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田佳彦総理
拝啓
はじめてご挨拶申し上げます。私は日本に留学して帰国し、全南科学大学で日本文化や日本語を教えておる金正勲と申します。 日本文化を韓国に紹介しながら韓日の架け橋の役割を果たすことに専念する学者として,、日本を心から思う視点より御忠言申し上げます。
韓国には太平洋戦争の時、日本側の口車に乗り、三菱重工業に動員され被害を受けた勤労挺身隊ハルモに(おばあさん)が住んでおります。そして光州では二〇〇九年、「勤労挺身隊ハルモニとともにする市民の集まり」という市民団体も結成され、勤労挺身隊の被害者問題が話題となっております。このような雰囲気からでもあるでしょうが、私は、日本帝国主義時代の被害者問題の解決に献身的だった、良心的な日本作家を研究する立場なので、自ずからその問題に関心を持つことになりました。
御存じかもしれませんが、勤労挺身隊ハルモ二は、軍需工場などで不法労働に苦しめられたにも拘わらず、賃金ももらえず帰国させられたため、一九九九年初、日本政府と三菱重工業を相手に損害賠償請求訴訟を提起しました。しかし二〇〇八年、日本の最高裁判所はその訴訟を棄却してしまいました。
ところでその後、期待を掛けてもよさそうに思われるような事件がありました。中国人強制労働者の損害賠償請求訴訟が日本の裁判所から認められていないのに、二〇一〇年、日本の西松建設(株)が新潟で労働に酷使され被害を受けた中国人徴用者たちに公開謝罪をし、賠償金を払ったからです。「中国人強制労働者連合会」は、「十年掛かった新潟の中国人強制労働に対する裁判闘争は和解で解決された」という声明まで発表いたしました。
そのような影響のためか、三菱重工業も態度を変え、被害者側と二〇一〇年から東京と名古屋などで十六回も協商を進めてきたと聞いております。しかし、惜しいことに去る七月六日、勤労挺身隊ハルモ二の損害賠償の件に関わる協商は、最終的に決裂しました。したがって、被害者たちは先月、悔しい気持ちを訴え、三菱重工業を相手に慰謝料請求訴訟を地元の光州地方裁判所に提起しておる状況です。そしてここ光州だけではなく、三菱製品の不買運動は全国に拡散されつつあります。
三菱重工業が二〇一〇年から十六回も協商を進めてきたものの、個人補償の行いを留保することに決めたというニュースに全ての市民はあっけに取られております。三菱重工業は、日本の最高裁判所の判決をその理由として取り上げたり、「法的責任がない」と主張したりするそうですが、日本の企業から中国人被害者に補償を行った先例があるだけに、ただちに被害補償をし、公開謝罪をするべきだと存じます。公平性を欠いた措置に納得できず、憤怒する国民は増えるばかりです。
被害補償と公開謝罪は絶対に必要なものです。韓日友好のためにも格別の関心を払っていただき、関係者などを通じて三菱重工業の勤労挺身隊被害者の問題を一日もはやく解決してくださるように心からお願い申しあげます。 敬具
二〇一二年 十一月 十二日
全南科学大学副教授 金正勲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일본에서 유학한 뒤 귀국해 전남과학대학교에서 일본문화와 일본어를 가르치는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일본문화를 국내에 소개하며 한일가교 역할을 하는 일에 매진하는, 일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일본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충언드립니다.
한국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측의 감언이설에 속아 미쓰비시 중공업에 동원돼 피해를 본 근로정신대 할머님들이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광주에서는 2009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도 결성돼 근로정신대 피해자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 피해자 문제 해결에 헌신적이었던, 양심적인 일본작가를 연구하는 입장이기에 저 또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실지도 모르지만, 1999년초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군수공장 등에서 불법노역에 시달렸음에도 임금도 받지 못하고 귀국했기에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소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이를 기각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 후 기대를 걸어도 좋을 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국인 강제노동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일본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2010년 일본 니시마쓰(西松)건설사가 일제강점기 니카타(新潟)에서 노동하며 피해를 입은 중국인 징용자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중국강제노동자연합회는 "10여년에 걸친 중국인 니카타 강제 노동에 대한 소송투쟁이 화해로 해결됐다"는 성명까지 발표했습니다.
