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5시.
모든 식구들은 조용히 자고 있는 시간에 혼자 깨어 주섬주섬 준비를 했다.
6시. 가방을 메고 나오며 살짝 엄마를 깨웠다.
여행을 위해 새로 사주신 옷을 입었기에 보여드리고, 잘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다.
비몽사몽으로 눈을 뜨신 우리 엄마.
언제나 엄마 눈엔 내가 예쁘다. (아...세상 모든 사람들도 좀 그렇게들 생각해 주면 안되나..ㅋㅋ)
"아~ 예쁘네~, 잘 다녀와라~ 푸~~~" 두마디 하시고는 다시 잠들어버리신 엄마.
웃어주고는 살금살금 집을 빠져 나왔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도착한 용산역.
시간이 다 되어 KTX를 타러 가는 중 참 아름다운 모습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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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연로해 보이시는 두분.
할머니가 무척 힘들어 하시는 듯 보였는데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발 맞추어 걷고 계셨다.
다정한 할아버지를 뵌적 없는, 할아버지들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들이 우리들 없을땐 무척 외로워 보이셔서 늘 걱정이곤 하는데, 저런 할아버지가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또 난 저런 할아버지가 될 사람을 만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시간 가까이 달려 익산에 이르자 친구Y가 올라탔다.
목포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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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정각이 보이는 저곳이 유달산 일까? 해보고는 우리끼리 그런가봐~ 하며 얼른 버스를 타러 갔다
완도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야하는데 노선도는 완전 어렵게 생겼다.
할 수 없이 간이 매점의 아줌마에게 묻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고등학생 한명이 더 자세히 가르쳐줬다.
친절한 아이....
무사히 목포 터미널에 도착.
완도 가는 버스 시간을 미리 보고 기차를 예약했더니 기다리지 않고 완도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아침도 점심도 거른채라 배가 조금 고프긴 했지만 완도까지 순간이동을 한터라 전혀 힘들지 않았다.
분명 목포 터미널이었는데 눈 뜨니 완도 터미널이더라는...하..하...
완도 터미널은 시골 터미널의 모습 그대로였다. 구례 터미널과 비슷한 모습.
터미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청산도였기 때문이다.
분명 완도군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본 배 시간은 2시 30분. 택시의 시계는 두시. 여유로운 마음으로 뒷좌석에서 조잘거리던 우리.
갑자기 기사님이 청산도 가시냐고 묻더니 속도를 내시며 두시배를 못탈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두시배가 금시초문인 난 아저씨께 의아한 표정을 지었더니 아저씨...군 홈페이지 행정이 그러하다며 속도를 내주며 행운을 빌어주셨다. 거기에 오늘 안개가 많아서 오전배는 거의 취소 됬었다는 설명도 더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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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내려 터미널로 달려갔는데 이제 막 배가 떠났으며 네시에 다시 배가 있지만 오늘 안개가 많이 끼어 그 배가 뜰지 않뜰지는 확실치 않다고 했다.
항상 긍정적인 우리는 해가 환하지 않아 날씨가 너무 좋다며 즐거워 했었는데....
일단 배가 고파 여객선터미널 앞 백반집으로 가 밥을 먹었다.
그래도 두시반.
터미널 앞의 해맞이 공원이라는 팻말을 읽었었는데 거길 가 보기로 했다.
초입부터 엄청난 경사로가 있었지만...줄거운 마음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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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로의 위엔 이런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는...하..하...좀 덥긴했지만 힘을 내어 올라갔다.
계단 가운데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는데 비가 오지 않은터라 이 물은 전기의 힘으로 끌어올려 내리는게 아닌가...싶은 것이 조금은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사람도 거의 없는 공원에 이런 에너지 낭비를 한다는 사실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힘들게 올랐지만 벤치가 있는 마당에서 내려본 완도의 도심은 자욱한 안개로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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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중 이상태라면 네시 배도 못 뜨겠단 생각이 들었다.
점점 더 내려 앉는 안개들...시간에 맞추어 작더라도 희망을 품고 내려간 완도 터미널은 물어 볼 것도 없이 결항이라는 글자가 우릴 반겼다.
제주도 가는 배는 떴는데...ㅠ.ㅜ...어딘가에 들렀다 내일 일찍 가는 배를 타고 가려고 한참을 의논했지만 우리의 결론은 결국 청산도를 포기하고 해남과 강진을 더 느긋하게 깊이 여행하는 것이었다.
