 젖으니까요….
…….
뭘, 반하지 말라는 ….
…주세요.
얌전히 수건을 받아들고 물기를 닦아내는 남자의 귀가 새빨갰음
입술을 짓깨물어가며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결국 여시는 거하게 웃음을 거하게 터뜨림
트레이를 받아든 남자는 여느 때와 달리 걸음을 서둘러
창가가 아닌 구석에 처박힘
손님.
…예.
걱정마세요. 저 안반했어요. 앞으로도 안반할게요.
여시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실 쪼개며 트레이를 반납하러 온 남자를 놀림
남자는 답도 없이 도주하듯 돌아나섰고
여시는 마침내 거머쥔 완전한 승리에 도취되어 콧노래를 흥얼거림
어서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까요?
네, 페퍼민트티랑 케익 주세요.
네, 오늘도 반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그 뒤로도 여시의 조롱은 쉴틈 없이 이어짐
여시의 깝침에 남자는 언제나 묵언으로 일관했으나
미묘하게 흐트러지는 안면근육과
저녁놀처럼 발긋하게 달아오르는 귀는 숨길 수 없음
영 빠지는 모양새로 구석에 구겨져 있는 남자의 모습이
차차 익숙해질 무렵이었음
페퍼민트티랑 케익 주세요.
네, 손님. 오늘도 역시 반하지 않도록….
아, 쫌!
…….
그만 좀…, 하세요.
…….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제가 그 때 그 새끼도 쫓아드렸고,
매상도 톡톡히 올려드렸을텐데 자꾸 이렇게 나오실 거예요?
어, 저는 그냥 얻어걸린 거라고….
아, 어쨌든! 제가 잘못했어요.
그래요, 안반하겠는 거 아주 잘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좀 해요.
내가 쉬워보이는가봐? 그래서 지금 이래요? 여기 주인이 누구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신 그러지 않겠습니다. 사장님 지금 안계세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폭발한 남자의 말에도 소심하게 깝죽거리던 고용인 여시는
사장님을 찾는 남자의 호령에 그만 깨갱함
못마땅한 눈으로 여시를 한참 쏘아보던 남자는
싸늘한 걸음으로 다시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안절부절 못하던 여시는 신상 베리타르트를 제돈으로 결제해
남자의 트레이에 조심조심 담아 직접 남자의 탁자로 나름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이건 또 뭐예요.
새로 나온 타르튼데요, 딸기 좋아하신다고 해서….
제가 정말 죄송해서 드리는 거예요. 도가 지나쳤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 뭘 또 울어. 괜히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됐고, 앉아서 같이 들어요. 나 이거 다 못먹어.
코도 좀 닦고. 인중 다 젖었네.
사과하는 여시의 목소리가 종내 물을 먹고 잔뜩 흐려짐
아직 채 갈무리하지 못한 마음은 남자의 성난 모습에 적잖은 상처를 입었고
남자의 실수에 괜시리 들떠 주책맞게 던졌던 장난이 후회됐던 까닭이었음
이러니 남친이 없지ㅠㅠ시발
고개도 못들고 찔찔대는 여시의 꼴이 불쌍했던지
남자는 제법 풀린 목소리로 앞자리를 내어주고
콧물의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손수 휴지도 뽑아줌
졸지에 관심 있던 남자에게 콧물쇼를 상연한 여시는 수치스러움에
또다시 눈물을 왈칵 쏟았고
그렇게 거지발싸개같이 엉망진창이었던 하루가 막을 내림
어서….
네, 어서 왔어요. 오늘은 인중이 깨끗하네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난 또, 엄청 걱정했거든. 인중 틀까봐. 날이 꽤 추웠잖아요. 비와서.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인중이 아주 뽀송뽀송해. 별명 하나 짓는 게 어때요? 뽀중이로.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전세는 완전히 역전됨
남자는 진상을 대했을 때와 퍽 흡사한 태도로 여시를 농락하기 바빴고
한낱 알바생인 여시는 사장에게 직행으로 날아갈 컴플레인이 두려워
반박도 못하고 같은 문장만을 영혼 없이 되풀이함
여기.
네, 손님.
오늘은 인중이 약간 좀 빛바랜 것 같아요.
