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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pAe6GEA6Bc
파송의 노래
2020년 12월 28일(월)
2020년 12월 29일(화)
묵상 - [참과 거짓 그리고 ...]
● 성경본문 : 베드로후서 2:12~22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성경 중에서 베드로후서 2장 말씀이 가장 무서운 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거짓 선생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엄위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특징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합니다.
둘째, 음란하고 탐욕적입니다.
셋째, 교만하고 거짓됩니다.
* 제목이 신선(?)해서 소개합니다.
『개소리에 대하여』 (원제 : ON BULLSHIT, 해리 G. 프랭크퍼트 저)
거짓말은 거짓임이 들통나면 커다란 비난이 쏟아지지만, 개소리에 대해서는 그저 어깨만 으쓱하고 지나칠 뿐입니다. 거짓말이 실패하면 수치스럽지만, 개소리는 실패하더라도 관용됩니다. 개소리에 대해서 정색하고 달려들면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역공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개소리가 실패의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을 깨닫고는 개소리의 무책임을 누리기 위해 말에서 진리치를 희석시킵니다. 개소리로 돌파할 수 있는 곳에서는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강력합니다.
▣ 참 성도와 거짓 성도의 구분이 어려울까요?
참 목사와 거짓 목사의 구분이 어려울까요?
흰색과 검은색의 구분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색의 정확성(correctness)과 진정성(sincerity)의 정도를 측정하고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짜 목사는 아닐지라도, ‘목사’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조차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재미없는 설교는 용서가 되지만, 최소한 ‘개소리’는 되지 않아야...
묵상 - [영적 성장]
● 성경본문 : 베드로후서 2:1~11
지난 주말, 송년주일을 잘 보내셨나요?
베드로후서를 시작하면서 기억하는 말씀이 있다면, 1장 5~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을 만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아들의 성향을 넣어주실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기반 위에서 성품을 쌓아가야 합니다. 성품을 쌓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향과 일치하는 일들을 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습관과 성경을 대하는 습관, 그리고 주신 말씀대로 그대로 실천하는 습관입니다. 이런 습관을 만들어 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붙들기 시작합니다.
모든 좋은 습관은 그 습관이 익숙해질 때까지 어려운 과정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우리는 무의식 가운데 좋은 습관대로 행동하게 되며 그런 습관은 우리의 성품이 됩니다.
여러분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고상하여지고 겸손하며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자라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주장이 더 강해지고 쉽게 분노하며 자기 맘대로 하려는 성향이 더 커져가고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세요.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에는 거룩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을 배우기 위해 우리 자신의 관점을 내려놓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나의 모든 주장을 내려놓고 무조건 순종하세요.
이런 습관을 가질 때 성도들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은혜를 공급받게 됩니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것만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오늘 QT본문과 내용에 대한 묵상은 여러분이 적어봐 주세요. 기대할게요...
[2020년 12월 20일
2020년 12월 24일(목)
묵상 - [마리아의 찬가 Magnificat]
● 성경본문 : 누가복음 1:39~56
(1)
마리아의 찬가는 마그니피캇(magnificat)으로 불리우는데, 라틴어 성경에서 본문이 Magnificat(찬양하다)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천주교뿐만 아니라 동방정교, 개신교도 마리아의 찬가를 깊이 주목해서 예배와 기도 속에 포함하였고, 많은 작곡가들도 마그니피캇을 예배를 위한 곡에 삽입하거나 별도로 곡을 쓰기도 했습니다.
초기바로크시대를 열었던 몬테베르디의 magnificat은 천상의 소리를 강렬하게 재현하였고,
루터교신자였던 바흐의 magnificat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리아의 기쁨을 화려하게 표현했습니다.
저녁기도(Vespers)의 걸작으로 알려진 라흐마니노프의 Vespers 속의 magnificat은 묵직한 극저음의 베이스가 주도하는 아카펠라로 성육신의 신비를 드러내며 우리를 명상으로 이끕니다.
떼제 공동체의 magnificat은 음악으로 기도하는 전통에 충실하게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비발디의 magnificat은 좀 특이합니다. 격정적인 찬양 속에 마리아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처연하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몬테베르디 - https://youtu.be/GEt1LwcK6JU
바흐 - https://youtu.be/EsUWG2axB3w
라흐마니노프 - https://youtu.be/SjXJeYz8Gxc
떼제 공동체 - https://youtu.be/nLM0GiihIbs
비발디 - https://youtu.be/kGJYPSSJM7k
▶ 이름과 함께 ‘마그니피캇’으로 검색하면 많은 영상과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2)
성공회 신부님이 무신론자인 친구에게 이 구절을 따로 떼어서 주면서, 선입견 없이 읽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거, 공산당 선언이네!”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마리아 찬가는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이 노래는 교회 안에서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 당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던 말기에 잭 윈슬로우(Jack Winslow)가 이끌던, 인도 민족주의에 동조한다고 여겨지던 기독교 공동체에 가끔 범죄 수사대 사람들이 방문했었는데, 수사대는 이 공동체에게 ‘마리아의 찬가’를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말씀은 지배자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익숙한 삶의 기준들을 가지고, 평안을 누리며, 부요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매우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리아 찬가를 영적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그들도 이미 부요한 자들이고, 또 부요한 자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배 세력에 의해 하루하루를 억압 받고, 고통 받은 제3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이 그렇게 해석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마리아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는 천사의 계시를 받을 때, 그리고 받아들일 때, 정상적인 결혼을 포기했습니다. 사랑하는 요셉과의 결혼에 대한 꿈을 내려놓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마리아는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누렸습니다. 4명의 아들을 낳았고, 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는 먼저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세워놓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다 온전히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의 순종 위에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건축해갔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믿음 안에서 새롭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10층, 혹은 20층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우리의 인생을 건축하고 세워가야 합니다. 그 자리가 어디입니까? 그 자리가 바로 마리아가 말하는 비천한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아무 것도 없이 정말 비어있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비천함에도 불구하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 비천하기 때문에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맞보는 것입니다.
