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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전례상징’] 구원의 상징인 ‘하느님의 어린양’
한동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단절’을 맛보고, 힘겨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다행히 발전된 의료과학에 힘입어 코로나에 대한 진단 키트과 백신이 빠르게 개발되어 많은 희생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코로나19에 대한 의학적 이해와 빠른 대처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14세기 유럽의 1/3인 2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은 페스트처럼 엄청난 사람들이 황천길을 가야 했을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무력감에 따른 분노를 분출하여 발생하는 무고한 희생양이 생기지 않았음은 과거와 다른 양상입니다. 14세기 페스트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넘어서는 재해에 대한 무력감에 뒤따른 분노와 화를 유다인에게 폭발합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이며 사회학자인 르네 지라르(1923-2015)는 그의 저서 ‘희생양’에서 “여기저기에서 떠돌던 유다인들이 독약을 풀었다는 소문을 들은 광분한 군중들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것으로 여겨졌을, 유다인들에 대한 학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라 퐁텐(1621-1695)은 ‘페스트에 걸린 동물’이라는 우화로 풍자했습니다. 우화는 페스트라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죄인을 찾아내어 그에게 합당한 처벌을 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맹수들은 그들의 행위를 너그럽게 묘사함으로써 곧 용서받고, 가장 약하면서도 보호받지 못하며 가장 덜 잔인한 당나귀가 유죄로 지목됩니다. ‘희생양’이라는 프레임은 이렇게 가장 약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씌우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희생양’의 일반적인 맥락과 달리 그리스도인들이 전례에서 “하느님의 어린양”은 인류의 죄를 속량하고, 죽음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희생양이 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버릴 것이 없는 어린양!
초식동물인 양은 성질이 매우 온순합니다. 양에게 소금 또는 먹이를 주거나 위험에서 구해주면 양은 그것을 기억하고 몸으로 신뢰의 정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양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매우 유익한 동물입니다. 양의 털과 가죽은 섬유와 의류로, 고기와 젖은 음식으로 사용하고, 내장과 뼈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동물입니다.
어린양의 고기는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즐겨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소나 양이나 염소가 태어난 후 7일 동안은 반드시 어미와 함께 있게 했으며,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함께 죽이는 것도 절대 금지했습니다(레위 22,38 참조).
허영엽 신부는 ‘성서의 풍속’에서 양이 “성경에서는 500회 이상 인용되며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양떼와 염소로, 하느님은 목자로 자주 비유되었고, 이스라엘에서 어린양과 염소는 악의가 없고 인내심이 강하기 때문에 경건한 사람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출애굽 파스카의 어린양!
이스라엘에서는 어린양이 가장 흔한 희생제물이었고, 제단 위에서 매일 일 년 된 숫양 두 마리를 바치는데, 아침에 한 마리, 저녁에 다른 한 마리가 바쳐졌습니다(탈출 29,38-39 참조).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에 따라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던 사건에서도 아브라함은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쳤습니다(창세 22,13 참조).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머문 지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바로 그날”(탈출 12,40) 탈출할 때 하느님이 이집트에 내린 열 번째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흠 없는 어린양의 피를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탈출 12,7) 발랐습니다.
브랜트 피트리는 ‘성만찬의 신비를 풀다’에서 탈출기 12장에서 펼쳐지는 파스카 과정을 5단계로 설명합니다. 1단계는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탈출 12,5), 2단계는 니산달 열나흗날에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탈출 12,6), 3단계는 어린양의 피를 발라라(탈출 12,7), 4단계는 어린양의 고기를 먹어라(탈출 12,8-9), 5단계는 파스카를 기념하여 축제를 지내라(탈출 12,14). 이집트에서 이런 단계들을 거쳤던 파스카 축제는 예수님 시대까지 죽음에서 구하시고 억압에서 해방시켜준 하느님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리는 기념일로 매년 지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집트가 아닌 예루살렘 성전에서, 단순한 식사가 아닌 대사제들에 의해 25만6500마리를 잡는 엄청난 ‘제사’가 되었습니다(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6권에서). 그리고 대사제들이 제단에 뿌린 피가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도 안 될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는 하느님의 재앙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속죄의 수단인 동시에 파스카 축제에 모인 신앙심 깊은 사람들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으로 인해 그 표시는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36)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자신에게 오는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으로 알려줍니다. 이 구절은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로 유명한 이사야서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53,7)와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53,12)라는 구절을 연상시킵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했던 ‘파스카의 어린양’이 이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인류를 구하여 영원한 생명의 하늘나라로 이끄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희생되셨음을 교회는 기념하여 매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교회는 주님을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묵시 5,6),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참 지성소의 유일한 대사제, 봉헌하고 봉헌되며, 주고 또 주어지는 분”(가톨릭교회교리서, 1137항)이라고 고백합니다.
