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일요스페셜‘가발공장에서 하버드까지’의 주인공 서진규씨의 감동적인 자전에세이 지난 5월 9일 저녁, KBS 일요스페셜 「가발공장에서 하버드까지」에 소개되어 전 국민을 감동시켰던 서진규씨(현재 하버드 대학 박사 과정)가 자신의 꿈과 도전, 좌절과 성취를 담백한 필체로 적어내려간 자전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를 '북하우스'에서 펴냈다.
KBS 일요스페셜이 방영된 후,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가히 전 국민적이었다. KBS 인터넷 사이트에는 1백여 통의 이메일이 쇄도했다. 담당 PD에 따르면, '일요스페셜' 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평이 인터넷에 올랐다고 한다. 또한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요청하는 시청자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아, 다음주 토요일 낮 재방송을 내보냈는데 이 또한 '일요스페셜' 사상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는 제목이 강력하게 환기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막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청소년과 젊은이들, 구제금융시대 이후 실의에 빠져 있는 남성들에게, 그리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정과 사회에서 피해를 받고 있는 여성들에게 가슴 벅찬 '희망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우선, 이 책은 좀처럼 드러내기 힘든 가족사의 명암과 두 번의 결혼생활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는 '고해성사'이다. 온갖 차별과 억압, 그리고 부조리와 맞서 싸우는 저자의 내면 풍경이 담담한 문체에 실려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가정집에 식모살이하러 단신으로 도미하기 직전의 심경, 첫 결혼이 실패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참담한 심리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안간힘은 인간 심리의 근저까지 파고든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에 대한 혐오감이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이고 싶다는 복수심으로 나아가는 대목이나,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급격하게 나빠진 시력을 오직 자신의 힘으로 회복하는 이야기, 네 살 때 헤어진 아들과 재회할 때 눈앞에 있는 장성한 아들 대신, 16년 전 그 '네 살배기' 아들을 찾는 심경 등은 '인간'의 참모습을 여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둘째, 이 책은 꿈의 기록’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는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남성 우월주의의 그늘’에서 차별로 신음하던 한 여성이 ‘자아’에 눈떠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 ‘자아’는 여성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홀로서기를 완성하겠다는 꿈을 꾼다. 저자는 꿈꾸기를 '희망의 등불’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꿈을 꾼다는 것은‘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 꿈을 이룩하기 위해 모든 것과 싸운다. 상경을 말리는 부모님, 미국에 가지 말라고 말리는 주위 사람들, 손찌검을 일삼는 첫 남편, 양녀를 '폭행'한 두번째 남편, 역시 성차별이 존재하는 미국 육군 병영, 저능아인 막내동생의 실종, 부모님의 병환 등과 고통스런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싸워서 이긴다. 늘 죽을 각오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 쉰에 아들딸 같은 대학원생들과 함께 하버드에서 공부하면서, 진정한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강조한다.
셋째, 이 책은 콤플렉스 극복기이다.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남다른 자의식을 가졌던 소녀 서진규는, 자기 내부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엿장수의 딸, 술장사의 딸이라는 열등감을 학교 공부에 전념하면서 이겨냈다. 가발공장 여공, 골프장 식당 종업원, 여행사 경리에서 미 육군 일등병이 되기까지 서진규는 스스로의 꿈과 열정을 믿었다. 열등감은 강한 에너지이다. 다만 그 에너지를 어느 방향으로 몰아가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서진규씨는 이를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는, 삶의 형태와 질은 각자가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이다. 중령 진급이 보장된 상황,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생의 황혼기의 입구에서 서진규씨가 하버드 대학 박사 과정이라는 험난한 길을 선택한 것도 열등감을 에너지로 전환시킨 낙관주의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를 가로막은 벽, 그것이 나의 문이었다"
넷째, 이 책의 또다른 의미는 저자가 훌륭하게 키운 딸 이야기에 있다. 무조건 문제시하는 이혼녀의 딸, 2년마다 전 세계를 떠도는 여자 군인의 딸, 형편이 넉넉지 못해 공립학교에만 다녔던 딸. 그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해에 졸업하는 미 전역의 250만 고등학교 졸업생 가운데 141명(2만 대 1이 넘는 비율이다)만이 수상하는 영예로운 상을 서진규의 딸 조성아 양이 받은 것이다. 딸 성아 양은 어머니와 함께 하버드 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재학중인데 지난해 이화여대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
이 책은 꿈과 도전의 다큐멘터리이다.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 지핀 '희망의 등불'이 마침내 '희망의 증거'가 되기까지 서진규는 자신을 가로막는 벽들을 뚫고 나갔다. 그에게 벽은, 그의 꿈으로 나아가는 문이었다. 미 육군 소령과 하버드 대학 박사 과정. 그의 성취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그의 삶은 '꽉찬 삶'이었다. 군인으로서, 학자로서, 어머니로서 그는 온몸으로 '희망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체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메시지들은 어떤 위인이나 학자들이 남긴 잠언 못지않은 힘을 내장하고 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서진규씨의 감동적인 삶은, 미래를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모델이 될 것이다.
