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여행2 - 예전에 라구사 라고 불리었던 두브로브니크의 거리를 걷다!
5월 26일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반 만에 두브로브니크
에 도착해서는 내일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를 다녀 오는 1일 투어 를
예약하고는... 다시 모레 오후에 보스니아의 모스타르 가는 버스표를 끊습니다.
그러고는 시내 버스 를 타고 10여분을 달려 성벽 으로 둘러쌓인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인 구시가지 Stari Grad 에 도착합니다.
성벽의 서문인 필레문 Pile Gate 을 들어서 큰 도로를 걸어 왼쪽 언덕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서는 우리가 예약한 숙소 소베 Sobe 를 찾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골목길을 걸어 내려와 200 미터 대리석 중앙대로 인 플라차 스트라둔
Placa - Stradun 거리로 나와서는 서쪽 성문인 필레문 Pile Gate 을 바라봅니다.
필레문 앞에는 1448년에 20km 떨어진 산에서 수로 설치에 성공한후
오노프리오가 제작한 16면 분수대 인 오노프리오
분수 Velika Onofrijeve Fontana 앞에는 여행자들이 바글거립니다!
그 때 악기 소리 와 왁자지껄한 함성 이 어우러지며 필레문 을
들어오는 50명은 넘어 보이는 행열이 보이는데......
드레스를 입은 신부 가 보이니 이른바 "신혼 행열" 인가 보네요?
신랑신부 뒤로는 기타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들 에 이어 50여명이 넘는
양가 친척이며 신랑 신부의 친구 등이 줄지어 따르는걸
보니 문득 러시아 전국일주 여행시 보았던 신혼 행열 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을 뿌리며 뒤따르는 이들..... 그러니까 슬라브족 은 크게 셋으로 나뉘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및 백러시아(벨로루시) 가 동 슬라브 요!
러시아 서쪽에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는 서 슬라브 이며....
세르비아와 여기 크로아티아는 남(유고) 슬라브족
으로 특히나 처녀들 그중에서도 어린이들은 인형 처럼 예쁩니다!
두브로브니크의 인상적 명물 성벽 걷기 와 박물관과 레스토랑 할인권 이 든
책자를 준다는 Information Center 는 시간이 늦어 문을 닫았기로....
아쉽지만 내일 보기로 하고 보행자 전용 중앙대로로 200미터 남짓한 대리석
깔린 플라차 스트라둔 Placa - Stradun 거리를 천천히 걷습니다.
반대편에 이르니 작은 분수 뒤로 고색창연한 건물들 이 보이는데......
스폰자 궁전 과 오를란도르 게양대 및 성 브라이세 성당 인가 보네요?
이 도시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은 크로아티아 최남단 에
보스니아 - 헤르쩨고비나 영토에 둘러쌓인 마치 섬 같이 고립된 곳 입니다.
7세기에 에피다우룸 (현 크로아티아 차브 타트) 의 로마인 들이
북방 이민족인 훈족과 게르만 고트족의 침입을 피해
이주하여서는 오래토록 “라구사(Ragusa)” 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주해온 슬라브인들이 언덕에 마을 을 건설하니 로마 이주민들 은
12세기에 습지를 메워서는 두 마을이 합쳐 져서
새 도시 가 탄생했지만...... 아직도 이탈리아인들은 라구사 라고 부릅니다.
새 도시 이름은 라구사 라고 불리다가 근대에 이르러
“참나무를 의미하는 두브로바” 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두브로브니크 로 바뀌었으니
어찌나 예쁜지...... 이른바 “아드리아해의 진주” 입니다!
16 ~17세기까지도 제노바, 피사, 아말피, 베네치아 와 더불어 유럽의
5대 동방 무역항 으로 동쪽 이슬람과 교역 했으며........
필레게이트 Pile Gate 로 들어가는 구시가지는 지붕이 붉은색 일색입니다.
1991년 처참했던 유고내전 시에는 프랑스 학술원 원장이던 장 도르메송 이
"유럽 선진국들이 유럽문명 과 예술의 상징적 도시 인
두브로브니크 에 대한 포격 하나 막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라고 외치며....
프랑스 지식인 13명 을 이끌고 포격을 막기 위해 두브로브니크로 달려와
여기 앞바다에 범선 을 띄우고 선상에서 세계여론을 환기 시켰다네요?
당시 세르비아가 주축인 유고슬라비아 함대 가 두브로브니크 시가지 에
함포 사격 을 하고 산너머에서 포탄 이 날아오니
여기 두브로브니크 중앙대로에도 50발 이상의 포탄 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도시에 대한 포위가 7개월간 이어지며 시가지의 70% 가 파괴 된후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가 전화 에 휩싸이자....