미사에서 영성체 전에 먹히기 위해 쪼개진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와 성작을 들고 사제는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요한 세례자가 했던 그 선언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는 빵이 단순한 빵이 아니라 파스카의 어린양으로서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자신이며, 이러한 어린양께 묵시록의 원로들처럼 찬양을 드리면서 그분의 자비를 간청함으로써 주님을 합당하게 모실 준비를 합니다.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나 인재 등을 만났을 때, 흔히 일어나는 ‘희생양’ 프레임을 통해 힘없고 소외된 계층에게 책임 전가를 하거나 무고한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과 달리, 흠 없는 하느님의 아들이 스스로 십자가의 희생제물인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세상에서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바둥대며 살아가다가 상처받는 우리를 참된 희생제물이며 참 대사제인 예수님은 참된 사랑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청하지요.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기도하는 교회] ‘미사’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리말 ‘미사’는 라틴말 ‘missa’를 한자 ‘彌撒’로 음역한 말입니다. 미사라는 말이 미사 거행을 마치면서 파견하는 말인 “Ite, missa est.”(가십시오, 집회가 끝났습니다.)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설도 있고, ‘Oratio missa ad Deum’(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미사를 가리키는 다른 말로 ‘성찬례’ 또는 ‘감사제’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라틴말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를 번역한 것이고, 이 라틴말은 ‘감사’라는 뜻의 그리스말(εὐχαριστία)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사라는 말은, 유대교 식사예식 맥락에서 ‘찬미’라는 뜻의 그리스말(εὐλογία)과 동의어로 사용된 것이며, 이 찬미의 그 기원은 “너희는 배불리 먹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좋은 땅 때문에 그분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신명 8,10)라는 계명에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땅의 주인으로서 그 땅에서 나는 소출로 식사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며 이스라엘을 해방하고 지켜주신다는 구원사건을 체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 식사는 구원은총에 대해 감사드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예식이었고 그 결정적 기원은 탈출기의 파스카 사건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파스카 축일식사를 거행하시며 당신의 몸과 피로 온 세상을 구원하는 새로운 계약의 식사예식을 제정하시고 제자들에게 부활하여 함께 계실 주님을 기억하여 그것을 행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교회는 미사를 거행하면서, 당신의 몸과 피로 우리를 당신과 한몸이 되게 하시는 주님의 지극한 사랑과,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며 위로하시고 도와주시며 지켜주시는 주님의 구원 은총에 감사하며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미사의 원래 말은 하느님 구원은총에 대한 ‘감사의 찬미’입니다.
