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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상(自我像)
커피를 내리고 탁자 앞에 앉는다.
막 내린 커피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괜스레 묻고 싶었다.
“넌 누구냐?”고
찻잔 속에 비친 얼굴은 나다.
예전과는 상당히 낯설고 내가 기억하는 잘 났고 멋있다며 혼잣말로 신났던 시절과는 동떨어진 얼굴이다.
누가 그었지?
얼굴 여러 곳에 깊은 상처처럼 세월의 흔적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눈꺼풀은 처지고 정돈 안 된 수염이 대책 없이 나 있다.
그냥 웃었다.
그랬더니 그 녀석도 따라 피식 웃는다.
언제부턴지 거울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랬더니 내 모습을 깡그리지 잊고 살다가 커피잔 속에 홀연히 나타난 녀석을 보고 깜짝 놀라 호들갑이다.
그래도 사랑하고 싶다.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얼굴이다.
그것은 아마 오랫동안 봐와서 낯이 익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히죽 웃으며 물었다.
“넌 어떻게 살았니?”
노인네가 다 되도록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추해본 사실이 없다.
그냥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목표. 성과. 욕망 따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세월에 순응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착한 아이였다.
왜 착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린 시절 부모가 시키는 일은 잘했지만, 시키지 않는 일을 해서 속상하게 한 기억은 없다.
그냥 칭찬받고 혼나지 않는 시간이 편하게 느껴져서 그랬을 것이다.
착해서 그랬을까?
지금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쁜 짓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 또한 해볼까 하는 호기심이 없는 철부지였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말씀이 곧 법이고 내가 지켜야 할, 아니 반드시 따라야 할 명령이었을 뿐이었다.
명령을 잘 따랐으니 혼난 경험도 없고 그렇다고 칭찬을 받은 기억도 별로 없다.
아마 몰라도 저 녀석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 그냥 내버려 둔 게 아닐까 한다.
학교에서도 선생님께 혼난 기억이 없다.
숙제도 꼬박꼬박 알아서 해서 갔고 공부도 그런대로 잘해 귀여움을 받고 다녔지만, 오직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은 악몽 같은 날의 연속이었다.
전과와 수련장 사건이다.
아직도 순간순간 하나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으니 트라우마로 남은 건 틀림없는 악몽이다.
선생님한테 안 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1년 동안 미움과 천대당하며 지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선생에 대한 존경심도 증오에 대한 불안감도 사실 없었다.
미워하든지 매를 들든지 별로 관심을 가지 않았던 이유는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 잘못은 없다.
그것을 누구한테 사느냐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사항이 아니므로 선생이 그것을 빌미로 어린 나를 구박하고 매질하는 그 선생은 어린 아이의 눈에도 존경스런 선생으로 보이질 않았다.
이것은 내 인생에 정말 아픈 기억이고 분노이며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엄하고 무식했다는 느낌이 있다.
상급학교 진학할 때마다 격려는 하지 않고 넌 안 보낸다고 해서 그냥 농사일하며 살아야 하나보다 하고 포기하곤 했다.
보낼 거면서 왜 초를 쳤을까 하고 생각하니 무식이 원죄인듯하다.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방식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땐 몰랐다. 당연히 아버지의 한 마디가 곧 내 인생을 좌지우지했으니 상급학교 진학은 끝난 줄 알고 놀다가 한 달 정도 남았을 때 학교를 보내주겠다고 하니 늘 허둥대며 준비하고 좀 나은 학교 진학을 할 기회가 박탈됨에 미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단순 의존형의 인간이 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가끔은 도전하고 가야 한다고 악다구니라도 피워야 하는데 안된다고 말하면 안 되는 줄 알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인생이었던 것 같다.
대책 없이 착했다고 표현해야 맞는데 글을 쓰는 이 순간은 어리석음이 더 크게 떠올라 쓴웃음이 난다.
수긍하고 받아들이면서 왜 편하게 느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마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품은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 집보다 못 살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들도 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는데 나는 왜? 안된다고 하지 의문을 가지다가 이내 포기하고 마음 편하게 지냈던 것 같다.
포기를 쉽게 하는 버릇이 그때 생겼다.
안 되는 일에 목숨 걸지도 않을 뿐 아니라 굳이 원망하여 마음을 아프게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 길만이 나에게 주어진 최선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능력이 있었다.
공직을 선택한 것은 아버지 덕택이다.
완고하고 대화가 안 통해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없으니 스스로 독립하고픈 욕망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도피하고픈 마음이 강했다.
그게 선택의 목적이었지만 공직생활도 편한 건 없었다.
부패구조 속에 적응하는 방식이 남들과 달라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취급을 당하곤 했다.
도둑질해 상납을 해야 능력이 있는 인간으로 대접받는 시대였으니 그 능력이 사실 없었기 때문이다.
내 속에 언제나 당당함이 있었다.
김영삼. 노태우. 김대중이 출마한 대통령 선거 당시 명목은 직원과의 대화지만 사실은 노태우 선거운동이었다.
국장과의 대화에서 당돌한 질문을 했다.
“유능한 직원과 무능한 직원의 차이는 뭔가요?” 하고.
끝내 대답을 하지 않는 국장에게 선문답했다.
“도둑질해서 상납 잘하면 유능한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무능한 것이지요.”
국장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고 내일 당장 국장실로 오라는 말과 함께 대화는 끝났고 나는 뒷날 국장실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희가 원하는 짓은 할 수 없으니 안 할 뿐이고 너의 생각에 동조할 의사가 전혀 없으니 맘대로 하시라고.
상관의 눈치를 보는 스타일이 아닌 자신의 사고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한 후 스스로 만족하는 자아도취형이다.
참 많이 미워했을 것이다.
독특하니까.