짐을 서둘러 챙긴다음 완도 터미널을 나왔는데, 올때 택시는 5분도 안 걸렸기에 걷기로 했다.
천천히 걸어 도착한 완도 터미널. 해남으로 가는 버스는 많았지만 간발의 차이로 놓쳐 한시간 가까이 후에 버스가 있었다.
어떻게 하나...하다 걸어서 편의점을 찾았다.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완도에도 동남아의 신부가 많은지 걸어오면서도 몇분 만났는데 편의점에는 한 가족이 들어왔다. 작은 아가야와 함께.
친정에서 식구들이 왔는지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과 언니로 보이는 여인, 그리고 아기를 안은 여인 이렇게 모여 앉아 음료를 마시며 얘기를 한참 나누고 있었다.
아가야는 딸인지 예쁜 옷을 입고 있었는데...얼굴은 아빠를 닮았는지...하하..듬직해 보였다. ㅡㅡ;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해남터미널에 도착.
터미널 주변은 제법 번화했지만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보니 내가 좋아하는 빨래가 널려있는 친근한 집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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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터미널은 완도보다는 현대화된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린 최고로 친절한 할아버지 한분을 만났다.
시골이니 할머니들이나 아이들이 농어촌 버스를 많이 타는데 같은 장소로 여러곳의 버스가 시간마다 들어오다 보니 어려울까봐 큰 소리로 안내를 해주고 계셨다.
우릴 보고는 땅끝마을 가는 버스가 왔다고 큰 소리로 계속 얘기해 주시는 할아버지.
우린 대흥사 앞에 가서 잠을 자고 아침일찍 대흥사에 갔다 고산윤선도 유적지를 방문하기로 했던 우리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우리가 꼼짝않고 있으니 할아버지는 직접 다가와 물으셨다.
"어디서 왔는가? 대흥사? 대흥사는 아직 버스 안오니까 좀 기다려~ 가면 잘데는 있는가? 1박2일 촬영한 유선관이라는데가 있는데..."하시며 해남 관광지도에 유선관의 전화번호와 고산유적지가는 버스가 다니는 시간까지 메모해주셨다.
또 어디를 가냐고 물으시기에 둘째날은 땅끝마을에서 잔다니 내일오면 땅끝마을 안내를 해주신다고 내일 보자고 하셨다.
버스가 오니 우리부터 살뜰이 챙겨주시던 할아버지...너무 감사했다.
유선관은 한옥여관으로 샤워장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지만 전통가옥 그대로의 운치가 있는 곳이다.
마루에 같이 앉아 있을 꿈을 꾸며 전화를 해보았지만, 두사람인데 1박 4만원이라는 말씀.
언제나 쓰는 무기...저희가 학생이라 부담이 되는데 조금만 깎아주세요...했더니 바로 자르시는 유선관.
ㅠ.ㅜ
포기하고 대흥사 근처에 가서 직접 숙소를 구하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버스 기사님께 이 아가씨들 대흥사 앞에 잘 모시고 가란 부탁까지 해주셔서 대흥사 앞에 왔을때 기사님이 직접 "아가씨들~ 여기서 내리세요~"해 주셨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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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입구엔 계곡이 흐르고 있었고 조용한 저녁을 맞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위락시설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다리를 건너 좀 올라가야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안개가 낀 산속 마을. 행복했다.
숙소를 정하고 파전 하나로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내일부터 할 일정을 다시 조율해 보기도 하고 한참을 웃기도 하고, 저렴하고 다정한 숙소 주인에 대해 칭찬을 하기도 하고. 하하... 기대 가득한 밤이었다.
오늘 내가 밟은 터미널은 과연 몇개였을까.
내가 밟은 행정구역은 몇개였을까.
첫댓글 오랜만에 글 사진 잘봅니다 여행 매니아님 이시네요 정교한 글 과사진 소설 같은글 감사히 봅고 갑니다 행복 하세요
오랜만에 키노님의 재미난 여행기를 감상합니다.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글솜씨. 후속 기대합니다.
님 덕분에 8년간 살았던 익산(구 이리) 그리고 군생활의 추억을 간직한 목포 까지...잘 둘러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