서진규씨는 "황무지에서 맺어진 열매가 달콤하다. 그러나 그 열매는 여럿이 나눌 때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페이엣빌 자택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써내려간 이 감동적인 자전 에세이를 바로 그들, 약한 자들에게 헌정하고 있다.
서진규씨는 1948년 경남 동래군(부산시로 편입)의 한 어촌에서 태어나 제천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 풍문여고를 졸업했다. 가발공장 여공, 골프장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하다가 1971년 미국 가정집에 식모살이하러 단신으로 도미했다. 결혼한 이듬해인 1976년 미 육군에 자원 입대해 미국, 한국, 독일, 일본 등지에서 근무했다. 1990년 하버드 대학 석사 과정에 입학하면서 학자의 길을 함께 걷다가 1996년 소령으로 예편했다. 현재 하버드 대 대학원(국제외교사-동아시아언어학과)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 줄거리 "내 앞을 가로막은 벽, 그것이 내가 열어야 할 문이었다”
나를 파악하고 나를 장악하는 것, 그것이 꿈을 성취하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서진규는 술집을 하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빨래와 청소 등을 도맡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아르바이트로 영어 잡지를 돌리고 가정교사를 하며 어렵게 여고를 졸업한 뒤에는, 다시 가발공장 여공, 골프장 식당 종업원 등을 전전하며 고단한 삶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러던 그 시절,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서 실연을 당한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며 절망하고 있을 때, 미국에 식모로 갈 수 있다는 광고를 접하게 된다.
2년 여의 수속 끝에 뉴욕에 도착한 그는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고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돈을 보낸다. 그러나 이대로 만족해하며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버루크 대학에 입학한다.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지 일 년 반 만에 이룬 첫 성취였다. '낮에는 대학생, 밤에는 웨이트리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꿈을 키우던 서진규는 합기도 7단인 건장한 한 한국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이듬해인 1975년 그와 결혼하여 딸 성아를 낳는다. 남자는 영어도 서툴고 아무 경제력도 없었다. 가계는 서진규가 웨이트리스로, 경리사원으로 일해서 꾸려야 했다. 대학 공부도 포기한다. 그러나 행복해야 할 가정에 폭력이 있었다.
매맞는 아내는 죽기보다 싫었다. 죽기보다 더한 모멸감에 몸을 떨면서도 남편과 헤어지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남편에게서 자신을 강제로라도 격리시키기 위해 서진규는 여덟 달 된 딸 성아를 제천 고향집에 맡기고 미군에 자원 입대한다. 둘째 아이가 유산된 지 보름도 채 안 된 상태였다. 지옥 같은 훈련이었다. 그러나 훈련소를 나올 때 그는 최우수 성적으로 일등병 계급장을 받는다.
칼보다 펜이 강하다. 모든 것이 보장된 군복을 벗고, 다시 무(無)에서 시작하다.
딸 성아와 아들 성욱이 때문에 남편과 헤어지는 일은 어려웠다. 매사에 목숨을 걸고 임하는 서진규였지만, 이혼은 그보다 힘들었다. 미 육군 상병으로 용산 미 8군에 발령을 받아 귀국한 이후에도 남편의 구타는 끊이지 않았다. 시어머니까지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자기가 남편에게 맞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죽지는 않더라도 몸을 크게 다쳐 일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에 떨었다.
