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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나는 의대교수였다. 79세(현재 88세)의 노인이다.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15만명의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퇴직 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당뇨병, 고혈압, 통풍, 허리디스크, 관상동맥협착, 담석 등 일곱 가지 중병과
고달픈 스트레스를 벗삼아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다.
한 쪽 눈으로도 아침이면 해를 볼 수 있고 밤이 되면 별을 볼 수 있다.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에 햇살을 느낄 수 있고,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품을 수 있다.
남의 아픔을 아파해 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원망할 시간이 없다.
지팡이 짚고 가끔 집 밖으로 산책을 했다.
한 쪽 눈이지만 보이는 것만 보아도 아름다운 것이 많았다.
지금은 다리에 힘이 없어 산책이 어럽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보이는 앞산 수풀 색깔이 아름답다.
"인생이란 바로 '여기(here)'와 지금(now)'이다.
행복을 느낄 시간과 공간과 사람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 여기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한번이라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내가 바로 즐거움이다.
적지않은 사람들은 참이 아닌 것에 시선을 꽂고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살아 보니까 그렇다. 뇌 속에서 행복을 만드는 물질은 엔돌핀이다.
엔돌핀은 과거의 행복한 추억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즐거워야 엔돌핀이 형성된다.
사람이 어떻게 늘 행복하기만 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분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제 죽은 사람들이 하루라도 더 살기를 원했던 그 시간이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다.
나는 그 소중한 오늘에 살고 있다.
괴롭고 슬퍼도 한 가닥 희망을 만들어 보자.
살아 있음이 즐겁고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자.
지나간 세월은 어렵게 살았더라도 다 행복했던 거라고 나이든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짜릿하게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사람은 그 추억으로 사는 것 같다.
괴로움을 겪어 봐야 행복할 줄 안다.
인생살이 살면서 오늘 지금 여기가 제일 중요하다라는 말이 맞는 말 같다.
아내없이 살아 보니까 있을 때 몰랐는데 젓가락 한쪽이 없어진 거야 !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 장인이 하신 말씀인데 '팔자로 받아들이면 다 보여' 행복의 답은
'바로 지금, 여기 내가슴' 에 담겨있다.
고개들어 저멀리 하늘을 한번 보자.
- 이근후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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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훈의 '만남, 길을 묻다' ]
이근후(88) 선생은 정신과 교수로, 전문의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1935년 대구에서 출생해 한국전쟁을 거친 이후 경북대 의대에 진학했다. 레지던트 시절이던 1960년 4·19 시위 때 학생회장 지위로 10개월간 감옥 생활을 했다. 전과자가 되면서 자신을 받아주는 수련 기관이 사라졌다.
1968년 박정희 정권이 사면령을 내려 한숨 돌리려 했는데 다시 군입대 영장이 날라왔다. 선생은 그랬다. “중고등학교하고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고.
당시 의대에서 정신과를 선택한다는 건 덤으로 정신과 전문의까지 ‘정신장애인’ 취급 받을 때였다. 연세대에 잠시 있다가 이후 이화여대 정신과로 와서 의사와 교수로 후학을 가르쳤다. 삶이란 참으로 위대하고 거대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가장 허약하고 그래서 더 안타까울 때가 있다. 선생이 그렇다.
그래서 너무 긴 글이 오히려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의 저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2013년) 라든가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2019년) 라든지 ‘마음먹은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다’라는 저서들을 읽는 게 그의 생의 지혜를 깨닫는 데 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은 한 채의 빌라에 자식들과 모여 살고 있다. 그러나 4층에 사는 그와 아내는 결혼한 성인인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사는 아래층 집안의 비밀번호도 모르게 했다. 정년 퇴임 무렵, 큰아들의 제의로 그렇게 17년 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그와의 인터뷰에서 자식을 방법론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성장한 자식을 놓아줄 수 있을 때, 자식은 더 성숙하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었다.