2020년 12월 22일(화)
묵상 -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라]
● 성경본문 : 베드로전서 5:8~14
“믿음은 가능성의 영역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에는 하나님을 위한 영광이 없다. 믿음은 인간의 힘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 조지 뮬러.
코로나로 인해서 ‘성탄예배’, ‘송년예배’, ‘송구영신예배’, ‘신년예배’가 모두 어렵게 된 것 같습니다.
코로나를 탓해야 하는 건지, 질병관리청장이나 대통령을 탓해야 하는 건지~!
그러나 ‘탓’을 하는 건, 기독교인들에게 원래 체질적으로 맞지 않죠!
‘탓’을 하는 순간, 그 진흙탕에 빠져드는 것일 테니까요.
베드로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 뒤에는 마귀라는 영적 세력이 있음을 인식하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하고, 굳건한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고난은 잠깐이요, 하나님이 결국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며, 성도들을 온전하고 굳건하게 합니다.
마귀의 공격은 참 다양하고 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영적 싸움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십시오.
주일기도문]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의 경배 가운데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가난한 자들의 축복과 이방인들의 축하를 받으셨으나 정작 유대 땅을 통치하던 헤롯 왕으로부터는 살해의 위협을 당하셨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로부터는 외면 당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코로나로 고통 받으면서도, 선진국들의 이기심은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고, 경제발전이 최고인양 도약하는 국가들은 환경 파괴로 인한 인류의 재앙을 외면합니다. 이 나라 지도자들도 정권에만 집착할 뿐 파탄 직전에까지 내몰린 국민의 삶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하고, 대형 교회들과 방송사는 미디어를 활용한 비대면예배로 가난한 교회의 성도들을 흡수하는데 열을 올립니다.
코로나 전파의 원인이 교회에만 있는 듯 비난하고 목회자들의 허물을 들춰내 성직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지금, 어느 때보다도 참담한 심정으로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당신의 종들이 고난에도 낙망하지 않게 하시고,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시며, 무명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도 하나님만으로 행복하게 하옵소서. 마침내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의 은혜로 이 모든 고난을 이겨 승리할지라도 교만해지지 않게 하시고 겸손히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0년 12월 18일(금)
묵상 - [나그네 중의 나그네]
● 성경본문 : 베드로전서 3:13~22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아가던 유대인들(디아스포라)은 그 지역 사람들과 융합되지 못해 오해와 박해를 받으며 살아가는 나그네(1:1)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동족 유대인들로부터도 따돌림과 박해를 당하는 ‘나그네 중의 나그네’가 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며 박해와 고난이 있을 때 어떤 마음으로 인내를 실천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의를 위한 고난을 이기라》
성도들이 의를 행하고도 고난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베드로는 그것이 오히려 복이라고 말합니다(14절).
그리스도를 따라 거룩하게 살고, 신앙에 대한 공격이 들어올 때 대답할 말을 준비하되, 유대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격적, 논쟁적 태도가 아닌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응하라고 권면합니다(15절).
선한 양심으로 살면 오히려 교회를 박해하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16절).
모든 사람이 고난을 당하게 마련임을 생각해 본다면 선을 행하고 고난을 당하는 편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나은 선택입니다(17절).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사실 억울한 박해를 참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불의한 자들을 위해 참으시고 십자가를 지시며 영으로 모든 것을 이기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지만 결국은 하늘에 오르사 천사들을 비롯한 모든 권세를 다스리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 역시 주님처럼 억울함을 보상받고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22절).
우리도 고난이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영광의 길을 기억한다면 능히 세상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2020년 12월 17일(목)
묵상 - [아내의 인내, 남편의 인정]
● 성경본문 : 베드로전서 3:1~12
세상의 사랑이 인간의 본능을 따르는 사랑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사랑입니다.
성도는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믿음의 인내란 거창한 일이 아니라 가정에서 주님의 뜻에 따라 불신 남편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 가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교만하게 행동한다면 남편은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가족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거짓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선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거짓 없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십시오.
남편들은 아내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상속할) 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아내를 무시하면 기도가 막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멀리하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배려하고, 용납하고,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은 성도입니다.
남자들은 집 안에서부터 아내를 배려하고, 용납하고, 섬겨야 합니다.
아내에게도, 남편에게도 오늘 말씀은 참 어려운 주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웃에 대해서 동정(공감), 사랑, 긍휼, 겸손의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불신자들을 대할 때에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어주라고 권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함으로,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먼저 섬기고, 먼저 존경하십시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2020년 12월 16일(수)
묵상 - [마음과 생각]
● 성경본문 : 베드로전서 2:11~25
사람들은 죄로 인해 타락하고 오염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욕망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옛 사람의 생활로 돌아가도록 유혹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왕으로 하나님께 선택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그에게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한 아말렉 민족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 왕과 그들이 소유했던 양 떼와 소 떼가 아까워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승리를 상징하는 전리품과 명예에 욕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들 속에도 이러한 욕심과 욕망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들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과 목표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집중해야 합니다.
추한 욕망에서 벗어나 육체의 정욕을 추구하는 영적 전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2020년 12월 15일(화)
묵상 - [비워야 담을 수 있다]
● 성경본문 : 베드로전서 1:13~25
1.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은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건강하고 온전하게 합니다. 거듭나게 합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변화를 원하고, 영적 건강과 온전함을 원하고, 거듭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비워야 합니다. 포기해야 합니다.
