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으로 돌아온 유준상은 요즘 신인과 같은 기분으로 연기에 매진하고 있다. <나의 결혼원정기>부터 연기에 새롭게 눈을 떴다는 그는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연기생활에 큰 기대감을 품고 있다.
프로필 |1969년 생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 영화 <리턴> <나의 결혼원정기> <쇼쇼쇼> <가위> <텔미썸딩> |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 <영재의 전성시대> <토지> <결혼하고 싶은 여자> <어사 박문수> 등 | 뮤지컬 <천사의 발톱> <투맨> <더 플레이> <그레이스> 등
허남웅 기자 <리턴> 홍보에,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이하 <강남엄마>) 촬영에 바쁘겠다. 유준상 <리턴> 홍보를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인데 <강남엄마> 촬영이 겹쳐서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허남웅 기자 <리턴>의 개봉이 지연돼서 <강남엄마>와 시기가 겹쳤다. 그런데 맡은 역할의 이미지가 아주 상반돼 흥미롭더라. 유준상 일부러 맞추려 한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사실 <리턴>의 강욱환 역은 내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이규만 감독이 만들어준 거다. <나의 결혼원정기>(2005)(이하 <원정기>)의 희철이 연기를 보고 욱환의 모습이 나올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고 한다. 처음엔 놀랐다. 파마머리 하고 배 나오고 바지를 배꼽까지 올려 입는 순박한 농촌총각에서 거친 욱환을 생각해내다니. 처음엔 욱환 역할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나리오상의 인물 묘사가 너무 막연했다. 이 감독은 계속 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줬다. “준상 씨한테 분명이 나올 거예요.” 설득을 계속 해서 넘어갔다. 감독님 왜 이런 시련을 저에게 주시나요.(웃음) 그 다음엔 몸을 만들어가면서 고난의 시기를 보냈다. 그러면서 몰입했는데 내가 보지 못한 내 모습을 끄집어내줘 고맙게 생각한다.
허남웅 기자 <원정기>를 마치고 바로 <리턴>에 들어갔다. 연이어 변신을 시도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유준상 쉽지 않았을 뿐더러 변신의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이규만 감독님이 촬영 중에도 위협적인 욱환의 캐릭터는 단선적이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데, 그런 모습이 끊임없이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거기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허남웅 기자 현실에서 찾기 힘든 인물 아닌가. 캐릭터를 만들어갈 때 어떤 식으로 접근했나? 유준상 무조건 감독님에게 물었다. 다행히 감독님이 욱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촬영 전부터 준비해놓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한 편의 이야기로 돼 있었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캐릭터에 대해 타당성을 가지게 됐다.
허남웅 기자 처음엔 왜 맘에 들지 않았나? 유준상 오치훈(극중 김태우가 한 역할)이 맘에 들었다. 배우라면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역할이 바로 오치훈이다. 근데 촬영을 하다보니 욱환 역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현하기 힘든 인물인데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풍부한 캐릭터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썩 입체적으로 연기한 것 같지는 않다. 입체적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상대역과 앙상블에서 깨질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였다. 감독님도 그 부분을 강조하기도 했고. 하지만 역할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던 건 분명하다.
허남웅 기자 아쉬움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유준상 물론 외적인 면뿐만 아니라 지금보다 좀 더 발전된 캐릭터가 될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네 배우의 앙상블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닌데 내 역할만 앞서가면 혼자 도드라지게 돼서 곤란하다. 또 뒤처지면 뒤처지는 만큼 조화가 깨져서 포기할 건 아낌없이 포기하고 외양적인 면에서부터 만들어가기 시작한 거다. 아무래도 네 배우 사이에서 그 경계를 지키는 것이 힘들었다.
허남웅 기자 같이 한 배우들끼리 굉장히 친한 사이로 알고 있다. 유준상 (김)명민이는 방송국 1년 후배다. 내가 SBS 5기 공채로 탤런트가 됐고 명민이는 6기다. (정)유석이랑도 잘 아는 사이였고 (김)태우야 워낙 사람이 좋아서 바로 친해졌다. 연기 배분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눴고 다른 배우들 역시 혼자만 튀려 하지 않고 앙상블을 생각한 거 같다. 그런 과정이 편하고 즐거웠다.
