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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로새서 1장 3절.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14-중보기도하는 삶
여러분들은 누군가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보셨습니까? 지금은 누구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십니까? 여러분들이 누군가를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겠지만 가족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근거로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 교제를 갖는 삶을 원하십니다. 사실 하나님보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 찾아야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한없이 부족한 것들이 계속해서 생기지만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전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부족한 부분을 채움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믿음으로 인간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기도할 때 그들 가운데 임하셔서 응답하기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십니다.
그런 부족함으로 채우는 많은 기도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중보기도인데 중보기도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 안에서 중보기도하는 삶의 문을 여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도 기도하셨지만 지금도 역시 하나님 우편보좌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중보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천주교는 지금도 예수님의 아머니인 마리아가 중보자라고 사람들을 속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우신 영원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십니다. 그 나머지가 있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위해 중보하신 다는 것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의 자리에 앉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사랑의 주님은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중보하십니다. 물론 그 중보는 여러분들이 구하는 내용과 같은 것도 있겠지만 다른 것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면서 구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26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인간은 지식적으로도 한계가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바른 기도를 했다고 생각하는데도 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또 지금은 필요해 보여도 앞으로는 전혀 필요치 않은 것도 구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이 구한 것이 지금은 득으로 보여도 나중에는 독이 될 만한 것도 구합니다. 구한 것이 응답될 때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많고 한계도 많습니다. 지식적인 면에서도 한계가 있고 능력면에서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구하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만 해주신다면 제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구할 때의 마음과 받은 후의 마음이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자주 바뀝니까? 많은 것이 부족해서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잦던 사람이 아쉬움이 없어지자 교회에 발을 끊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아니면 교회는 계속 다니지만 기도는 더 이상 하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하지만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의 중보기도는 자기 이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또한 중보기도 대상자가 하나님 앞에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들은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안에 있는 사랑으로 인해 계속 기도합니다.
여러분! 기도만큼 하나님과 가깝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중보기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하나님과 친한 사이입니다. 요즘 말로하면 절친이 됩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친구처럼 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친구처럼 대해주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향해 나의 벗이라고 하셨고 예수님도 역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의 친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님도 친구처럼 친밀하게 대하시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중보기도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조카인 롯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조카가 살고 있었던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 소돔과 고모라는 한 마디로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의 도시를 위해 기도하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모세 역시 중보기도자였습니다. 모세는 자기를 대적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시자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용서해주셨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다 용서해주지는 않으셨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보면 어떤 죄에 대해서는 모세조차도 중보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모세가 중보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중보하심도 이와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제사장이나 사두개인들을 위해 중보하셨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중보하셨음을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바로 앞두고 제자인 베드로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1-32절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의 이 기도는 베드로가 사탄이 주는 시험에 대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중보기도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사탄의 시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게 되고 시험에 넘어지거나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중보가 아니면 스스로의 지혜와 힘으로 사탄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도록 중보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중보가 여러분들의 능력의 근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중보로 인해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때로 여러분들은 베드로처럼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다른 사람은 예수님을 버릴지언정 자신은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에 있어서 진심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는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예수님을 홀로 남겨두고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심문을 당하고 계시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가 여자 계집종의 지나가는 듯한 말에 주위의 사람들을 신경쓰면서 자신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여러분 역시 상황이 바뀌면 자신에 대하여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하심은 예수님을 부인할 것까지도 미리 다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야 네가 사탄의 시험에 빠져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하겠지만 하나님께 내가 간구하였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돌이킨 후에는 연약한 믿음을 가진 형제들을 굳게 하라”
이 험난한 세상! 여러분들이 더 이상 예수님께 붙어있지 못하게 하려고 가족들은 물론 세상의 권세자들과 온갖 유혹에 빠지도록 가장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다 이용하는 사탄의 시험에서 이길 자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항상 승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한 여러분들의 반응은 주님께서 이기게 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시험에 넘어졌다 하지라도 용서하시고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을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여기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여러분들과 똑같은 시험을 당해보셨기에 여러분들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동정하시면서 도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중보로 인해 강건해지고 믿음이 굳세게 된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중보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골로새서 1장 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여기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라고 고백한 것은 한 두 번 기도하고 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9절에 이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9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사도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골로새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로볼 때 중보기도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대상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 외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교회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역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도를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하겠습니까?
사람들은 할 일이 없으면 괜히 여기 저기 다니면서 참견하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앉아서 기도하는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자신의 기도가 다른 교회와 성도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굳건하게 서게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기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골로새교회를 위하여 감사하면서 기도한다고 합니까? 5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골로새교회를 위하여 하늘에 소망을 쌓아두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교회로 인해 사도 바울이 소망을 하늘에 쌓아 둘 수 있었던 이유는 골로새교회가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목회자가 쌓아놓은 소망이 바로 복음 진리를 듣고 그 안에서 행하는 교회인 여러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반응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헤와 진리를 주셨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확인했기에 골로새교회에 대한 자신의 소망을 하늘에 쌓아둘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중보기도자들이 믿어야할 바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가 있었고 진리의 확신 속에서 순종하는 삶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받은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인해 거듭나고 영원을 소망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은 누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신 것처럼 여러분들도 역시 마음 중심은 신실한 삶은 원하지만 육체적으로 나약해서 자꾸 쓰러지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셔서 이제는 굳건한 신앙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목회자인 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중요한 직분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 18-1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여러분들의 기도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기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기도의 무게를 자신이 응답해야 하는 무게로 받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중보기도를 쌓아두셨다가 응답할 날이 이르렀을 때 응답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중보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함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보기도자의 사역입니다.
성령은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중보기도를 하실 수 있도록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시며, 중보기도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혹 여러분들이 기도하시다가 너무 기도시간이 길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써야하나?’하는 의문을 가지시는 영적인 회의가 찾아올 지도 모릅니다. 사탄은 여러분들의 중보기도를 막기 위해 그런 마음을 주어서 사랑을 식게하고 사람들에게 실망하게 만들려는 많은 시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중보기도의 자리를 지킬 때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칭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은 환희의 기쁨과 감사가 터져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로인해 여러분들은 사도 바울이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감사기도를 드리셨던 것처럼 여러분들이 기도를 드린 사람들로 인해 큰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중보로 인해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이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들의 기도의 대상인 성도들과 교회들에게 충만하게 임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이 중보기도의 종들로 주님 앞에서 훌륭하게 쓰임받게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