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말씀은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 즉, 기독교 신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사람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기독교는, 인류를 구원한다든가, 선한 일을 한다든가, 사랑을 우선시 하는 종교라든가 여러 가지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길”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처나 마호멧 등을 따라간다는 것도 좋은 일, 선한 일, 자비로운 일 등을 한다는 것에서 여러 가지로 좋은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예수가 빠진다면, 우리는 교양을 쌓든가, 좋은 책을 읽는다든가, 전공으로 공부를 한다든가 등의 의미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좋은 일, 선한 일, 자비로운 일, 사랑하는 일 등을 해야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라가며,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복음말씀에서도 예수님이 하늘에 오를 때가 되어 길을 나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공표하셨듯이, 예수님의 공생애 목표에서 가장 중요한 십자가를 향해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길이 아니라, 고통을 당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메시아를 원하지 고통 속 십자가의 예수님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길을 따라가려고 모였지만, 십자가의 고통의 길은 믿고 싶지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 일행이 사마리아를 거쳐 가게 되었는데, 선발대가 마을에 들어가서 머물 준비를 하는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한다는 이유로, 예수님이 누구인지 하느님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은 거부 합니다.
예수님의 가장 측근인 요한과 야고보는 마을을 불살라버릴까요? 라고 여쭈어 봅니다. 이는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번제의 예를 드렸다는 것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을을 돌아서 가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훌륭한 점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위로와 지혜를 느낍니다. 사소한 것으로 목표를 흐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의 길은 외로운 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를 따라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룰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머리 둘 곳조차 없는 힘들고 외로운 길입니다.
오늘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에서, 엘리야는 이제 하늘로 올라가야 해서 제자에게 물려주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하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따라가는 갈등 관계를 보여줍니다. 스승과 제자관계는 항상 이런 것입니다.
먼저 가는 사람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기에 따라오는 사람은 그 길을 같이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돌아서 가버리지 않고 끝까지 따라갑니다. 엘리사도 언젠가는 그렇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가 죽어야 보이는 것이기에, 예수님이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저도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무척 애를 쓰지만, “너는 않되!” 라고 밀어내시는 모습을 수차례 경험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늘 실망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따라가야 예수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을 향한 수렴권입니다. 사라지지만 다시 보이고, 또 사라지고 다시 보이는 것, 그것이 스승의 길이고 인생의 길, 생명의 길, 모든 사람이 다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이번 수련회에서 우리의 생애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노기보 신부님을 모시고 강연을 들어볼 예정입니다.
하지만 설계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죽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한 내 인생을 어떻게 누구를 본받아 살아가야, 죽은 다음의 문제에 대해 확신이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이 내가 살아가야 하는 바로 그 길, 스승 예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분명히 십자가의 길이며, 그 길을 통과해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죽는 것이 정해진 것이라면 우리는 끝까지 예수를 따라가 죽을 것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서 영겁을 받듯이...
그래야 하늘의 문이 열리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 부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라가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정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 사이에 있습니다. 내 삶은 방탕, 우상숭배, 시기, 질투, 이기심, 분열, 당파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육정의 열매와 하루하루 싸워나가는 것입니다.
육신적 삶이 끊임없이 침범해 들어오는데, 그것을 버릴 수는 없고 같이 살아가야 하는데, 예수를 따라가면 성령의 열매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주변 육정의 열매로 가득한 곳에서 살고 있지만, 예수의 제자가 됨으로써,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특권을 꼭 살리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이로사 교우 얼굴이 보이네요.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