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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윤씨의 시조는 문하시중을 지낸 돈(敦)이다. 후손 각(慤)은 조선 숙종 때 무과에 급제, 삼군수군통제사를 거쳐 총융사(摠戎使)를 지냈고, 의검(義儉)·태연(泰淵)은 어영대장(御營大將)을 지냈다. 연산군의 외조부인 기무(起畝)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 봉상시판사(奉常寺判事)를 지냈으며, 아들 구는 참판을 지냈다. 해주윤씨는 서흥윤씨(瑞興尹氏)라고도 하며, 시조는 세종 때 중추부지사를 지낸 중부(重富)이다. 아들 희평(熙平)은 연산군 때 무과에 급제, 공조판서·중추부지사를 지냈다. 영천윤씨의 시조는 고려시대 호장 절생(切生)이다. 인물로는 태종 때 군수 순(淳), 성종 때의 이조참의 긍(兢), 선조 때 중추부참지사 빙(聘) 등이 있다. 예천윤씨의 시조는 추밀원부사를 지내고 증례빈시소윤(贈禮賓寺少尹)인 충(忠)이다. 증손 상(祥)은 태조 때 문과에 급제, 대사성·예문관제학·성균관박사를 지냈으며, 성리학과 역학(易學)에 밝아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예천윤씨는 429가구에 1,36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 정비를 많이 배출한 성씨 --
[1위] 김씨 -- 10명
[2위] 윤씨 -- 6명
[3위] 한씨 -- 5명
[4위] 민씨 -- 4명
[5위] 심씨 -- 3명
-- 후궁을 많이 배출한 성씨 --
[1위] 김씨 -- 12명
[2위] 이씨 -- 11명
[3위] 박씨 -- 7명
[4위] 홍씨 -- 5명
[5위] 권씨 -- 4명
[6위] 안씨,최씨,양씨,정씨,조씨 -- 3명
김씨가 22명(정비10,후궁12)으로 당당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씨가 11명(후궁11)으로 정비없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윤씨가 8명(정비6,후궁2)으로 3위에 랭크 되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