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장문의 손편지를 언제 누구로부터 마지막으로 받아보았고 또 누구에게 손편지를 써서 보냈는지 기억해 본다. 받은 것은 막내 아들녀석이 2001년 1월 논산훈련소에 입소 후 훈련과정에서 부모가 생각나 써서 부친 군사우편 편지였고, 보낸 것은 4년전 며누리에게 '손자키운다고 고생많다'는 내용을 담아 부친 편지였다. 그간 가끔 두 아들과 딸에게 필요할 때 쪽지 편지를 쓴 적도, 애들이 쪽지 글로 적어 내게 보낸 적도 있긴 했지만....
사실 내가 누군가에게 열심히 손편지를,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썻던 기억은 대학시절 한 여성에게 내 마음을 통채로 던져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기다림과 그리움을 전하기 위했던 것이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생경한 연애편지였던 셈이다. 이런 간절함을 담아 손편지로 누군가에게 썻든 경험은 내 혼자뿐만 아니었고 그 때 젊은이들은 다 그랬다. 펜을 꾹꾹 눌러가며 정성을 들인 흔적이 편지지에 나열되면 그것으로 흡족했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는 흐뭇함으로 가슴이 뿌듯했었다. 그렇게 쓴 편지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우체통으로 걸어갔던 기쁨은 어떠하였고.....
막내가 훈련소에서 보낸 편지를 오랫만에 다시 꺼내 읽어보니 코끝이 찡해 온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께. 그간 편안하셨읍니까. 막내 성훈입니다.부모님께 '그간 편안하셨읍니까'라고 인사하는 것이 무척 낯설고 어색합니다. 부모님을 떠나 이곳에 오니 누구보다 부모님의 얼굴이 보고 싶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따뜻한 우리 집, 모두가 웃음띈 얼굴들, 서로 위로하고 힘이 되어준 가족들, 어머니의 맛있는 반찬 이 모든 것들이 그립습니다. .....요즘 날씨가 무척 춥고 눈도 많이 오니 특별히 건강 유념하셔야 합니다. 또 아버지, 운전 조심하셔야 합니다.....이곳 훈련이 힘들지만 나를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의 은덕으로 잘 견뎌나가고 있으니 조금도 염려마십시요. 훈련과 군 생활을 통해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담금질하고 앞으로 맞이 할 수 있는 인생길의 어려움과 고비들도 극복해 나갈 굳건한 인내심을 키울 것입니다. ........"
부족한 자식의 것이지만 이처럼 손 편지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고귀한 글이라 생각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편지는 자식의 숨결과 생각 그리고 여운과 전율을 나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적 학창시절을 회고해 보면 편지와 엽서는 이처럼 기다림과 정서의 대명사였다. 학교 등하교 길가에 서 있던 빨간 우체통은 온갖 사연을 안고 있는 든든함과 늘 그자리에 있고 기다려 줄 것만 같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손편지와 우체통은 이메일(Email)이 판을 치자 점점 사라지고 있고, 우리의 정서도 등달아 메말라지고 있다. 이메일과 문자메세지에 더해 SNS와 카톡까지 등장해서 손 편지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버 스페이스'는 인간관계를 지극히 형식적이고 피상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처럼 스마트폰의 기기와 전파가 인간의 정서와 정감을 밀어 내던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첨단문명의 결정체로 채워진 삶을 바쁘게 살고 있지만 항상 외로운 것은, 그것으로 인해 마치 집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 착각하는 것과 같은 장소상실(placelessness)을 느끼기 때문이다. 편지는 시간과 공간을 줄여주고 장소의 개념을 명확히 해 주는 힘을 발휘하지만 스마트 폰은 기기와 기기가 서로 말하고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겐 장소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므로 편지쓰기를 모두 열심히 해야 겠다. 스마트폰을 매개로 하는 상호작용으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이 황랑한 장소상실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고. 누가 누구에게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의 진실과 성심을 표현하려 하겠는가?
'ㅎㅎㅎ' 'ㅋㅋㅋ'를 죽으라 반복하고 각종 심란한 이모티콘을 아무리 화려하게 구사해도 장소상실의 벽을 허물수는 없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산사진'을 카톡에 올리고, 시간 날 때마다 남들 페이스북을 돌아다니며 '좋아요'를 죽어라 누르고 다녀도 장소상실로 인한 허탈감을 메우지는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정성과 진실이 담겨져있지 않고 시공간적 좌표를 갖는 삶의 구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손편지를 쓰고 받는 것이 가장 좋은 처방전이 될 것이다. 편지는 진정한 마음을 전하는 위력이 있고 쓴 사람의 진실이 용해되어 있어 받는 사람은 필히 감동하기 마련이다.
참으로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간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인들에게 편지쓰기에 소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성의를 다한 육필 사연을 보고싶고 그리운 사람들에게 보내야 겠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남편과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내용에 더해 '사랑하고 자랑스럽다'라고 편지를 써야 하겠다. 2014년 4월 7일 文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