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집권에 큰 공헌을 했고 박근혜 정부하에서도 맹위를 떨치던 뉴라이트는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위세가 꺾였다. 많은 사람들은 뉴라이트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뉴라이트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외교·안보 분야를 비롯해 정부의 주요 요직을 독식하며 일제 식민지배 정당화와 건국절 논란 등의 역사전쟁을 전방위로 수행 중이다. 그런데 뉴라이트라는 자들의 세계관을 직시하면 이들이 얼치기 사회진화론과 삼류 유물론에 포획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뉴라이트가 숭상하는 건 경제성장과 우승열패의 신화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은 무엇보다 경제성장(물질)과 우승열패(優勝劣敗)를 기준으로 한국근현대사를 해석한다.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의 인식에 따르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계기적 사태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이승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기초한 건국이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근대적 제도와 인프라를 조선에 이식, 착근함으로써 야만과 전근대에 머물던 조선에 탈아입구(脫亞入歐)와 근대화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이는 곧 본격적인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의 시발이 되었기 때문이며, 이승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기초한 건국은 반공과 친미, 세계시장과의 결합을 국가지도이념으로 채택한 까닭이다.
뉴라이트 진영의 눈을 빌어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면 한국현대사는 근대화 및 산업화로 상징되는 경제성장과 반공을 중핵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두 축으로 해서 쉼 없이 발전해 온 역사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나 이승만의 제왕적 통치, 박정희가 저지른 2번의 쿠데타(5.16군사정변과 10월 유신)와 유사파시즘적 통치 등은 흠이 없지는 않았지만, 경제성장과 자유민주주의를 부단히 신장하고 확산시킨 탓에 강한 긍정의 대상이 된다.
일제의 조선반도 강제병탄 및 일제하 식민통치의 혹독함도, 이승만이 저지른 성급한 단독정부 수립 및 그 결정에 상당부분 기인한 분단과 전쟁,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숱한 인권유린과 민간인 학살, 독재와 민주주의 유린도, 박정희가 자행한 헌정중단행위와 극단적인 인권억압 및 민주주의 말살도 경제성장과 반공이라는 이름의 뉴라이트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불가피했거나 대의(?)에 수반(隨伴)되는 현상일 따름이다. 즉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에 불과하다.
뉴라이트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이처럼 조화롭고 아름답고 일관되다. 일제도, 이승만도, 박정희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과 역할에 충실했으며, 암(暗)보다는 명(明)이 비교할 수 없이 큰 존재들이다.
뉴라이트 인사들의 세계관과 역사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허버트 스펜서 류(類)의 사회진화론에서 말하는 우승열패·적자생존의 원리를 지고의 가치로 수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래전에 사이비과학으로 판명 난 사회진화론은 우등하고 강한 존재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인간 세상도 그러하다는 주장으로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였다. 이 사회진화론에 따르면 강하고 우등하고 문명한 일제가 약하고 열등하고 미개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건 자연스럽다.
한겨레신문, 2023년 9월7일 "윤 대통령, 뉴라이트 깃발 들고 철 지난 이념통치 ‘돌격’" 기사 관련 이미지.
또한 뉴라이트 인사들의 멘털리티에서 경제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삼류 유물론의 흔적을 찾는 일은 너무 쉽다. 인간 세상에선 경제성장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에 식민지배를 통해 조선을 근대화시킨 일제,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매개로 대한민국을 세계시장에 결합시킨 이승만, 중공업위주의 산업화로 경제를 성장시킨 박정희는 뉴라이트 입장에선 상찬과 숭배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공정하게 말해 뉴라이트의 세계관과 역사관은 얼치기 사회진화론과 삼류 유물론의 병리적 결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뉴라이트야말로 자학사관의 극단
뉴라이트 진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풍요를 인간의 존엄성 보다 우위에 놓는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폄훼(貶毁)도 이들이 저지르는 대표적 오류 가운데 하나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우리 힘으로는 근대화도, 경제성장도, 자유민주주의도 불가능했다, 일제가, 미국이, 이승만이, 박정희가 경제성장과 자유민주주의를 가능케했다’고 굳게 믿으며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 더 나아가 인간이 지닌 주체성을 철저히 불신한다.
뉴라이트 역사관과 가치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오직 물질적인 풍요, 강자독식, 반공·반북의식 뿐이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형은 정치적, 사상적으로는 금치산자 혹은 무뇌아이더라도 구매력이 높은 인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인간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에게 인간 고유의 존엄성이 있다고 말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배부른 돼지에 만족하는 인간에게 인간적 존엄성이 있다고 평가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우리가 일제식민통치와 이승만, 박정희 시기를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건 일제식민통치 등이 인간적 존엄 및 행복과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적 존엄의 실현을 영구적으로 봉쇄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경제성장은 지양의 대상일 따름이다. 그 경제성장조차 허다한 부작용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병폐를 내장한 불구(不具)의 경제성장에 불과하다. 인간 정신과 상상력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반공·반북주의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진실로 우려되는 것은 뉴라이트의 세계관과 역사관이 한국사회의 주류에 해당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다한 대한민국 시민들은 우승열패의 원리와 물질적 풍요를 종교로 삼고 살아간다. 반공이라는 악성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도 제법 된다. 공동체의 장기지속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인 정의, 공정, 박애, 연대, 평화 같은 가치들은 교과서 안에서 화석이 된 지 오래다. 공동체의 통합과 지속을 위해서 필요한 덕목들은 개인 삶의 고양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발전의 최대 질곡으로 작용 중인 윤석열 정부를 조속히 퇴치하는 것과 함께 뉴라이트도 발본색원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뉴라이트 사상의 양대 기둥이라 할 우승열패의 원리와 물질지상주의가 시민들의 정신세계를 파괴하는 암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