허남웅 기자 <리턴>도 그렇지만 <가위>(2000), <쇼쇼쇼>(2002), <원정기>도 팀워크가 중요했던 영화들이다. 유준상 의도한 건 아니고 스스로 돋보이는 역할이 들어오지 않아서 못 한 거다.(웃음) <원정기>는 특별한 작품이다. 한 작품에서 내 역할의 분배, 연기하는 데 있어서 힘 조절을 황병국 감독과 (정)재영 씨를 통해서 배웠다. 그 과정들을 겪으면서 연기 패턴과 마음가짐에 변화가 생겼다.
허남웅 기자 마음의 변화라면? 유준상 <원정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만 했다. <원정기>를 할 때는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그걸 따져가면서 연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대포로 직구만 던졌는데 이젠 직구를 노리는 타자에게 싱커를 던질 줄 알게 됐달까?
허남웅 기자 노련미가 생겼다? 유준상 이제 생각을 하는 거다.(웃음) 단면만 보는 게 아니라 다각도로 접근을 하게 된 거다. <원정기> 전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 지금은 옆도 볼 수 있고 뒤도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시야가 넓어졌다. 그런 시야가 나이와 맞물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남웅 기자 연기에 여유가 생긴 것으로 이해하면 되나? 유준상 여유라기보다 정신을 차린 거다. (웃음)
허남웅 기자 데뷔를 1995년에 했으니 <원정기>가 딱 10년차에 만난 작품이었다. 유준상 그러게 말이다. <원정기> 첫 촬영하면서는 이마를 치며 ‘아뿔사! 이제 시작이군. 드디어 이걸 깨닫다니. 그래도 다행인 걸’ 이런 생각이 들더라.(웃음) <토지>(2004)에서 길상이 역을 하면서 그런 기미가 있었다. 그 전 7~8년 정도는 버릇처럼 의미 없이 대사를 뱉거나 별생각 없이 촬영에 임했다. <토지> 같은 대작 드라마는 처음이었고, 비중도 큰 역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깨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원정기>로 이어졌다.
허남웅 기자 앞만 보고 달렸다는 말처럼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텔미썸딩>(1999) 이후 매년 쉬지 않고 작품을 했다. 유준상 열심히 했다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다만 당시엔 촬영을 마치면 끝났다는 기분만 들었지 그 이상의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원정기> 때부터 <강남엄마>까지 같은 생각이 드는 게, 한 회분 촬영을 마칠 때마다 뭔가를 얻었다는 발견의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연기를 복기하는 맛이 있더라. 이제야 깨달은 게 안타깝지만,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허남웅 기자 <강남엄마>는 인기가 좋아 2회 연장 방송한다던데? 유준상 사회풍자가 강한 작품이라 개인적으로도 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마침 연출자가 2회분 정도 더 하고 싶다고 해서 흔쾌히 ‘오케이’ 했다. <강남엄마>에서 교사 서상원 역을 하면서 나름대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 그것도 강남 현실에 대해 발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그런 대사는 드라마에서 쉽게 하기 힘들다. 사회를 풍자하고 정곡을 찌르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한 번 보면 잘 모를 수 있지만 한참 뒤에 다시 생각해보는 맛이 있다. 남들이 못 하는 얘기를 해서 더 통쾌하고, 선생으로서 학부모에게 그리고 사회에, 세상에 쏟아 붓는 발언들이 거침이 없어 속 시원하다.
허남웅 기자 다섯 살 난 아들이 있는 입장으로 이 드라마가 그저 남 얘기로만 보이지는 않을 텐데? 유준상 아직은 아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냥 철없이 놀고 있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그냥 해맑은 모습에 동화된다.(웃음) 오히려 내가 꼭 선생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은 든다. 방송이 거듭될수록 밖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런다. 배우인지 뻔히 알지만 자기들도 그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거다. 그래서 좋아하는 거지.
