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차밭, 순천갈대밭, 하동

[젬마]

여행 사흘째.. 러브호텔이라 불리는 모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니

그곳을 왜 그렇게 불순하게 보는지 이해가 좀 안됐습니다.

시설좋고 깔끔하고...

팬션이라 불리우는 곳을 알아보았더니 가격은 모텔보다 더 비싸면서도 서비스는 '글쎄!'였습니다.

어쨋든 지친 몸을 잘 쉬는 게 제 여행방식이죠!

언제든 그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면 씻자마자 잠이 잘들어 충분한 휴식을 합니다.

국내여행이든 외국 여행이든 아프지 말아야 하잖아요?

새벽 일찍 보성차밭을 향해 갔습니다.

예쁜 송혜교가 나오는 드라마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제 기억엔 그곳에 아침에  나무 사이로 뽀얗게 안개가 낀것 같은 멋진 풍경이 있어서...늘 한번 가 보고 싶었었으니까요..

눈 뜨자 세수하고 바로 출발했는데

'어쩌면 아주 이르면 공짜 입장일지도 몰라..'

한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새벽엔 자판기 입장권 구매를 해야했으니... 그런 계획 저 같은 사람만 세우는 거죠? ^^

그러나 2000원 입장권이 아깝진 않았습니다.

호젓하고 상큼한 보성차밭이 하루여행의 서막으론 제 격이었습니다.

건너산엔 삼나무 숲이 들어차 차 밭이 아니라도 아름다웠고

구불구불 아니면 똑바로 이랑을 이룬 차밭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둘이서 손 잡고 오르니 얼마전 천리포에서 다친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은 차밭 입구에 있는 차목원이라는 음식점에서

'바지락회 녹차 비빔밥'이라는 걸 먹었는데 나름 상큼하고 맛있었습니다.

저라면 간장양념으로 녹차맛을 더 드러나게 했을건데..

강한 초고추장맛으로 야채맛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요리방식을 힌트로 얻었죠....

차밭은 장관 이었습니다.

새벽 촬영을 위해 나온 가족들이 여기저기서 셔터를 눌렀고

그림같은 그곳 풍경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야 저희도 같았습니다.

구도나 기법을 좀 더 알면 멋진 사진 찍어 왔을텐데...

커피를 좋아하게 되면서 집에서 숭늉처럼 마시는 우리집 녹차시식..

새순을 늘 따니 마치 정교하게 잘라놓은 것 같은 차밭은 사람손이 얼마나 갈까 싶대요...

갑자기 茶道를 배워서 경건하게 마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커피를 배우고 맛잇는 커피를 위해 드립을 할라치면 그걸 들여다보던 손님들은

"아유~ 그냥 대충 마시죠.. 힘드시겠다!"

심하면

"아니  더러워서... 커피 한 잔 마시는데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적극적인 분들은

'내가 해 줄께..."

하곤 합니다.

그러나 마시고 난 후엔

"정말 맛있다... 깊고 풍성한 맛이 나네.."

하면 전 속으로

'거 봐요.. 그래서 힘들거나 말거나 이렇게 한다니까요...ㅎㅎ'

다도를 배우고 나면 맛있는 차에 또 푹 빠질지 모르죠...

그러나 요즘 저희집 차는 허브랑 녹차를 적절히 섞어 우려낸 시원한 음료랍니다.

커피든 녹차든 허브차든 국화차든 전 제 손을 거쳐서 가족에게 먹이는 차라면 다 안전하고 걱정이 안되잖아요?

올 때 그만 녹차 나무도 한그루 가져 오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짐 될까봐서..였지만 내내 사올걸 그랬나 싶기도 했습니다.  

녹차밭구경 마치고 우린 순천만의 갈대밭에 들렀습니다.

하동 평사리 벌판을 가기로 했으니 가는 도중에 있는 있는 그곳을 들르는 건 남편에 대한 배려입니다.

정찰대로 올 봄에 미리 다녀왔으니 안내원은 최고죠..

드넓은 생태공원 그곳엔 아이들이 갯펄에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작은 게들과

물 위를 떠 다니는 오리들을 보며 즐거워 했습니다.

방부목으로 만든 작은 길을 따라 사람들이 갈대밭 사이를 산보하고 있었습니다.

평일날 오전에 남편과 이런 호젓한 시간을 풍성히 갖다니... 이틀을 쉬었는데 긴 시간을 보낸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늘은 내내 맑았고 저흰 우산을 들고 해가림을 했습니다.

외국여행이 일부 취소 되었는데 조금도 아쉽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가고 싶은 곳이 마치 예정된 것처럼 일정이 가득하니

외국이 아니면 국내여행.. 내 영혼은 언제나 여행중입니다.

