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기자의 시각
[기자의 시각] 갱년기 아내, 농담 소재인가
유재인 기자
입력 2023.05.30.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journalist_view/2023/05/30/CSA3X2FGPNEL7HXG5FX5AQRM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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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갱년기 친화 직장 시상식'의 모습. /menopause friendly accrediation 홈페이지
지난해 9월, 영국 런던에서 ‘폐경 친화 직장’을 뽑는 시상식이 열렸다. 폐경 이후 어려움을 겪는 여성 직원에 상담을 지원하거나 폐경에 대한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조직에 수여하는 상이다. HSBC UK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후원한 이 시상식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인 ‘브리스틀 마이어스 스큅’이 ‘2022년 올해의 폐경 친화 고용주’로 선정됐다.
올해 1월 영국 정부는 의회가 발간한 ‘폐경기와 직장’이라는 보고서에 대해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폐경은 여성 일반이 겪는 질환이며 폐경으로 인해 사회적 차별을 받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한 첫걸음이었다.
최근 이러한 흐름이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올해 초 “이 도시의 폐경에 대한 오명을 바꾸고 정책 개선을 통해 여성 근로자에게 더 폐경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도 올해부터 폐경을 겪는 여성들이 직장 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며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해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히스테리’로 치부됐던 폐경과 갱년기에 대한 인식은 여성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지난 2021년 갱년기 여성 90%가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했으며, 10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갱년기와 여성의 소득 변화가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신체적 변화와 정신적 불안으로 갱년기 여성들이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경향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폐경이나 갱년기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중년 남성 연예인들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갱년기 아내’를 흔한 안줏거리로 삼는다. 기억력이 저하되거나 히스테리를 부리는 갱년기 아내 모습을 묘사하며 패널들의 웃음을 자아내거나 사춘기 자녀와 갱년기 아내가 똑같이 예민하다며 신세 한탄을 하기도 한다.
당장 국내에서 ‘폐경 친화 직장’ 시상식이 열리는 걸 바라진 않더라도, 생존을 위한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가벼운 웃음은 이제 멈춰야 한다. 이제야 여성들은 폐경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경험을 나누며 위로받고 있다. 웃음으로 포장된 조롱을 멈추고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작지만 큰 변화가 시작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