이래서야 내가 뽀중씨라고 별명 지어준 보람이 없잖아.
…….
이게 다 영양이 부족해선 거 같아.
여기 앉아서 이거 좀 먹어요. 작명가 마음이 너무 안좋네.
손님!
왜요, 뽀중씨.
지, 진짜…, 킂…, 너무하신 거 아님까….
제가 개념 없었던 건 맞는데여…. 그래도 이제…, 크르룩(콧물흡입),
안하잖아여…. 뽀중이라뇨…. 저, 진짜 너무 모, 모욕감을 느끼고….
남자는 손님의 특권을 이용해 여시를 시도 때도 없이 호출하며 놀렸고
꽤나 의연한 자세로 그 모든 굴욕을 감내하던 여시는
결국 어느날 또다시 콧물쇼를 재상영하고 맒
잠시 놀란 듯 멍하니 여시를 바라보던 남자가 갑작스레
매장이 떠나가라 크게 웃어젖힘
그게 또 서러운 여시가 이젠 아예 드릴이라도 박듯 어깨를 경련하며 울자
자리에서 일어나 휴지로 여시의 눈물을 훔쳐줌
자, 콧물은 더러워서 못닦겠네. 좀 닦아요.
또 놀리고…, 킂….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좀 과했네. 미안해요.
다신 안그럴게. 뚝.
손님, 큽, 손님도 저, 저한테 반하지 말라고….
아 그 얘길 왜 또 해. 알았어, 둘 다 이 얘긴 안하기로.
서로 무덤까지 가져갑시다. 알았죠? 그만 울고.
부끄러운 기억의 공유는 관계에 있어 꽤나 괜찮은 윤활유가 되기 마련임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서먹함을 대가로 치른 몇번의 대화로
여시는 남자의 이름이 현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현중 역시 여시가 학자금을 모으기 위해 카페에서 알바한다는 것을 알게 됨
어느샌가 남자는 자신보다 어린 여시에게 말을 놓고
여시 역시 스스럼없는 태도로 현중에게 말을 걺
야, 넌 청춘 이 후진 카페에다 죄다 갖다 박으면 안억울하냐?
뭘 또 갖다 박아요. 나름 괜찮거든요.
그쪽도 지금 여기에 청춘 다 갖다 박고 계시거든요?
어이구, 뽀중이. 많이 컸네?
예, 아직까지 그쪽한테 반하지도 않았구요. 장하죠?
이게 진짜. 야, 손님이랑 알바랑 같냐?
손님은 돈을 쓰고, 저는 오히려 돈을 벌어가는데 왜요.
한마디도 안진다, 진짜.
그러니까 작작 좀 오세요. 철벽을 그렇게 치더니, 여자친구도 없어요?
그걸 뭐하러 만들어.
없는 게 아니고?
솔직히 사랑이 뭐가 필요해. 안그래?
왜요, 사랑해야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그러는 거죠.
그거 필요 없어.
중2병 납셨다.
진짜야. 봐. 돈만 있으면 다 된다니까?
우리 부모님도 서로 돈만 보고 결혼했어도 봐라. 이 찬란한 결과물을.
잘생겼지, 키크지, 재치있지, 섹시하지, 어? 모자란 게 없잖아.
…….
뭘 또 그런 표정이야. 촌스럽게.
내가 너보다 더 부자야, 인마.
때때로 현중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제 불행을 터놓음
현중의 시비를 받아치고 쏘아붙이는데만 열중했던 여시는
그럴 때면 현중의 말대로 사뭇 '촌스러운' 얼굴을 하곤 했는데
현중은 그런 여시에게 가벼운 퉁을 주며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함
있잖아요.
뭐.
왜 자꾸 여기 와요?
배부른 소리한다. 하늘같은 단골 손님한테 그게 할 소리야?
아니, 돈도 많아보이는데 뭐하러 이런 동네카페 오나 해서요.
원래 돈많은 사람들은 막 호텔 뭐 그런데 가서 먹는 거 아닌가.
여기 뭐, 딱히 커피가 맛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케익이 맛있잖아.
호텔이 더 맛있지 않아요?
이 오빠가 인기가 되게 많거든? 그거 피곤해서 그래.
