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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변죽 울리기[제10구간]
☞ 가사령-744.6m-통점재-785m-질고개-611.6m-피나무재 ☜
- 유순한 정맥길과 무심한 무명봉들의 행렬 -
♣ 산행개요 ♣
◆ 산행지 : 낙동정맥 제10구간[가사령-피나무재]
◆ 일시 : 2006. 3. 3.(금)/4.(토)[무박산행]
◆ 날씨 : 맑음
◆ 종주경로 : ☞ 가사령(550m)/69번지방도 → 744.6m/보현(팔공)지맥 분기봉 → 통점재(550m) → 785m → 질고개(430m)/932번지방도 → 611.6m → 피나무재(490m)/914번지방도 ◀
◆ 시간대별 산행코스 :
△ 04:47 가사령 출발
△ 05:13 744.6m/보현ㆍ팔공지맥 갈림길/우 내리막
△ 05:28 월성이씨 묘
△ 05:39 봉우리/ 좌 내리막
△ 05:47 776.1m 갈림길
△ 05:54 4거리 안부 직진
△ 06:14 630m/우 내리막
△ 06:20 통점재/68번지방도
△ 06:36 706m
△ 06:40 폐묘 봉우리
△ 06:50 3거리 분기봉/우 내리막
△ 06:58 간장현
△ 07:08 헬기장
△ 07:14 일출/10분 휴식
△ 07:48 785m/헬기장
△ 07:56 헬기장/조식 25분
△ 08:26 분기봉/우 내리막
△ 08:45 포항시계 끝 지점/좌 내리막
△ 08:52 봉우리/좌 내리막
△ 08:58 봉우리/우 내리막
△ 09:01 능선분기봉/좌 내리막
△ 09:14 봉우리
△ 09:18 봉우리/5분 휴식
△ 09:27 봉우리/우 내리막
△ 09:40 묘 봉우리/좌 내리막
△ 09:48 봉우리
△ 09:52 봉우리/우 내리막
△ 10:00 봉우리
△ 10:07 산불감시초소
△ 10:16 질고개/2차선 포장도로
△ 10:21 임도 통과/솔숲 오르막
△ 10:31 봉우리
△ 11:02 좌 꺾임 능선
△ 11:10 헬기장/15분 휴식
△ 11:27 611.6m/삼각점
△ 11:34 공터(옛 헬기장)
△ 11:40 3거리 분기봉/우 내리막
△ 11:43 벌목 개활지
△ 11:48 봉우리/좌 내리막
△ 11:52 무포산 갈림길
△ 11:59 임도 끝 지점 조우
△ 12:03 봉우리/좌 내리막
△ 12:07 임도
△ 12:11 다시 임도
△ 12:24 914번 지방도
△ 12:26 피나무재
△ 12:40 피나무재 출발
△ 13:00 주산지 탐방
△ 13:35 주산지 출발
△ 14:00 주왕산국립공원 입구 식당/회식
△ 15:33 출발
△ 20:05 잠실역 도착
◆ 산행거리 : 21.7km[『사람과 산』자료 참조]
☞가사령-1.2km-771.6m-3.3km-통점재-1.6km-간장현-2.7km-785m-5.7km-질고개-3.3km-611.6m-3.9km-피나무재 ◀
◆ 산행시간 : 약 7시간40분(아침식사 및 휴식 포함, 후미기준)
◆ 형태 : 덕칠이 합동산행[서훈식 고문, 夷希美 회장, 허공 대장, 밤안개, 천사, 무흠, 뚜벅이, 대왕, 윤비, 오르고파, 탱크, 나푸른솔, 김수영, 김익수, 초롱아빠, 산정무한, 경로, 흑기사, 범털, 록수, 들꽃, 주유천하 : 2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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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과 詩 ♥
산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 류시화 엮음, 법정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조화로운삶, 20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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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9구간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10구간은 가사령에서 가사봉분기점(744.6m)을 지나 통점재-질고개를 거쳐 피나무재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구간거리가 21km 정도로 산행시간이 7-8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되나, 피나무재 이후에 어프로치 없이 구간을 끊을만한 적당한 날머리를 찾기 어려우므로 피나무재에서 부득이 구간을 끊고, 남는 시간은 인근의 주산지(注山沚 : 주산못)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간활용을 해보기로 한다.
이 구간에는 산(山) 이름이나 봉(峰) 이름이 붙어 있는 봉우리는 하나도 없고, 그저 무심한 숱한 무명봉들과 가사령, 통점재, 간장현, 질고개, 피나무재 등 고개들로만 요리조리 이어지는 특이한 구간이다. 그 만큼 이런 곳은 정맥꾼이나 다니는 재미없는 곳이지만 일반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미치지 않은 호젓한 오지의 산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구간에서 정맥길은 포항을 벗어나 북진한다. 즉 가사령을 지나 744.6m봉(가사봉 분기점)을 지나면서 정맥길은 좌측으로 청송군 부남면을, 우측으로 포항시 죽장면을 가르다가 질고개 직전의 670m봉 분기점을 지나면서 피나무재까지는 청송군 부남면을 관통하게 된다. 청송은 봉화, 영양과 함께 경북의 3대 오지로 불리는 깊고 으슥한 지역이다. 이제 비로소 낙동정맥길의 진면목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어둠 속에 지나치기는 하지만 이번 구간의 744.6m(가사봉분기점)에서 정맥의 서쪽으로 이른바 보현지맥과 팔공지맥이 분기하는 것도 눈여겨 볼만 하다.
