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도 한 마리만 키우면 외로움을 타는지 종일 사람을 따라다닌다. 졸졸졸 주방을 가도 따라오고
화장실을 가도 들어오지는 않지만 문을 지키고 누워 기다린다. 어이없는 녀석. 고개를 휙 돌려 방으로
가거나 거실로 가라고 하면 가끔은 알아듣고 자리를 뜨기도 하는 기특한 면이 있다. 가끔은 나도 혼자
강아지도 혼자라 엄마 노릇을 해줄 때가 있다. 마치 내 아이와 놀아주듯 하는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해서 웃곤 한다. "나도 참, 너 때문에 내가 별짓을 다한다." 강아지를 앞에 두고
혼잣말도 하면서.
그러다가 문득 창밖을 내다보며 날씨가 어떤지 살피기도 하며 바깥 풍경에 심취한다. 일종에 사색에
빠지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의 낙엽 지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던 문학소녀도 아니면서 가끔은 그 시절로
돌아가 우수에 잠기는 일은 이 나이에도 종종 있다. 비라도 내리면 창밖을 바라보며 빗소리에 젖어들어간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 있을 때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라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요즘 왜 그런지 종교 관련된 사람들이 홍보하러 오는 경우가 많아 아예 대답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번에도 그럴까 하다가 문을 닫아놓은 상태에서 물어봤다. "누구세요?"
그런데 문틈으로 내다보니 의외로 같은 건물에 살면서 친해진 아이 엄마였다. "미진 엄마였구나.
난 혹시 홍보하러 다니는 사람들일까 봐 대답하지 않으려 했더니."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말도 마. 난 그런 사람들인지 모르고 문 열어주었다가 하루 종일 시달렸다니까. 왜 그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고 놔주지 않는지 모르겠어. 나도 문연 엄마처럼 대답도 하지 말아야겠어."
하면서 짜증 섞인 말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한참 듣고 있다가 "그런데 웬일이야, 할 말이 있어서 온 건
아니지?" 했더니 별일은 없고 심심해서 놀러 왔다고 하길래 "애도 아니고 심심하긴. 그럴 틈도 있구나" 하며
핀잔을 주었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커피나 마실 것 좀 달라고 하고는 강아지를 보더니 "아휴, 너도 있었구나."
하면서 반겼다. 다행히 미진 엄마도 강아지를 좋아해서 집에 놀러 올 때마다 해피를 챙겼다.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 해피다. 그렇게 이웃에 사는 아이 엄마와 낮 시간을 보내고는 더 늦기 전에
가봐야겠다는 미진 엄마를 배웅하고 들어와 또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아직은 가을 기운이 감싸고돌아 춥지는 않지만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어놓으면 바닥에 냉기가 올라오기도
해서 보일러 대신 카펫을 깔아 둔다. 뭔가 아늑한 느낌이 들어 좋다. 다시 혼자가 되니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을 집었다. 시집이나 에세이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윤동주 시인의 책을 꺼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시집이라고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보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사색하기에 좋다.
특히 서시를 좋아해 한때는 줄줄 외우던 시임에도 이제는 가물가물 레테의 강을 건넌다. 기억력을
유지하려면 암기 능력을 키우라든지 고스톱을 하라고 하며 각자 나름의 방법을 조언하지만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세월을 역행할 수는 없겠지.
가을 바람에 낙엽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창밖 풍경은 시를 읽으며 사색하기에는 딱이다. 살면서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남아있다는 것도 나름의 행복이 아닐까 자문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끽한다.
나만의 시간에 몰입해 있을 때 강아지 해피도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는 듯 낑낑대며 다가와 발을 핥으며
얼굴을 쳐다보고는 배가 고픈지 밥그릇을 박박 긁어댔다. 그 행동과 표정은 마치 "나 배고파. 밥 줘."라고
말을 하는 것과 같다.
"배고프다고? 알았어 밥 줄께 기다려." 하고는 사료 봉지를 찾아 사료를 꺼냈다.
사료를 주고 물그릇에 물도 채워준 후 주방으로 갔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다.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를
타든 커피를 먼저 넣고 뜨거운 물을 붓든 순서에 관계없이 그저 커피가 좋아서 마시는 나다.
커피를 들고 거실로 오자 그새 사료를 다 먹은 해피가 배가 부른지 웃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며 꼬리를 흔든다.
그것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해피도 따라와 내 옆을 떠나지 않으려는 듯
착 달라붙더니 소파에 고개를 파묻는다. 귀여운 녀석이다. 작고 동그란 얼굴과 눈망울은 귀여움의 결정체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을 할 때면 귀를 쫑긋거리며 세우기도 하고 옆으로 눕히기도 하면서 알아듣는 것 처럼 하는
모습은 왜 그리 예쁜지. 이런 맛에 애완견을 키우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키워야겠다고 마음 먹고 분양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반 강제로 키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키우고 있으니 다른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처럼 지극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좋다고 나만 따라다니는 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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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9월의 오솔길
좋은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단상 글귀에 머물며 구구절절
일상을 그려주셔 내 일상은 어떤건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건승빕니다
함께하는 애완견의 모습이 훤하게 보이네요..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에 여러가지로 수고 많으셨어요. 올 가을엔 아껴둔 행복까지 누리는 소중한 나날 되시길...추천드립니다.
바람이 제법 선선하네요.
공원에는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더군요.
좋은날 되세요.
좋은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