[슬기로운 ‘전례상징’] 주일과 여덟째 날
‘평화의 도시’이면서 평화가 필요한 도시인 예루살렘에 순례 갔을 때, 현지 가이드가 자유시간을 주면서 하는 말이 떠오릅니다. “신부님! 예루살렘은 세 종교가 공존합니다.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비록 지역을 구분하여 살고 있지만, 함께 어우러진 도시이기에 가계마다 쉬는 날이 다릅니다. 유다인은 ‘안식일’인 토요일, 그리스도인은 ‘주일’인 일요일, 이슬람인은 ‘주무아’라고 합동 예배를 행하는 금요일에 쉽니다. 그래서 헛걸음을 하지 않으려면 가게 주인이 어느 종교를 믿느냐를 알아야 하지요.” 각 종교마다 자신들이 믿는 신에 대한 예배를 하는 날을 쉬는 날로 정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교의 안식일(현재의 토요일)은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창세 2,3; 참조. 탈출 20,10)에 쉬면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로 정해졌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일’(주님의 날)로 정하고 쉬면서 수난과 부활, 승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날을 ‘여덟째 날’ 또는 ‘여드렛날’이라고 하여 창조의 첫째 날과 연결하여 창조의 새로운 버전인 부활을 기념합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마태 28,1)인 주일!
주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당신 제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때는 “주간 첫날”(마태 28,1; 마르 16,9; 루카 24,1; 요한 20,1) 아침이었습니다. 거룩한 여인들과 베드로에게 발현하신 다음 “바로 그날”(루카 24,13)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반하셨는데, 이 제자들은 예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루카 24,30) 주셨을 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당신의 다섯 상처를 보여주시고, 제자들에게 파견하시면서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지요(요한 20,19-23).
예수께서 부활하신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마태 28,1)은 십자가에서 그분의 피로 맺은 “새 계약”(1코린 11,25)이 성취된 날입니다. 제자들은 주간 첫날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음을 다음의 구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요한 20,26).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로 제자들의 관심을 끕니다. 하나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상처를 보여주시면서 십자가를 그리스도인의 예배 모임의 중심에 놓습니다. 다른 하나는 토마스의 신앙을 요청하시면서 그 모임이 믿는 이들 곧 ‘믿는 이들’의 모임이어야 함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를 중심으로 한 트로아스에서의 모임을 “주간 첫날에 우리는 빵을 떼어 나누려고 모였다”(사도 20,7)라고 하며, 이 모임이 한 신자의 집 이층에서 밤에 이루어졌으며, 바오로의 긴 설교와 “빵을 나눔” 예식(성찬례)이 이루어졌다고 묘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의 날인 “주간 첫날”이 요한 묵시록에 와서는 ‘주님의 날’을 의미하는 “주일”(묵시 1,10)로 용어가 바뀝니다.
모두가 쉬며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주일!
100년 경에 작성된 ‘디다케’ 14장에서는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라고 권고합니다. 또한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153년경에 작성한 ‘호교론’ 1권 67장에서 “태양의 날”에 모여 사도들의 비망록이나 예언자들의 글을 읽고, 주재자는 좋은 사례들을 본받도록 가르치며, 성찬례를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서술합니다.
몇 차례의 박해에도 계속된 이 모임은 313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자유를 선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따라 로마 제국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313년 3월,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태양신 예배와 그리스도교 예배를 함께 증진하고자 태양신의 날이자 동시에 주일인 일요일에 일을 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 후에는 종들에게 일에서의 자유를 주기로 한 태양의 날에 법정 다툼과 불화를 일삼는 것은 마땅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이 특별히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마땅한 일이라고 법을 제정하여 선포합니다.
이로써 주일에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과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보장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전에 그리스도교 주일은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성찬례를 거행하는 전례 모임을 갖는 날, 일상적 일을 포기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축제의 날로 나타납니다.
‘첫날’이면서 ‘여덟째 날’인 주일!
주간 첫날은 창조의 날, 안식일 다음 주간 첫날인 주일은 주님 부활의 날, 여덟째 날은 부활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장차 도래할 세상의 표상입니다. 세례를 통한 구원을 말하는 베드로 전서 3장 20절은 여덟이란 숫자를 구원과 연결하여 밝혀줍니다.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미셜 푀이예는 ‘그리스도교 상징사전’에서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벽을 상징하고, 히브리 단어 ‘cheba’는 ‘일곱’과 ‘계약’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거룩한 숫자가 7이라면, 8은 저편으로 향한 숫자입니다. 이렛날 죽은 그리스도는 여드렛날 부활했습니다. 여덟은 부활의 숫자이면서 구원자, 인류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이며 또한 새 시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여덟 가지 행복을 선언하셨습니다(마태 5,1-12)”라고 설명합니다.
