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로나가 모든 것을 멈추어 버렸다. 이제 변화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 앞에 서 있다. 특히 한국교회가 커다란 위기를 느끼고 있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오직 성장만을 외치며 달려온 한국교회가 갑자기 그 성장을 위해 마련해 놓은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건물 중심의 교회생활만이 전부라고 가르치다가 그 건물에 모이는 것이 어려워지자 멘붕에 가까운 충격에 빠진 것이다. 그럼 대안은 없는 것일까?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면역력이 생기면 이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놓친 본질은 무엇일까?
2.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신앙생활과 교회를 어떻게 새롭게 제시할 수 있으며, 무엇을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하는 것일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면에서 디트리히 본회퍼의 삶과 책은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이 대표작은 세 권이다. ‘나를 따르라’, ‘성도의 공동생활’, ‘옥중서신’이다. 오늘은 그 중에서 ‘성도의 공동생활’을 그의 삶과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잠시 살펴 보려고 한다. 특히 부패한 독일교회, 나치, 히틀러,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를 잘 이해한다면 그의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제시할 것이다.
3.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1906년 칼 본회퍼와 파울라 본회퍼 사이에서 팔남매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923년 튀빙겐과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는데, 베를린 대학교 졸업시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이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였다는 것이 인상적이다(1927년). 그 이후 교수 자격을 취득한 본회퍼는 베를린 대학교 신학부 강사로 임명되었고(1930년), 그 해에 미국으로 건너가 1년 가까이 유니온 신학교에서 연구하면서 흑인들이 받는 인종차별을 통해서 민중들과 어울린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프랑스 개신교 목사 장 라셰르(Jean Lasserrre)의 영향으로 신상수훈에 뿌리를 두는 기독교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4.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는 베를린 대학교 신학부에서 ‘나를 따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강의를 했고(1936년), 그 해 교수직을 박탈 당했다. 1937년 게슈타포에 의해 핑켄발데 신학원이 폐쇄당하는 상황 속에서 ‘나를 따르라’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당시 독일교회에 팽배한 값싼 은혜 - 예를 들어 죄에 대한 고백이 없는 성만찬과 죄에 대한 구체적인 회개가 없어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설교 등 - 을 강력하게 비평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성육신적 실천이 없는 싸구려 은혜 대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 분을 온전히 따를 것을 촉구하였다.
5.
1939년에는 ‘성도의 공동생활’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당시 독일의 정치적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의 총리로 임명된 이후 반대파를 감금, 납치, 암살하며 1당 독재체제를 진행하다가 1934년 국민투표를 통해 총리가 대통령의 지위를 겸하는 총통이 되었다. 이것을 통해 나치당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는 제3제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동안 비축한 국력을 총동원하여 경제의 재건과 군비의 확장에 투자함으로 유럽에에서 최강국으로 발돋움 하면서 전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6.
’성도의 공동생활’은 이런 독일의 상황 속에서 1939년에 출간되었다. 물론 집필은 1938년부터 시작했고,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이 ‘성도의 교제’였다는 면에서는 오래 전부터 준비되고 몸으로 직접 실천한 내용을 책으로 집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너무 신학적이지도 않고, 반대로 너무 정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독재와 전쟁의 광기가 팽배해지고 있는 독일의 상황 속에서 너무도 무기력하고 오히려 그런 광기에 물들어 버린 독일교회를 바라보며 바른 신앙과 교회의 모습을 제시하기 위해 고민했다면, 신학적 거대 담론에 빠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혀 신학적이거나 학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본회퍼가 천재적인 신학자였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7.
그렇다고 정치적인 색깔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자신이 부패한 독일교회와 독재에 저항하는 삶을 살았고, 그런 세상 속에서서 죄와 부패와 불의와 거대한 사회 악과 정면으로 부딪혀 치열하게 싸우는 삶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현실 정치를 강력하게 비판하다든지 선동하는 내용들이 충분히 책 가운데 포함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회퍼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교회, 즉 성도의 공동생활을 그렇게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며 죽어서 가는 내세를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본회퍼는 철저하게 성도의 공동생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고 동시에 이 세상 속에, 그것도 원수들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것이 성도의 ‘이중성’이라고 생각한다.
8.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이런 이중성으로 설명한다. 교회는 하늘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땅에 존재한다. 하늘에 존재하기에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 아래 있다. 그러나 땅에 존재하기에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때 교회 공동체는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박해를 받고 죽음을 경험한다. 철저한 모순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보호가 있는데 무능력하고 연약하게 체포되어 박해를 받고 죽어야 한다니. 하지만 그리스도도 그렇게 사셨다. 그 길을 걸으셨고,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으셨다. 본회퍼도 동일하게 제시한다. 그리스도 안에 동시에 세상 속에서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고, 경험해야 하는가?
9.
본회퍼는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함께 사는 삶과 홀로 고독과 침묵으로 살아야 하는 삶으로 이것을 제시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성도들이 함께 모여 성서를 읽고, 함께 찬양을 드리고, 함께 공동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본회퍼는 공동체로서의 사귐도 강조하지만 홀로 그 사귐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체가 공동체로서 존재하려면 홀로 주님 앞에 지내는 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침묵, 묵상과 중보기도로 주님과 개인적으로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본회퍼는 섬김과 (죄의 고백이 있는) 성만찬을 제시한다. 본회퍼가 제시하는 섬김은 다른 이들을 지배하지 않는 섬김이며, 서로 죄를 고백하는 성만찬을 통해 진정한 사귐의 돌파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10.
안타깝게도 코로나 상황 속에서 주일예배 논쟁이 여기 저기에 일어난다. 그 내용을 보면 너무 정치적이거나 세속적이다. 반대로 너무 신학적인 경우가 많다. 특정 교단을 비판할 마음은 없지만 500년이나 지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가지고 주일예배 논쟁을 한다. 인터넷도 없고, 사이버 기술도 전무했던 시대의 신앙고백서를 가지고 이 시대를 평가한다는 것이 한편으론 슬프면서 우습다. 오히려 본회퍼의 책을 통해서 우리가 놓친 본질과 핵심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 상황이 지난 간 후에 한국교회는 무엇을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하는가? 교회가 진정 무엇이고,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현상을 가지고 논쟁하기 전에 그 실체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성도의 공동생활’은 이론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으면서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모든 성도와 목회자들에게 일독 아니 정독하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첫댓글 회는 하늘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땅에 존재한다. 하늘에 존재하기에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 아래 있다. 그러나 땅에 존재하기에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때 교회 공동체는 세상으로부터 핍박과 박해를 받고 죽음을 경험한다. 철저한 모순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생각해보고 고민해보게 됩니다.
'회는 하늘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땅에 존재한다' ???
제가 아는 회는 바다에 존재하는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