현재는 가족아카데미아 공동대표로 일을 하고 있다. 사회적 문제와 법, 인문학, 정신장애를 연구하는 그 공간을 만든 게 1995년 회갑 때였다. 그곳에서 이타적 삶을 지향하는 ‘정신들’이 모여 삶을 해석하고 있다.
선생을 만나기 위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자택을 찾았다.
문) 꿈이 없는 사람은 연료가 없는 자동차와 같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나이 들어감은 이루지 못할 꿈을 하나씩 버리는 과정 아닐까요?
“버린다는 말은 별로 좋지 않아요. 그래도 아직 실천할 수 있는 꿈을 쫓는다는 표현이 좋겠죠. 그럼 실천할 수 없는 건 버린다는 게 내포(內包)가 돼요.
버린다는 걸 앞세우면 사람에 따라 부정적인 말에 함몰돼 버리는 거죠. 같은 말이라도 내가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꿈은 실현한다 이러면 할 수 없는 걸 버렸다는 말이 되는 거죠. 같은 값이라면 긍정적인 말로 하자 그래서 그런 말을 했죠.”
문) 선생님의 행복론은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사람한테는 누구한테나 의미가 있는 거요. 의미의 정도라든지 농도가 다를 수는 있어요. 박 선생(기자를 지칭)에게 폐지 줍는 사람이 불행한 것처럼 보이죠. 그렇죠. 그런데 내가 보는 시각은 그 사람이 행복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행복이라는 건 똑같은 정의의 행복이 아니에요. 그분이 어떨 때 행복할 거 같아요. 생각해 봐요.”
“폐지가 많을 때 행복한 거죠. 폐지가 많으면 수거해서 돈이 많이 나오니까. 우리가 보기에 그분이 불행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분 기준에서 보면 그분한테도 폐지가 많으면 행복하다는 얘기요.”
문) 76세의 연세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 수석 졸업했습니다. 무엇이 선생님을 열정과 공부의 길로 이끌었을까 궁금합니다.
“열정이라기보다는…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는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공부했어요. 그게 목적이라. 공부를 잘하면 부모가 즐거워하고 내가 인정을 받는 거니까 즐겁잖아요. 그건 자기를 위한 공부가 아니잖아요.
고등학교 때는 6·25 전쟁 때니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공부할 여가가 없었어요.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그때의 전쟁을 연상할 수 있겠어요. 못 하죠. 나는 체험한 사람인데 그건 말로 해 봐야 가슴에 가 닿지를 않아요. 젊은 사람들이 전쟁 영화를 보면 재밌으니까 전쟁도 해볼 만하죠.(중략)
그 다음은 수련의인데 아주 즐겁지 않게 보냈어요. 그때 수련의 제도가 처음 생겼는데 봉급이 없어. 거기다가 내가 4·19세대라 그때 학생회장을 했는데 데모 선두에 서다가 5·16(군사 쿠데타)까지 연결돼서 내가 처벌을 받았어요. 전과자가 된 거지. 수련의를 할 수가 없어. 월급도 없지, 고통스러웠어.
1967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사면령을 내렸어요. 죄가 없어지고 보통 사람으로 돌아간다 했는데 군대에서 또 오라는 거야. 그래 늦은 나이에 군대 가서 복무하고.”
“20대 후반 정도. 제대를 했는데 그때 의과대학이 전국에 여덟 개밖에 없어. 그 중에 정신과가 있는 학교는 4개뿐이었어요. 나는 제일 하고 싶었던 게 학교에 남아서 교수가 되는 거였어. 그런데 공부를 잘했나, 수련의를 정상적으로 받은 것도 아니니 (교수 꿈과는) 거리가 멀어져버린 거야.
