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계보
창세기 38장
2026년10월4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창세기 38장의 주제는 유다와 다말 이야기를 통한 유다의 타락과 회복, 그리고 메시아 계보의 보존입니다.
유다는 형제들을 떠나 가나안 사람과 결혼하고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맏아들 엘과 둘째 오난이 죽자, 유다는 막내 셀라마저 잃을까 두려워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 과부로 방치합니다.
다말은 시아버지로 변장해 유다와 관계를 맺고 임신하고, 나중에 유다가 맡긴 도장과 끈과 지팡이로 아이의 아버지가 유다임이 드러납니다.
유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26절)라고 인정하고, 다말은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유다는 요셉을 팔아넘긴 직후(37장) 형제를 떠나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고, 약속을 어기고 부끄러운 일을 겪지만, 자기 잘못을 시인하며 돌이킵니다.
이 변화는 훗날 베냐민을 위해 자신을 대신 내놓겠다는 모습(44장)으로 이어집니다.
다말의 방법은 비정상적이지만, 이 이야기는 그녀의 의로움을 인정합니다.
형사 취수 제도 안에서, 약속을 어긴 유다와 그 권리를 찾고자 벌인 다말의 행동을 인정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사건 속에서도 베레스를 통해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집니다(마태복음 1장 3절).
죽은 남편의 가문을 이어주는 의무를 다하는 며느리 행위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었습니다.
요셉 이야기 중간에 끼어 있는 이 장은, 요셉이 애굽에서 유혹을 이기는 39장과 대비됩니다.
창세기 38:1에서 유다가 형제들을 떠난 이유를 말하지않습니다.
다만 앞 장(37장)의 맥락상 요셉 사건 이후의 죄책감, 형제간 불화, 야곱의 슬픔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유다는 요셉을 죽이는 대신 팔자고 제안했습니다(37:26-27).
이후 야곱이 "스올로 내려가겠다"며 애통해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37:35).
유대 전승(미드라쉬 등)은 형제들이 아버지의 슬픔을 보고 유다를 탓하며 그의 지위를 낮췄다고 봅니다.
그런데 유다는 요셉을 죽이자는 일부 형제들에 맞서서, 그를 살리는 대안으로, 대상들에게 종으로 팔아 넘기자 제안한 것입니다.
"그 때에"(38:1)라는 표현은 요셉 사건과의 시간적 연결을 암시합니다.
"내려가서"(야라드)는 지리적 하강이면서 영적 하강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유다는 언약 공동체를 떠나 가나안 사람 히라와 어울리고, 가나안 여인 수아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둘 사이 태어난 두 아들 엘과 오난이 악하여 죽었습니다.
유다는 셀라가 자랐으나, 며느리 다말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셀라를 주지 않음).
결국 다말과 관계를 맺는 수치스러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38장 끝에서 유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38:26)라며 자기 죄를 인정합니다.
이 사건이 그의 변화의 전환점이 됩니다.
이후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나서며(44:33) 형제를 위해 책임지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이 사건에서 난 베레스는 다윗과 예수의 족보로 이어집니다(마 1:3).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이어짐을 보여줍니다.
유다가 형제들로부터 이탈 한 것, 자체는 도피이자 타락의 시작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실패를 통해 유다를 낮추고 변화시켜 지도자의 자리로 세우셨습니다.
실패가 회개와 성숙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8:7 엘이 왜 어떻게 악했으며, 그것이 죽임 당할 죄였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본문은 단지 “유다의 맏아들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다”고 말합니다.
가능한 해석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본문이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악, 히브리어 라아는 “악하다, 해롭다, 하나님께 불쾌하다”라는 표현입니다.
살인, 우상숭배, 성적 타락 등 특정 죄를 가리킨다고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엘은 반드시 이런 죄를 지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유대교의 라시 같은 전통적 주석은 엘도 오난처럼 타마르에게 자녀가 생기지 않도록 성관계를 왜곡하거나 피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 근거는 오난의 죽음을 설명하면서 “그도 죽이셨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고대 주석가들은 이를 엘과 오난이 같은 종류의 죄를 지었다는 뜻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의 해석이지, 창세기 38:7 자체가 명시한 내용은 아닙니다.
문맥상 엘의 죽음 뒤에 오난은 형의 이름을 잇고 타마르에게 후손을 주어야 할 의무를 받습니다.
오난은 그 의무를 이용하면서도 책임은 거부했습니다. 그의 죄는 단순히 피임 행위 하나라기보다, 형의 가문과 타마르를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기만과 이기심, 가족 의무를 거부한 것입니다.
오난에 대해서는 본문이 그 행동을 직접 설명합니다.
엘의 죄는 본문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오난과 비슷한 성적·가족적 책임 거부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창세기 본문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심판하실 만큼 심각한 죄였습니다.
다만 이것을 곧바로 “엘의 행위가 모세 율법상 사형죄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창세기 38장은 모세 율법이 주어지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신명기 25장에 규정된 형사법적 형태의 계대결혼에서는, 형제의 아내를 맞지 않는 사람에게 공개적인 수치와 사회적 제재가 주어지지, 그 자체로 사형이 선고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난의 경우도 “모든 피임 행위는 사형죄다”라는 식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의 핵심은 형의 이름을 잇는 의무를 고의로 이용하고 거부한 그의 태도에 있습니다.
엘의 경우에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의 죄목이나 재판 절차를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그의 생명을 거두셨다는 사실만 기록합니다.