허남웅 기자 교사 서상원은 현재 한국 교육세태를 감안했을 때 현실적이기보다 이상적인 인물이 아닌가? 유준상 그렇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선생님들을 만나 뵙는데, 3자 입장에서 감지할 수 없는 이면의 어두움이나 쓸쓸함, 감추고 싶은 어떤 것들이 있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분들에게 서상원 역을 통해 희망을 주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었다.
허남웅 기자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냈나? 유준상 엄청난 말썽꾸러기였다. 정말 심각했다. 가출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었기 때문에 가출 빼고는 다 했다.(웃음) 헤비메탈 그룹도 만들었고 머리도 어깨까지 길렀다. 밴드 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데 보컬을 맡았다. 기타치고 주로 메탈리카나 할로윈 음악을 커버했다.
허남웅 기자 예술적 감각은 그때부터 있었던 듯싶다. 유준상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다.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말썽꾼이어서 그랬는지 안 가르쳐주시더라. 애들 레슨 받을 때 뒤에서 몰래 강의 듣고 끝나면 피아노를 쳤다. 사실 피아노를 좋아했다기보다 음악을 좋아한 거다. 지금도 못 치는 기타지만 전자기타와 앰프 사놓고 간간히 연습한다. 연습 안 할 때는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거 있지 않나. 내가 그렇다.(웃음)
허남웅 기자 뮤지션이 아니라 배우가 된 계기가 있었나? 유준상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극작가로 유명하신 이만희 선생님이셨다.
허남웅 기자 <약속>(1998), <와일드 카드>(2003) 시나리오를 쓴 그 이만희 작가? 유준상 맞다. 그때 이만희 선생님이 연극영화과 말고는 갈 데가 없다 그러시더라. 내 재능을 감지하셔서 그런 게 아니라 성적이 안 좋아서.(웃음) 그때 연극영화과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집에서 반대하는 걸 우여곡절 끝에 찬성으로 돌린 후 연출이 재미있을 것 같아 영화연출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1학년 때 정말 영화공부 엄청 했다. <영화의 이해> 보면서 영화사 훑고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아>(1983)를 구해서 구십 몇 컷 일일이 한 컷당 몇 분 몇 초인지 분석하면서 리포트 쓰고 논문도 냈다. 그때만큼 영화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허남웅 기자 그런 학구파가 어떻게 연기를? 유준상 1학년 말 연극이라는 걸 처음 해봤다. 그때는 의무적으로 해야만 해서 무대에 올랐는데 이게 너무 재미난 거지. 학생들 공연이라고 가족들이 와서 봐주는데 울고 웃는 그분들 반응이 너무 신기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즉각 반응을 해주니 충격을 안 받을 수 있나. 그래서 연기를 해야겠다 결심하게 됐다.
허남웅 기자 그래서 연극판에 뛰어들었나? 유준상 뮤지컬에 관심이 많았다. 근데 우리 학교에는 뮤지컬이 없었다. 서울예대 같았으면 그런 조직이 있었을 텐데 우리 학교는 전무해서 그때 내가 음악선생님, 무용선생님 직접 섭외해서 애들이랑 같이 배웠다. 만날 남산 뛰고 발성하고 그랬다.(웃음)
허남웅 기자 그래서 직접 뮤지컬 공연도 올리는 건가? 유준상 뮤지컬을 위한 장을 따로 마련할 여건이 되지 않아 연극을 했다. 그러다 군대를 가게 됐고. 제대해서 연기 공부를 하려고 유학을 준비했는데 사정이 좋지 않아 방송국 시험을 보게 됐다. 안 붙으려고 본 건데, 한 번에 SBS 공채 탤런트 시험에 딱 붙어버렸다.(웃음) 원래는 그 뒤에 있는 MBC 탤런트 시험을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SBS에서 먼저 시험을 본다기에 시험 삼아 응시해본 거였다.
허남웅 기자 뜻하지 않는 합격이라, 고민이 됐겠다. 유준상 고민이고 자시고 없었다. 연기에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집안 형편상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했기에 그대로 SBS에 들어갔다.