과거에 행하던 죄악 곧 악독, 기만, 외식, 시기,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본 사람은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 아기가 젖을 찾듯 말씀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2. 성도는 신령한 집인 교회의 일부가 된 존재며,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선 교회부터 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비대면’ 시대를 맞았지만, 절대로 익숙해지지 마십시오. 어떻게 해서든 교회로 갈 궁리를 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신령한 제사는 몸과 물질과 시간과 마음 등 삶의 전 영역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일상에서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통해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완성되어 갑니다.
3. “승진을 축하합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너무나 듣고 싶은 말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죄로 인한 심판에서 벗어나 아주 “특별한 신분,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고 의롭게 하시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주셨으며, 영적 어둠에 있던 우리를 인도해 내어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허락된 새로운 신분에 합당한 삶, 순종의 삶을 통해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020년 12월 14일(월)
묵상 -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 성경본문 : 베드로전서 1:13~25
- 다니엘서는 어떻게 끝났을까요? 마지막 12장이 지난 토요일 본문이었어요.
- 어제 주일부터 시작한 베드로전서 1장의 앞부분은 어떤 내용일까요?
- 먼저 다니엘서 12장은,
1. 종말 신앙의 핵심은 언제 종말이 올 것인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종말을 기다리며 매일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은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고, 희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영생을 약속하십니다.
2. 역사의 종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12장이 보여주는 역사의 종말은 천사들의 영적전쟁, 믿음을 시험하는 환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의 구원, 영생의 부활 등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종말의 계시를 보여 주는 것은 환난이 찾아와도 믿음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3. 위기 앞에서 신앙인들은 믿음을 지킬 것인지 배교의 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하는 순간에 직면합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의 위협 때문에 배교의 길에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자기의 생명을 걸고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예기치 못한 어떠한 위기가 온다 할지라도 신앙인이 지켜야 할 원칙은 변함이 없습니다. 배교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포기하지 말고 진리의 길을 선택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영광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 베드로전서 1:1~12은,
1. 베드로는 이방인 성도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하늘에 속한 시민들이지만 일시적으로 세상에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돌아갈 본향에 대해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들입니다.
2.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귀한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스스로 높이 평가하기를 원합니다.
3. 3~6절. 성도들은 시련을 감당해야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구원을 지켰기 때문에 기쁨을 소유할 수 있고,
4. 7~9절. 그것은 금보다 더 귀한 참 믿음의 증거가 됩니다.
5. 10~12절. 성도들에게 임한 이 구원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고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던 지위입니다.
6. 베드로는 성도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난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성도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보호하시고 회복시키시고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고난까지 허용하시는 최고의 주권자이시며, 성도들에게 미래 부활의 소망을 주신 분이라고 설명합니다.
- 오늘 본문은,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진정한 도움은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존재인지 깨닫는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힘을 기르고, 재정이 넉넉해지고, 피할 길을 알려준다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1. 자녀가 된 은혜
성도라고해서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면 그분의 거룩함을 닮아갈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2. 대속받은 은혜
재물로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돈으로 죄를 사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는 역사가운데 반복되어 왔습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만이 단번에 죄를 사하고 영원한 대속을 이룹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십니다.
3. 영생의 은혜
성도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23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것처럼 우리도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라도 거룩하게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 삼아 날마다 읽고 묵상하고 순종한다면, 성령께서 힘과 지혜를 주셔서 거룩함을 길을 걸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끝까지 읽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2020년 12월 13일 주일기도문]
거룩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2020년 내내 코로나로 인해서 근심과 염려가 많은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겨울의 문턱에서 추워진 날씨보다도 다시 확산되는 코로나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하고 있습니다. 경제 사회 국가의 전반적인 위기 앞에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기억해 주옵소서. 가지고 누리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위기가 기회일런지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숨에 벅찬 연약한 이들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옵소서.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벙어리로 찬양케 하시고, 눈먼 자로 보게 하시고, 죽어가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그 크고 능하신 손을 의지하오니 치료와 회복의 손길, 기적을 이루시는 손길을 허락해 주옵소서.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하신 말씀을 굳게 붙잡습니다.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이 많아도 예수님의 보배 피를 의지해서 망령되고 헛된 욕심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거짓 교훈과 이단의 유혹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더 큰 환난과 재난이 있을지라도 영생과 면류관이 예비 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바른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01129 주일 기도]
2020년 12월 11일(금)
묵상 - [마지막 때와 적그리스도]
● 성경본문 : 다니엘 11:36~45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를 보면서 마지막 때를 지내야 하는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을 내리시기 전까지 적그리스도는 형통할 것입니다. 그는 왕실 장막을 바다와 거룩하고 아름다운 산 사이에 건축해 놓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형통함을 과시하고 자랑할 것입니다. 이를 본 수많은 사람이 그의 성공과 권세에 미혹되어 맹목적으로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리석은 세상의 가치인 성공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더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니엘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강한 믿음과 순종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에 유혹을 이기고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영적 교제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부요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결코 세상의 부와 명예를 귀하게 여기거나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어떤 활동에 앞서 성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생명 줄로 여기고 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욕심과 자아를 꺾고 하나님 안에 있는 풍요와 세상을 이기는 힘을 공급받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가르치신 방식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적그리스도와 같이 힘을 과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을 위협하고, 부와 권력을 쌓는 일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권능과 능력 위에 계신 전능하신 분이지만 그 전능하심으로 우리를 억압하거나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사랑을 통해 우리를 위한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신 자기희생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야합니다.
힘이 자랑이 되고 성공이 되는 세상에서, 오히려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낮은 자로 사는 것이 어리석게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삶이야말로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삶입니다.