130년 경에 저술된 ‘바르나바의 편지’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부활의 관점에서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현재의 안식일이 아니라 내가 행했던 그날로서 이날 모든 것을 안식에로 이끈 다음 제8일을, 다시 말해 새 세상을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발현하신 다음 하늘에 오르셨던 제8일에 즐거운 축제를 지내는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곧 여덟째 날은 주님의 부활과 더불어 승천을 기념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례당을 팔각으로 짓고, 성탄과 부활에는 팔일 축제로 연장하여 육화와 파스카 신비를 통한 구원에 대한 희망을 더욱 부각시켰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우리는 태양신의 날에서 유래한 ‘일요일’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우리의 참된 주님임을 드러내신 ‘주님의 날’, 곧 ‘주일’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우리의 신앙을 드러내지요.
[알아볼까요] 가톨릭 장례와 제례의 올바른 이해 (6)
1. 면례(緬禮)
면례는 무덤이나 봉안당의 유골을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실 때 지내는 예식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상장예식’ 326~373쪽의 기도를 바칩니다. 무덤을 열 때 노래하는 시편 117(118)편‧41(42)편‧92(93)편‧24(25)편‧118(119)편 등은 앞에서 해설했으므로 생략합니다. 유교 예서인 ‘상례비요’는 “古者改葬爲墳墓以佗故崩壞將亡失尸柩也世俗惑於風水之說有無故而遷葬者甚非也(옛적에 무덤을 옮겨 쓰는 것은, 분묘가 무너져 장차 시체를 담고 있는 널을 잃어버릴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었는데, 세상 풍속에는 풍수의 말에 혹하여 [합당한] 연고 없이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이가 있으니 심히 잘못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천주교 신자인데도 후손을 위한다는 미신에 현혹되어 멀쩡한 묘지를 옮기는 이는 꼭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2. 제례(祭禮)와 교회
명나라와 청나라를 복음화하는 데 크게 공헌한 예수회는 조상 숭배와 공자공경을 중국문화 의식으로 인정하고 효도와 존경의 표시로 관대하게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이런 행위를 천주교 교리에 어긋나는 미신적인 우상숭배로 보고, 교황청에 문제점을 제기해 의례 논쟁을 치열하게 전개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중국 의례 금지칙령’을 반포하고, 청나라 정부는 천주교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중국교회는 박해에 시달렸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뒤 교회의 조상 제사 금지 명령을 모르는 이들과 분명히 인식하고 제사의 신령(神靈) 흠향(欽香)을 비판하는 이들이 치열하게 논쟁하다가 북경 교회에 신주와 제사 문제를 문의했습니다. 교회의 엄중한 금령(禁令)을 확인한 조선교회는 윤지충과 권상연이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살라 시작된 박해로 타격을 받았지만, 교회는 인륜과 현세보다 천주 신앙과 내세를 강조했으므로 육신과 사회생활보다 영혼과 신앙생활을 중시했습니다. 천주교를 믿으면 조상제사를 거부해야 했고, 이 때문에 정부‧사회‧집안 등으로부터 박해받았습니다.
박해가 끝났어도 교회는 제사를 거행하고 도와주거나 제사음식 먹기 등을 십계명의 제1계명 위반으로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1932년 만주국이 공자 의례를 의무화해 신자들이 신앙의 위기에 처하자, 교황청이 1939년 ‘문화적 적응’이라며 공자참배를 허락하고, 고인의 시신‧영정‧위패에 절하는 것을 허용하는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공포했습니다. 한국교회는 1940년 “교회의 도리는 만세 불변하는 진리이며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상제사에 대한 현대인의 정신이 변했기 때문에 용납하는 것에 불과하고…”라는 ‘조선 8교구 모든 감목의 교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용인(容認)한 제사를 신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난 뒤 새로[新] 복음을 듣고[聞] 신자가 된 신문교우(新聞敎友)들은 제사를 지냈겠지만,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구교우(舊敎友) 후손들은 “위령기도를 바치는 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다”라는 굳은 믿음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습니다.