허남웅 기자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던가? 유준상 전혀 안 풀리더라. 단역은 되게 어렵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던 게 돈을 좇지 말고 일단 ‘버티자’였다.(웃음)
허남웅 기자 거의 매해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으니 버티기에 성공한 거다. 유준상 누가 그러더라. 너 참 끈질기게 버티는구나. 그런데 더 버텨야지 않겠나. 끝까지 잡아야지.(웃음)
허남웅 기자 그러면서 정말 다양한 역할을 했다. <가위> 같은 공포영화에서 <원정기> 같은 사회물까지, <어사 박문수>(2002)의 암행어사 역할에서부터 <강남엄마>의 교사 역할까지. 유준상 연기생활하면서 정말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 섭외가 많이 안 들어오니까, 그중에서 고르다보니까 그렇게 된 거다.(웃음) 물론 좀 더 기다릴 줄 알았더라면 다른 배우의 길을 갈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기다리지 못하게 했다. 내가 깊이 생각을 못 한 부분도 있고 상황이 그렇게 만든 부분도 있다. 당시에는 선택의 폭이란 게 없었다. 일단 들어오는 건 모두 한다는 주의였다.
허남웅 기자 왜 그랬나? 유준상 결과적으로는 영화 시스템을 몰랐던 거다. <텔미썸딩>을 하고 나서 기다려야 했던 건데. 지금이라면 기다렸겠지만 그때는 앞만 보고 달리는 시기라 몰랐다. 기다리는 게 용납이 안 되서 곧바로 아침 드라마를 했다.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고민도 없이 무조건 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으니까. 그걸 하고 있는데 영화가 들어왔다. 기억도 잘 안 나는 작품인데 그걸 했다면 계속 영화배우의 길을 갔을 텐데 그렇게 못 했다. 아침 드라마는 일주일 내내 촬영하는 스케줄이어서 어려웠다. 그때 영화의 끈을 한 번 놓쳤다. 그리고 다시 잡은 게 <원정기>다. 이제는 절대 안 놓친다. (웃음)
허남웅 기자 그럼 <강남엄마> 다음 작품은 영화가 되는 건가? 유준상 그건 아직 모르겠다. 일단 <리턴>을 다른 감독님이나 제작자분들이 좋게 봐야 역할이 들어올 텐데 말이다.(웃음)
허남웅 기자 어떤 캐릭터의 작품이 들어왔으면 좋겠는가? 유준상 많은데, 앞으로 원하는 캐릭터가 들어올 것 같다. 내가 꽃미남 배우도 아니고 작품을 책임지는 배우도 아니기 때문에 감독님들이 역할이 미묘해서 힘들거나 다른 배우들이 처리하기 힘든 배역을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웃음) 이제 시작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좋은 캐릭터들을 계속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품고 있다. 다행스럽게 <원정기> 때부터 그렇게 됐고 <리턴>도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꼈다. 순탄하게 배역을 따서 작업하면 행복할 수 있겠지만 배우라면 한 작품, 한 작품 힘들게 잡아서 뭔가를 만들어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자생력을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배우 할 날이 많은 나에게는 그런 식의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허남웅 기자 편안한 역할을 맡으면 불안해하는 스타일로 보인다. 유준상 맞다. 한 마디로 피곤한 스타일이다.(웃음) 나 자신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혼자서 꾸준히 무언가 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연기 변신에 대해 크게 거부감이 없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
허남웅 기자 변신을 거듭하고, 게다가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뮤지컬 출연도 한다. 재능을 분산하는 까닭에 개인을 두드러지게 보일 수 있는 ‘유준상스러움’을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닐까? 유준상 정확히 봤다. <원정기> 때도 느끼고 <리턴>에서도 느낀 거다. 그래서 요즘 분산됐던 것들을 응집한다고 해야 할까, 정리를 하려 한다. 물론 지금껏 내가 걸어온 길이 있기 때문에 영화만 하겠다 그렇게는 못 할 것이다. 뮤지컬도 할 거고, 영화도 할 거고, 좋은 작품이면 드라마에도 출연할 거다. 대신 희철이나 욱환 그리고 상원처럼 좋은 작품으로 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앞으론 더 열심히 해야지. 나는 이제 시작한 배우니까.(웃음)
사진 백지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