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탐방 145-성경만두요리 전문점
12월13일 이상원친구랑 종로3가 성경만두요리전문점에 갔습니다. 줄서있어 기다려있다가 들어갔습니다
여기는 샤브샤브 만두전골을 추천합니다.
늘 붐비는 이곳은 맛집입니다.
만두(饅頭)는 밀가루 등을 반죽하여 얇게 민 만두피에 채소와 고기 등의 소를 넣어 빛은 한국요리 입니다.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할 수 있으며, 한반도 내 지역마다 여러 가지 종류의 만두가 있습니다. 과거 궁중 요리에 속했으나, 이제 슈퍼마켓이나 음식점, 분식집, 포장마차에서, 또는 길거리 음식으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 등 다른 여러 문화권에도 만두와 비슷한 만두류 요리가 존재합니다
한국어 "만두"는 바시키르어 키르기스어∙타타르어 "만트(MaHTbI)" 아르메니아어 "만티(uuuph)", 아제
르바이잔어∙튀르키예어 "만트(manti)", 우즈베크어 "만트(manti)", 위구르어 "만타(Lilo)", 카자흐어 "만티(M3HTi)", 타지크어 "만투(MaHTy)", 파슈토어 "만투(g%io)" 등 비단길을 따라 중앙아시아에 이르
는 지역의 여러 비슷한 음식과 같은 어원이 있습니다. 중국어 만두(饅頭) 만토우 어원이 같으며, 과거에는 한국어 만두와 마찬가지로 소를 넣어 빛은 음식을 뜻했으나, 지금의 만터우는 중국의 자오쯔나 딤섬, 샤오롱바오 등의 얇은 피가 아닌 소를 채우지 않고 찌거나 구운 찐빵과 비슷한 음식을음식합니다.
한국에서 만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된 시기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 부터이다. 만두란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주로 상화라고 불리었는데, 청나라에 의해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오랑캐의 머리라는 만두(蠻頭 )와 음이 같은 만두(饅頭 )라 부르며 원수들의 머리를 씹어 먹듯이 즐긴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굳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역사적으로 밀을 가장 먼저 재배했던 지역은 기원전 90세기 경 아나톨리아 반도이며, 기원전 30세기 경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 대량 재배 한 것으로것로 추정됩니다. 메소포타미아인
들은 밀가루를 물과 반죽한 뒤 뜨거운 돌 위에 넓게 펴서 '닌다'라는 이름의 빵을 만들어 먹었다이후 메소포타미아의 요리책에서 '푀겔헨'이라는 요리가 발견 되는데, 이는 닌다 위에 다진 고기를 없고, 다시 닌다를 었은 후 익혀 먹는 음식이다. 현재 만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조리법입니다.
기원전 550년에 메소포타미아 문명 자리에 번성했던 페르시아 제국은 사각형으로 만든 무발효 밀반죽 위에 다진 고기와 양념을 속을 채워 먹는 요리인 '요시파라'라는 요리를 먹었습니다. 이 요시파라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퍼져 시시바라, 추츠바라, 두시바라, 최츠라 등 다양한 만두 조리법의 어원이 됩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한나라와 교역하고 있었고, 실크로드를 따라 만두가 중국으로 전래 됩니다. 그 과정에서 물이 부족한 중앙아시아, 중동 지역에서는 화덕에 굽거나 튀기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이 음식을 '이민족의 밀가루 음식'이란 뜻의 후빙(胡餠)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후빙은 시간이 지나며 중원의 음식으로 정착, 중국 문화와 융합을 이루어 현재의 지엔빙(煎餠 , 전병), 웨빙(月餠:월병)이 되어습니다. 후빙은 중앙아시아의 굽는 방식에서 벗어서 물이 풍부한 중국 문화권의 삶고 찌는 조리법과 결결합하게됩니다. 찌는 방식은 만터우(饅頭)며, 삶는 방식은 탕빙(湯餠 )이라 하였으나, 탕빙은 수제비, 만듯국 등 다양하게 추정될 뿐 정확한 조리법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三國誌演義)보면 다음과 같은 고사(故事)가 실려있습니다.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승상 제갈공명(諸葛公明)이 남만(南蠻:지금의 미얀마 부근)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수(濾水)의 풍랑이 심하여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부하 하나가 남만의 풍속에 따라 사람 목을 베어 머리를 수신(水神)에게 바칠 것을 권했습니다. 공명은 적지일지라도더 이상 사람의 목숨을 해칠 수는 없다며 밀가루 반죽에 양과 돼지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처럼 빚어서 바쳤다고 합니다.
이 고사로 인해 만두가 남만인의 머리를 뜻하는 '만두(饅頭 )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퍼져있으나, 일부 전문가들은 고사 자체가 정사(正史)에는 나오지 않는 허구(虛構)라서 역사적 근거로 삼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전인 후한(後漢) 시대에 최식(崔寔)이 지은 <사민월령(四民月令)>에 이미 만두라 할 만한 음식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만두와 유사한 요리는 전세계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각 나라별로 다양한 요리법을 가지고 있습ㄴㅣ다. 밀가루 음식이 옛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출발하면서 만두 유사한 요리가 등장하였고, 이것이 동쪽의 아시아를 거쳐서 다시 유럽으로 퍼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한반도에는 14세기에 원나라를 통해 소개되었다고 여겨지거나,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중동에서 비단길을 통해 들어왔다고 보기도합니다.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그의 논문 '만두 문화의 역사적 고찰'을 통해 "국수의 기원이 실크로드를 통한 밀가루의 전래에 있듯 만두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왔다는 설에 주목할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만두와 유사한 요리가 발견되고 있으며, 만띄, 만트, 만터우, 만두 등 명칭과 형태가 닮아 있다는 점도 있다. 단, 일반적으로 중앙아시아의 만두 요리는 한국을 정복한 몽골 제국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의외로 과거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만두와 유사한 요리는 세계적으로 찾기 어려웠고 거의 대부분 나라의 기록에도상당히 늦게 등장 합니다.