여긴 사람이 없잖아. 안피곤하게.
여자친구도 없으면서.
그래. 사람이 많아도 혼자고, 사람이 없어도 혼자면.
…….
착각하지 않게, 제대로 혼자인 게 낫지 않겠냐.
착각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아요?
뭐?
착각조차 안하면 너무 외롭잖아요.
…….
…….
그래. 그래서,
…….
내가 여기 오나 보다.
나직한 웃음소리가 여시의 귓바퀴를 타고 봄비처럼 다정하게 고임
여시의 설렘은 현중과의 첫만남으로부터 바로 지금까지도 잠들지 못한 채였고
여시는 가만히 차를 마시는 현중의 모습을 보며
제 온 머리와 가슴에 남실대는 이 떨림이
꽤나 오래가게 될 것임을 직감함
너 안가?
오늘 제가 하루 다해요. 교대하는 오빠가 일 있다 그래서.
그래? 몇시에 문닫는데?
열시 반이요.
야 무슨 기지배가 그렇게 늦게까지 싸돌아다녀.
넌 뉴스도 안보냐? 요새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열시 반이 뭐가 늦어요? 그리고 싸돌아다니긴 누가 싸돌아다녀. 일하는데.
하여간 한마디도 안지지.
어쩐 일인지 현중은 그날 종일 카페에 붙어있음
간간히 음료도 시키고 케익이며 토스트도 시키기에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은근히 신경은 쓰여
여시는 자꾸만 틈나는대로 현중에게 시선을 둠
평소처럼 여유작작하게 눌러붙어 있던 현중은
열시 반이 딱 되기가 무섭게 계산대로 달려와 마감을 재촉하고
괜히 마음이 급해져 후다닥 매장을 닫은 여시는
어느샌가 제 옆에 꼭 붙어선 현중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봄
뭐예요?
가자, 집. 어디냐.
왜요?
너 못생겨서 사람들이 겁먹으면 어떡해.
그나마 나같이 듬직한 남자가 좀 옆에 있어줘야
아, 사육사가 있구나. 하고 안심들을 하지.
됐거든요?
뽀중아, 오빠 말 들어라.
극구 사양해도 찰떡처럼 달라붙는 현중 탓에
결국 여시는 투덜대며 귀갓길을 함께하게 됨
집까진 도보로 삼십분 정도였고
현중과 여시는 카페에서처럼
쉴새없이 티격태격하며 걸어감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어색함이라곤 한톨도 알지 못한 채
온갖 장난과 대화로 물결치는 길가가 여시는 자못 흐뭇함
다 왔어요. 이제 가세요.
여기야?
네.
와, 되게…, 아담하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평균이거든요?
쓸데없이 말 고르지 마시고 가시죠? 전 갑니다.
뽀중아.
아, 왜요.
…반하지 말랬는데.
안반했다니까요? 왜 또 헛소리예요.
취소.
뭐요?
반해라.
또 무슨 말도 안되는….
내가 반했다, 너한테.
참으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그림이었음
죽어버린 별 대신 거리에 환하게 뜬 가로등 불빛 밑에서
잔잔한 웃음과 함께 맺힌 고백에
여시는 잠시 굳었다 곧 천천히, 공기의 감촉을 헤아리듯
수줍은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임
아, 학원을 뭐하러 가.
취직해야 되니까 가죠. 내가 오빠처럼 돈많은 도련님인 줄 알아요?
취직? 어디가 목푠데? 뭐 적당히 하다 그냥 대충 C그룹 같은데나 들어가면 되지.
이 사람이 진짜. C그룹이 무슨 뉘집 개이름이에요?
어려워?
아 어렵죠, 그럼!
가끔 이 따위로 속터지는 소리를 지껄일 때도 있지만
현중은 꽤나 그럴듯한 남자친구였음
표현에 좀 서툴긴 해도
한밤중에 보고싶다고 전화도 하고
뜬금없이 곰인형같이 아기자기한 선물을 내놓는 등
나름대로 귀여운 맛이 있음
손 한번 잡는데도 수십번씩 하는 헛기침이나
입을 맞출 때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같은 것들을
여시는 안어울린다고 타박을 하면서도 홀딱 빠져들고 맒
여보세요?
