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우리 행동을 타락시킴
존 맥아더 지음 2024년 9월 27일 금요일
이 게시물은 2020년 7월에 처음 게시되었습니다. -ed.
모든 거짓 종교는 인간에 대해 거짓말을 합니다. 대부분은 인간이 완벽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삶과 역사의 맨살의 죄스러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인간 성취 체계를 제시한다고 주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고통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진실을 말해줍니다. 즉, 죄의 타락이 인간 존재의 모든 측면에 철저히 스며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10-17에서 사도 바울은 아담의 타락의 영향이 우리의 본성 전체를 타락시켰다고 지적하며 인류에 대한 기소를 제기합니다(로마서 3:10-12). 그런 다음 그는 그 고유한 죄성이 어떻게 우리의 말로 넘쳐나는지 지적합니다(로마서 3:13-14).
바울이 기소장을 읽은 다음 인간의 행동 문제로 넘어갑니다. "그들의 발은 피를 흘리는 데 빠르고, 멸망과 비참함이 그들의 길에 있으며,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도다"(로마서 3:15-17). 이사야 59:7("그들의 발은 악으로 달려가고, 무고한 피를 흘리는 데 서두른다")을 인용하면서, 그는 살인이라는 범죄를 지적하고 모든 인류에게 그 범죄의 죄를 돌립니다.
살인이라는 죄는 실제로 인간 역사의 구조에 짜여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에게 태어난 첫 아이는 친형제를 죽였습니다. 사악한 피에 대한 갈증은 온 인류를 감염시킵니다. 그리고 그 혐의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하다면, 예수께서 살인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여섯 번째 계명("살인하지 말라")을 인용하고 처벌을 언급했습니다("살인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위험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5:21, NKJV]). 그런 다음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공의회에서 유죄가 되리라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너는 쓸모없는 놈’이라고 하면 대법원에 가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너는 어리석은 놈’이라고 하면 불타는 지옥에 들어갈 만큼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5:22)
사도 요한은 가능한 한 명확하게 요점을 제시했습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다 살인자니라”(요한일서 3:15).
인류의 증오와 폭력에 대한 성향은 역사 전반에 걸쳐 파괴의 흔적을 남겼고, 바울은 이사야 59:7-8로 돌아가서 그 사실을 지적합니다. “파괴와 파괴가 그들의 길에 있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황폐와 파멸”로 번역된 표현은 문자 그대로 “파괴적인 재앙”을 의미합니다. 그 개념은 단순한 비참함 이상입니다(물론 그것을 확실히 포함하지만). 그것은 실제적이고 고통스럽고 육체적인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재앙과 스스로 초래한 비참함이 항상 인간 경험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세기 초 스코틀랜드 주석가 로버트 홀데인은 로마서에 대한 고전적인 주석에서 "가장 사나운 동물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같은 종류들을 그렇게 많이 죽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야망, 복수심, 탐욕[과도한 탐욕]을 채우기 위해 동료를 죽이는 것처럼요."라고 썼습니다. [1] 바울이 요약했듯이,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로마서 3:17).
바울은 시편에서 발췌한 마지막 구절로 인류에 대한 기소를 마무리합니다.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로마서 3:18). 이것은 다윗이 악인의 범죄에 관해 쓴 시편 36:1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죄책감의 근저에 있는 동기와 인간의 타락의 완벽한 표현이 있습니다. 어리석음의 본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시편 111:10; 잠언 9:10) "주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잠언 8:13). "그리고 주님을 경외함으로써 사람은 악에서 떠나게 됩니다"(잠언 16:6). 이 구약성경의 일련의 언급이 타락한 인류에게 돌리는 모든 악 중에서, 창조주와 심판자에게 보이는 뻔뻔스럽고, 두려움이 없고, 무관심한 경멸보다 더 비열한 것은 없습니다. 타락한 인류를 훼손하는 모든 결함 중에서 이것이 가장 큰 비난입니다.
판결
문제의 결론은 명확하고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임을 압니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3:19). 유죄 판결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모든 법정 장면에서 발견될 수 있는 한 가지가 눈에 띄게 빠져 있습니다. 피고인은 변호를 하지 않았습니다. 변호가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죄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로마서 3:20). 우리는 기소된 대로 유죄입니다. 우리는 변호할 만한 믿을 만한 것도 전혀 없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빌리자면 "나에게 화가 있구나. 내가 망하였음이로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로다"(이사야 6:5). 그는 구약의 가장 뛰어난 선지자 중 한 명이었지만, 자신의 목이 실제로 열린 무덤이라고 고백해야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법과 신성한 정의의 심판대 앞에서 유죄입니다. 모든 입이 막혔습니다. 한편, 의로운 재판관은 한 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겉보기에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로 돌아가게 합니다. 입법자이자 완벽한 재판관인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그냥 간과하실 수 없습니다. "악인을 의롭다고 여기는 자와 의인을 정죄하는 자는 다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잠언 17:15).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수용하기 위해 자신의 완벽한 의로움이라는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기준을 낮추실 수 없습니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하며, 죄의 삯은 죽음입니다. 죄인들은 결코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거기서 멈추면 아무도 복음이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성경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죄에 대한 바울의 긴 담론(로마서 1:18-3:20)은 복음 전파자가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의 영광을 선포하기 전에 해야 할 무거운 짐입니다. 바울이 인간의 타락이라는 필연적으로 어두운 배경을 확립하자 복음이 빛날 장면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에게 유일한 해결책, 우리 자신에게는 생소하지만 창조주께서 영광스럽게 정하신 해결책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율법과 별도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았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 피로 화목 제물로 공개적으로 나타내셨으니 이는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 하심이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이니라 이는 지금 이 시대에 그분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함이니, 이는 그분이 의로우시고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기 위함이니라 (로마서 3: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