오직 죄인들을 섬기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섬기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0년 12월 6일 주일기도문]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대강절 절기를 보내는 저희에게 구원의 확신과 천국의 소망을 견고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주신 직분을 잘 지켜 갈 지혜를 더해 주시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손과 발과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말과 행실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위로와 사랑과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울수록 믿음 위에 바로 서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고난이 없으면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 일시적인 삶에 만족하지 않게 하시고, 내 몫에 채워진 십자가의 고난을 뿌리치지 않게 하옵소서. 모든 예배의 순서가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보배 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거룩한 예식임을 믿고, 십자가의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날마다 성장하게 하시고, 찬양과 기도와 봉헌의 시간마다 하늘 문을 열어 축복이 쏟아지게 하옵소서. 깨끗한 영혼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도적같이 임할 마지막 성탄을 기다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0년 11월 30일(월)
묵상 - [성도의 위기와 구원은 주님을 높이는 기회입니다]
● 성경본문 : 다니엘 6:15-28
바벨론이 무너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왕위에 오르자 전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행정체제를 개편했습니다. 전국을 120도로 나누고, 각 도마다 방백을 두어 통치하게 하였습니다.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어 120명의 방백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다리오가 이런 제도를 둔 것은 방백들이 총리에게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이런 중차대한 일을 맡은 세 총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다니엘은 다리오가 정복한 나라의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마땅히 숙청 대상이었습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한 후 정치범 3천명을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거기서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메대와 바사 제국의 총리로까지 임명되었습니다.
3절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다니엘은 청렴결백하고 정직하며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정치적 이익과 출세를 위해서 간에 붙고 쓸개에 붙는 철새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탁월한 행정 능력을 가진 유능한 자였습니다.
왕의 총애는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의 시기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국사에서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 꼬투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을 파고 그물을 쳤습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넣기로 한 것입니다.
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첫째, 다니엘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현재의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했습니다. 그는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이 금령을 어길 때 직면하게 될 실제적인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제일 먼저 총리직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권세뿐만 아니라 귀중한 생명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생명보다 신앙을 더 중히 여기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어인보다도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경외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또한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모든 만물을 그 뜻대로 움직이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런 믿음은 어떠한 인생의 광풍에도, 원수들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의 순결을 지키게 했습니다.
둘째,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라는 말을 볼 때 그는 항상 꾸준히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던 것입니다. 소년시절에 끌려와서 여든이 넘도록 약 70년간을 꾸준히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는 그의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다니엘은 기도를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기도의 능력,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능력을 체험한 그는 기도를 하루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이리저리 뛰어 다닐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조용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고 또 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인간적인 사람은 기도하기보다 자기 지혜를 믿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또한 감정적이 되어 사람들과 부딪힙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모든 문제를 안고 조용히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사람과의 인간적인 싸움을 싸우기보다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합니다. 그는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 자신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시대를 이기고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같은 기도의 사람, 영적인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다니엘은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현재 그의 형편은 도저히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커녕 내가 믿음으로 사는데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복수의 감정을 품고 악인의 궤계를 파하시고 그들을 심판해 주시도록 기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좋으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지만 원치 않는 상황으로 힘들게 돌아가면 감사하기보다 인상을 쓰고 불평을 늘어놓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을 때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 사자들의 입을 봉하신 하나님
마침내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고 돌을 굴려다가 굴 입구를 막고 왕의 어인과 자기들의 인을 쳐서 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를 의뢰하고 기도한 다니엘을 기뻐하사 사자의 입도 막으시고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책임지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왕은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을 끌어 오게 하여 그들을 사자 굴에 던져 넣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그들을 움켜서 뼈까지도 부서뜨렸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며, 심지어는 사자의 식욕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난 기도의 창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기도하되 형식적으로 자기가 필요할 때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만 하고 육신적인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기도의 종이 되고자 결단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다니엘이 살고 있는 이방 세계와 같이 위험하고 불안하고 어두운 시대입니다. 음란과 탐심과 미움 등 죄의 세력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벧전 5:8). 우리가 어떻게 이 험악한 세상에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며, 시대를 이겨 굳게 설 수 있습니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막 9:29). 기도의 용사들로 성장하여서 자신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시대를 이기는 역사 창조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재림하실지 알 수 없기에 항상 마음속의 죄악을 버리게 하시고, 매일매일 회개하며 악한 생각이 틈타지 못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좋은 집에서 장수하는 것보다 다윗과 같이 주님의 성전에서 하루를 사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높은 자리에 있는 것 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낮은 자리에 있게 하옵소서.
대강절 첫 주일을 맞아 우리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 거짓과 미움을 버리게 하시고 순결하고 깨끗한 영혼으로 주님을 기다리게 하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며, 예배와 성도들과의 교제를 사모하게 하옵소서.
연말을 맞아 세상 모임에서 죄 짓지 않게 하시고 적당히 타협하지 않게 하옵소서.
보혈의 은총을 덧입혀 주셔서 우리 마음이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 몸이 씻음을 받게 하셔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아기 예수께 경배했던 동방박사들처럼 믿음의 예물을 준비하게 하시고, 한 밤중에 목자들이 예수님의 오심을 찬양했던 것처럼 항상 깨어있게 하옵소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코로나를 극복하고 축복의 성탄절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0년 11월 22일 주일기도문]
교회력으로 2020년의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죄인을 부르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로 시작해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며 위로와 소망이 되시는 보혜사 성령님과 동행한 성령강림절 마지막 주일을 맞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셨습니다.
