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에서 ⌜나와 너⌟로
김정호
시대의 흐름은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게 하고 있다. 공자도 시류時流를 거슬리지 말라했으니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기는 어렵다.
어제가 옛날이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눈뜨면 뭔가 바뀌고 새로워진다. 나이든 노인들이 적응해서 살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웬만한 일은 휴대폰으로 인터넷으로 할 수가 있다. 젊은이들은 빨리 적응하지만 노인들은 쉽지 않다. 나는 얼마전만해도 길흉사 부조금을 은행에 가서 송금했다. 그런데 은행에서 “콕뱅”이라는 엡을 하나 깔아주면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무척 편리하다. 일일이 은행가지 않고도 소액 송금은 금방 할 수가 있다. 이런 변화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금방 할 수가 있다.
시류가 바뀐 것이 “너와 나”에서 “나와 너”로 급속히 달라졌다. 내가 교직에 근무할 무렵 약30년 전만해도 “너”를 위해서 ”나“를 희생했다. 여학생들 중에는 남자형제들을 위해서 자원해서 실업계로 또는 ”공순“이로 가기도 했다. 남학생중에도 형제들을 위해서 실업계로 또는 ”공돌이“로 자원해서 가기도 했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태백탄광에서 독일 광부로 독일 간호사로 베트남 참전으로 중동건설현장으로 가족을 위해서 나를 희생했다. 비록 내가 고생하고 힘들어도 자식과 가족이 잘 된다면 참고 견디었다. 그러한 덕으로 조국은 발전되고 보릿고개가 사라지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세계 유일무이한 한 일이라고 전 세계인이 감탄을 한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해버렸다. 이제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시대가 되었다.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정신이 거의 없어졌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악한시대가 되었다. 아니 버리는 것이 아니고 아예 죽이는 사람들도 있다. 보험금을 노리고 자식이 부모를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독살하는 험악한 시대가 되었다.
얼마 전에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두 명이나 죽인 끔직한 일이 연일 보도되었다. 무서운 세상이다. 남편을 위해 열녀는 되지못할지라도 남편을 익사 시켰다니 끔직한 일이다. 이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입 밖에 내기는 어렵게 되었다. 부모도 자식도 남편도 아내도 형제도 없다. 그저 “나”만 있을 뿐이다. 나를 위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희생되어야한다. 죽음까지 받아드려야 하는 야속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시인 조지훈은 지조론에서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娼女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지조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을 지키는 것이 지조를 지키는 것과 비슷하다. 눈물겨운 정성이 없으면 가족을 지키기 어렵다. 우리의 선조들은 사람이 지조를 지키듯이 가족을 지켰다. 오늘날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나”만 있는 시대에 과연 지금 누리고 있는 여러 가지 부와 명예와 경제력을 얼마나 오래 누릴 수 있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어쩌면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진국이라는 이름이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경제수준 교육수준 그리고 도의 수준이 다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도의 수준이 잘 되었는가? 바람직한가?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남편이 아내를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그런 악한 나라가 된다면 바람직한 선진국은 아직 요원 하지 않는가?
“나”만 있고 “너”는 없는 사회가 온전한 나라인가? “너”에서 “나”로 너무 빨리 급격히 변화된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닌 것이다. “너”가 있고 “내”가있는 아름다운 공존의 사회가 바른 것이 아닌가.(2023.1.13.)
첫댓글 2023 수필춘추 여름 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그림자 아이들이란 말이 나오기 전에 쓴 글입니다.수필춘추에는 글이 좀 더 순화되어 실렸습니다.
점점 초개인주의로 변해 가는 이 시대에 참 아픈 자화상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종교인, 위정자들과 지성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나라의 큰 스승이 없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요? 이대로 가면 로마시대 후기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걱정입니다. 그리고 교훈이 되는 따끔한 글 감사드립니다.
2023 수필춘추 여름호 기획 연재에 실린 교수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너와 나에서 나와 너로 바뀐 세태를 예리하게 짚어 주셨습니다.
나와 너의 구분이나 차별없는 세상을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