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1.
이른 봄.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나는 비를 맞으며 산책을 한다.
비는 그동안 얼마나 그리웠냐고 잔잔한 소리로 세상을 다독인다.
오랜만에 촉촉한 대지로 내 관절이 부드럽다.
주위를 둘러보니 뜨거운 피 흐르는 나뭇가지들이 환희에 젖어 하늘을 향해 팔 벌려 환영한다.
풀도 잎에 달린 물방울을 이리저리 굴리며 놀고 있다.
생기를 얻어 황홀한 나무들은 바로 잎을 틔울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금세 싸한 바람이 불더니 비가 눈이 되어 날린다.
하지만 하늘하늘 눈의 춤사위는 땅에 닿자마자 그대로 녹는다.
녹는 눈의 빛깔은 희고 창백하다.
눈은 세상 떠나는 것이 아프기에 울럼증을 앓는가보다.
며칠 전. 밤마다 강물 위 두껍게 덮인 어름장이 “쩡~.쩡~”하고 세차고 옹골찬 울림을 냈다.
울림에 울림을 더하는 얼음장의 소리는 겨울의 허리가 끊어지는 소리다.
얼음장의 울림소리가 들릴 때마다
주위 얼음은 둥그렇게 펴지는 공작 깃털처럼 굵고 가는 금이 간다.
이럴 때면 새로운 세상을 탄생시키려고 꿈꾸는 봄은, 물은 바로 이때다.
라고 생각해 즉시 금이 간 틈의 사이사이로 스며든다.
그리고 물 분자 알갱이들은 한데 모여 서로서로 어깨를 맞대고 스크랩을 짜
몸을 있는 대로 크게 부풀려 견고한 얼음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혁명하려는 봄. 버텨내려는 겨울.
이기느냐 지느냐,
죽느냐 사느냐,
물과 얼음의 싸움.
한마디로 겨울과 봄이 맞짱을 뜬다.
결과는 뻔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는 것이다.
그 뒤로는 어둡고 응축된, 차고 잔인하여 새로운 세상을 허용하지 않는
무서운 독재 체제인 겨울이 여기저기 빳빳이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푸름을 어찌 감지하지 못할까만은
힘이 없기에 눈만 껌뻑거리는 것이다.
그래도 간간이 한때는 세상을 지배했다는 자아를 잃고 싶지 않아 겨울이 품에서
마지막 자존심인 눈을 날리지만 별수 없이 물에 녹아 동장군의 장렬한 최후만 보여준다.
겨울은 이제 물에 떠도는 유랑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물의 이빨은 악착같이 얼음 가장자리를 물어뜯고 갉아내어 패잔병들을 남김없이 해치운다.
나는 겨울이 내부붕괴든 외부압력이든 대항해 살아내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사는 것은 다 저런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신은 어질다. 겨우 생명을 부지한 겨울이 마지막으로 냇가 가장자리에
구불구불 끝없이 얇게나마 얼음으로 남아있다.
이 얼음은 한낮이면 반짝반짝, 희고도 맑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자한 자연이 가는 겨울을 위해 만든 예술작품이다.
겨울이 하얀 설움을 안고 스러진 자리엔
푸른 웃음과도 같은 은은한 쑥 향기 흐른다.
첫댓글 낭만 선배님~
자연의 소리를 듣는듯
물과 얼음의 싸움의 표현이 좋습니다.
은은한 쑥 향기 같은 내음 흐르고 있네요.
초복 시원한 수박도 드세요.
잘보고 갑니다 ^^
선배님, 감사합니다~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