박여시씨 되시나요.
예, 저 맞는데 누구….
나, 현중이 엄마예요.
만나자며 찡찡대는 현중에게 학원 핑계를 대며
여시는 장장 세시간동안을 거울 앞에서 서성이다
약속 장소인 호텔 내부의 카페로 떠남
현중의 뽀족한 눈매를 빼다박은 여인은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이나 맞는 목소리만은 고상했음
앉아요.
예, 안녕하세요….
원래 이렇게 마주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죠.
…….
우리도, 여시씨와 현중이도.
…….
사실 항상 바빴어요. 나도, 그이도.
곁에 많이 있어주지 못한 거 인정해요.
아마 그래서 여시씨같은 사람에게 끌렸겠죠.
시간이 많아서 같이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알다시피 현중이는 C그룹 후계자고,
각자에게 어울리는 짝이 있는 거잖아요?
C그룹…이요?
왜 굳이 모른 척을 하지? 진부하게.
정말 몰랐습니다.
뭐,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두죠.
어쨌든 저마다 제 짝이 있는거고, 내가 보기에 여시씨는….
이쯤하면 알아들었을 거라 믿어요.
나, 추저분하게 여시씨와 그 주변 사람들 숨통 쥐고 협박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요.
…….
현중이 약혼해요. 아마 별일이 없는 한 결혼까지 하겠죠.
현중이 곁엔 그 애가 항상 함께할거고,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예요.
여인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시를 조각난 꽃잎처럼 너덜너덜하게 만듦
현중의 배경은 여시의 생각보다 훨씬 어마어마했고
여인의 우아한 명령은 하나같이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것들 뿐이라
여시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굼
상처받지 않았으면 해요. 그냥 당연한 거니까.
계절이 변하고 해가 진다고 우리, 상처받진 않잖아요.
말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 정도야 뭐. 말해봐요.
이런 개인적인 것을 여쭤보게 되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기, 외롭지 않으신가요…?
…….
사랑하지 않아도 누군가 곁에 있다면…, 그것만으로…,
정말 외롭지 않을 수 있나요…?
…굉장히 건방진 질문이네. 아주 무례하고.
…….
허락을 한 건 나니까, 대답이야 해줄게요.
아직 너무 어려, 여시씨.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거겠지만.
외로움은 중요하지 않아요. 시간이 덜지 못하는 고통은 없어요.
외로움이라고 시간을 피해갈 순 없죠. 익숙해져요.
숨쉬는 것처럼, 항상 자길 둘러싸고 있는 피부처럼
존재조차 제대로 실감할 수 없게 한몸이 된다고.
그러니 여시씨…, 나 너무 원망하지 말아요. 곧 익숙해질테니.
짧은 만남이 끝나고 여인이 품위있는 걸음으로 카페를 나서고도
여시는 한참을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다 조용히 일어나 강변으로 향함
수많은 불빛들이 빠져 허우적대는 강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와중
여시는 별안간 울리는 벨소리에 가만히 휴대폰을 바라봄
여보세요.
어디야? 학원 앞에서 계속 기다리는데 안보이네.
뭐하러 거기 가있어요.
뭘 또 뭐하러야. 내가 못올 데 왔나.
나, 한강인데.
뭐? 언제 또 그리로 갔어? 아니, 지금 얼마나 깜깜한데
강가에 혼자 앉아있어, 겁도 없이!
올래요?
그럼 안가? 하여간 어지간히 고생시킨다, 사람.
어디 들어가 있어. 감기 걸려. 지금 바로 갈게.
빨리 오면 되지. 나 감기 안걸리게.
아 빨리는 갈건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들어가있어. 걱정시키지 마, 좀.
싫은데, 걱정시킬건데.
아오! 박여시 딱 기다려라, 너.
끊긴 전화를 보며, 여시는 장난스레 중얼거림
걱정시킬건데, 나만 새까맣게 속였으니까.
어둡고 몸서리치도록 추운 강물에 빠져
익사도 할 수 없이 그저 허우적대는 불빛이 너무도 가엾고
뺨을 스치는 바람에 짙게 묻은 강의 냄새는 지나치게 서러워서,
여시는 결국 울음을 터뜨림
박여시, 왜 전화 안받…! 울어?
