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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목요시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몰운대
내가 만난 문인수
‘오래 고단한, 고단한 것’ 읽기
윤희수
■ 폐경기를 모르는 시인
문인수 시인은 늦깎이다. 1985년『심상』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니, 그때가 불혹을 넘긴 나이다. 그러나 19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2000년 제11회 김달진문학상,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쉬!』(문학동네. 2006)로 제11회 시와시학상 작품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만큼 문운이 왕성하다. 또 이번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이전에, 『늪이 늪에 젖듯이』(심상, 1986),『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문학아카데미, 1990), 『뿔』(민음사, 1992), 『홰치는 산』(만인사, 1999), 『동강의 높은 새』(세계사, 2000)가 있다. 이번 시집까지 참으로 활발한 창작열이다. 지난해의 미당문학상 최종심사 때, 심사위원 정현종 시인이 "이 친구, 아무리 봐도 지금이 전성기야."라고 그의 전성기를 부러워했다는 소문처럼 그의 시는 지금 한창 물이 올랐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하다. 요즘 젊은 시인들끼리 속닥거리는 말-<문인수 선배는 폐경기를 모르는 시인>이라는 평가다. ꡐ폐경기 문학ꡑ이란 시력 20~30년에 이르는 선배 시인들이 이른바 '신서정'이니, '명상시'니 하는 이름으로 쓴, 시적 긴장 떨어지거나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부족하여 투사의 힘이 턱없이 떨어지거나, 시의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동어반복의 시편들을 양산하고 있음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시는 젊은 시인들을 오히려 긴장시킨다. 사물과의 만남 그 침묵과의 대면, 우주적 원리에 은밀히 내장된 서정의 극한을 읽어내는 힘, 자연 현상이라는 가시적 세계의 심층에서 작동되고 있는 삶과 죽음의 무게를 생생한 시각으로 감지하는 감관력으로 또 한번 긴장시킨다. 그는 삶을 그냥 관조하는 게 아니라 죽음의 곁을 기웃거리다가 죽음과 맞닿은 삶의 의미를 보아낸다. 그렇게 긴장의 끈을, 그는 팽팽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그렇게 그는 시라는 화두를 단 한순간도 놓지 않고 물고 있다.
■ 길고 긴 뜨신 끈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 봐 "아버지, 쉬, 어이쿠, 어이쿠, 시원하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쉬!」전문)
어느날 문상을 갔을 때, 환갑을 지난 상주가 아흔 넘은 아버지를 안고 오줌 누이던, 어렴풋이 웃는, 그러나 글썽글썽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 봐 ꡐ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ꡑ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라는 전언은 그대로, 그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으신 그의 아버지를 안고 소변을 뉜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는 이미 준비되어 있던 시인의 시에 <뜨신 끈>으로 쉽게 되풀려나왔다고 한다. <…툭,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비끄러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라는 절창을.
그는 어느 지면에 짤막한 시작메모를 쓰고 있다. <…사별. 그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고 고통스런 장면이겠지만 쉬! 삶과 죽음으로써 치르는 인연의 어떤 절정인지도 모르겠다. 실로 장구하게, 우리의 몸은 그렇게 유전돼왔다>고. 그렇다. <몸 갚아드리듯> 안은 아들과 몸 움츠리며 안긴 아버지의 애틋함이 눈에 선하다. <길고 긴 뜨신 끈>이 <툭, 툭, 끊기는> 것에서, 아버지를 지상에 붙들어 매려는 아들과 마저 풀고 날아오르려는 아버지의 안타까움은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의 고통을 어찌하지 못하는 나의 안타까움으로 바뀌어 숨죽이고 시를 읽게 한다.
이 <길고 긴 뜨신 끈>을 잇는 시들은 그의 네 번째 시집 『홰치는 산』에 오줌을 주제/소재로 하는 연작시로 싣고 있다. 직접 제목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모두 6편, 각각 부제가 붙은「오줌」제목의 연작시와 이번 시집『쉬!』의「쉬!」라는 시에도 <길고 긴 뜨신 끈>이란 말을 똑 같이 집어넣는다. 그는 이 말의 저작권을 주장한다. 아니 등기권리다. 그는 늘 인연의 끈을 ,우주의 섭리를 건드릴 때, 몸 근질거리도록 이 말을 <알박기>할 것이라고 한다. 그토록 애착하는 이 <길고 긴 뜨신 끈>이란 원형은 그가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얻었다고 한다.
