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1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섬김이 인생이다! 》
시 100:1~5
〈 피터팬 아빠 〉
‘피터팬 아빠’라고, 들어보셨지요?
MBC 실화탐사대에서 작년 3월에 방영했습니다.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중증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능이 2.3세에서 멈춰버렸습니다. 말을 전혀 못합니다. 괴성을 낼 뿐입니다.
사람들과 눈도 못 맞추고 타인에 대한 공격성과 자해의 위험을 드러냅니다.
아이가 7살 되었을 때, 엄마는 떠납니다. 아빠 홀로 남아 그 아들을 키웁니다.
20년을 키우는데 아들을 받아주는 시설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암 진단을 받아요!
기가 막힙니다. 아빠가 암으로 사망하면 나이가 스물일곱이 된 아들은 어찌 됩니까?
이 사연이 방송을 탔습니다. 시청자들을 울리고 성금이 들어왔습니다.
8천만 원 이상이 모금되었는데, 모금을 원하지 않은 방송으로서 최초랍니다.
기적이 일어난 거지요!
그리고 아들을 받아주겠다는 ‘장애인 마을’이 나섰습니다. 거기에 아들은 들어갔습니다.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면 일체 아버지를 만나지 않아야 한답니다.
그래야 아들이 거기서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27년을 단 둘이 살았는데, 생이별을 한 겁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버킷리스트가 뭐냐는 질문에 아들과 하룻밤을 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그렇게 말했는데, 시설에서 특별히 허락하여 1박2일 합니다.
아들은 여전히 아빠를 몰라봅니다. ‘아빠’ 소리도 못하니까요.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께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피터팬 아빠, 이 아빠의 인생이 불행했습니까, 아니면 행복했습니까?
얼마 전 피터팬 아빠는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죽음 직전 방송 인터뷰가 나왔는데, 거기서 피터팬 아빠가 말합니다.
‘지난 날이 행복했다!’
아들과 함께 27년을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피터팬 아빠도 27년 동안 그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은 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 돌아보니, 아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 인생이란 뭘까요? 〉
역사를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온갖 똑똑한 척은 다 합니다.
그런데 행복이 무언지 모릅니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피터팬 아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으로 태어난 아들, 그 아들이 장애인이라고 내다버립니까?
아니지요, 아내는 떠났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들에게 올인했습니다.
그렇게 27년을 살았는데, 돌아보니 그 삶이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흘러간 과거라서 행복이었노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피터팬 아빠는 평생 아들을 ‘섬기며’ 살아온 세월이라서 행복했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사람은요, 누군가를 섬길 때 행복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 섬김이 인생이다! 》입니다.
요즘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카톡이 잔뜩 와 있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십시오, 저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행복합니다.” 이런 내용이지요.
언뜻 보기에 그럴 듯 합니다.
그러나 그런 카톡의 홍수 속에 ‘사람은 섬길 때 행복한 존재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동안 뼈 빠지게 수고하면서 살았으니, 이제는 자기를 위해서 사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말들에 속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요,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섬기며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힘이 있는 한, 섬기는 인생,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오늘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지?” 이래야 합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시편 100편, 참으로 부족한 제가 시편 100편까지 설교를 이어왔습니다.
시편 100편을 읽으면서 제가 ‘딱’ 꽂힌 단어는 ‘섬김’입니다. 2절에 있습니다.
시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하나님을 “섬겨라” 선포합니다. 섬기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합니다. 그리고 누구를 사랑하라고 하지요?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
나중에 예수님이 레 19:18을 인용합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하라”
성경은 우리에게 누구를 섬길 것이냐, 누구를 사랑할 것이냐? 딱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라!
사람은 섬길 때 행복한 존재로 지음 받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취업이 문제입니다. 간신히 직장을 잡았다 칩시다.
직장에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상관을 섬겨야 합니다. 사장을 섬겨야 합니다. 직장이 이윤을 내도록 섬겨야 합니다.
직장에서 자기의 노동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섬기는 것입니다.
직장을 잃었다. 실직했다. 이 말은요, 섬김의 대상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간혹 ‘이웃’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교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불우이웃 돕기를 하고,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것만이 이웃 사랑인 줄 압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 가족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섬김은 소홀히 합니다.
아니지요, 이거는 크게 잘못된 겁니다.
나를 낳아준 부모, 형제자매, 자녀들이 첫 번째 이웃인 줄 기억하셔야 합니다.
가정은 소홀히 하면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예배 시간에 늦었다고 설거지도 안 하고 교회 오는 사람,
아직 안 믿는 남편 밥상도 안 차려주고 교회 오는 사람,
대단히 잘못하는 것입니다.
가족이 첫 번째 이웃입니다.
‘첫 번째 이웃’을 잘 섬기고, ‘두 번째 이웃’ 섬김으로 가야지요!
피터팬 아빠, 제가 오늘 설교를 위해서 그분과 관련된 동영상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아무리 봐도 예수 믿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피터팬 아빠, 하나님 앞에서 50점은 땄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못했지만, 이웃 사랑은 만점입니다.
그가 장애인 아들을 위해 자기 삶,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섬겼잖아요!
방송을 타면서 아들이 아빠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놓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아들을 섬겼기에 “행복했습니다.”를 유언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 하나님 사랑이 이웃사랑입니다 〉
아까 말씀 드렸습니다.
교회 예배 시간에 늦었다고 남편 챙기지 않고 오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아직 안 믿는 남편, 자녀, 부모, 특별히 잘 섬겨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 사랑한다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교회에 왔습니다. 예배합니다. 성경 읽습니다.
하나님이 뭐라 하십니까? ~ “이웃을 섬겨라!”
“네가 이웃을 섬기는 것이 나를 섬기는 것이다.”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착각하고 혼동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제각각이 아닙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오늘 시편 100편 2절 말씀에서 “여호와를 섬겨라” 하여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나왔더니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가서 이웃을 사랑해라!”
이 섭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이고, 이웃 사랑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 섬김이 인생이다! 〉
첫째, 섬김이 행복이다!
행복은 누리는 데 있지 않고, 누군가를 섬기는 곳에 있습니다.
인간은 섬김받을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섬길 때 행복한 존재입니다.
실직이 두려운 것은 소득이 줄어서가 아니라, 내가 섬길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섬김의 첫 번째는 가정이다!
첫 번째 이웃인 가족을 건너뛴 이웃 사랑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섬김이 아닙니다.
가정에서의 섬김이 빠진 예배는 하나님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셋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두 개의 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은 바로 ‘가서 네 이웃을 섬기라’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섬기는 손길이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제단입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은 나를 위해 사는 삶에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기쁨으로 섬기는 삶 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