3. Directorium Commune Missionum Coreae(한국 천주교 공용지도서)
1958년 한국교회는 상례와 제례에 관한 원칙을 발표하고 다음과 같은 것을 허용했습니다. 시신과 무덤, 죽은 이의 사진과 위패 앞에서 인사나 깊은 절, 엎드려 경의를 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관습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민간의 존경 행위가 분명하므로 도입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로 인해 해(害)가 예상되면 새로 세례를 받았거나 예비신자들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바르게 알고 있기만 하면, 시신 곁이나 사진 앞에 음식을 차릴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에 의해 제사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적어도 오늘날은 미신적으로 행해지지 않아야 하지만, 죽은 이에 대한 자녀의 효심이나 친구의 우정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자녀는 음식을 드리며 스스로 느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계시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이 음식상을 드릴 것이다. 그러나 이 잔치에 함께 할 수 없어 매우 슬프다. 그분의 영정과 위패 앞에 이 상을 봉헌하여 이러한 나의 고통과 자녀로서 사랑을 표하고자 한다.”
그러나 죽은 이의 입에 쌀을 넣는 반함(飯含), 혼령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저승 여행길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괴롭히지 않도록 죽은 이의 침대 앞에 신발과 세 그릇의 쌀을 놓아두는 사자(使者) 밥, 다시 돌아오도록 죽은 이의 영(靈)을 부르며 죽은 이의 집 지붕이나 그 끝에 죽은 이의 옷을 매달아 두는 초혼(招魂), 죽은 이 곁에 음식상을 차려놓고 죽은 이가 그의 저승 여행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도록 배불리 먹는 동안 문을 닫고 밖에 나가 있는 합문(闔門)과 유식(侑食), 이교인의 관습을 따라 기도문을 외우는 것[祝文] 등은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엄격하고 절대적으로 금지된다고 강조했습니다.
4.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른 종교문화에 대한 존중과 민족 복음화에 중대한 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사목회의 의안 4 전례’,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등을 펴내고, 이를 바탕으로 ‘선종봉사 예식서’, ‘상제례예식서 시안’과 ‘가톨릭 상제례 토착화 시안’ 등을 편찬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확정적인 예식서가 나올 때까지 조상 제사 예식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풀어 주었고, 오랫동안 연구하고 논의한 결과를 집약한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 지침’과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주교회의가 승인함으로써 조상 제사가 교회 안에서 재해석되어 한국교회의 예식이 되었습니다.
‘상장예식’ 417~420쪽의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 지침’은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전통문화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한국 천주교 제례의 의미를 조상 숭배의 개념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강조합니다. 비신자 가정에서 자라 나이가 들어 입교한 이를 위한 사목적 배려에서 조상의 기일, 명절에 지낼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므로 가정 제례보다 우선해 위령미사를 봉헌해야 합니다. 신위(神位)‧신주(神主)‧위패(位牌)‧지방(紙榜) 등은 조상 숭배를 연상시키므로 조상(고인)의 이름이나 사진 등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상장예식’ 421~436쪽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은 제사의 주요 부분을 가톨릭 정신으로 재해석하고 교회의 말씀 예절과 위령기도를 바치도록 한 것입니다. 가장의 제례 시작을 알리는 말씀, 성호경과 시작 성가, 가장이 바치는 기일 또는 명절 시작기도 등으로 시작합니다. 마태오복음 5장 1-12절을 비롯한 성경 말씀을 읽고, 가장이 조상(고인)을 회고하면서 가훈‧가풍‧유훈 등을 설명한 뒤에 신앙 안에서 성실히 살아가라고 권고하는 말씀 예절이 이어집니다. 분향하고 절한 뒤에 시편 제129(130)편‧50(51)편과 기일, 설이나 한가위에 바치는 기도,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등을 바치고 마침 성가, 성호경, 음식 나눔 등으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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