뀌뚜라미 우는 걸 보니 가을이다.
열린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여름내 묻어있던 눅눅한 공기를 정화시킨다.
내 마음속 묵은 찌꺼기까지 씻겨 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다.
몇년일까?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 혼자 고민하며 살아온 옛날을 거슬르다 보니
연민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바이러스처럼 어느날 갑자기 내 머리속으로 침투하여 대공이라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닐 것이다.
대공의 병원체가 배양될 수 있는 적당한 환경이 내 안에 만들어 졌고 거기서 긴 시간에 걸쳐
자양분을 공급받은 대공이라는 괴물은 이제 거대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나의 정신을
갉아 먹고 있다.
대공은 내가 키운 것이다.
미리 싹을 쳐서 없애야 될 것을 방치한 결과로 엄청난 댓가를 치르고 있다.
대공이라는 괴물을 내가 키웠기에 그 파괴도 나의 몫이다.
그러나 긴 세월을 통해 강해질대로 강해진 그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또 그만큼의 노력이 있어야 될 것이다.
내 과거를 다 헤집어서라도 대공의 보금자리가 되었던 모든 안식처를 없애 버리겠다.
대공이라는 괴물은 실패하고 잘못된 내 과거를 먹고 자란다고 나는 확신한다.
잘못 인식하고 있는 나의 과거와 현재의 내가 화해를 하고 더 이상 나의 과거로 부터
자양분을 얻지 못한다면 대공은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지 못한다.
오늘 나의 고통은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기 위한 진통으로 기꺼이 웃으면서 받아들이겠다.
나를 사랑하는 법, 아직 확실히 깨우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금씩 배우고 있다.
실패하거나 넘어져도 내 스스로 일으켜 주고 손잡아 주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평범한 정신을 가졌다면 오늘과 같은 자기 반성과 내적 성장도 없었을 것이라는
역설적인 생각도 해 본다.
고통은 또 하나의 기회인 것이다.
대공을 통해 좀 더 강인한 나를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대공을 앓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보다 더 발전적인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다만 갖고 있는 기대치가 아직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커서 문제인 것이다.
이제 그걸 극복하고 성취할 수 있는 방법적인 것만 찾는다면 분명 오늘 이 아픔의 시간은
내 삶의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 오늘도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