이는 일반 신자나 공동체가 엘과 같은 사람을 임의로 죽여도 된다는 명령이 아니라, 고대 족장 시대의 특정 사건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심판을 서술한 것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작은 죄 하나 때문에 하나님이 변덕스럽게 사람을 죽이셨다”는 식으로 읽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이나 가문이 아니라 그 내면과 행위를 보십니다.
결혼과 가족 관계를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심각한 악입니다.
본문은 엘의 죄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그 죄의 종류보다 하나님 앞에서 악하다는 의미를 주목하게 합니다.
**“엘의 구체적인 죄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직접적인 죽음의 심판을 받을 만큼 심각한 악이었습니다.
미드라쉬·탈무드 전승은 에르가 다말의 아름다움이 상할까 봐, 혹은 자녀를 낳으면 아름다움을 잃을까 봐 일부러 임신을 피했다고 봅니다.
동생 오난의 행동(38:9)과 비슷한 방식입니다.
다만 이는 본문에 없는 후대의 추정입니다.
가나안 혼인 배경설은 유다가 가나안 여인 수아의 딸과 결혼해 낳은 아들이라, 가나안 문화와 우상숭배에 물든 악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엘이 무엇을 했는지는 성경이 말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고,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셨다"는 두 가지뿐입니다.
이 서술은 오난의 경우(38:10)와 같은 표현이어서, 두 형제 모두 하나님의 직접 심판 대상이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여 죽이셨다"는 정확한 표현은 엘과 오난(창 38:7, 10)에만 나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직접 치신 경우를 죄의 유형별로 정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치신 사례
예배·성물 규정 위반:
나답과 아비후가 명하지 않은 불을 드림(레 10:1-2),
웃사가 언약궤를 붙잡음(삼하 6:7),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 안을 들여다봄(삼상 6:19)
권위에 대한 반역:
고라 일당(민 16장)
우상숭배·음행: 바알브올 사건(민 25장)
불신과 원망:
정탐꾼 10명(민 14:36-37),
광야의 탐욕(민 11:33-34)
헌물(진멸물) 도둑질:
아간(수 7장)
제사장의 직무 남용: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삼상 2:12-17, 22-25; 4:11)
하나님께 거짓말:
아나니아와 삽비라(행 5:1-11)
영광을 가로챔:
헤롯 아그립바 1세(행 12:23)
영매·신접 의존과 불순종:
사울(대상 10:13-14)
형제 의무 회피(해석상):
오난(창 38:9-10)
율법이 사형을 규정한 죄 (사람이 집행)
몰렉에게 자녀를 바침, 신접·점술(레 20:2, 6, 27)
부모 저주(레 20:9),
간음(레 20:10),
근친상간·수간·동성 간 성행위(레 20:11-16)
하나님을 모독함(레 24:16),
안식일 위반(민 15:32-36),
살인(창 9:6)
유의할 점:
이 사례들이 모든 죄의 대가가 즉각적 죽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언약 공동체가 형성되던 초기에 거룩함을 세우려는 맥락이고, 다윗의 간음·살인처럼 회개로 목숨이 보존된 경우(삼하 12:13)도 있습니다.
다말(Tamar)이 예수의 조상이 된 의미는 마태복음 1장 족보에 기록된 신학적 메시지입니다.
창세기 38장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그리고 구원의 폭을 보여 줍니다.
유다의 맏아들 엘과 결혼했으나 엘이 죽고, 시동생 오난과도 형사취수제(계대결혼)로 맺어졌으나 오난 역시 죽습니다.
유다가 막내아들 셀라를 주지 않고 다말을 방치하자, 다말은 창녀로 위장해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고 쌍둥이(베레스와 세라)를 낳습니다.
유다는 나중에 “그 여자는 나보다 옳다(She is more righteous than I)”고 인정합니다.
베레스(Perez)의 후손이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집니다(마태복음 1:3).
마태복음 족보에는 보통 남성만 기록하는 관례를 깨고 네 명의 여인(다말, 라합, 룻, 밧세바)이 특별히 등장합니다.
이들 모두 정통 이스라엘 혈통이나 ‘깨끗한’ 도덕적 이력과 거리가 먼 인물들입니다.
다말이 포함된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에게까지 미친다
다말의 행동은 분명히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 메시아의 계보를 이어 가십니다.
“완벽한 혈통”이 아니라 깨어진 인간 역사 속에서도 구원 계획이 진행된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처음부터 “죄인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복음의 핵심인 은혜를 미리 보여 줍니다.
이방인과 소외된 자의 포함
다말은 가나안 여인으로 추정됩니다(이방인).
라합(가나안 기생), 룻(모압 여인), 밧세바(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 ‘순혈’ 족보에 이방 여인들이 들어갑니다.
이는 예수님이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구원자임을 암시합니다.
여성의 역할과 정의 추구
당시 사회에서 과부가 된 다말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유다가 형사취수 의무를 저버리자, 다말은 위험을 무릅쓰고 후손을 확보합니다.
유다가 “그 여자는 나보다 옳다”고 인정한 것처럼, 다말의 행위는 정의와 권리 회복의 측면이 강조됩니다.
마태는 여성을 의도적으로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계보만이 아니라 소외된 여성을 통해서도 역사를 이끌어 가심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의 성취
인간의 죄와 실패(유다의 무책임, 다말의 속임수)가 하나님의 약속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복잡한 사건을 통해 베레스가 태어나고, 그 혈통이 다윗과 예수에게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조차 자신의 구원 계획에 사용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깨끗한’ 혈통이 아니라 깨어진 인류 가운데 오셨습니다.
다말이 예수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들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복음의 본질을 선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