그제서야 부담을 느낀 유고(세르비아)군은 도시 포위를 풀었다고 합니다.
시인 바이런 은 두브로브니크를 “아드리아해의 진주” 라고 표현했다고 하고
버나드 쇼 는 1929년 “당신이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라는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컴퓨터 게임인 “대항해 시대” 에 베네치아와 겨루는 “라구사” 가
바로 이 도시 두브로브니크 인 데.... 1418년 유럽 최초로
노예제도 폐지, 1667년의 대지진과 1991년 내전도 모두 복구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슬람 여행자들을 뚫고 대성당과 렉터궁전 사이 길로 빠져
구항구 쪽으로 나가니 해변 레스토랑에는 백인 여행자들이 저녁을 즐기고 있네요?
구항구에서 육중한 성벽과 부두며 범선 을 둘러보노라니 마침 악기 소리 가 들리는데....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4인조 중창단 이라 황혼녁에 음악을 듣는 기분이 묘하네요?
그러고는 걸어서 골목길로 들어가 여행기에서 읽었던 성안에 넥타이 가게 를 찾는데
말이 서투른 탓인지 아님 골목을 잘못 찾은 탓인지 결국 발견하지는 못합니다.
넥타이 를 뜻하는 말인 크라바트(넥타이) 는 크로아티아에 유래 했다고 하는데.... 과거 외침이
잦았던 크로아티아에서 아군임을 표시하는 방법 으로 넥타이를 매었다나요?
골목을 나와 항구에 자리한 어느 레스토랑에서 맥주 를 마시면서 간단한 안주 를 시킵니다.
여긴 서유럽과는 달리 감자튀김 프랜치 프라이 는 없어서...... 메뉴판을 보고는
Fish Bate 라는 것을 시켰는 데.... 나중에 나온걸 보니 이건 참치살을
갈아서 으깨어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내 왔는데....... 내 입맛에는 영 맞지가 않네요?
세익스피어 는 희곡 “12夜” 에서 두브로브니크가 속한 달마티아 연안 “일리리아” 를 언급
했으니 라이브 재즈 카페 에서는 여름날 밤이면 즉흥적으로 재즈 가 연주 된다고 합니다.
또 두브로브니크 여름 페스티벌 은 7월 10일부터 8월 25일 까지
구시가지 33개의 무대 에서 전세계에서 초청된 음악가의
100여개의 공연과 아카펠라 합창단 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나요?
구항구를 바라보며 맥주 한잔을 들다 보니 두브로브니크에 황혼 이 밀려 오는데.....
김랑이 쓴 "크로아티아 블루" 에 노을 포드스트라나 Podstrana 라는 시가 있으니!
길 위에서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등 뒤에선 여물지 않은 달이 오릅니다.
여물지 않은 내 마음 같이. 하늘 위에서 어쩌다 마주친 당신.
흔한 말이지만 인연이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까요.
설익은 마음이야 사랑이라고 말못해. 그렇게 놓쳐버린 마음이 얼마나 될까요.
어긋난 인연을 얼마나 다시 기다려야 하는지 압니다. 이제 내가 알아 봤으니 된 것이지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이미 사랑이겠지요. 붉게 타들어가는 노을이 온몸에 퍼집니다.
당신은 어느 하늘을 날고 있나요. 그곳도 이렇게 따뜻하게 노을이 지고 있나요?
다시 중앙대로 플라카 거리 Placa ~ Stradun 를 천천히 걸어 숙소로 돌아오는데........
바닥에 깔린 엷은 색조의 대리석 돌 들은 밤이라 그런지 더욱 빛나는 모습을 봅니다.
소베 Sobe 라고 불리는 원룸형 민박집 같은 반지하층 숙소 로 돌아와서는 전기
남비로 밥을 해서는 몇가지 반찬을 만들어 저녁을 먹고는 잠자리에 듭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몬테네그로의 코토르와 부드바 1일 투어 를 다녀와야 하는지라!
첫댓글 두브로브니크의 예전 이름이 라구사엿군요.두브로브니크는 참나무을 의미하는 두브로바에서 왓네요.
영국시인 바이런도 두브로브니크를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칭송하고 버너스쇼도 진정한 낙원을
볼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고 햇군요.
슬라브민족은 러시아, 우크라이나,벨로루시의 동슬라브와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서슬라브,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남슬라브로 나누어지는군요.
신혼행열이 인상적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 두브로브니크는
중세에 유럽에서 5대 동방무역항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