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표장갑
곽 흥 렬
입동이 지나자 그새 바람살의 감촉이 눈에 띄게 맵차졌다. 절기답게 어느덧 겨울의 골짜기로 성큼 들어선 느낌이다. 천지자연의 질서는 참으로 엄정하여 조화주가 정해 놓은 틀에서 한 치도 어그러짐이 없이 오고 떠나고 오고 떠나고를 되풀이하는가 보다.
해마다 햇살이 엷어지고 뜨르르 추위가 들이닥치면, 겨울 채비로 장갑부터 찾는다. 한의학에서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창시한 이제마李濟馬선생의 체질 분류 기준에 따르면 나는 전형적인 소음인 형질을 타고났다. 소음인의 특성상 몸이 차고, 그런 까닭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유달리 추위를 많이 탄다. 특히나 몸 가운데서도 외부 기온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위가 손이다. 이런 고약한 신체조건이 걸림돌로 작용하여, 해마다 겨울로 들어선다는 입동 무렵부터 이듬해 저 멀리 남녘에서 따사로운 봄소식이 전해져 오는 우수 경칩을 맞을 때까지 털장갑은 긴긴 겨울나기의 필수품이 된다.
털장갑을 낄 때면 자주, 오래 못 보고 지낸 누나 생각이 난다. 친누나가 아닌 육촌 누나이다. 형제자매들 가운데 맏이여서 누나가 없고, 아버지가 외독자인 까닭에 자연 사촌 누나도 없다. 그러다 보니, 비록 재종 누나지만 친누나 못잖게 대하면서 끈끈한 핏줄의 정을 느꼈던 것 같다.
누나는 시집을 가기 전까지 집에서 뜨개질을 했었다. 그냥 단순히 취미 생활이나 소일거리 삼아 한 것이 아니다. 엄연히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고 보면 누나에게는 뜨개질이 재택근무로 하는 나름의 직업이었던 셈이다.
당시 누나의 집은 가난에 절어 있었다. 오촌 당숙께서 광복 후 농민동맹청년위원장을 지낼 때까지만 해도 형편이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그랬던 것이,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그간의 행적에 대한 처벌을 두려워한 당숙이 야밤을 틈타 북으로 넘어가 버리자 가세는 급격히 기울고 말았다. 사상 불온가不穩家라는 굴레가 들씌워져 노상 사정기관의 서슬 퍼런 감시망이 뻗쳐 있었고, 가족들은 변변한 일거리도 갖지 못한 채 항시 마음을 졸이며 죽은 듯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정환경 탓에 누나는 겨우 초등학교만 마친 뒤 뜨개질을 배워 사실상 가장 역할을 도맡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밤을 낮 삼아 짜 모은 옷이며 목도리며 장갑 등속의 뜨갯것을 읍내 수예점에다 갖다 넘기고 노동의 대가를 받아오곤 했다.
동생과 나는 평소에도 누나의 집을 우리 집처럼 오갔지만, 특히 겨울 방학 때만 되면 풀방구리에 새앙쥐 드나들듯 들랑거렸다. 누나는 바깥에서 추운 줄도 모르고 신나게 뛰어놀다 들어온 우리의 꽁꽁 언 손을 자신의 따뜻한 손으로 감싸서 녹여주는가 하면, 읍내 나들이를 하는 날에는 애옥살이로 근근이 살림을 이어 나가면서도 이따금씩 맛 나는 간식거리를 사 와서 챙겨주는 선심을 잊지 않았다. 나는 누나의 그 포근한 손길이 마냥 좋았고, 평소엔 잘 못 보는 간식 먹는 재미에 짧은 겨울 해가 더욱 짧았다.
누나에게서 살가운 정을 느꼈던 것은 단지 입의 즐거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누나는 일을 하는 짬짬이 자투리 털실로 나하고 동생의 스웨터랑 모자랑 양말 같은 것들을 떠 주었다. 그 시절 시골의 겨울철 추위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혹독하였어도, 우리 형제의 겨울은 누나의 솜씨로 짠, 세상에 둘도 없는 방한용품들로 하여 늘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쩌다 장갑을 만들어 줄 때도 있었다. 손가락이 하나씩 따로 들어가는 장갑이 아닌,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이 함께 어울려 지내게 되어 있는 벙어리장갑이었다. 지인들에게서 간간이 집으로 배달되어 오는, 상당한 비용을 치렀을 것 같은 선물이 누나의 벙어리장갑만큼 마음을 기쁘게 해주진 못한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서 발 막대 거칠 것 없는 형편에 누나가 나와 동생에게 해줄 수 있었던 최고의 정표가 아니어서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위에 가까운 피붙이 하나 없는 외로운 처지이다 보니, 누나는 재종 남동생들인 우리 형제한테 그런 식으로 자별한 사랑을 쏟았는지 모르겠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친누나를 두지 못했기에 육촌 누나에게서 더욱 살가운 정을 느꼈던 것 같다.