그랬더니 연세대학에 계시는 과장 선생님이 와서 일을 좀 하라고 그래. 요새는 경쟁이 심할 건데 그때는 숫자도 적고 해서 나한테 기회가 왔지. 그때부터 내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수련의를 가르치려면 내가 알아야 되잖아요. 연세대에 있을 때 엄청 공부를 집중해서 했어요. 거기 3년 있다가 이화대학(이화여대)으로 옮겼지.
그러면 공부를 하지 말라는 얘기인가. 그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된다는 거죠. 사이버대학 문화예술학과는 내가 하고 싶었던 건데 기회가 없어서 못 한 거죠. 내가 하고 싶은 데를 들어갔단 말이야. 그러니 내가 점수를 잘 따나 못 따나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어. 또 공부하면서 남들을 가르쳐야 할 의무도 없어. 자유롭잖아. 그러니까 제일 재미가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직장일 다 하고 얼마나 피곤하겠어. 집에서 짬을 내서 공부하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하고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게 제일 좋았다는 뜻이에요.”
문) 88년의 인생에서 선생님께서 가장 크게 깨달은 교훈이 있을까요?
“내가 의과대학 다닐 때 생각은 정신과 환자들은 완전히 돈 사람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그렇게 가르쳤어요. 그런데 오래 환자를 보다 보니까 그게 틀렸어. 편견이야. 뭐냐 하면 그 사람이 괴로워하는 한 가지가 정신병적인 거야. 그 이외에는 건강한 사람보다 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쉽게 얘기하자면 이 손가락이 정신이라고 한다면 요 손가락이 하나 없는 거지. 다른 신체적인 거는 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거죠. 그렇게 환자를 보면서 정신과 환자라고 하면 폐인이다, 미쳤다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럼 이 사람은 왜 환자가 됐을까. 이유는 많은데 내가 느낀 건 이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너무 집착해. 본드를 붙여놓은 것같이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러면 거기에 집착하고 있는 한은 현실이 보이지가 않아.
우리는 지금 현재에 살잖아요. 지금 인터뷰하는게 현실인데 이거를 제쳐놓고 어릴 때 누가 나한테 나쁜 소리를 했는데 그 원한 때문에 어금니나 우두둑 갈고 집착하고 있다면 나하고 인터뷰가 잘 될 리가 없잖아요.
환자를 보다 보니까 그런 분들이 너무 많아. 그런데 그게 객관적으로 듣기에는 별것이 아닌 게 많아요. 그러나 그 자신에게는 굉장히 큰 거죠. 우리는 과거는 추억으로 떠오르잖아요.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그러나 집착이라는 것은 거기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잖아.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는 거지.
" 아직 닥치지도 않은 것, 이것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 결론은 현재에 충실하라는 거죠.”
문) 성공한 이들보다 실패한 이들에게서 더 많은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누군가 얘기하더군요.
“정신과에 오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면역력이 적다고 표현할 수가 있어요. 신체적인 면역력이 아니고 정신적인 면역력이죠. 예를 들면 박 선생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모욕적인 말이 있을 거예요. 그럼 내가 그 말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견디겠어요. 분하든지, 내가 나를 자책하든지, 방어를 못 하는 거예요.
바이러스에 전염되듯이 면역력이 없으니까 그것 때문에 자기가 고심하는 거죠. 비유하자면 대장간에서 쇠붙이를 망치로 불에 달궈가지고 두들기잖아요. 많이 두들긴 쇠가 단단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마음이라는 것도 그런 두드림을 많이 받아요.
두드림을 많이 받는다는 거는 실패잖아. 실패를 거듭한 사람이 좌절해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단해져 가지고 면역력이 더 커지고 정신적으로 더 성숙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말고 그걸 쇠를 담금질하듯이 나를 담금질해주는 스스로 만든 정신적인 백신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라는 것이 이해가 될 겁니다.”