'누구와 언제 함께 가느냐?' 가 언제나 제 고민거리일 뿐입니다.

그래도 바다 갈대밭은 역시 석양이 비칠 때입니다.

매화마을 들르다 돌아가면서 본 해질녘 갈대밭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였습니다.

하긴 우리집 건너 작은 저수지 풍경과 건너산의 아름다움에 빠져 십 이년을 살고도

'난 평생 이 집에서 살거야.. 주변 풍경이 너무 좋아.."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만도 다시 수십번을 다녀와도 지루하지 않을 듯합니다.

지난 화요일 우리 꽃회원들을 가벼운 말로 집에 초대했었습니다.

마당의 가을 꽃이 너무 예뻐서...

딱 한 사람 왔습니다.  

좀 안타까웠죠.. 모두들 바쁜 거잖아요?

저는 일상에서 그저 시골 사촌집에 놀러 오듯 편한 이웃이 아닌 모양입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도 다니게 되는 세상 구경..

아무튼 제가 그런 횡재같은 이웃이 아니어서 반성도 되긴 합니다.

드넓은 갈대밭 사이에서 사진도 찍고 산보도 하고... 또 기쁨...

하동 북천 코스모스 메밀 축제장을 안내 받았는데 코스모스 들판이었습니다.

이병주 문학관이 있는 곳도 거기였고 허수아비축제도 함께였습니다.

양평 허수아비축제도 보았으니 작업의 질은 다소 미흡했지만..

여행객은 이미 마음이 들떴으니 뭐든 좋아 보입니다.

거기엔 수세미 호박 박 그리고 농산물 전시도 함께 되어 있었는데

뱀오이란 거 보셨나요?

오이라고 알고 보면서도 소름이 오싹할 만큼 으시시했습니다 

너무나 진짜 뱀 같아 신기하기도 했고요...

메밀 농사를 망쳐 메밀 축제는 안되겠던데...

어쨋든 박경리의 토지 촬영지를 들러 다시 칠불암과 쌍계사 계곡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가는 길엔 산에 야생 차밭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지리산 토종벌꿀 통도...

잘 가꿔진 보성차밭을 본 후라 야생 차밭이 더 정겨웠습니다.

쌍계사와 칠불사를 들러 보고 亞字房도 구경했습니다.

절 입구에 게시된 잡보장경중의 일부를 읽은 게 더 마음에 닿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 하셨다.

참기 어려움을 참는 것이 진실한 참음이요,

누구나 참을 수 있는 것을 참음은 일상의 참음이다.

자기보다 약한 이의 허물을 용서하고

부귀영화 속에서 겸손하고 절제하라. 

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이 수행의 덕이니

원망을 원망으로 받아 들이지 말고

성내는 사람을 만나도 마음을 고요히 하여

남들이 모두 악행한다고 가담하지 말라.

강한 자 앞에서 참는 것은 두려워서이고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 참는 것은 싸우기 싫어서이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참는 것이 진실한 참음이다.

욕설과 헐뜯음을 못참음은 어리석음이요,

욕설과 비방을 참음은 지혜로움이니

욕설이나 칭찬으로 지혜로운 이를 어쩌지 못함은

큰 바위에 폭우가 쏟아져도 부서지지 않음과 같아

괴로움과 즐거움 비방과 칭찬을 만나도 지혜로운 어진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이 그러해서 욕을 먹으면

그것이 사실이니 성낼 일이 없고

사실이 아닌데도 욕을 먹으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언제나 성을 내지 않는다.

                                  (잡보장경)

난 언제나 어리석은 사람이었음이 여기 적혀 있었네요....

내친 김에 절 입구에 놓여진 잡지도 하나 들고 왔습니다. 

세상엔 좋은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도, 부처님 말씀도, 필부의 작은 일상의 깨달음조차도...

언제나 안들어서가 아니고 또 몰라서가 아닙니다.

역시 실천이 중요한 일이죠.

성당 안 가득한 신자들이 모두 같은 강론을 듣고도 하는 행위는 제 그릇만큼이 한계입니다.

언제나 제 그릇 키우는 게 숙제인거죠.. 

그저 훌륭한 사람 되기를 꿈꾸지 않고

오늘 하나 더 깨달아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었음에 안도하고 잠드는 게 요즘의 제 꿈입니다.

여행길에 지친 발이 서서히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앞 개울에서 저도 모르게 신발 양말 다 벗어 던지고 물속에 첨벙..

하나도 발이 안시렸습니다.

좋은 경전도 읽었고 눈 시리게 아름다운 세상 구경도 하고 했으니

마음도 제 발처럼 깔끔하게 닦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