한국에서 언제부터 만두를 먹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의견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후반 이후부터로 보고 있다. 고려사 충혜왕조에 내주(內廚)에 들어가서 만두를 훔쳐먹는 자를 처벌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훈몽자회', '동국세시기' 등에서는 만두를 상화라고 하여 상화는 그 모양과 성질이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관계로 한국 사신이 오면 그들을 접대하는 데 썼다"고 했습니다. 고려 가요인 <쌍화점> 에 나오는 상화도 이것을 가리키는데 가루에 술을 넣어 부풀린 반죽을 찐 것을 말합니다
가장 오래된 한글 음식 서적인 "음식디미방"(1670년경)에서는 메밀가루로 풀을 쑤어서 반죽하고 삶은 무와 다진 꿩고기를 볶아서 소를 넣고 빛어 새옹에 삶아 내었다고 한다. 1800년대의 "주찬(酒饌)" 에는 소 내장인 양과 처엽 그리고 숭어 살을 얇게 저며 소를 넣은 만두가 나옵니다. 한국 에서 만두란 말이 처음 기록된 것은 "영접도감(迎接都監)의궤"(1643년)에 나오는데, 명나라에서 온 사신을 대접하기 위하여 특별히 만들었다고 하며, 그 후에는 궁중의 잔치에도 종종 차렸다고 합니다. 조선의 조리서인 '규합총서'를 보면, 만두피는 술을 넣고 발효하여 부풀린 반죽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의 만두는 전통적으로 북부 지방에서 발전되어 왔습니다. 남부 지방에서는 만두가 보편적이지 못하였는데, 북부 지방에서는 추운 날씨에 메밀과 밀의 재배가 보편적이었던 반면, 남부 지방에서는 온난한 지역이라 쌀 위주의 농사가 이루어졌으며 쌀을 이용한 음식 위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냉장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던 옛날에서는 상대적으로 온난한 지역에서 봄과 여름에 속재료인 두부나 돼지고기가 쉽게 변질되었던 문제도 있었습니다
북부 지방(개성 이북 지역)에서는 만두가 명절 음식으로도 취급되어 설날에 만두를 빛는 풍습이 있으며, 만두를 이용한 만듯국을 만들어 먹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습ㄴㅣ다. 개성 이남 지역에서는 만두를 빚는 것과 만듯국을 만드는 것에 익숙치 않아 대신 가래떡을 이용한 떡국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북부 지방의 만두를 빚고 만듯국을 만드는 풍습이 점점 남쪽으로 퍼지면서 남북 분단 이후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설날에 만두를 빛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원도에서는 일찍이 풍습이 내려와서 설날에 만듯국을 주로 먹었습니다.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는 떡과 만두를 같이 넣는 떡만듯국을 주로 먹습니다. 반면 남부 지방, 특히 경상도 지방은 여전히 설날에 만두를 빛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안에 넣은 소에 따라 야채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등으로 부르며, 조리법에 따라 군만두, 찐만두, 물만두 등으로 부릅니다. 만두피를 생선으로 만든 어만두와 다진 꿩고기로 빛은 꿩만두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주로 만두를 장국이나 떡국에 넣어 먹고, 여름에는 찐만두인 편수(네모진 만두)나 규아상(해삼 모양으로 빛은 만두)을 많이 먹습니다.개성에서는 경기도 내에서 만두를 빛는 풍습이 가장 보편화된 곳으로 겨울이 되면 만두를 빚어 곳가에 걸어놓은 채반에 저장해 두고 먹었다고 합니다. 개성식 만두는 경기도식 만두의 일종으로 보며 다른 경기도식 만두에 비해 크기가 좀 더 큰 형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개성식 만두를
빚을 때는 보통 얇게 펴서 둥글게 한 만두피에 소를 넣고 맞붙입니다. 개성식 만두로는 피라미드 형태로 빛어서 호박과 숙주를 넣어 만든 편수라는 만두가 있으며, 애호박을 적절히 잘라 그 단면을 십자로 갈라서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채우고 찐 다음 진간장으로 간을 해서 숟가락으로 먹는 호박선이라는 만두도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개성과 달리 만두를 빛는 풍습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지만, 서울식 만두가 양반들이 즐기는 음식이라 다양한 재료와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서울식 만두는 대부분 반죽을 경단만큼 떼어서 둥글게 한 뒤 구멍을 크게 하서 그 안에 소를 넣고 맞붙이되 완전히 붙이지 않고 구멍을 조금 만듭니다. 이는 구멍 안으로 국물이 들어가서 만두 맛을 높이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 궁중요리로 만든 해삼 모양으로 빛은 규아상(또는 미만두)이 있습니다
평안도식 만두는 두부와 돼지고기와 함께 삶은 숙주나물을 넣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피 크기가 12 cm가량으로 속을 충분히 채워서 매우 크게 만듭니다.
한국의 만두에서는 밀가루나 메밀가루, 전분 피가 아닌 다른 재료를 만두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생선살을 이용한 어만두가 있으며, 배추잎을 이용한 숭채만두, 그리고 얇게 저민 전복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생선살과 전복을 이용한 만두는 궁중 요리에도 사용되며 《이순록(二旬錄》에는 "인조가 전복만두를 좋아하였는데 생신날에 왕자가 비(妃)와 함께 동궁에서 직접 만두를 만들어 가지고 새벽에 문안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