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꽃도곤 좋아라
2015. 10. 금계
[단양 구인사 救仁寺 입구]
여행 계획서
전 박사의 여행 계획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다. A4에 인쇄하여 나누어준 계획서를 볼 때마다 머리에서 쥐가 나려고 한다. 어찌 그리 치밀하게 작성하였는지 읽는 사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보면 고개를 잘래잘래 흔든다.
“궁금하면 한번 해보이시오.”
인터넷을 뒤져가며 대강의 얼개를 짜고 세부사항으로 들어가 전체적인 조감도를 그리자면 몇 날 며칠이 걸려도 우리 능력으로는 어림없을 터였다.
10월 19일(월)
목포(07:30) - 군산휴게소(09:30) - 안성휴게소(10:50) - 가평휴게소(12:30) - 점심(매점, 자유선택,13:40) - 백담골 풍경펜션(15:00) - 백담사 관람(17:00) - 저녁, 장어구이(준비식)
10월 20일(화)
아침 전복죽(준비식) - 펜션 출발(08:10) -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09:00) - 별장 관람(11:00) - 설악산(12:00) - 점심(청봉식당 버섯찌개, 12:55) - 산책, 케이블카(16:30) - 설악 유스호스텔 (저녁 오리구이, 준비식)
10월 21일(수)
아침, 청봉식당 황태해장국, 08:20) - 정선 선크루즈리조트(09:40) - 리조트 산책(10:40) - 동해 무릉계곡(11:30) - 금란정까지 산책(12:30) - 점심(보리밭 식당, 산채정식, 13:30) - 대금굴(14:20) - 대금굴 관람(16:30) - 도사곡 휴양림(19:10) - 저녁밥(돼지주물럭, 준비식)
10월 22일(목)
아침(소고기 미역국, 준비식) - 출발(08:20) - 단양 구인사(09:20) - 구인사 관람(11:20) - 점심(장미식당, 산채 더덕구이 정식, 12:30) - 금왕휴게소 (14:00) - 이서휴게소(16:00) - 목포(17:40) - 저녁 (붕장어회관, 곰장어숙회)
미리 전화를 걸어 식당에는 메뉴와 가격을 알아보고, 펜션에는 숙박비와 방 사정을 물어본 다음 예약을 한다. 준비식은 목포에서 미리 시장을 봐서 상자에 넣어 포장을 하고 윗면에 내용물을 적은 다음 트렁크에 싣는다. 펜션에서 준비한 음식을 꺼내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리는 일도 모두 전 박사 몫이다. 전 박사가 행복한 표정으로 요리를 할 때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것이 나의 자유입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안개 어슬렁거리는 고속도로
승용차 두 대에 아홉 명이 나누어 타고 목포를 출발하였다.
“어느 곳에서 어느 곳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영국에서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모집한 답안지 가운데 최우수작으로 뽑힌 답변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면 된다.”
그렇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아무리 먼 곳도 가깝게 느껴지고 아무리 긴 시간도 짧게 느껴진다. 우리 화백회(화려한 백수) 모임 열 명도 성향이 비슷하고 사는 것이 비슷한 다정한 퇴직교사들끼리 모였으니까 늘 깔깔 껄껄 웃음이 만발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 3박4일의 여행쯤이야 언제 지나가는지 모르게 번쩍 흘러가버리고 만다. 그 동안 우리 회원들끼리 한 해에 한두 번씩 돌아다닌 곳만 손꼽아 봐도 제주도 두 번, 남해도 휴양림, 덕유산 휴양림과 청남대, 운장산 휴양림, 보령 탄광과 대천 해수욕장, 곰소 격포, 지리산 실상사....... 꽤 여러 곳이다.