그렇다고 욕할 수 없었으니 마음 한편에는 미안함도 존재했을 것이다.
부조리를 저지르는 그들이 정상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뿐더러 동조하지 않는 내가 비정상이라고 얘기할 수도 없으니까.
그들의 눈길에 관심 두지 않았다.
결정한 사실에 대해 후회하거나 맞추기 위한 노력 같은 건 아예 마음에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 방식과 당신의 방식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갈등도 없다.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으니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을 연구하거나 표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부패한 인간이고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인간일 뿐이라는 사고가 아닌 서로가 추구하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동료와의 관계는 원만했다.
그들의 방식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내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니 서로에게 할 얘기가 딱히 존재하지 않아 편했다.
음주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만나 소주잔 기울이며 히득거리다 취하면 그냥 집에 오는 보통 사람일 뿐이니까.
남의 일에 관심이 거의 없다.
굳이 내가 나서야 할 일이 아니라면 어떤 얘기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해 구분마저도 하지 않는다.
세상을 통제 할 처지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급자가 부당하게 행동하면서 양심이 없어 보이면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것이 설령 나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한다손 치더라도 침묵하지 않았다.
일화를 말하고 싶지만 제 자랑같이 느낄까 봐 소개하지는 않겠다.
결혼도 중매결혼이다.
연애한 기억은 있는데 왜 중매결혼을 했는지 아직도 의아하다.
사귀는 여자와 선본 여자의 차이점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손윗사람이 권하는 여성이 더 나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심리였을 것이다.
노인으로서도 특별하게 변한 것은 없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도 오래전에 몸이 기억하고 있는 불편함 때문이지만 정당하지 못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는 반드시 집고 가는 버릇이 있다.
아내에게 가끔 지적당하는 것 중 하나가 성격이 톡톡하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사실 나와 상관이 없으므로 관심을 가지면 대부분은 불쾌감만 느껴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해서 관심 자체를 가지지 않는다.
예전과 변하지 않는 것은 불필요한 욕망도 없고 나름의 삶에 충실하는 불변의 감정이 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남을 의식하며 살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다.
그러니 퇴임하고 그냥 백수를 천직이라 여기며 지내는데 아마 몰라도 아내가 보기에는 답답하고 한심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돈 버는데 관심도 전혀 없지만 그래도 용돈은 벌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주식투자를 하고 약간의 용돈을 벌면 지인과 소주를 마시는데 아내의 눈치가 전혀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눈치도 상관없이 굳건하게 직업 전선에 뛰어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곧은 심지가 있다.
가끔은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
작은 텃밭에 상치며 고추며 쉽게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심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세상 돌아가는 현상과 상관없이 나만의 시간 속에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굳이 아내가 함께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밥 짓고 반찬 만드는 일은 어릴 적 자취를 해봤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다.
그러니 구박에서 벗어나 가끔은 낚시도 즐기면서 안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꿈을 꾼다.
시골 생활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는 단지 거처 마련을 위한 자금력이 꽝이라는 사실이다.
작은 컨테이너라도 마련할 능력이 있으면 훨훨 날아 떠나고 싶은데 그것마저 원활하지 않으니 맨날 꿈만 꾸다가 포기하고 만다.
그 사람이 누구든지 기대하고 살지 않는다.
왜냐면 초등학교 때 선생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그가 누구든 내 마음속에 온전히 쟁여놓고 바라보지 않는다.
살면서 느낀 감정 중에 온전히 믿었던 사람이 나에게 보낸 배신과 절망 때문에 힘들어 한 적이 여러 번 있어 진심으로 누굴 무작정 사랑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하지 목숨 걸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자존감도 강하고 논리가 확고해서 설령 이성과 관계라고 해도 합리성이 의심 되면 내가 판단한 방식으로 행동해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늘 그런 비난에 대하여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내가 판단한 방식이 배려보다는 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올곧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늘 지배해서 상대에 대한 무시는 애당초 내 속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작정 살아온 인생이라 느낌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반추의 시간 속에 올곧음도 있고 고집도 있고 어리석음도 존재한 것 보면 나 또한 보통의 평범한 인생이지 않을까 한다.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주름과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처럼 수많은 얼굴을 만들면서 살아왔건만 내 속에 후회는 그리 많지 않다.
욕심을 내어 살아왔다면 이루지 못난 꿈들 때문에 후회가 주렁주렁 달렸겠지만 이루고 싶은 욕심을 접어두고 현실에 수긍하는 삶이었기에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 아픔이 없었겠는가?
왜 분노가 없었겠는가마는 그래도 멍에로 머물지 않는 것에 가끔은 감사한다.
그들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아서 그들 또한 자신의 만족을 위한 판단과 결정을 했으리라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끔 가슴에 옹이로 남아있는 흔적들을 멀꾸러미 들여다보면 웃는 남자다.
지난 시간은 늘 아름다운 모습일 거로 생각하는 건 젊었을 땐 꿈을 꾸면서 살고 늙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생각 때문에 거울 속 낯선 모습처럼 비친 나를 그래도 사랑한다.
오랫동안 보아온 모습에 약간의 변화만 내려앉았을 뿐 그는 오늘도 나이기에 사랑스러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모습이니까. 나에게.
모두는 인생을 굴곡이라고 느끼지만 견딜 수 있을만큼 고뇌는 굴곡이 아닌 수평선과 같다고 말하며 산다.
첫댓글 오늘은 친구 글을 끝까지 잘 읽었다
그렇다고 다른 때는 대충 읽는 건 아니고 오늘은 좀 더 찬찬히 읽었다는 얘기다
말 맞다나 좀 특별한데가 있긴 하구나고 느껴서 말이다.
특별하진 않고 독특한 인생이지 ㅋ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