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왕국 이스라엘을 여전히 여로보암이 다스리고 있을 때, 남왕국 유다는 아비얌의 아들 아사가 왕위에 올랐습니다(9절). 아사 왕은 남왕국을 41년 동안 다스렸는데, 그 어머니의 이름을 아비살롬(압살롬)의 딸인 마아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10절). 이 부분은 얼핏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사 왕의 아버지인 아비얌의 어머니도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였는데, 아비얌의 아들인 아사의 어머니도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라고 소개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마아가가 아비얌이 죽은 이후에도 강력한 태후(太后) 노릇을 행세하였기에(13절)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사는 왕이 된 이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뉜 후에 처음으로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우상을 모두 없애고, 남색(동성애)하는 자들을 모두 내어쫓았고, 아세라 상을 만들어 섬기게 하면서 우상 숭배의 주도자 역할을 했던 태후 마아가를 태후의 위(位)에서 폐하고 아세랑 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습니다(12절, 13절). 그래서 열왕기상 기자(記者)는 아사에 대해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11절)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사가 종교개혁을 단행했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산당을 모두 없애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언급합니다(14절). 물론 아사가 모든 산당을 그대로 남겨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산당을 없애기도 했지만, 일부 산당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과거에도 산당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두었던 적도 있었기에 산당 자체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사 왕 이후에 이 산당들에서 다시 우상 숭배가 이뤄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산당을 다 없앴다고 해도 다시 산당을 만들어 우상을 섬겼을 것이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산당의 일부를 다 없애지 못한 것 빼고는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다고 기록합니다(14절).
아사는 그의 아버지 아비얌이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하나님의 성전에 바쳤습니다(15절). 성별한 것이란, 아마도 아비얌(역대하에서는 아비야라고 표기)이 북왕국 이스라엘과의 전쟁(대하 13:1~22)에서, 그리고 아사 왕이 구스와의 전쟁(대하 14:9~15)에서 가져온 전리품(戰利品)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르호보암 때에 성전의 금방패를 모두 애굽의 시삭에게 빼앗겼었는데, 성전에 필요한 구별된 도구들과 그릇들을 위해 바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제대로 갖추어지도록 노력한 것입니다.
아사 왕 시절에는 전쟁이 계속된 것은 아니었지만, 구스 사람들과의 전쟁이 있었고, 그리고 오늘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북왕국 이스라엘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된 바아사와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바아사가 남왕국 유다를 쳐서 라마를 건설하려고 하였습니다(17절). 라마는 예루살렘의 북쪽 약 6km 정도에 위치한 성읍으로 남왕국과 북왕국을 잇는 관문이면서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아사 왕은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동맹을 맺어 북왕국 이스라엘을 쳐서 라마에서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18절, 19절). 그 당시 아람은 아미 북왕국의 바아사와 약조를 맺고 있었지만, 그 약조를 깨고 남왕국을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람의 벤하닷이 이스라엘 성읍들을 쳤고, 이로 인해 북왕국의 바아사는 라마 건축을 중단하고 디르사로 가서 거주합니다(21절). 여로보암 땐 세겜이 북왕국의 수도로 삼았었는데, 이 당시 바아사는 디르사를 북왕국의 수도로 삼은 때였습니다. 그리고 아사 왕은 백성을 동원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였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여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했습니다(22절). 게바와 미스바는 베냐민 지파 영역에 있는 성읍들로 예루살렘의 북쪽에 있는데, 이 성읍들을 요새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사 왕은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행했지만, 북왕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있어서 이방 민족인 아람 족속과 동맹을 맺고 아람의 도움을 얻은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그 당시에 다급한 마음에 아람 족속을 의지하였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대했더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는 성전과 왕궁의 금은을 가지고 가서 아람 왕 벤하닷에게 주면서까지 아람 족속의 도움을 받은 것은 큰 오점(汚點)을 남긴 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되 끝까지 신실한 믿음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23절은 아사에 대해서 요약하면서 그가 누렸던 권세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에 대해 언급합니다. 아사는 큰 권세를 누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종교개혁을 단행하였고, 북방(北方)의 방비(防備)를 위해 성읍을 건축하는 일들이 아사의 사적(事績, 史蹟)으로 남아있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의 말년에 발에 병이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병이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통풍(痛風)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행하였지만, 몇 가지의 실수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아사의 뒤를 이어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되 아주 자그마한 부분, 미세한 부분까지도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써야 함을 보여줍니다. 우린 때로 큰 부분에 대해서는 담대하게 맞서서 신앙을 세워가면서, 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미세한 부분에서 시작된 것이 전체를 허물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가지고 모든 부분에 있어서 온전한 믿음을 지켜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미세한 부분까지 하나님 앞에 철저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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