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9. 토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형벌인가? 책임인가?" 빌립보서 1장
얼마 전 어떤 분에게 아주 긴 상담 문자를 받았다.
읽으면서 마음이 참 어려웠다.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고,
딸들과 형제들과 조카들까지 점점 연락을 끊어 가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잘못 살아온 죄 때문에 지금 이런 벌을 받는 것일까?”
“내가 가짜 신앙인가?”
“왜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을까?”
사실 이런 상담은 생각보다 많다.
특히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죄책감과 두려움에 묶이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러나 오늘 나는 성경을 해석할 때 가져야 하는 원리 하나를 꼭 말하고 싶다.
성경을 해석할 때 원리가 있다.
구약보다 신약이 더 완성된 계시이며,
사람들의 말보다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의 선언이 더 높은 권위를 가진다.
구약에는 죄의 결과로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다윗도 그랬다.
죄를 짓고 난 뒤 그의 가정 안에 많은 아픔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붙들고 오늘 자신의 인생까지 다 해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죄를 지어서 지금 벌받는 거야.”
“하나님이 아직도 나를 치시는 거야.”
“그래서 내 인생이 안 풀리는 거야.”
그러나 신약은 뭐라고 말하는가?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새 피조물이라고 하셨다.
새 피조물에게 무슨 과거가 있겠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만 덮어 놓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새롭게 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죄를 들춰내며
“그래서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 거야”라고 스스로 정죄하며 살 필요가 없다.
물론 심은 대로 거두는 삶의 원리는 있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과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다”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사탄은 끊임없이 과거를 들고 온다.
그러나 성령님은 언제나 십자가를 보여주신다.
“너는 이미 새 사람이 되었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다시 시작하자.”
이 말씀이 바로 좋은 소식, "복음"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할 때 우리의 열심이 상대방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복음은 너무 귀한 것이지만
사람은 억지로 변화되지 않는다.
예수님도 사람을 강제로 변화시키지 않으셨다.
기다려 주셨고, 사랑하셨고, 눈물로 품으셨다.
때로는 성경 한 구절보다 따뜻한 밥 한 끼가 먼저 필요할 수도 있고,
설교보다 “네 마음이 힘들었겠다”라는 한마디가 먼저 필요한 날도 있다.
그러니 가족들이 아직 마음을 닫고 있다고 해서
“나는 실패한 신앙인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지금은 정죄보다 사랑,
조급함보다 기다림,
말보다 삶의 향기가 필요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이 상담 문자를 읽으며 다시 한번 느낀다.
참 많은 사람이 과거에 묶여 살아간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과거에 묶어 두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다.
자유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
나는 이런 상담 글을 보내오신 분에게
위로 케이크를 보내 드렸다.
잘 버티고 계심을 칭찬해 드렸다.
오늘도 나는 과거 일에 아직도 묶여 온전한 복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에게
동일한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다.”
이 말씀은 위로 정도가 아니다.
하늘의 선언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씀을 믿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매일매일 하루의 첫 시간의 시작을 더더욱
힘 있게
자신감 있게
참소망으로 시작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말성경 빌립보서 1장
29.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할 책임, 곧 그분을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을 위해 고난도 받아야 할 책임을 받았습니다.
나의 묵상 일기 편에 전도하면서 친척으로부터, 지인들로부터 “외면함”을 당하는 상담 케이스를 썼다.
나는 내 묵상에 상담 케이스를 공유할 때 그런 상담 케이스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케이스를 “대표 본보기”로 선택해서 공유한다.
어떤 분은 자녀 중 “무당”이 된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 어머니를 핍박하는 것은 완전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 성경 구절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받게 되는 고난을 이야기해 준다.
이 고난을 우리에게 “책임”이라고까지 성경은 표현한다.
그러니 내 인생에 내가 예수님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도했기 때문에 나를 외면한다고 한다면 그것이 내가 이전에 지은 죄 때문에 받는 형벌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게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고 싶기 때문에 우리가 받게 되는 고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난이 곧 우리들로 하여금 책임 의식을 갖게 만든다면 이것이 좀 더 성경적인 마음이라고 하겠다.
예수님도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셨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면서 수없이 외면당하고 핍박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사람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너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별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신의 영이 있고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싫어하고 외면하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조급해하지 말고 더 기다려야 한다.
핍박받는다고 해서
그들로부터 사랑을 못 받는다고 해서
마음이 내려갈 필요 없다.
오히려 더 겸손하고 더 온유하고 더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참된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아름답게 보일 리는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신의 영이 있고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영이 있기 때문에 저희를 싫어하고 외면하기보다 결국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임을 저희가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저희에게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받을 수 있는 책임감, 고난받을 수 있는 책임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더 이상 저희에게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영광의 면류관의 예고편임을 더 깊이 알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더 사랑하고, 더 겸손하고, 더 온유하고, 더 친절한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참된 책임감임을 알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저께 집회한 교회 가운데 중보기도를 부탁드렸는데, 어떤 한 식구는 단순히 중보기도만 해주신 것이 아니라 직접 교회까지 오셔서 중보해 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어제는 최고의 날 식구들이 많이 현장 예배에 와 주셨습니다.
모든 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디를 가서 설교하더라도 항상 이렇게 최고의 날 식구들이 먼 길에서도 일부러 와 주시고, 어떤 설교 말씀은 분명히 들은 말씀일 텐데도 또 듣고 은혜받았다고 하시며 저를 격려해 주시고 새 힘을 주고 돌아가시는 모든 최고의 날 식구들, 묵상 식구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또 현장에 제가 설교하는 곳에 다 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있는 자리에서 제가 부탁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는 모든 최고의 날 식구들, 묵상 식구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알맞은 복으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오늘은 "만남 사역"이 있습니다.
만남 사역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시고, 우리 하나님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자유함과 기쁨과 새로움과 새 힘을 얻는 시간 되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작정서 점수: 100점.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5. 9.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제 목소리 정말
영성이 깊어 보이는
그런 목소리 아닌가요? 하하하
사랑하는 그대여
전도하다가 핍박받는
그러한 케이스를
오늘 묵상에 올렸는데요.
전도하는 그 자체가
사실 쉬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소문나면
학교에서 왕따당할 수 있고,
직장에서 왕따당할 수 있고,
군대에서 왕따당할 수 있고
또한 담장 안에서도
왕따당할 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핍박이기도 하겠지만
그대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책임감을 다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고난 받는 것이 책임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다가 핍박받는
것이 책임이라는 것이죠.
그 책임을 잘 감당하는
그대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