문) 왜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구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누구는 가난하고 볼품없이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생명체의 존엄성으로 말하면 그건 평등해요. 그런데 지금 질문하듯이 다르거든. 왜 다를까를 생각하면 그건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카르마)이에요. 내가 가꾼 대로 받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태어날 때는 내가 가꾼 것도 아닌데 왜 기질을 받고 나왔나. 그건 내 조상들이 쌓아놓은 경험이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피할 수가 없는 거죠.
내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아프리카에 적응하는 DNA가 있을 거고, 또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미국에 적응하는 DNA가 있겠죠. 한국은 또 한국이고. 다르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 다음은 학습이라. 출발점은 같아도 어떻게 배웠는가, 어떻게 적응했는가, 어떻게 습득했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거예요.”
문) 용서한다는 건 한쪽 뺨을 치면 다른 쪽 뺨을 내주라는 기독교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나는 종교가 없어요. 그건 내가 무신론자라는 뜻이 아니고 종교하고 인연을 맺을 기회가 없었다는 뜻이죠. 저는 기독교나 불교를 부정하지 않아요. 그런데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라는 건 성경에 나오는 얘기인데 나는 그건 용서라고 생각을 안 해요.
정신과적으로 선의(善意)로 해석하면 용서일 수도 있지만 한쪽 뺨 때리니까 오기가 생겨서 이쪽도 때려 봐 하는 저항일 수도 있단 말이죠. 그건 종교적으로 생각해야지 달리 해석할 수는 없어요.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우리 둘이 다퉜어. 박 선생이 나한테 뭘 잘못했어요. 그러면 나한테 사죄를 해. 그럼 내가 용서해 줄게.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되는 거지.
나는 그게 틀렸다고 생각해요. 용서는 박 선생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지만 내가 그 화를 성숙하게 다스리지 못하고 화를 낸 것이 잘못이야. 화를 낸 나를 먼저 용서하는 거지. 그리고 나서 박 선생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게 순서지. 나만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 둘이 다툰 건 박 선생도 잘못이 있고 나도 잘못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러면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런데 사람들은 원인을 상대방한테서 먼저 찾아요. 당신이 잘못했다고 하면 내가 용서해 주겠다(웃음). 그렇게 되는 거거든. 용서라는 건 그렇게 되지 않아요. 화를 내는 걸 다스리지 못한 너 자신을 먼저 용서하라는 거죠.
용서하면 보여요. 용서하지 않으면 안 보여. 박 선생이 잘못했다면 그것만 보여. 그러나 내가 나를 용서하면 박 선생도 보이고 주변도 보여요. 나는 용서를 그런 식으로 해석해요.”
문) 인간의 삶과 운명은 개척되는 걸까요?
“우리 속담에 팔자 고친다는 말이 있잖아요. 내가 생각하는 팔자 고친다는 말은 운명을 바꾼다는 거죠.
그런데 운명이라는 건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타고나는 DNA, 즉 기질이란 말이거든. 그건 유전자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바꿀 수가 없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인은 나거든.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일일이 수학 계산하듯이 해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건 아니거든. 내가 한국에 살고, 자연에 접해서 살고, 아니면 아파트에 산다고 할 때 그 사는 환경에 따라서 내가 거기에 적응하는 습관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 습관이 팔자야. 팔자는 내가 고칠 수가 있어요.
아파트가 싫으면 시골 가서 조용한 데서 살면 되잖아요. 그건 내가 선택하는 거잖아. 그러나 선택할 수 없는 건 내가 타고난 DNA라는 거죠. 팔자는 고칠 수 있어요.”
문) 인간은 유한자(有限者)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죽음에 대해서 나도 많이 생각했어요. 젊을 때는 가르치기 위해서 하고 뭣도 모르고 살았지. 그런데 자꾸 죽음에 가까워 오는 나이로 오니까 오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어. 오면 받아야지. 이걸 아득바득해서 어떻게 연기한다든지, 내 식대로 어떻게 한다든지 그런 건 적합하지 않을 거 같아.