탕자와 같이 곤고하고 지칠 때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시고 주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가 된 주의 백성들입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게 하시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대할 때 사랑과 인내로 선한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이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막에서 물을 찾듯이 갈망하여 배우는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말씀을 실천하여 영혼과 삶이 날마다 풍성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0년 11월 15일 주일기도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악한 일에 힘을 내서 살았습니다. 무질서와 게으름으로 일은 하지 않고 일을 만들기만 하면서도 변명과 핑계로 불순종했습니다. 평강의 주님, 때마다 일마다 함께 해주신 임마누엘의 하나님! 이런 저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참된 소망의 은혜를 허락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고,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내로 예수님을 향한 소망을 굳게 붙잡겠습니다.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기 위해서 힘을 다하며, 믿음 없는 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전도하며 살겠습니다. 세상에서 잠깐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게 하시고, 영원한 만족과 기쁨이 있는 천성을 향해 가게 하옵소서. 건강의 어려움이 있을 때에 평강의 위로를 더해주옵소서. 일어설 힘이 없을 그 날까지 예배의 자리를 지키게 하시고, 마지막 호흡이 있을 때까지 주를 찬송하게 하옵소서. 모든 믿는 자의 소망이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생각나눔 - [존재하는 것들은 사명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자의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연필의 사명은 글씨를 쓰는 것입니다. 지우개의 사명은 잘 지우는 것입니다. 의자의 사명은 앉기 위한 것입니다. 연탄의 사명은 뜨겁게 타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정균승 저(著)『왜라는 질문을 하고 어떻게라는 방법을 찾아 나서다』중에서"
그늘도 이끼를 길러냅니다.
무생물조차도 존재할 이유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물며 인간인 우리가 사명이 없을 리 만무합니다.
돌을 다룰 때 어설픈 아마추어는 망치부터 듭니다.
그러나 고수 석공은 돌의 결을 먼저 봅니다.
결대로 치면 돌이 나가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결이 있습니다.
바람에도 바람결이 있고, 물에도 물결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숨에도 결이 있어 숨결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존재입니다.
그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이 결대로 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결대로 살아갈 때,
열등감이 없이,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힘이 넘치게 됩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020년 11월 8일 주일기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하나님만 섬기게 하옵소서.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아첨하는 말과 탐심의 탈을 벗고,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복음에 합당한 행함이 있게 하옵소서. 유순한 마음과 말씨로 분노를 이기며 과격한 행실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자녀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교회의 직분자가 되었지만 충성스럽게 헌신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내 주장만 앞세우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좇아 헛된 것을 잡으려고 몸부림쳤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세상사는 동안에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제자로 증인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바라보며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어둠의 죄 사슬에 매여 신음하는 우리에게 생기를 부어 주셔서 마른 뼈가 살아나게 하옵소서. 가정과 직장과 물질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고통 속에서 실망하지 않게 하시고, 능력주시는 주님 안에서 해결함을 얻게 하옵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넉넉히 섬길 수 있는 여건과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생각나눔 -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날, 매우 헌신적인 한 교인이 죽어, 천국 진주 문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표지판이 보입니다. “입장료 1000원.”
어떻게 입장료를 낼까 고민하는데 저 앞에 베드로가 보입니다. 다가가 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저 한국에서 왔는데 죽기 전에 돈을 세상에 다 놓고 왔어요. 어떻게 천원을 벌어야 하죠?”
그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자네가 세상에 살 때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돈이 자동적으로 매겨지네.”
그 말을 듣고 그는 얼굴을 활짝 피며 말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32년 동안 교회에 다녔고, 지난 14년 동안은 주일예배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12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를 했어요.”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훌륭해! 자, 이제 1원 벌었네.”
그는 갸우뚱하며 더욱 힘주어 말했습니다.
“사도님! 저는 십일조 생활도 철저히 했고, 장로와 재정위원으로 있으면서 교회 재정도 관리했고, 교회 건축할 때는 건축헌금도 제일 많이 했어요. 음... 아, 그리고 성찬식을 할 때는 목사님을 도와서 떡을 나눠주는 일도 했어요.”
그 말을 듣고 베드로가 또 말했습니다.
“잘했네. 이제 1원 더 벌었네.”
그렇게 열심히 헌신한 것들을 말했는데도 겨우 2원밖에 벌지 못한 것을 알고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 말했습니다.
“사도님! 저는 교인들을 최선을 다해 섬겼고,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교와 구제에도 몸과 마음과 물질로 제일 열심히 참여했어요.”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정말 잘했네. 이제 1원 더 생겼네. 자네는 이제 전부 3원을 가졌네.”
베드로의 말을 듣고 그는 근심하며 말했습니다.
“사도님! 천국 입장료가 너무 비싸요!”
그는 울먹이며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누가 거기를 들어가나요. 아무도 못 들어갈 거예요.”
바로 그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오, 이제 들어가게. 하나님의 은혜로 자네의 부족한 997원이 채워졌어!”
결국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세연 목사 20201103 火
◉ 생각나눔 - [꿈]
지난 밤, 꿈을 꿨습니다.
어느 창고 안에 서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도서관처럼 온통 파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자 그 파일들은 저의 삶을 상세하게 기록한 파일이었습니다.
파일 이름도 다양했습니다.
- 내가 배신했던 친구들
- 내가 읽었던 책들
- 내가 했던 거짓말들
- 내가 위로했던 사람들
- 나를 웃겼던 농담들
- 아이들에게 소리쳤던 상황들
-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
계속 살펴보는데,
- 음탕한 생각을 했던 때들
이라는 파일도 보였습니다.
떨리는 마음에 집어 들어 그 파일을 보자 저의 부끄러운 삶이 너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소리쳤습니다. “이 파일은 누구도 보면 안 돼. 이것들을 없애야겠다.”