어느 해 추운 겨울이었고 밤늦은 시간이었다. 나는 잔뜩 술에 취해 전날 내린 눈이 녹아 언 빙판 길을 위태롭게 걸어 집으로 가고 있었다. 오줌이 마려웠다. 나는 골목의 시멘트 담벼락 아래 쓸어모아둔 쓰레기, 쓰레기를 덮은 눈더미 위에다 오줌을 갈겼다. 내 오줌발에 데인 걸까, 쥐 한 마리가 튀어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뱀과 더불어 진절머리가 나도록 싫은 것이 쥐다. 그런데 그때 시꺼먼 쥐의 자취를 따라 웬 굴뚝새가 떠올랐을까. 그 쬐끄만한 굴뚝새가 바쁘게, 불안하게 드나들던 고향의 돌담이, 돌담장을 꾸미던 골담초 노란꽃이 또 떠올랐다. <…/이 도시의 쥐가 가서 새가 되다니/…/그런데 내 몸은 어찌 땅의 흙을 기억할까/내 한 줌 근(根)을 잡고 오줌을 누면/이 길고 긴, 뜨신 끈이여/철, 철, 철, 풀려나간다 풀려나가는 몸, 그래 썩자/…>(「오줌-몸」). 그 이후 나는 오줌 누는 일과 오줌 눈 기억에 대해 자꾸 예의 그 끈을 갖다댔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일생을 하관하고, 그 신생(新生)의 무덤을 올려다보며 산아래 풀숲에다 오줌 눈 일 「오줌 -아버지」, 그 아버지의 소한테 오줌 눈 기억(「오줌-겨울소」) 등이 그 길고 긴 뜨신 끈에 엮여져 연속적으로 시가 써졌다.
그것이 우리의 이 길고 긴 뜨신 끈이다. 그것은 그리하여 아버지와 나를 저렇듯 잇고 있다. 아버지의 무덤과 나의 활동을 잇고 있다. 쓰레기 더미 빙판의 도시와 골담초 돌담길의 고향, 쥐와 굴뚝새,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고 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저 긴 수평선, 저 꽉 다문 입, 저 길고 긴 뜨신 끈, 저 거대한 것이 묶고 있는 시간과 공간엔 삶과 죽음의 내용이, 그 진실이 격렬하게 다 들어있다. 수평선, 저 꽉 다문 입, 저 완강한 침묵이야말로 삶의 만 파도를, 죽음의 저 무한천공을 전부 장악, 파악하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이 지린가. 그래도 한 바탕 뜨시게 오줌을 누고 저 먼 수평선에다 대고 부르르 몸 떨어야겠다. (자전적 글 「저 꽉 다문 입 속의 길고 긴 뜨신 끈」중)
■ 방올음산 꼭대기로 솟아오르는 고향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이다. 그가 사는 곳 대구 만촌동에서 차를 몰아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지척이다. 방올음산의 삐죽한 꼭대기가 먼저 솟아 있다. 그곳은 그에게는 50˜60년대의 지나간 시간이며, 그의 유년이며 추억과 같은 이름이거나, 그의 몸과 영혼이 발원한 곳이며 회귀의 공간이다. 시인의 아버지에게는 누런 황소가 있었고 타작을 하는 바깥마당도 있었으니 시골이나마 그런 대로 풍족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나 삶은 고달픈 법. <흰내에 큰물이 졌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물꼬를 보러 가는 아버지>(「방올음산」), <등덜미 시퍼렇게 얼어 터졌을>(「홰치는 산」) 아버지는 늘 <방올음산 꼭대기로 솟아오르>는 외경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방올음산은 북벽으로 서 있다.
그 등덜미 시퍼렇게 얼어 터졌을 것이다. 그러나 겨우내 묵묵히 버티고 선 산
아버지, 엄동의 산협에 들어갔다.
쩌렁쩌렁 참나무 장작 찍어 낸 아버지,
흰내 그 긴 물머리 몰고 온 것일까
첫 새벽 홰치는 소리 들었다. (「홰치는 산」부분)
방올음산처럼 용감하고 위대한 아버지 뒤에는 엄청난 삶의 질곡이 숨어 있다. <저 50년대 60년대의 춘궁, 춘삼월에도 얼음 박힌 응달 가파른 산비탈을, 그 험한 보릿고개 기어오르며 사내들은 억세게 낫질을> 해야 했고, <뼈 빠지게 허리 휘게 기어올라도 미끄러지고 나뒹굴고 깨지고>(「참꽃」)하던 궁핍한 세월이 있었을 뿐이다. 시인은 그것이 바로 삶의 비밀임을 말하고 있다. 삶이란 거창하고 장엄한 무엇이 아니라, 현실의 질곡을 헤쳐나가는 너덜너덜한 몸 그 자체인 것이다. 위대한 것은 일상의 화려함이 아니다. 이제 비록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닳고 깨진 몸을 끌고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다.