오면 오는 대로 받아야지. 그게 겸손일지는 모르겠어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걸 거부하려는 사람도 있고, 또 우울에 빠져서 맨날 죽음만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그걸 못 기다려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좀 고통스러움이 오더라도 순리대로 따라가는 게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배우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릅니다.
“동의해요. 왜 동의하냐면 그 사람은 코미디언이기 때문에 코미디언 시각으로 보니까 코미디라 그 말이죠(웃음).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국회의원을 한 적이 있죠. 국회의원을 그만두면서 하는 말이 ‘코미디언 할 필요 없더라, 국회에 가니까 전부 코미디언’이라고 해요(웃음).
그도 코미디언이기 때문에 코미디언의 시각으로 국회의원들을 보니까 코미디언보다 더 코미디언인거야. 그러니까 자기가 어떤 안경을 끼고 보는가에 따라서 그건 결정이 되는 거지. 반드시 희극이다, 혹은 비극이다 그렇게 얘기하기는 어려울 같아요. 그러나 채플린이 한 그 말은 코미디언으로서 본 시각이므로 맞는 말이죠.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시각에서 말하겠지.”
문) 아르헨티나 시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50대에 실명을 하면서 쓴 시에서 “신이 내게 책과 밤을 동시에 주셔서 경이로움과 아이러니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시력을 잃으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습니까?
“그분 말에 동의해요. 동의를 하는데 저런 말을 하자면 엄청 고통스러워야 하는 거에요. 남이 읽으면 굉장히 성숙해서 이런 말이 나오는구나 생각하지만 내가 시력을 잃어보니까 이건 발버둥치는 거란 말이야. 발버둥을 쳐야 자기 불안이 없어지는 거야.
세상이 온통 암흑이라고 생각해봐요. 즐거울 게 뭐가 있겠어요. 보르헤스와 내가 통하는 게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내가 잘 써요. 시력이 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이러면 답이 나와요. 어둡다는 여기에 매몰돼 버리면 깜깜한 거요. 그렇잖아요. 발버둥친다는 말은 아주 극단적인 건데 어둡더라도 그 틈새에 밝음이 있다는 얘기요.
어디 시력뿐이겠어요. 장애인은 장애를 갖고 있는 게 엄청 불편할 거예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하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내가 수련의를 할 때만 해도 장애인들은 밖에 나오지를 못했어요. 우선 가족들이 숨기고, 나오면 조롱감이 되니까 나오지를 못해요. 지금은 장애인을 폄하하는 단어를 써도 안 될 정도로 사회가 달라졌잖아요. 발전된 거죠.
그건 사회가 발달된 것이기도 하지만 장애인 스스로, 아니면 장애인 부모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뜻으로 키웠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다리가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뭘 해야 하지. 휠체어 타고 가면 된다는 거죠. 보르헤스의 얘기가 옳은 말이요. 그런 뜻을 장애인들은 잃지 말아야 해요.”
문) '삶의 고통은 미래의 불안에 있다'고 했는데, 미래를 불안해하는 건 인간의 고유한 존재론적 질문이 아닐까요?
“그건 누구나 갖는 거지. 내가 안 가본 길을 가자면 불안하잖아요. 나보고 지금 서울 강남의 어디서 만나자고 하면 안 가봤으니까 좀 불안해. 그러나 내가 사는 이 근방 어디서 만나자고 하면 눈이 어두워도 상상해 가니까 별로 불안하지 않아. 그러니까 단지 가보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불안이 있는 거예요.
불안이 있지만 건강한 사람은 그 불안을 피하지 않고 직접 경험해 보는 거죠. 첫 번째 경험이 중요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두 번, 세 번은 찾아가기가 쉬워요. 그래서 장애인들도 첫발 내딛기가 참 어려워요. 남이 나를 멸시하지 않을까, 또는 내 능력이 비장애인에 비해서 떨어진다고 하면서 자격지심을 갖고 안 나서는 거에요.