그래서 파일을 없애려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찢어지지도 않고 불타지도 않았습니다.
누가 볼까봐 얼른 원래 자리에 끼워놓고 벽에 이마를 대고 울먹였습니다.
바로 그때 또 다른 파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 내가 복음을 전한 사람들
이란 파일이 들어왔습니다.
손에 힘을 주어 파일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몇 줄만 기록되어 있고, 몇 사람의 이름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낙담해서 서럽게 울다가 아무도 그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열쇠를 감추려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가 나타났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알고 보니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 파일을 열고 죽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슬픈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저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주님! 저에 대한 나쁜 기록만 읽지 마시고, 다른 기록도 읽어보세요.” 그러나 그 말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예수님은 돌아서서 저를 연민이 가득 찬 눈길로 쳐다보셨습니다.
저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그냥 울먹이기만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다가와 팔로 저를 안고 한 마디도 없이 함께 울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파일 하나하나를 열어 예수님의 이름을 사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소리쳤습니다. “안 돼요! 예수님! 정 사인하시려면 좋은 기록에만 하세요. 저의 수치스런 기록에 어떻게 주님의 이름을 사인할 수 있어요?”
그러나 모든 파일에 사인을 마친 예수님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끝났다. 이제 아무도 너를 판단하지 못한다.”
저는 너무 감격해서 주님 품에 달려들었습니다.
그렇게 꿈에서 깨었습니다.
창세기 28장.
야곱이 …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이세연 목사 20201029 木
◉ 생각나눔 - [기다림]
『뮬러의 기도 응답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짧은 기간 안에 쉽게 혹은 단숨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 어떤 기도는 하루 만에 응답되었지만 어떤 기도는 한 달을 기다려야 했고, 어떤 기도는 64일, 수개 월, 수 년, 혹은 수십 년 이상을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응답의 열매를 맛보았다. 심지어 그가 죽은 후에 응답이 된 경우도 있었다.』 - 《5만 번 응답 받은 뮬러의 기도 비밀》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며 5만 번 이상 기도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의 삶의 비밀은 “기도보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입니다.
그는 친구 다섯 명의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세 친구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친구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뮬러는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교회에서 최후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 때 두 친구 중 한 명이 우연히 그곳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뮬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한 명의 친구는 뮬러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52년간 자기를 위해 기도했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결국 그도 뮬러가 죽던 그 해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은 후 영국을 순회하면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의 기도는 다 응답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최후 응답입니다. 당신의 모든 기도도 이렇게 응답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러나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이 곧 ‘믿음’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이세연 목사 20201028 水.
◉ 생각나눔 - [예레미야가 사용한 암호 ‘세삭’ - 1]
예레미야 25:26
북쪽 원근의 모든 왕과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니라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
예레미야 51:41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온 세상의 칭찬 받는 성읍이 빼앗겼도다 슬프다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폐하였도다
암호(cipher)는 어떤 내용을 제 3자가 알아볼 수 없도록 비밀리에 정보를 감춘 것입니다.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미리 약속된 규칙이 필요합니다.
이 규칙을 모른 채 암호를 읽으면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 조합에 불과하죠.
역사를 볼 때, 암호는 전쟁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스파르타는 전쟁 시 특정 두께의 막대기에 종이 띠를 감아야만 읽을 수 있는 ‘스퀴탈레 암호’를 사용했습니다.
로마의 카이사르 역시 한 글자를 2개씩 뒤로 미루는(예를 들어 A를 C로, B를 D로...) ‘카이사르 암호’를 사용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사용했던 ‘애니그마’ 암호는 연합군을 괴롭힌 최대의 무기였지만, 앨런 튜닝이 오늘날 컴퓨터의 기초가 되는 전자계산기를 개발하여 암호를 해석하면서 전세가 역전 되었습니다.
냉전시대를 지나 오늘날까지 암호와 암호의 해독은 국가의 1급 비밀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이런 암호가 등장합니다.
바로 예레미야서에 두 번 등장하는 ‘세삭’입니다.
첫 번째 25장에서는,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포로로 잡혀갈 뿐만 아니라, 바벨론으로 인해 멸망당할 열국들이 나열됩니다. 애굽, 우스, 블레셋 등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되는데, 맨 마지막에 ‘세삭 왕’이 마시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렘 25:26).
그렇다면 ‘세삭’은 어디일까요?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통한 징계를 선포하면서, 언약 백성을 괴롭히는 바벨론이 종국에 패망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실행하는, 도구에 불과한 바벨론이 교만해져서 오히려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비밀, 그래서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패망을 예언하면서 ‘바벨론’이라는 이름 대신 ‘세삭’이라는 암호를 사용합니다.
예레미야가 사용한 암호를 ‘아트바쉬’ 암호라고 하는데,
첫 번째 철자를 마지막 22번째 철자로, 두 번째 철자는 21번째 철자로 바꾸는 식입니다.
(카톡으로는 히브리어 전송이 안 되니까, 아래 그림으로 보여드릴게요!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읽어요!)
그렇게 하면 ‘바벨’은 ‘세삭’으로 변환되는 거죠!
왜 그랬을까요? ..
◉ 생각나눔 - [예레미야가 사용한 암호 ‘세삭’ - 2]
예레미야는 왜 이런 복잡한 암호를 사용했을까요?
역사는 절대 우연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통치 아래에서 구속사의 성취를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일을 위해서 열방을 통치하시고, 그 일을 성취하십니다.
“그 일”이란 곧 ‘하나님의 구속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선포된’(창 18:17, 암 3:7)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마 24:36, 막 13:32, 계 10:7)이기도 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선포된 비밀’이라고 하죠.
이 ‘선포된 비밀’을 잘 나타내는 것이 암호입니다.