서진규는 장교가 되기로 결심한다. 미군 사관 후보생 시험에 합격해 미국으로 훈련을 떠난 그는 퍼붓는 장대비를 맞으며 울면서 이혼을 결심한다. 그에게 맞아 죽거나 그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보다는 헤어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버지니아 주 포트 리에서 병참중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서진규는 톰 소위를 만나 청혼을 받는다. 유력한 변호사 집안의 톰은 준수한 청년이었다. 시집에서는 처음엔 반대했으나 서진규를 만나보고는 결혼을 허락한다. 부부 소위는 독일에 발령받아 소대장으로 근무한다. 그와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지만 짧았다. 불행한‘사건’때문에 서진규는 그와 헤어진다. 톰은 이혼을 강력히 반대했으나, 서진규는 그의 장래를 위해 끝내 이혼한다.
중위 진급을 거쳐 대위에 진급한 서진규는 군생활을 하면서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를 계속한다. 마침내 1990년 하버드 대학 석사 과정에 입학한다. 이후 소령으로 진급한 서진규는 주일 미 육군 사령부에 발령받아 정치군사고문 및 자위대 연락장교로 근무하던 중 두 갈래 고민에 빠진다. 예정된 중령 진급을 해야 할 것인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군복을 벗을 것인가. 중령에 진급하면 몇 년간은 하버드에 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고, 박사 과정은 예정된 기간 안에 마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서진규는 하버드를 선택했다. 확실한 미래가 아닌 불확실한 미래에, 보장된 삶이 아닌 도전의 삶에, 무엇보다도 자신의 희망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 서진규는 그 고민의 끝에서 성아에게 말한다. 고교 졸업 때 클린턴 미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 성아에게, 자신의 희망처럼 아름답게 성장해준 딸에게 말한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꿈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꿈꾸는 사람을 가혹하게 다룬다”
"오직 한 사람이어도 좋다. 그에게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서진규의 희망의 여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내 자서전의 마지막 장을 쓰고 있다"는 그는 말한다. "역사는 강한 자들만을 위해 흘러서는 안 된다. 약한 자를 위해서도 흘러야 한다. 그 역사의 길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놓는 것이 내 마지막 희망이다. 나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회와 희망 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내가 겪었던 것처럼,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나는 도와주고 싶습니다." --서진규, 하버드 코리아 인스티튜트 뉴스레터 인터뷰 중에서
"서진규는 편모로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을 것이다. 자신의 직업은 물론 성아를 잘 키우기 위해서도 아주 많은 노력을 해왔다. 서진규와 자스민(성아) 모녀를 보면 그들이 강인함과 결단력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하버드 대학 사회학부 에즈라 보겔 교수, KBS 일요스페셜에서.
"상당히 놀랍고 훌륭했던 것은 서진규가 몇십 년 동안 군대에서 일했고 학교에서 벗어나 있었으면서도 학문적인 언어나 사고 가치들을 잊지 않고 학교 환경에 쉽게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 역사학부 아키라 이리에 교수, KBS 일요스페셜에서.
어떤 말이...... 어떤 교육이...... 이보다 더 가슴에 와닿을 수 있을까요. 지나간 세월과 현재의 제 생활을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명쾌하게 답을 얻었습니다. ―김장길(30대 후반 직장인)
저는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로, 이번 서진규 모녀의 이야기를 학급 학생들에게 보이고 싶습니다. ―이영진(고등학교 교사)
11개월 된 여자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저는 저의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어떻게 키우면 잘 자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는 엄마입니다. 서진규씨의 멋진 말씀과 그분의 인생, 그분의 공부하는 모습이 딸의 모범이 되듯, 저 또한 항상 공부하는 엄마로 내 딸의 기억에 남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군요. ―이미혜(주부)
제 일생일대의 변화를 가져올 만한 것을 보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전 해낼 수 있습니다. ―박성준(고등학교 3학년)
"엄마가 국방언어학교에 다니신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면 눈물겨울 정도로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 심지어는 샤워할 때나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쉬지 않고 일어테이프를 들으시더라구요. '나이가 들어 집중이 잘 안 된다'며 굳어버린 머리를 탓하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은 제게도 자극을 주었죠." ―조성아(서진규의 딸, 하버드 대학생)
나는 무슨 일에 도전하기에 앞서 항상 세 가지 리스트를 작성한다. 첫째,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둘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세 가지 문제에 답할 수 있다면, 현재의 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에 도전하려는 나를 알고 있다면, 그 희망은 이미 절반은 이룬 셈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