여행이라면 함께 가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또 날씨가 가장 중요하다. 동행은 자기가 알아서 정하는 것이지만, 날씨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출발한 날은 서해안고속도로 위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운전하기에는 조심스럽고 불편하지만 아침에 안개가 끼는 날은 낮에 햇빛이 짱짱하다. 비바람 치고 구름 낀 날보다는 투명한 가을 하늘과 조국 산천을 눈 시리게 둘러볼 수 있는 청명한 날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시속 100킬로 언저리를 밟으며 두 대의 승용차는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휴게소
낚시질 할 때 담배 맛은 끝내준다. 바둑 둘 때도 담배 맛이 그만이요, 화투 당구 칠 때에도 담배가 필수다. 누군가는 합방 후에 피우는 담배 맛이 최고라고 하지만 나는 커피 한 잔 뒤에 빠는 담배 맛도 빼놓을 수 없다. 달리던 승용차가 휴게소에 들어가 자판기에서 뽑아낸 양촌리 커피 한 잔 마신 후 내뿜는 연기는 그냥 아주 죽여준다.
연기를 즐기는 끽연실이 바른 말이다. 연기를 들이마시는 흡연실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 요즘은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공공의 적으로 바뀌어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휴게소에서도 아무데서나 피우면 큰일 나고 으슥한 구석지까지 수고롭게 걸어가 지정된 흡연실에서만 빨아야 한다. 일행 아홉 명 가운데 일흔 살이 되도록 건강에 해롭다는 담배를 끊지 못한 사람은 딱 나 하나뿐이다. 언젠가 끊기는 끊어야겠지만 절제심이 부족하여 잘 안 된다.
곰곰 따져보면 이 지구 자체가 휴게소다. 로또 기적처럼 홀연히 지구라는 휴게소에 강림한 우리 인생도 따지고 보면 ‘없음’이라는 영원불변의 존재가 잠시 ‘있음’이라는 ‘색계(色界)로 꼴을 바꾸어 휴식을 즐기고 있다고나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인생은 ’없음‘이 아주 잠깐 ’있음‘으로 형태를 달리하여 지구라는 휴게소에 머무르는 시간에 불과하다. 하이고! 유토피아나 파라다이스나 극락을 딴 곳에서 찾지 말라! 그대가 사는 이곳이 바로 극락정토요 천당이요 낙원이니라. 그대가 차디찬 몸뚱이로 변하여 사지를 꽁꽁 묶여 지게 위에 실려 간 다음이면 영원히 ’없음‘에 침잠할 터이니, 설령 장자방의 사부님이 노란 돌로 변하여 다시 만난다 한들 알아볼 도리 없나니 오늘을 까르페디엠하라.
장군의 절
유난히 하얀 돌, 하얀 바위들이 눈에 많이 띈다. 계곡에 돌멩이들로 수백 곳 수천 곳 작은 탑을 쌓아놓았다. 물론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탓할 수 없지만 나는 종교가 기복 신앙 쪽으로 기우는 것을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다.
하얀 바위와 돌들로 이루어진 백담계곡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거처하면서 시를 쓰던 곳이려니 여겼는데 장군 출신의 대통령이 피신하면서 하루아침에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와서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굽이굽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 산길이 입구만 봉쇄하면 체포조가 들이닥칠 재간이 없어보였다.
불교계 혁신을 외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감옥살이를 서슴지 않았던 만해 선생의 절간이 광주 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대통령에 올랐던 장군의 은신처로 유명해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장군한테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 장군이 아니었더라면 이 빼어나게 아름다우면서도 험하고 구석진 곳이 여행 일정에 들어갔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설악 험준하고 수려한 산봉우리들이 둘러싼 백담사는 바야흐로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찍힌 사진을 뒤적거려 보면 문 박사 웃는 얼굴이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 살다 보면 웃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자주 웃어야 오래 산다. 뿐만 아니라 사진도 웃어야 보기가 좋다. 문 박사는 군 복무 시절 ‘사진병’이었다고 한다. 그 경험 때문에 웃는 사진이 더 자주 찍히는지도 모르겠다.
백담사 만해 기념관에는 선생의 흔적들이 숱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승복을 입은 선생의 조각상이 불상을 많이 닮아 보였다. 예수님은 유일하지만 부처님은 수를 셀 수도 없다던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육당 최남선은 3.1 독립 선언문을 기초한 유명한 문학가이지만 결국 일본의 회유에 넘어가 변절했다. 감옥에서 나온 만해 선생을 보고 반가워 알은체를 하자 만해 선생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단다.
“내가 아는 최남선은 폴쎄 죽었어.”
