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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주인이 모르는 이름
천마신 독고령, 그는 검왕 남궁혁을 응시했다.
"검왕, 이렇게 갑자기 폐를 끼치게 되서 미안하네."
천마신 독고령의 말과 태도는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도 정중했다. 검왕 남궁혁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무슨 말씀을.. 노선배님의 용안을 뵐 수 있어서 오히려 영광입니다."
환마신 여무송이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어린 애야, 우리 천외오마신이 이런 초라한집에 찾아온 것은 다 검왕제일가를 위해서다."
일순, 요마신 미랑은 교태롭게 웃었다.
"호호호… 검왕의 나이도 벌써 오십이 넘었는데 어린 애라니요?"
환마신 여무송은 웃으면서 남궁초혜를 가리켰다.
"하하핫… 저 계집은 검왕의 딸이며 잠곡의 손녀이니 우리와는 어떤 사이지?"
요마신 미랑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주공께서는 왜 안 오시지?"
성질이 급하고 단순한 혈마신 잠곡이 불쑥 입을 열었다.
"혹 사고를 당하시지 않았을까?"
환마신 여무송은 혈마신 잠곡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자식, 방정맞은 소리는…"
허자, 천마신 독고령은 단정하듯이 말했다.
"주공께서는 하늘 아래 가장 강한 분이시다."
중인들은 내심 의아심이 들었다.
(대체… 천외오마신이 주공이라 부르는 인물은 누구란 말인가?)
의혹과 경이감을 금치 못했다. 바로 그 같은 시각… 검왕제일가의 거대한 대문 앞,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한 백의 서생이 찾아들었다. 표리천영! 다름아닌 바로 그였다. 표리천영은 문을 지키는 청년무사(靑年武士)에게 정중히 입을 열었다.
"남궁대협을 만나러 왔으니 안으로 통보해 주시오."
청년무사는 불쑥 찾아온 백의서생을 쭉 훑어보았다.
(멋있는 사내다…!)
청년무사는 내심 경탄을 금치 못했다. 허나, 표리천영의 모습은 영락없는 백면서생에 지나지 않지 않은가?
"본 검왕제일가에는 지금 귀빈(貴賓)이 찾아 오셨기에 가주께선 시간을 낼 수 없으시오."
예의는 차렸지만 분명 축객령이었다. 표리천영은 미소를 잃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불초는 오늘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기로 약조가 되어 있으니 안으로 소식이라도 전해 주시오."
청년무사는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글쎄, 지금은 귀빈 때문에 안된다고 하지 않소?"
그러나, 표리천영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여전히 사라질줄 몰랐다.
"그 귀빈이 누군지 혹 말해 줄 수 있겠소?"
"나도 모르오. 다만 전대의 대마황들이라는 것밖에는…"
청년무사는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재촉했다.
"그들은 사람을 파리 죽이듯 한다니까 당신도 해를 당하기 전에 빨리 돌아가시오."
이곳 대문과 대청까지는 줄잡아도 백 장은 되었다. 헌데…
"…!"
대청에서 술을 마시던 천마신 독고령의 표정이 돌연 굳어졌다. 이어,
"주공께서 지금 대문 앞에 계시다!"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팍! 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와 함께, 나머지 사인(四人)들의 모습도 차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
"…!"
검왕 남궁혁, 그리고 팔대호법과 내외총관을 비롯한 중인들도 앞을 다투어 대문으로 뛰어나갔다.
(천외오마신의 주공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공할 괴물임이 분명하다…!)
중인들은 긴장했다. 천외오마신의 주공…! 그 신비인의 정체를 알고 싶은 의혹, 그리고, 천외오마신을 굴복시킨 인물을 마중하지 않았다가는 행여 무슨 불행이 닥칠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헌데 그때, 천외오마신은 대문에 이르기도 전에 한 소리를 들었다.
"글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는 것이오? 정말 관(棺)을 보아야 눈물을 흘릴 것이오?"
청년무사의 언성이 높아져 있었다. 순간, 퍽…!
"으윽…!"
청년무사는 돌연 얼굴을 감싸쥐고 땅 위를 굴렀다. 영문도 모르는채…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피가 홍건했다.
"어느 놈이…"
청년무사는 욕을 하다 말고 제자리에 석고상처럼 하얗게 굳어지고 말았다.
(난 주.. 죽었다…!)