암호 해독법을 아는 자에게는 ‘선포’가 되겠지만, 모르는 자에게는 철저한 ‘비밀’이 됩니다.
그리고 암호는 목적을 다하고 나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죠.
그래서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한 25장에서는 ‘세삭’이라고만 쓰고 있는 반면, 멸망당한 바벨론을 가리킨 51장에서는 ‘세삭’의 정체가 ‘바벨론’이라고 폭로하고 있습니다.
아직 건재한 바벨론이었지만, 예레미야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벽을 쌓아 안전을 도모한 인간의 모든 열심이 허사이며, ‘벨’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나’를 지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섬김이 모든 인생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렘 33:3).
여러분은 ‘암호 해독법’을 가지고 계신가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오늘날이지만, 열방을 통치하시며 구속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의 성취를 위해서 기도하며 헌신과 충성을 다하는 성도들에게 ‘비밀’을 알게 하십니다.
마침내 최후의 영적 전쟁에서 세삭은 멸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와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키는’(계2:26) 성도는 영원한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요한계시록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1서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고린도전서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이세연 목사 20201027 火.
[10월25일 종교개혁주일 기도문]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금까지 지켜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정신을 계승하며, 개혁된 교회로서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교회가 성령이 충만하게 하시고, 불법이 없게 하시며,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세상의 온갖 우상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탐욕과 교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원망과 불평으로 복음에서 벗어난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초대교회처럼 날마다 모이기에 힘쓰게 하시고, 말씀의 가르침 받기를 사모하게 하옵소서.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는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고단한 일상으로 신음하지 말게 하시고, 질병의 고통으로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반대와 핍박과 환난에 머리 숙이지 않게 하시고, 찬송하며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명자 의식’이 깨어나게 하셔서 말씀에 순종하며 죽도록 충성하게 하옵소서. 이 세상의 부요함보다, 이 세상의 좋은 친구보다, 나의 꿈을 이루는 것보다 주님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주님만 붙들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생각나눔 - [하늘의 시인]
철학자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누가 시인입니까? 역사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묻습니다. 과연 누가 진정한 시인입니까? 인간은 누구나 시인입니다.”
셸링의 아버지는 루터교회 목사님이십니다. 기도의 힘이었을까요! 조기교육에 성공한 그는 15살에 튀빙겐대학에 들어갔고, 19살에 첫 번째 철학 저서인 '철학 일반의 형식의 가능성에 관하여'(Uber die Moglichkeit einer Form der Philosophie uberhaupt, 1795)를 썼습니다.
형님 목사님을 둔 주명수 안수집사님은 참 부럽습니다. 서열 1위 유수진 집사님의 기도로 세희(대1), 세현(고2), 세훈(중3), 세강(초5) 막내 세영(초3)이가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이걸 ‘삼천포로 빠졌다’고 하는거죠 zz...
플라톤은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창가에 앉아, 커피만 마셔도 시인이 됩니다.
밤이 찾아오고 달빛 아래를 거닐면 시인이 됩니다.
감나무에 높이 걸린 몇 개의 감을 바라보면 시인이 됩니다.
코스모스가 춤을 추는 가을 들녘에 서면 시인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 파묻히고, 죄악의 탐욕에 빠져 사는 경우가 많죠.
어디로 향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속도에만 치중합니다.
누구나 시인입니다.
특히 성도들은 『하늘의 시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 영혼, 사랑, 죽음, 죄, 용서 등 영원에 잇닿은 여러 생각들이 있습니다.
하늘의 시인인 우리가 말을 건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거절하지 마세요. 그냥 그분을 환영하고 맞이하세요. 그러면 새로운 인생의 문이 열립니다. 당신의 삶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시인》이 되어 보실래요!
이세연 목사. 20201023 金.
◉ 생각나
◉ 생각나눔 - [내 모습 이대로 - Just come to Him as you are]
나의 ‘자존감’은 몇 점이나 될까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특징》
1) 두려움과 불안함이 크다.
2) 일을 하던 중 실수하면 ‘역시 나는 안 되는 놈’이라고 자책하고 쉽게 포기한다.
3) 망신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어렵다.
4)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 일들이 많다.
5) 실패의 경험으로 인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가 힘들다.
6) 거절당할까봐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7) 호감을 얻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허세가 있고 ‘척’을 많이 한다.
8) 우월해 보이고 싶어 하고, 타인과 비교하길 좋아하면서도 부족하거나 모자란 점을 느끼면 쉽게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9) 상대방의 감정을 자기 식대로 판단하고 부정적으로 해석해서 오해를 많이 한다.
10) 피해의식이 크고 남 탓을 많이 한다.
11) 감정에 쉽게 매몰된다. 이성적 판단이 어렵고, 상식적인 행동에서 돌출적이며, 의지적 결단이 아닌 감정적인 결정을 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특징》
1) ‘자존감이 높다 낮다’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2) 일을 하다가 실수를 하면 이 일은 원래 안 될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감정에 빠지지 않는다.
3)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힘든 상황을 잘 극복한다.
4) 마음속에 잘 담아 두지 않고 현 상황을 직시한다.
5) 새로운 도전을 통한 성취감을 좋아하기에 어떤 일이 주어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6)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인정해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7) 자기 자신을 높게 인정하기 때문에 과시하거나 ‘척’을 할 필요가 없다.
8) 상대와 비교하기보다 자기만족을 중요하게 여긴다.
9) 피해를 받았다고 느끼면 따지거나 무시한다.
10) 남 탓을 한다기보다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판단하고 그 감정을 끝낸다.
11) 감정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이성적 판단과 의지적 결단에 기초해서 상식적인 행동을 하려고 한다.
