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8일 토요일
날씨: 역시 흐렸지만,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하롱베이를 보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식사를 맛있게 하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배를 타고 물살을 헤쳐 바다로 나갔다. 하롱베이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과 대한항공의 하노이 취항 광고로 익숙해진 곳이다. 3천여개의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진 하롱베이는 '용이 내려온 자리'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 범위는 1600㎢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선착장에서 출발할 때 바나나를 샀고, 몇 명은 대나무 낚싯대와 미끼를 사서 낚시를 했다. 바나나는 태국에서 먹던 것처럼 조그맣고 맛있었으나, 낚시는 결국 맨 마지막까지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다.
바다로 나가다보니, 안개 속 또는 멀리 있어 잘 안보인 하롱베이의 기암괴석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금강산이 봉우리 부분들만 남기고 물에 잠긴 것 같았다. 동굴에 있는 봉우리, 바위가 기울어져 다른 바위에 의해 지탱된다던가, 봉우리에 구멍이 뚫어져있거나, 윗부분이 아랫부분보다 더 두꺼운 역삼각형 모양을 한 봉우리 등 정말 신기한 봉우리들이 한 곳에 모여 가지각색의 멋을 뽐내고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멋진 바위는 병아리 바위였는데, 병아리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신기한 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를 발견하는 사람에겐 가이드 아저씨께서 포상을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내가 열심히 낚시를 하는 동안, 우리 친구 김영권이 가장 먼저 발견하였다.
이 곳 하롱베이는 내가 지난 여름 갔다온 용경협보다 훨씬 멋있었다. 용경협은 계림의 상대가 되지 않고, 하롱베이는 '바다의 계림'이라 불려지는 곳이니 과연 그럴만도 하다. 하롱베이의 기이한 암석들 사이를 지나 티엔꿍 석순동굴에 들어갔다. 그 동굴의 크기는 삼척의 환선굴만 했으나, 볼거리는 더 많았다. 하지만 관광객은 우리일행 외 한 10명 정도의 베트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어서 언제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국내의 동굴들과는 대조가 되었다. 석순, 석주, 종유석들이 조화를 이루어 매우 멋있는 광경을 이루었고, 특히 지붕에는 마치 사막의 모래언덕이 거꾸로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또한 바로 앞이 바다이면서도 동굴 안에는 습기가 하나도 없어서, 습기가 있거나 물이 흐르는 우리나라의 동굴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다시 배를 타고 하롱베이의 기암괴석 사이를 지나왔다. 오는 길에 이 하롱베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던 티톱섬에 들렀다. 티톱이란 친구가 잠시 휴식을 취하던 곳이라고 하여 이름붙여진 티톱섬은 하롱베이의 여러 섬 중 유일하게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약 420여개의 가파른 계단 위에는 티톱섬 전망대가 있었는데, 힘들여 그 곳에 올라가서 본 하롱베이의 절경은 가히 예술적이였다. 하롱베이는 안개에 뒤덮혀 신비감을 더하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서도 하경이, 영권이, 초의와 모래사장에서 조개도 줍고, 산호초도 줍고, 물수제비도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물색도 청록색이고, 동해와는 다르게 파도도 하나 없었고, 모래도 솜털같이 부드러웠다.
베트남의 작은 어촌 하롱에 이런 천혜의 자원을 줌으로써 베트남은 엄청난 수입을 얻었을 것이다. ' 한국에도 이런 자연을 가진 곳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오는 길에 점심시간이 되어 배 위에서 식사를 했다. 베트남은 바다에서 물고기 등 수산물이 많이 잡힌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식사 역시 새우, 게, 생선 등 수산물들이 주로 나왔고, 그나마 수산물이 아닌 것도 입맛에 맞지 않아 배부르게 먹질 못했다. 밥 역시 안남쌀이라서 잘 먹지 못했다. 하지만, 나와 승민이를 제외한 영권이와 초의는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특히 초의는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서 남김없이 다 해치웠다. 식사를 다 한 뒤, 어른들은 밑에서, 우리는 윗층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놀다보니 어느새 하롱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하롱베이로 한 번 더 가고 싶었지만, 나중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롱베이를 출발해 하노이로 오는 길... 어제갔던 길로 그대로 와서 그런지, 아니면 피곤해서 그런지, 어제 느꼈던 이국적인 풍경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스러움은 느끼기가 어려웠다. 하노이 주변에 이르니 위성도시들로 인해 이미 혼잡함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베트남의 젖 줄기라고 할 수 있는 훙강을 건너자 하노이 시내가 눈앞에 펼쳐졌다. 사회주의 국가라서 중국이나 북한처럼 교통체계가 잘 잡힐 줄 알았는데, 신호등은 있으나마나고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서울의 교통체증을 여기에 갖다대면 양반이다. 도로를 무질서로 만드는 오토바이들은 자동차의 수에 10의 제곱 정도로 수가 많았다. 교통체증에다가, 또, 하노이의 대기 상태는 어떠한가? 바로 앞도 흐릿하게 보일정도고, 숨이 막혀 호흡곤란이 올 정도다. 지금까지 서울보다 대기오염이 심한 곳은 와 본적이 없었는데, 하노이 사람들이 서울에 가면 공기가 너무 깨끗하다고 놀랄지도 모른다.
하노이 서쪽 부근의 미국 대사관 앞의 포르투나 호텔에 짐을 풀고, 영권이와 함께 공놀이 '수트'를 했다. '빵뜨'라는 명칭이 여러 첨단적인 요소를 첨가하여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밖에 나가서 한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베트남식 식사를 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한식은 너무 맛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민혜경 선생님 부부 결혼기념식 파티를 했다. 식당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면서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 덕분에 베트남 케이크도 먹어보고.. 결혼기념일 축하드리고, 두 분 모두 건강하세요!!
식당에서 나와 우리는 천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수상인형극을 보러갔다. 수상인형극 공연을 하는 물은 매우 더러웠다. 그 이유는 물 속에서 막대기로 인형을 움직이는 걸 못 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다 보였다.) 극이 시작되자 6명의 사람들이 북도 치고, 피리도 부르고, 노래도 하면서 효과음을 다 만들어서 넣어줬다. 또한, 온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인형들의 재밌는 행동으로 공연이 매우 재미있었다. 대부분이 베트남 북부지방의 농경생활을 소재로 연극을 해나갔는데, 용의 입에서 물과 불꽃이 나오는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지금은 호텔에서 ESPN방송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축구 경기를 보며 일기를 쓰는 중이다. 내일은 하노이 시내 관광을 하고 캄보디아로 간다. 호치민 묘를 볼 수 있는 내일 일정이 기대도 되지만, 비행기를 또 탄다고 생각하니 비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