그리고 그의 유년을 엿볼 수 있는 또 한편의 시
곤충채집 할 때였다.
물잠자리, 길앞잡이가 길을 내는 것이었다.
그 길에 취해가면 오 리 길 안 쪽에
내 하나 고개 하나 있다.
고개 아래 뻐꾹뻐꾹 마을이 나온다.
그렇게 어느 날 장갓마을까지 간 적 있다.
장갓마을엔 큰 누님이,
날 업어 키운 큰 누님 시집살이하고 있었는데
삶은 강냉이랑 실컷 얻어먹고
집에 와서 으스대며 마구 자랑했다.
전화도 없던 시절,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느그 누부야 눈에 눈물 빼러갔더냐며
어머니한테 몽당 빗자루로 맞았다.
다시는 그런 길,
그리움이 내는 길 가보지 못했다. (「눈물」전문)
그는 그때, 그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그 장면을 어떻게 알았을까에 대해, <사람의 사랑이 미루어 짐작하는 사실, 아니 확실히 짚어내는 진실은 구구한 설명 따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주적으로 통하는 여백, 혹은 행간의 의미에 의해서이고, 그것은 전류처럼 통한다. 그것이 더 깊이 뼈저리게 하고 복받치게 하는 감동>(시인의 자전「사진 한 판 더 찍고 싶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시의 뒤를 캐면,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누이에 대한 회한과 궁핍한 세월이 있다. 고향의 기억은 그렇게 삶의 절실함/진실성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그러나 당연하기 짝이 없는 고향의 시대적 변천변화를 한탄하거나 흘러간 것들에 대한 막연하고도 감상에 겨운 향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립다는 것이다. 더러운 것이 정이라고 했다. 어느 시인은 이 말을ꡐ더러운 그리움ꡑ이라고 패러디했던가. 그것이 참상이든 비극이든 불행이든 잔치이든 과거 속으로 들어간 고향은 전부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리운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ꡐ정월ꡑ이라는 시에서ꡒ이 땅의 神이옵신 그리움이여ꡓ라고 쓴 적이 있다. (자전적 글 「길 위에서의 시 쓰기」에서)
그는 그렇게 고향에 기대어 많은 시를 써왔다고 한다. <고향에 기대면 어머니의 품속처럼, 달 아래 선 것처럼 삶의 이런 저런 상처가 잘 나았다. 또 그 죄가 모두 용서되었다고, 그 서러움과 상실감을 지금까지 시로 써 온 셈이다>라고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길이 나와서 또 길을 땡긴다
데뷔 직전까지 그렇게 나는 모든 문학동네 곁을 아예 완전히 떠나 있었다. 군 제대 후 결혼하기까지 나는 여러 해 객지를 떠돌았고, 또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더러는 혼자 글이랍시고 끄적거려 보기도 했지만 될 리 없었고, 더 많이 쓰는 일을 잊고 살았다. 이런 저런 분탕질과 일탈, 퇴폐가 내 밥이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 시절, 결혼을 하고 나서 실로 본격적인 내 마음 고생, 몸고생이 시작된 것 같다. 십여 가지의 직장과 직업, 그리고 백수기간이 악순환 되는 세월이 나를 많이 흔들고 체벌했다.(문학적 자전「저 흰 구름, 잘못 든 길」중)
마흔이 다 된 나이로 소위 등단이란 걸 하기 전, 그는 그때 홀로 웅크리고 보낸 세월, 그의 말대로 ‘골방문학!’의 시절부터 객지를 떠돌았다. 간난의 시절이었다고 한다. 등단 후에도 그의 길에 대한 집착은 지속된다. 그에게는 너무 많은 길이 있어서 길이 없기도 하고, 길의 끝이 또한 길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에게 길은 돌아오고 또 떠난다. 길은 고뇌하며 <가출과 출가의 念>을 낳기도 하고, 길은 <큰길에서 가지치고 가지친 샛길, 길 끝엔 한 채씩 집 매달려서 행, 불행의 허파꽈리 같>기도 하다. 그는 <늘 배곯는 것처럼, 비 맞은 것처럼> 길에 대해 중얼거린다.
여러 날 여러 땅을 기어갔다.
나팔꽃 넝쿨의 무더운 먼 길을 본다.