바람 처럼 나타난 오인(五人), 그들은 바로 조금전까지도 자신이 대마황이라고 말하던 괴인들이 아닌가? 뿐이랴, 그들은 백면서생처럼 보였던 미서생 앞에 일제히 바닥이 무너지듯 무릎을 꿇지 않은가!
"제황…!"
표리천영은 천외오마신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일어들 나시오!"
이때,
"…!"
"…!"
뒤따라 나왔던 검왕 남궁혁 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천외오마신의 주인이 저런 어린 미서생이었다니…!)
자신들의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만큼 천외오마신의 위명은 가히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대체 저 미서생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중인들은 한결같이 의구심이 들었다. 허나, 검왕 남궁혁! 그는 이러한 경악과 의문으로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무남독녀인 남궁초혜의 모습이었다.
(아아… 너무도 멋있는 오빠다…!)
아직도 치기를 채 벗지 못한 십육세의 소녀… 구중궁궐같은 집안에서만 곱게 자라온 그녀의 가슴속에 거센 변화가 일고 있었으니… 표리천영, 그는 여난(女亂)의 운명을 지닌 것인가? 이때, 표리천영은 경악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검왕 남궁혁에게 다가갔다.
"남궁대협,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합니다."
검왕 남궁혁은 황급히 답례했다.
"공자, 무슨 말씀을… 어서안으로 드시지요."
일행은 곧 대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서, 검왕 남궁혁은 표리천영의 사소한 거동까지도 주의를 기울였다.
(대체 누구인가? 무공을 전혀 모르는 서생같으면서 희대의 대마황인 천외오마신을 거느리고… 그러면서 예의를 잃지 않고 겸손하니..)
검왕 남궁혁, 검왕제일가의 주인인 만큼 그 무공이 절정에 이르렀고 안목 또한 대단했다.
(그렇다. 천외오마신 같은 희대의 대마황이 이런 공자의 구속을 받게된 것은 무림의복일 것이다!)
그사이… 일행은 검왕 남궁혁의 안내에 의해 내실로 자리를 옮겼다. 내실은 넓고 아늑 했으며 고아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주안상이 새로 들어오고, 표리천영을 중심으로 천외오마신이 양 옆으로 자리해 앉았고, 그 맞은 편에 검왕 남궁혁 부녀와 내외총관이 마주 앉았다. 문득,
"…!"
표리천영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머물렀다.
(저것은…?)
한 폭의 그림, 무척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은 듯 낡고 낡은 고서화(古書畵)였다. 망망대해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에 낡은 초가(草家)가 있고, 그 초가의 옆에는 초부(草夫)가 아름다운 정원에서 꽃가지를 다듬고 있는 그림이었다. 담소를 하던 중인들은 표리천영의 모습을 보고 문득 말을 끊었다.
"무척 오래된 고화(古畵)지요."
검왕 남궁혁이 표리천영의 시선을 따라 화폭에 눈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표리천영은 그제서야 자신이 너무 격동했음을 깨달았다.
"매우 훌륭한 그림이군요. 혹 어느 대인의 유물인지 아십니까?"
검왕 남궁혁은 매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이곳에 검왕제일가를 세우신 초대선조(初代先祖)이신 환우검조(桓宇劍祖)께서 남기신 유품입니다. 저희 검왕제일가의 가보(家寶)이지요."
"…!"
표리천영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화폭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림… 저것은 단순한 산수화가 아니다!)
중인들은 다시 술잔을 기울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젖어들었다. 조금전의 일로 해서 그림에 대해 폭넓은 견해가 오가고 다시 학문과 시조를 비롯한 역사적인 사실들로 화제가 옮겨갔다. 화제가 거듭될 수록…
"…!"
검왕 남궁혁의 눈에는 놀람의 빛이 충만되어 갔다.
(세상에 이런 초기재가 존재하다니…!)
표리천영, 그는 도통 아무것에도 막힘이 없지 않은가? 시(詩), 서(書), 화(畵), 금(琴)은 물론 경(經)과 불(佛)과 유(儒)를 비롯하여 도(道)와 역리(易理)에도 막힘이 없지 않은가?
(멋있어… 너무 너무… 아아…)
남궁초혜, 그는 표리천영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천진스런 눈에는 무지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환상의 꿈을 꾸듯… 허나, 검왕 남궁혁은 딸의 그러한 모습을 깨달을 여유가 없었다. 표리천영에게 신경이 모두 쏠려 있으므로..