※ 다 털어버리고, 다 비워버리고, 있는 그대로 나답게 살고 싶지 않나요?
즐겨 부르는 찬송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새찬송가 214장) 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무너진 마음으로 주님께 갈 때 주님은 어떤 자격요건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282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또 나를 오라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엘리옷(Charlotte Elliott)이 자신의 회심 경험을 작사 노래한 것인데 이 곡도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그녀가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란(Malan) 목사님께 물었을 때 “Just come to Him as you are”(현재 당신의 모습 그대로 오시면 됩니다)라는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런 저런 자격 따질 것 없이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주님께로 오기만 하면 주님은 다 용서해주시고 품어주십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는 주님께 나아오기가 어렵습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여전히 불편한 마음으로 고개를 떨구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항상 곁눈질만 하다가 결국 시험거리를 만나면 쉽게 넘어지죠. 그렇게 원망과 불평의 늪에 빠진 채 비난과 비판 그리고 옛날 타령이나 하면서 아는(!) ‘척’만 한답니다.
자존감의 골짜기를 메우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똑바로 바라보기를 기도합니다.
눅 3:5~6
5.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세연 목사. 20201022 木.
눔 - [교만 총동원]
“못난 놈은 일이 잘 되면 자만심으로 부풀어 오르고, 역경에 처하면 무기력하게 자멸한다.”
오늘 「생명의 삶 Q.T.」 본문 가운데 예레미야 48장 29절에 ‘교만’의 종류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1. 자고(自高) :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높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수는 있으나, 스스로 높고자 하면 오히려 낮아집니다. 높이는 일은 남이 높여 주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 주심이 최고입니다.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 오만(悟慢) :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시편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자라고 말합니다(시 1:1). 삼상 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3. 자랑(개역한글. 자긍(自矜)) : 자긍이란 스스로 자랑하는 일입니다. 자랑은 남이 해 주어야 진실하지 자기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가장 미련한 소치입니다. 대하 25:19. 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4. 거만(拒慢) : 교만한자, 거만한 자, 자고한 자는 동류라고 말합니다. 끼리끼리 인거죠! 사 2: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이런 못난 놈...”
잠 1: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교만이 총동원(總動員)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가장 미워하는 모습입니다.
이세연 목사 20201015 木.
[주일아침기도]
날마다 말씀을 주시고 지혜의 성령으로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어둠의 권세에 눌려있던 우리의 영혼이 생명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찬양으로 기쁨을 회복하며,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바쁘다는 이유와 여러 가지 핑계로 예배의 자리를 비우고 은혜를 사모는 일을 게을리 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죄악과 탐욕의 걸음을 돌이킬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셔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복음으로 나타나서 더 많은 영혼을 살리는 구원의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겨 경건한 삶에 힘쓰게 하옵소서. 분열과 다툼이 난무하는 세상에 화해와 용서의 십자가를 증거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진리를 머리에만 간직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성도들의 삶의 우선순위가 믿음이요, 예배요, 찬송이요,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시며 형통한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생각나눔 - [역전승은 패배로부터]
운동경기를 보더라도 지다가 이기게 되는 경우, 더 멋진 시합이었다고, 명승부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역전을 위해서는 패배의 경험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승리해오던 경우에는 역전승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패배를 먼저 경험해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역전을 논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살아온 삶 속에서 실패를 경험해 본 사람, 하다못해 운전면허 시험에라도 떨어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역전을 말할 수 있다. 패배라는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오늘, 혹은 내일의 승리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역전이다.
고형진 『역전의 기도』중에서
누구나 한 두 번은 쓰디쓴 패배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지나고 나니 패배가 기회가 되었고, 패배가 삶을 더 큰 승리로 이끌었죠.
아마 항상 이기기만 했다면,
교만과 자만에 이끌려 지금쯤 어느 벼랑 끝에 서있을지 모릅니다.
패배의 경험이 인생을 지배하게 내버려둘지,
아니면 역전의 기회로 삼을지는
우리가 그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기도를 멈추지 말고, 원망치 마세요!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이제 역전될 것입니다.
시편 54:1~2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이세연 목사. 20201019 月.
◉ 생각나눔 - [큰 전투 없이는 큰 승리를 거둘 수 없다]
‘용기’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두려움’... 그보단 ‘낙심’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8번이나 들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담대해 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광야나 전쟁터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사명이 아닌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낙심이 고개를 쳐듭니다.
사탄은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하게 만드는 것이죠.
하나님이 아닌 눈앞의 문제를 바라보면 낙심과 무거움이 밀려 올 수밖에 없습니다.
“환난의 경한 것”에 한눈을 팔지 말고 환난 중에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 시선을 단단히 고정해야 합니다(고후 4:17).
야고보서 1;2~4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기쁨’은 우리에게 환란과 시련을 견딜 영적 힘을 줍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은 ‘모든 것’을 기쁨으로 여기라는 뜻입니다.
일부는 기쁨으로 여기고 일부는 슬픔으로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기쁨과 슬픔이 섞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99개의 기쁨 고리로 되어 있고, 슬픔 고리가 딱 하나만 섞여 있는 사슬이 있다고 해 보죠. 이렇게 되면 전체 사슬은 슬픔 고리 하나와 똑같이 약해집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는 말씀을 따르기가 쉽죠. 하지만 모든 것을 기쁘게 여겨야 할 때는 바로 시험과 핍박, 고난, 역경, 광야의 때입니다.
저항이 닥쳐도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지 마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힘든 상황 속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그것은 전쟁이 클수록 하나님 나라와 당신이 거둘 승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할 곳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베드로전서 4:12~13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광야에서」 존 비비어 저. 참고.
이세연 목사
이세연 목사. 20201021 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