간밤에는 그 오랜 어둠,
바람이며 빗줄기까지도 부여잡곤 했던지
등엔 또 꽃 붉은 상처를 지고
절망절망 전다.
담벼락 아래
또 앞이 막히는 삶을 본다.
제 몸이라도 비틀어 허공을 뚫고 있다. (「길」전문)
그는 몸으로 허공을 뚫는다. 나팔꽃처럼 <무더운 먼 길> 끝엔 <바람이며 빗줄기까지도 부여잡>으려 한다. 그는 온몸으로 길을 유전한다. 그러나 그는 길 위에서 <벌써 몇 해가 지났건만/그대 여전히 삽짝 밖에 나와 서 있다./그대 뿜어 올리는 먼 달빛으로 길이 잘 보이나니/이 수렁을 지나 돌아가겠다>(「정읍사, 화답」)고 다짐하기도 하고, <검은 수렁 한복판을 느릿느릿 간다…… 동해안 아름다운 길 길게 풀리>(「달팽이」)는 길 위를 서성거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강굽이 더 돌고 싶다 저물기 전으로//강물 따라 걸어가면 한참을 더>가고 싶어한다. 길에서 머뭇거리면서 <저무는 길 끝 쇠죽여물 끓는 냄새>를 맡기도 하고, <밤 깊어 더 낯선 객지에서 젖는 여윈 몸이> 빗소리 때문에 더 잘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정선엘 더 자주 간다. 아니 동강에서 살기도 한다. 시인은 특히 강원도 정선 땅을 <신(神)>삼아 그리워한다. 이를 두고 그는 <성주가 내 몸과 영혼의 고향이라면 정선은 우리네 한의 발원지이며 내 전생의 고향일 것 같다>고 항상 중얼거린다.
일상에서는 내 모습조차도 부지불식간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정선엘 가면 ꡐ이 곳 특유의 석회질의 돌들, 그것들은 비에, 물소리에 젖어 하나 하나 선명하게 상기된 저마다의 낯빛으로, 속수무책의 단단함으로 눌러앉아 있다.ꡑ 그렇듯 ꡐ젖은 것은 잘 보인다. 정선엘 가면 물안개 속에서도, 밤중 부엉이 소리의 암흑 속에서도 내가 잘 보인다.ꡑ(문학적 자전 「길 위에서의 시 쓰기」중에서)
그에게 길이란 <길/끝에/길이 나와서 또 길을 땡기>는 것임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틋한 무엇이 그토록 그를 강하게 끌어당긴 것일까? <내 속이 정선>이라 할 만큼, 시인은 그의 삶과의 동질성을 선언한다. 몸이 이르지 않아도 정선의 산천을 이끌어올 수 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는 또 <정선을 갈 때마다 묘하다./정선을 떠날 때마다 …몸과 마음이 자꾸 뒤로 땡긴다>(시작메모)고 말한다. 온전히 끌어들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온 우주를 시인의 내면에 가둘 수는 있을지라도 정선은,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정선의 풍광은 너무나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정선은 더 먼 곳까지 뻗어 있지만, 아우라지에서 몰운대까지라도 추상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가파른 산들은 방촌의 벽을 찢고, 끝없는 여울소리는 가슴 너머로 범람할 것이다. 채워도 채워도 남는 것이 정선이다. 가도 가도 그에게 그리운 곳이 정선이다.
흐린 봄날 정선 간다.
처음 길이어서 길이 어둡다.
노룻재 싸릿재 쇄재 넘으며
굽이굽이 막힐 듯 막힐 것 같은
길
끝에
길이 나와서 또 길을 땡긴다.