세상을 살아보니 육당 같은 사람은 흔해도 만해 선생처럼 지조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드물어 보였다. 온갖 간난을 무릅쓰고 꿋꿋이 초지일관하기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지 싶다.
요즘 국정 교과서 문제로 시끄럽다. 곳곳에 친일파 후손들과 쿠데타 후예들이 떵떵거리는 나라에서 어떻게 바른 역사책을 만들지 걱정이다. ‘훌륭한 사람은 역사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역사책을 바꾼다.’ -- 만해 선생은 몸으로 역사를 쓴 분이다.
풍경 펜션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567 033-462-3997 010-4117-2269)
백담사를 구경하고 내려와 수대로 가게에 몰려가 강원도 명물 황태포와 마른오징어를 샀다. 전 박사가 흥정해서 단체로 20%를 할인했다. 나는 황태포 열 마리 한 봉다리만 샀는데 오징어까지 여러 봉다리를 사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여행 다니면 먹는 재미,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돈 쓰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녁 식사는 풍경 펜션에서 붕장어구이. 생선을 숙소에서 구우면 냄새가 밴다고 펜션 주인이 친절하게도 식당을 빌려주었다. 붕장어는 목포에서 산 놈을 사가지고 다듬어 토막쳐가지고 왔는데 싱싱하고 포근포근해서 먹을 만했다. 수대로 맛나다고 야단들이었다. 소주 맥주를 양껏 마시는데 김 박사가 술을 마실 수 없어 섭섭하다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아 손바닥을 수술했단다.
밥에다 술에다 장어에다 포식하고 방으로 돌아와 ‘삥똥보기’를 시작했다. 화투를 즐기지 않는 전 박사와 유 박사는 산책길에 나서고 나머지 일곱 명은 방석 주위로 빙 둘러앉아 표를 나누고 까면서 웃음보를 터뜨렸다. ‘삥똥보기’는 여럿이 할수록 재미있다. 또 어수룩한 초보자가 많을수록 재미있다. 확률이 많은 줄 알고 돈을 많이 걸고 덤비다가 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방석에 쌓인 돈을 상대로 벌이는 노름인데 한 사람이 방석에 모아진 돈을 싹쓸이하면 여섯 명이 시무룩해지고, 그 사람이 실패해서 방석으로 건 만큼 돈을 내면 나머지 여섯 명이 즐거워져서 입이 찢어져라 웃는 놀이였다. 다른 화투판은 긴장과 욕설이 오가기 일쑤인데 ‘삥똥보기’만은 비교적 웃음이 자주 터지고 소화가 잘되는 노름이었다. 열한 시에 끝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전복죽을 먹고 출발하였다. 고맙게도 친절한 주인아주머니는 펜션 정문 앞에서 단체 사진까지 찍어주었다. 기회가 되면 또 오겠노라고 인사를 하면서 헤어졌다. 친절은 숙박업소의 기본이었다. 그렇지 못한 곳도 있었다.
화진포 이승만 별장
풍경 펜션을 나와 화진포로 갔다. 화진포 해수욕장. 눈이 서늘할 정도로 경치가 기막혔다. 정치가들은 머리에 쥐가 날 만큼 복잡하니까 가끔은 이렇게 풍광명미한 곳에 와서 쉬어야 하는가보다.
산은 올라가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어렵다. 벼슬도 산길 같아서 내려올 때 적절하게 시기를 잘 맞춰서 잘 내려와야 한다. 두 번 대통령하기로 했으면 두 번 하고 내려와야지 세 번 네 번 하다가는 동티가 난다.
이승만 별장 거실에서 프란체스카 여사와 마주보고 소파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대통령의 모형을 보면서 국민들한테 쫓겨나 하와이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행적을 잠시 더듬어보았다.
미국의 조지 워싱톤 대통령도 그렇고 중국의 모택동 주석도 아직까지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지만 터키를 가보니까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터키인의 아버지)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디를 가나 대형 국기가 펄럭이고 어디를 가나 아타튀르크를 앞세운 건축물 이름이나 지명이 지천으로 널렸다. 이 대통령이 조금만 현명했더라면 국부로 존경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