…….
여시야, 왜 그래. 왜 울어.
왜 나한테 말 안했어요?
…….
오빠 집안, 약혼…, 왜 다 말 안했어요?
왜 나 바보 만들어요?
…어머니구나.
…….
여시야, 미안해. 말 안해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런데 나랑 아무 관계없어. 나 회사 물려받지도 않을 거고,
약혼도 안할 거야. 정말이야. 그래서 말 안했어.
왜요? 나 때문에? 그래요?
…….
아냐, 오빤 회사 물려받을 거고, 약혼도 할 거예요.
…….
앞으론 내가 없을테니까.
여시야.
우리, 헤어져요. 나 욱해서 하는 말 아니야.
계속 생각해봤는데…, 이게 답이야. 이거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이제 만나지 말아요.
미안하다며 매달리는 현중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여시는 꿋꿋이 앞만 바라보며 택시에 올라탐
쉼없이 울리는 휴대폰은 아예 전원을 꺼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사장에게 전화해 알바도 그만 두고
여시는 사회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한 채 두문불출함
그렇게 방에만 누워있길 일주일,
이러다 죽는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어머니의 말에
여시는 마지못해 식탁에 앉아 미음을 목구멍으로 넘김
퀭한 눈으로 멍하니 숟가락만 뜨는 여시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어머니가
조심스레 꺼낸 말은 다름아닌 현중의 이야기였음
사흘전부터 어떤 남자가 내내 집앞에 서있다며
얼굴이 많이 안되었던데 웬만하면 만나주는 게 어떠냐는 말에도
여시는 고집스레 고개만 저을 뿐
여시야.
대체 왜 이래요.
약혼한다면서 이렇게 관리 안하면 안되잖아요.
많이 말랐네….
그렇게 여시와 현중이 이별한지 삼주째 되는 날이었음
하는 것 없이 여시의 집앞을 지키는 현중 탓에
동네엔 소문이 심심찮게 난 모양이었고
같은 빌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민원도 더러 있었다는 아버지의 말에
여시는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나감
모진 말에도 여시의 걱정부터가 우선인 현중은 그믐달처럼 빼빼 말라있었음
어머니는 대체 뭐하세요. 이러고 있는데 안잡아가고.
죽는다고 했어. 잘했지.
손목…, 그었어요?
응. 보고싶어서.
대체 왜 이래요! 내가 뭐라고 이런 멍청한 짓을 해!
이러지 말아요, 제발….
우리 원래부터가 만나면 안되는 사이예요. 이게 당연한 거라고.
계절이 변하고 해가 진다고, 우리가 상처받진 않잖아요….
난 상처받는데.
…….
네가 없이 변하는 계절이, 지는 해가…, 여시야.
…….
나는 그게 다 상처야….
현중의 눈이 점차 빨갛게 달아오름
어느샌가 현중의 눈꼬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일렁이는 눈물이 숨막히도록 무거워
여시는 그만 말문이 턱하니 막힘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는데…, 하나 생겨버려서.
…….
공허하기만 한 세계에…, 여시야 의미가 너 하나밖에 없어서.
그거…, 다 착각이에요.
착각하게 해줘.
…….
여시야, 착각하고 싶어….
한번 착각하고 나니까, 도저히 못깨겠어. 못돌아가겠어.
여시야, 나 버리지마.
…….
나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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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학생 골라보기 또 왔자냐 또 신나쟈나!!!!!!!!
과외학생 골라보기 세번째가 왔쟈나 막 신나쟈나!!!!!
기묘한 꿈속의 여시를 사랑하는 남자 고르기 (가로본능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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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살이 찐 것 같습니다ㅎㅎㅎㅎ..
창을 한번에 띄워놓고 작업하다가
실수로 마무리가 덜 된 걸 올렸어요
헛걸음하신 모든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승호야ㅠㅠㅠㅠㅠㅠㅠㅠ우빈씨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잘 쓴다ㅠㅠ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아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6.12 15:04
아 1 진짜 너무 하잖아.. 감당할 수가 없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글 보면서 운 적 없는데 진짜 울컥했다ㅠㅠㅠㅠ 111111111111111
아진짜 오열했다................왜눈물이멈추지가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