내 마음 속으로 가는가
뒤돌아보면 검게 닫히는 산, 첩, 첩,
비가 올라나 눈이 오겠다. (「정선 가는 길」 전문)
그는 시를 ꡐ자기용서ꡑ라고 믿는다. <나의 시는 나 자신으로부터 죄의 사함을 받은 뒤의 또 다른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시 쓰기를 <스스로의 결핍을 오래 들여다보는 복받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 결핍의 덩어리>가 길 위에서 잘 보였고, 특히 정선에서 가장 잘 보였다며 고백한다. 그 곳에서 자신의 <헌 데>를 천천히 모두 용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백은 그의 시에 절절히 녹아 있다. <내 속이 이제 구절리였으면 좋겠다. 내 속이 정선인 것 같다.>라고. 정선 가는 길이야말로 그의 마음속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문 시인은 자주 <저 먼 곳 정선>에 갇히고, 다시 그 자신을 더 잘 보려고 유목의 길을 떠나곤 했다. 그 정선은 올려다봤자 <하늘 세 뼘>이어서, <제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더 잘 보려고, 그 삶의 주소지를 반도의 깊숙한 내륙에서, 다시 섬으로, <섬의새들이하루종일한꺼번에여러번날아오르>는 그 <생각은저리무수하고간절>하기만 하고,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강원도 영월 소나기재>로 또 <변산 채석강>에서, 어느새 <인도 갠지스 강>으로 그렇게 길 위를 온몸으로 부유했던가 보다. 그렇게 <시를 쓰려는 궁리>로 시를 찾아 이곳저곳을 현재진행형으로 떠돌아다닌다. 앉아서 시를 기다리지 않고, 시를 향해 마중 나간다. 그는 저기에서 오고 있는 시를 향해 무거운 육신을 끌고 마주나간다. 그래서 그의 시는 여행 중이나, 길 위에서 얻어진다.
그러나 이 무한한 유목의 기행도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느린 달팽이의 몸짓이었을까? 정선 혹은 그 어느 길 위에 있어도 결국 그는 자기 생각의 본향인 <마음/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만다고 했다. 결국 인생은 진리를 찾아가는 여행이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 <인생에 대한 그 무슨 대답인 것 같>(「낮달이 중얼거렸다」)아서 그 대답들을 보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의 시에서 <인생에 대한 그 무슨 대답>은 <낮달>에도 있고, 채석강의 <바다책>에도 있고, 시멘트 벽의 갈라진 틈새로 줄지어 돋아난 풀들에도 있으며, 타지마할 궁전과 빈민촌 빨래터가 나란히 보이는 풍경 속에도 있다. 이렇게 유년기의 그리고 골방문학시대의 체험과 상처에 오래도록 매달려 있던 시인은 차츰 자신의 개인적 체험으로부터 눈을 돌려 삶과 죽음, 자연과 생명, 그리고 다양한 외부 사물 자체의 의미를 천착하는 쪽으로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그 자신이 그 동안 부단히 걸어온 길들 위에서 맞닥뜨려온 <참 기나긴, 질긴 질문>들에 대한 응답이, 곧 <몸과 영혼의 고향>인 <집>이기 때문이다.
길이며 집이, 길과 집 사이가 곧 인생 전모다. 집에 우글거리는 넝쿨 같은 길들, 길에서 내다보이는 아득한 빈 집. 무엇이 더 아프고 사무치는가. “달빛, 그 노숙의 날개/그 어디로 길이 열리는지 먼 타관으로 가서 노숙을 해봐라” “집에 가고 싶거나 집에 가고 싶지 않을 때/서울 가면 풀린다. 서울역에 내리면 곧장 그 길로 되돌아가려는 마음이/집이다.” 길에 대해 그동안 참 많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잡다하다. 그 중 그래도 이 말은 좀 그럴 듯 한가. 길,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시작노트「길에 대해 많이 중얼거렸다」중에서)
이제 백발이 다 된 초로의 시인은 <너무 많이 돌아다녀 뒤축이 다 닳은 족적은 그 동안/없는 뿌리를 앓아온 통점이거나 죄/쓸어모아 흙으로 덮는다면 잘 썩을 것>(「樹葬」)이라고 말하며 그래서 여전히 답을 구하기 위해 계속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을 고백한다.
길은 시인이 살고 있는 동네 전봇대 아래 그늘에 웬 민들레꽃 한 송이(「꼭지」)이거나, 오래된 기억처럼 나이테처럼 고목들이 껴안은 험준한 읍성(「성밖숲」)이 되기도 한다. 또 4차선 도로변을 따라 높이 둘러쳐진 옹벽엔 구불구불 길게 간 금(「벽의 풀」)이거나, 탈이 난 엄지발톱 위(「발톱」), 새끼 염소의 끊임없는 티격태격의 뿔 위(「각축」), 큰 웅변으로 시꺼먼 바윗덩어리의 그늘「고인돌 공원」)이기도 하다.
길, 그것, <오래 고단한, 고단한 것>(「폐가, 시간이 많다」)이 삶이고, 그것을 늘 <얼마나 조심조심 뜯어내고 있는>(「폐가, 시간이 많다」) 지를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사랑한다, 는 말이 때로 한순간 살짝 벗겨내는/그대 이마 어디 미명 같은 그늘,/그런 아픔이 있>(「꽃」)기 때문이다.
아 오래 함께한 행복이여. <시와 시학,2006,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