"공자, 오늘 본인은 크게 안계를 넓혔소이다."
검왕 남궁혁은 표리천영의 잔에 가득 술을 따랐다. 이때, 그의 눈에 문득 한 줄기 묵광이 내비쳤다. 표리천영의 우수에서 반짝이는 하나의 묵환! 바로 야화묵환이었다.
"혹시…"
검왕 남궁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자, 혹시… 뇌공천자(雷公天子) 표리천영 대협이 아니신지요?"
표리천영은 어리둥절했다.
"표리천영이 소생의 천명인 것은 아오만 뇌공천자란…"
검왕 남궁혁은 두 눈 가득히 기대와 놀람의 빛을 띠고 있었다.
"최근에 사자철검보에 가셨던 사실이 있으신지요?"
"그렇소만…"
표리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순, 검왕 남궁혁을 위시해서 내외총관이 모두 신형을 일으켰다. 이어,
"태산을 몰라 보았으니… 공자, 영광이외다."
"…!"
표리천영은 얼떨떨한 느낌이 었다. 검왕 남궁혁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사자철검보의 사건으로 인하여 공자의 명호는 이미 천하무림에서 모르는 자가 없소이다. 천사마부의 오백여 고수들을 단신으로 해치웠으니…"
그렇다. 뇌공천자(雷公天子)! 이 이름은 이미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다만 표리천영 자신만 모르고 있을뿐…
--- 그 누구도 뇌공천자를 분노케 하지말라!
--- 뇌공천자가 분노하는 순간 벼락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뇌공천자는 가히 신화적인 이름이 되어 있었다.
(후훗… 무림의 소문이 이처럼 엉뚱한지 몰랐군. 사자철검보의 일로 인해 뇌공천자란 명호가 생기다니..)
표리천영은 실소했다. 허나 이내, 그는 검왕 남궁혁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대협… 사실 불초가 이곳에 온 까닭은 바로 천사마부의 동태 때문이오."
"천사마부 때문이라니요?"
검왕 남궁혁은 흠칫했다. 표리천영은 말했다.
"대협도 천사마부에 대해선 이미 짐작하는 바가 있을 것이오. 불초 또한 그들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소."
이어, 그는 천외오마신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혈마신 잠곡이 입을 열었다.
"노부는 제황의 명에 의해 암암리에 무림의 동태를 살폈다."
"…!"
검왕 남궁혁은 경청했다.
"현 무림은 온통 천사마부의 수중에서 놀아나고 있으며 특히 십대세가는 그들이 지목한 표적대상의 첫번째 임에 틀림없다!"
"그… 그럼…?"
검왕 남궁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십대세가는 구파일방을 능가하는 명성을 가지고 있지… 때문에 천사마부는 너희들을 포섭하고 곧 이어 구파일방을 치려는 것이오."
혈마신 잠곡은 말을 마치고 입을 다물었다. 허자, 표리천영은 다시 말했다.
"불초는 천사마부의 음모를 막기 위해서 혈마신과 약간의 관계가 있는 검왕제일가의 도움을 얻고자 했던 것이오."
검왕 남궁혁은 표리천영의 겸허한 말에 고마움을 느끼는 한편 존경심마저도 생겨났다.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가?
(뇌공천자… 무림은 이분에 의해 회생되리라…!)
표리천영은 계속 말을 이었다.
"검왕제일가는 십대세가 중에서 으뜸이라 할 수 있소. 그러니 대협께서는 십대세가의 운명을 위해 노력해 주셨으면 고맙겠소."
검왕 남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하나… 십대세가는 지역적인 이유와 명예로 인하여 상당히 폐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장담을 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것은 불초가 천외오마신을 통하여 노력해 보겠소."
"…!"
검왕 남궁혁은 든든한 느낌이었다. 천외오마신! 그들이 있으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천외오마신의 무공은 전설적이다… 비록 천사마부라 하더라도 그들은 끄덕없을 것이다!)
이때, 표리천영은 검왕 남궁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협, 외람된 말이오만 무공중에서 혹 실전된 것은 없으시오?"
검왕 남궁혁은 몹시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공자! 그것을 어떻게 아시오?"
바로 그때,
"으--- 아--- 악!"
비명에 이어,
"크하하핫… 검왕 남궁혁은 어디에 있느냐?"
엄청난 광소가 그들의 말을 끊었다. 검왕 남궁혁과 중인들은 곧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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