그러지 말고 서툴더라도 나서야 돼요. 그게 출발점이 되면 거기서부터 한 단계, 한 단계 발전을 하는 거에요. 그건 내가 생을 마칠 때까지 발전을 하는 거요.”
문) 나이 들수록 성경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가장 좋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덮어놓고 감사해야죠(웃음). 따질 것 없이 감사해야 돼요. 내가 젊을 때는 성경이 단편적으로 감사하라고 강조하니까 어떤 저항이 생겼냐면 감사할 일도 있고 감사하지 못할 일도 있는데 범사에 감사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말도 안 된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박 선생은 젊으니까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감사하지 않을 일이 없어요.”
“남이 나한테 싫은 소리를 하면 감사할 게 뭐가 있어. 내가 하던 일을 못 하게 하면 그것도 감사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게 도처에 있어요. 감사하지 못할 일이 있다는 말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놓고 보니까 그 일조차도 감사하더라 이 얘기죠. 예를 들면 누가 나를 ‘왕따’시켰다. 감사할 일이 아니잖아요. 왕따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택했더니 성공을 했다. 그러면 당연히 감사하지. 그때는 감사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말이요.
나이 들어서 생각하니까 범사라는 이 말이 꽂히는 거야. 범사라는 건 따지지 말라는 거죠. 다 감사하라는 말이거든. 이 말이 참 좋아요.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감사해요. 감사할 이유도 없지만 그래요. 누가 나한테 잘해줘서도 아니고. 그런데 눈 떠서 숨쉰다는 게 감사한 거요.
이렇게 생각이 드니까 범사라는 말이 이해가 돼요. 내가 젊었을 때부터 감사 못 할 일이 있으면 달라붙어 싸우기도 하고 감사 못 할 일도 너무 많았는데 나이 들어 보니까 그 일조차도 결과론적으로 나한테 감사한 자극이 되었더라는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거요.”
문) 인간이 서투름을 인정하지 않고 완벽만을 추구할 때 어떤 오류가 발생합니까?
“인간이 완벽하지 않는데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게 병이에요. 완벽할 수가 없지. 왜 완벽할 수 없는가. 우선 박 선생은 한국이라는 온대 지방에 사는 거예요. 갑자기 북극에 갖다 놓으면 살 수 있겠어요. 못 살죠. 그러니까 북극에서도 살고 남극에서도 살고 적도에서 살고 한국에도 살고 이런 전천후 사람이 있느냐 이 말이죠. 따지자면 없잖아요.
탐험가가 잠깐 갔다 올 수는 있지만 어디 갖다 놓아도 완벽하게 사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것은 미완성품이에요. DNA를 갖고 나오는 미완성품을 가지고 자기에게 부여된 삶만큼 살면서 자기를 다듬어가는 거예요. 다듬어가는데 그 목표가 완벽하고 싶다는 거죠. 완벽하다는 건 없어요.”
“그건 소망이에요. 완벽하다는 게 뭐겠어요. 실수도 하나도 안 하고 모양도 팔등신이 돼야 하고 하나의 흠도 없어야 될 거 아닙니까. 내 생각은 신(神)도 흠이 있을 거 같아. 종교인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도 신도 만물을 창조했다면 좋은 사람들을 창조를 하지 말이지,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건 왜 만들어가지고 애를 먹이냐(웃음).
짓궂은 어린애 같은 생각인데 그렇게라도 생각해 보면 신도 완벽하지 않아요. 완벽이라는 건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완벽이라는 말은 쓰지 말고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쪽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거.
내가 처한 환경과 내 성격과 행동이 나 자신을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서 조금 더 나은 수준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거죠.”
박종훈기자
출처 : e마인드포스트(http://www.mindpost.or.kr)
첫댓글 인생이란 바로 '여기(here)'와 지금(now)'이다.
행복을 느낄 시간과 공간과 사람은 바로 지금이다."
좋은글에 머물다 갑니다.
오늘도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