그런 영향 때문이었는지 미쓰비시 중공업도 자세를 바꿔 피해자 측과 2010년부터 도쿄와 나고야 등에서 16차례나 협상을 진행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배상 건과 관련한 협상이 지난 7월 6일 최종적으로 결렬되었습니다. 따라서 지난달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소송을 국내의 광주지법에 제기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곳 광주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미쓰비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2010년부터 16차례나 협상을 진행해오다가 개인보상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모두 아연실색하고 있습니다.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을 이유로 들거나,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고 들었는데, 일본 기업에서 중국인 피해자들을 보상한 선례가 있는 만큼 속히 피해보상을 하고 공개사과를 해야 하리라 봅니다. 형평성에도 어긋남은 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서 분노하는 국민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피해보상과 공개 사과가 절실합니다. 한일우호를 위해 각별한 관심으로 살피셔서 관계자 등을 통해 미쓰비시 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 문제를 하루속히 해결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12년 11월 12일
전남과학대학교 김정훈 교수
三菱重工 大宮英明社長
拝啓
はじめてご挨拶申し上げます。私は日本に留学して帰国し、全南科学大学で日本文化や日本語を教えておる金正勲と申します。 日本文化を韓国に紹介しながら韓日の架け橋の役割を果たすことに専念する学者として,、日本を心から思う視点より訴えたいと思います。
私たちの町光州には太平洋戦争の時、日本側の口車に乗り、三菱重工業に動員され被害を受けた勤労挺身隊ハルモに(おばあさん)が住んでおります。そして光州では二〇〇九年、「勤労挺身隊ハルモニとともにする市民の集まり」という市民団体も結成され、勤労挺身隊の被害者問題が話題となっております。
このような雰囲気からでもあるでしょうが、私は、日本帝国主義時代の被害者問題の解決に献身的だった、良心的な日本作家を研究する立場なので、自ずからその問題に関心を持つことになりました。
御存じのように勤労挺身隊ハルモ二は、軍需工場などで不法労働に苦しめられたにも拘わらず、賃金ももらえず帰国させられたため、一九九九年初、日本政府と三菱重工業を相手に損害賠償請求訴訟を提起しました。しかし二〇〇八年、日本の最高裁判所はその訴訟を棄却してしまいました。
ところでその後、期待を掛けてもよさそうに思われるような事件がありました。中国人強制労働者の損害賠償請求訴訟が日本の裁判所から認められていないのに、二〇一〇年、日本の西松建設(株)が新潟で労働に酷使され被害を受けた中国人徴用者たちに公開謝罪をし、賠償金を払ったからです。「中国人強制労働者連合会」は、「十年掛かった新潟の中国人強制労働に対する裁判闘争は和解で解決された」という声明まで発表いたしました。
そのような影響のためか、三菱重工業も態度を変え、被害者側と二〇一〇年から東京と名古屋などで十六回も協商を進めてきたと聞いております。しかし、惜しいことに去る七月六日、勤労挺身隊ハルモ二の損害賠償の件に関わる協商は、最終的に決裂しました。したがって、被害者たちは先月、悔しい気持ちを訴え、三菱重工業を相手に慰謝料請求訴訟を地元の光州地方裁判所に提起しておる状況です。そしてここ光州だけではなく、三菱製品の不買運動は全国に拡散されつつあります。
三菱重工業が二〇一〇年から十六回も協商を進めてきたものの、個人補償の行いを留保することに決めたというニュースに全ての市民はあっけに取られております。三菱重工業は、日本の最高裁判所の判決をその理由として取り上げたり、「法的責任がない」と主張したりするそうですが、日本の企業から中国人被害者に補償を行った先例があるだけに、ただちに被害補償をし、公開謝罪をするべきだと存じます。公平性を欠いた措置に納得できず、憤怒する国民は増えるばかりです。
被害補償と公開謝罪をしてくださるよう、市民とともにもう一度強く促します。韓日友好のために三菱重工業の勤労挺身隊被害者の問題を一日もはやく解決してくださるよう、心からお願い申しあげます。 敬具
二〇一二年 十一月 十二日
全南科学大学副教授 金正勲
미쓰비시 중공업 오미야 히데아키 사장님께
저는 일본에서 유학한 뒤 귀국해 전남과학대학교에서 일본문화와 일본어를 가르치는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일본문화를 국내에 소개하며 한일가교 역할을 하는 일에 매진하는, 일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일본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몇 자 적습니다.
우리 고장 광주에는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당시 감언이설에 속아 미쓰비시 중공업에 동원돼 피해를 본 근로정신대 할머님들이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2009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도 결성돼 근로정신대 피해자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 피해자 문제 해결에 헌신적이었던, 양심적인 일본작가를 연구하는 입장이기에 저 또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1999년초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소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이를 기각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 후 기대를 걸어도 좋을 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국인 강제노동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일본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2010년 일본 니시마쓰(西松)건설사가 일제강점기 니카타(新潟)에서 노동하며 피해를 입은 중국인 징용자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중국강제노동자연합회는 "10여년에 걸친 중국인 니카타 강제 노동에 대한 소송투쟁이 화해로 해결됐다"는 성명까지 발표했습니다.
그런 영향 때문이었는지 미쓰비시 중공업도 자세를 바꿔 피해자 측과 2010년부터 도쿄와 나고야 등에서 16차례나 협상을 진행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배상 건과 관련한 협상이 지난 7월 6일 최종적으로 결렬되었습니다. 따라서 지난달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소송을 국내의 광주지법에 제기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곳 광주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미쓰비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2010년부터 16차례나 협상을 진행해오다가 개인보상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이곳 시민들은 모두 아연실색하고 있습니다.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을 이유로 들거나,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고 들었는데, 일본 기업에서 중국인 피해자들을 보상한 선례가 있는 만큼 속히 피해보상을 하고 공개사과를 해야 하리라 봅니다. 형평성에도 어긋남은 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서 분노하는 국민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피해보상과 공개 사과할 것을 우리 시민과 함께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합니다. 한일우호를 위해 미쓰비시 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 문제를 하루속히 해결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12년 11월 12일
전남과학대학교 김정훈 교수
첫댓글 자료로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원문과 함께 다시 올려둡니다.
김정훈 교수님 멋있어요. 더 힘차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산타페호텔에서 뵌 기억이 새롭습니다.
^^참으로 멋진 편지입니다.
교수님 편지 받고 깜짝 놀랐을 미쯔비시 사장님과 총리는,,,오만을 버리고
조속히 근로정신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