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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통신] 5·18의 恨 풀어준 YS… 계승자인 국민의힘은 광주에 더 다가가야
조선일보
박은식 의사·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입력 2023.05.30. 03:00업데이트 2023.05.30. 08:36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5/30/OASY3R3EUZBQNCPAL256F7B7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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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광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음악 선생님께서 5·18 주제곡을 가르쳐 주시면서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셨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이후 당연한 듯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여러 경험을 하며 생각이 보수적으로 변했다. 보수 성향의 일간지에 칼럼도 기고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 교류했지만 5·18이 대화 주제로 나올 때면 서로 불편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북한의 소행으로 보거나 폭동 혹은 반란으로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폭력 시위의 목적이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인 자유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반란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5·18의 본질은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전방 사단의 병력을 빼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독재 정권에 대항해 헌법에 명시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던 국민의 저항이었다고 생각한다. 절대 반란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시위대는 ‘북괴는 오판하지 말라’고 플래카드를 걸었을 만큼 북한과의 연관성을 부정했고, 일부 인사들이 제기했던 북한 주도설은 허위로 밝혀지지 않았나.
일반 시민이 무장해서 계엄군에 대항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국민의 의지와 반대되는 기존 체제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엔 항상 유혈 충돌이 있어왔다. 4·19 혁명 때도 마산의 민간 시위대가 수류탄을 탈취해 경찰서에 던졌고 동대문과 의정부 일대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져 민간인 사망자가 180여 명이나 발생했다. 이는 현재까지 집계된 5·18 민간인 사망자 166명보다 많은 숫자다. 그렇다면 4·19도 폭동이고 반란이란 말인가?
최근 들어 5·18에 대한 왜곡이 심해지자 그 반작용은 더 강해졌다. 광주광역시 교육청은 관내 학교에 5·18 역사 교육을 의무화했다. 매년 5월이면 5·18민주묘지에서 전두환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밟는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참배하러 오는 보수 정당 정치인을 일부 시민 단체가 막아서기도 한다. 갈등을 풀어야 할 호남의 정치인들은 오히려 이를 이용해 독점적인 정치 구도를 만들어 5·18역사왜곡처벌법까지 제정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홍콩과 미얀마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며 민주화 운동의 세계적인 상징이 되어가던 5·18은 그렇게 광주라는 좁은 공간에 갇히고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역사적 화해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하지만 역사적 아픔을 딛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고향 분들께서 기억해줬으면 하는 정치인이 있다. 바로 김영삼이다. 그는 5·18 진상 규명을 요청하며 83년 5월 장기간 단식투쟁을 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하나회를 척결해 군부 쿠데타의 싹을 제거한 뒤 전두환과 노태우를 단죄했다. 5·18특별법 제정과 5·18민주묘역 조성도 김영삼 정권 시절 이뤄졌다. 광주 시민의 한을 풀어주고 민주화를 이룩하는 데 진심인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국민의힘 당사에는 그의 사진이 걸려있고 윤석열 정권은 그의 정신과 함께 5·18 정신을 계승할 뜻을 밝혔다. 고향 분들께서 민주당만 바라보지 말고 국민의힘에도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당 간에 경쟁을 촉발해 낙후된 호남 경제를 발전시키고 5·18 정신이 더 많은 분들에게 기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호남의 여러 어르신들과 대화해보면 한미 동맹과 경제성장 등 우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은 또 하나회 군인들이 번갈아가며 대통령 하던 시대를 끝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일부 정치인들에게 폭동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에 차마 국민의힘을 찍지 못하겠다는 정서가 느껴졌다. 5·18을 왜곡하고 비하하는 일부 우파들의 언행이 호남 사람들의 국민의힘 지지에 큰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5·18의 역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룬 업적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지금의 발전된 대한민국을 만든 역사였다. 그리고 김영삼이라는 정치인이 있었기에 국민의힘은 산업화, 민주당은 민주화라는 프레임에 갇힐 필요가 없다. 국민의힘은 산업화도 이루고 민주화도 성공시킨 정당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호남에 적극적으로 다가가 5·18 정신과 지역을 발전시킬 공약을 말해야 한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지역 독점 구도가 깨지고 정당 간 경쟁이 이뤄져 호남과 대한민국이 모두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