거리를 지나치다 우연찮게 벙어리장갑이 눈에 뜨이면 손바닥만 한 방에서 오글오글 모여 지냈던 지난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벙어리장갑 안에 함께 들어가 있는 손가락처럼, 같은 공간에서 노상 부대끼고 토닥거리면서도 하나도 불편한 줄을 몰랐다. 아니, 불편은커녕 오히려 따사한 정의 샘이 솟았었다.
지금은 손가락장갑같이 각자 독립적인 공간을 갖게 되면서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지낸다. 참으로 살기가 좋아진 시절임을 누구도 부인하진 못하리라. 이렇게 윤택한 세상인데도 가슴은 어쩐지 추수 끝난 늦가을 들판처럼 스산하기만 하다. 생활의 공간은 지난날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지만, 인정의 공간은 그때와 견줄 수 없을 만큼 좁아져 버린 성싶다. 설마하니 그럴 일이야 있을까마는, 비록 아무리 넓어진다 해도 그사이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은 점점 더 두꺼워져 가는 것만 같다.
몇 해 전부터, 벙어리장갑이 언어장애인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담겼다고 하여 순화된 말로 부르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에 의해 생겨난 것이 ‘손모아장갑’이니 ‘엄지장갑’이니 하는 이름들이다. ‘주머니장갑’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나왔다.
우리가 지금껏 별생각 없이 관습적으로 써 온 낱말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언어 사용에 신중을 기하자는 그 근본 취지에는 백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손모아장갑과 엄지장갑도 물론 그러하려니와, 주머니장갑 역시 벙어리장갑을 대체하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모아장갑이라고 했을 때 그러면 따로 떨어져 있는 엄지손가락은 어쩔 것이며, 엄지장갑이라고 불렀을 때 그러면 나머지 네 손가락은 또 어쩔 셈인가. 주머니장갑이라는 말에서는 아예 벙어리장갑의 상像자체가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이름들 대신 나는 ‘사랑표장갑’으로 고쳐 부르고 싶다. 우선 생긴 모양부터가 손가락 사랑 표시를 닮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장갑 속에는 동생을 향한 누나의 도타운 사랑이 담뿍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버석거리는 모래알같이 삭막해져 간다. 그러다 보니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 살을 비비면서 살았던 지난날이 자꾸 그리워진다. 만일 내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신통력이 주어진다면,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했어도 마음만은 솜사탕처럼 부풀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 사랑표장갑처럼 따사로웠던 누나의 손길도 오늘따라 더욱 애틋해 온다.
<대구문학 2021년 9월호>
첫댓글 나 국민학교 시절에 어머니가 장갑을 사주겠다고 해서 벙어리 장갑을 사달라고했다
벙어리 장갑이 일반 장갑 보다 더따뜻하다는 말이 있어서였다
정말 일반 장갑보다 벙어리 장갑이 더따뜻한거 같더라
그벙어리 장갑을 애지중지 했던게 기억난다
나 고등학교 다닐때 한겨울에 장갑 없이 통학하는 친구들이 나를 슬프게하더라
나 군대에 있을때에도 장갑이 없어서 손시려워 하는 전우들이 안타깝더라
그때에는 모든게 다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요새는 장갑이 흔해빠졌다
가만히 있어도 좋은 장갑이 선물로 계속 들어온다
좋은 세상이 된거다
우리 이 좋은 세상 오래 오래 건강하게 잘 살자
충성 우하하하하하
사랑표 장갑,
기발한 아이디어 💡 같습니다.
유난히 손부터 추위를
느끼는 저는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장갑부터 챙기는데
올해는 사랑표 장갑을 하나
구입해야 할까봅니다.^^
양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맞붙이면, 사랑표가 되네요.
육촌 누이의 사랑이 담긴 장갑,
손가락을 호호불며 등교하던 어린시절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모든 것이 풍부하다 못해
너무 흔해서, 사랑이 담긴 것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시절입니다.
벙어리 장갑, 그 말 역시 정겹기만 합니다.
저 역시 사촌이라는 친척을 두어 본 적이 없고 외가
로는 사촌이 있었지만 친가로는 6촌이 가장 가까웠
지요!
해서 그 6촌 이라는 어감이 꽤나 정답게 들리는군요!
벙어리 장갑~ 그러나 그 어떤 이름을 붙여도 원 이름만큼
귀에 확 들어 오지는 않는듯 합니다.
겨울에 내복없이 잘 지내는 陽人들이 간혹 부럽기도 하지만
그것이 꼭 좋다고만 볼수는 없을듯 합니다. 에너지가 과잉
낭비된다고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 ㅎㅎ
경제의 발전이 행복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입니다.
어려운 시절이지만 벙어리 장갑속의 손가락처럼
한 이불속에서 잠들던 그 옛날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