보현지맥은 가사봉분기점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면봉산-보현산-석심산-어봉산-해망산-곤지산-비봉산을 거쳐 위천으로 맥을 다하는 166.8km의 산줄기를 말하고, 보현지맥의 석심산에서 방가산-팔공산-가산-응봉산-베틀산-청화산-만경산을 거쳐 위천으로 맥을 다하는 120.7km의 산줄기를 팔공지맥으로 부른다.
보현지맥 및 팔공지맥 개념도[박성태의 두발로 읽은 산경표 참조]
2. 들머리 : 가사령
2006. 3. 3. 금요일 밤 다시 낙동정맥으로 가는 길, 혹시 비가 오면 어쩌나 했으나 일기예보는 토요일 밤부터 비가 내리겠다고 하여 안심하고 집을 나선다. 정해진 일정이라 가기는 가야겠지만 비를 맞으며 산길을 걷는 것은 망설여진다. 밤 11시 양재동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언제나 그 모습대로 낙동정맥의 동료들을 만난다. 오늘 산행인원은 22명으로 근래 들어 가장 많은 인원이다. 창암님과 돌범님, 서송수님, 토끼님이 사정상 빠졌다.
금화관광의 28인승 리무진버스가 도착하여 자리를 잡는다. 살롱형 버스라 중간자리에 탁자가 놓여있고 군용모포가 깔려있는 것이 마주 앉아 고스톱이라도 한 판 벌리는 자리인 것 같으나 모두들 잠으로 빠져든다. 잠이 안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중간에 천안에서 천안팀들이 타는 것도 모른 채 잠에 빠져 있다가 2006. 3. 4. 토요일 새벽 2시 버스가 칠곡휴게소에 들어서면서 잠을 깨었다.
휴게소에서 20여분 휴식 후 다시 잠에 빠져 있다가 깨어나 보니 버스는 도로 양쪽으로 거대한 절개지가 형성되어 있는 지난 구간 날머리인 가사령이다. 시간은 새벽 4시 20분. 별로 추운 날씨는 아니라 자켓을 벗고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산행출발시간이 지체되기는 하지만 몸풀기 체조를 생략할 수는 없는 일, 흑기사 조교의 구령에 따라 별밤의 체조를 한다. 밤하늘의 별무리들이 너무나 명징(明澄)하다. 이 광활한 대우주의 한 귀퉁이에 서 있는 나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3. 길 열기 : 가사령 → 통점재 : 4.1km/1시간33분
새벽 4시 47분 가사령을 출발한다. 통점재까지는 어차피 어둠 속에 통과하여야 할 것이고, 빨리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면서 새벽 산길을 걷는다. 도로 좌측에서 바로 우측 절개지 위로 달라붙어 마루금을 따라 찐빵 봉우리 하나를 넘어야 할 것이나 선두가 마루금 좌측의 임도를 따라가고 있어 그대로 따른다.
그런데 임도가 휘돌아가는 넓은 공터에서 선두가 표지기를 따라 우측의 절개지로 올라간다. 그 길은 다시 찐빵 봉우리를 넘어 가사령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초장부터 탈출하는 것도 아니고 되돌아가려고 하다니…
임도 좌측의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데 눈이 쌓여있고, 눈길에는 발자국이 없고 우리가 첫손님이다. 아마도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살짝 대지를 덮고 있다. 쌓인 눈은 물기가 없어 모래를 밟는 기분이 드나 어쨌든 눈을 밟으면서 정맥길을 이어간다.
산정무한님이 한발 한발 발자국을 찍으며 길을 잡아나간다. 한 오르막 봉에서 잠시 완만하게 내려섰다가 10여 분간 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니 참나무 기둥에 팔공지맥 분기점임을 알리는 표찰이 메어져 있고, 낙동정맥 표지기들이 달려있는 곳이 나온다. 이곳이 지도상의 744.6m로 좌측으로 가면 보현지맥과 팔공기맥이 뻗어가고, 정맥길은 우측으로 급히 꺾여 내리막으로 내려서야 한다.
팔공기맥분기점임을 알려주고 있는 표찰
눈길 내리막경사가 급하고 너무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했으나 안부에서 다시 완만한 오름길이 나온다. 길을 제대로 가고 있으면서도 표지기가 안보이면 괜히 불안하다. 월성이씨 묘가 있는 곳의 우측방향으로 올라선 후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을 내려선다. 내리막에서 다시 오르막을 올라서니 약간의 바윗길이 나오고 완경사의 능선길을 따르다보니 776.1m 코팅표찰이 걸려져있는 3거리 지점이 나온다. 정확히는 이곳이 삼각점이 있는 776.1m가 아니고 776.1m갈림길이다.
정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776.1m에 올라가봐야 어둠 속이라 보이는 것도 없고, 갈림길로 복귀하여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눈길 내리막을 한동안 치고 내려가니 묘가 나오고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4거리안부가 나온다. 직진하여 올라선 봉우리(630m)에서 우측 내리막을 따라 소나무 숲길을 요리조리 내려가다 보면 68번지방도가 지나는 통점재이다.
통점재를 가로지르는 신설도로인지 공사흔적이 남아있고, 통행하는 차량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가사령에서 통점재까지 4.1km를 오는데 1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고, 어둠이 풀려가면서 이제 몸은 슬슬 워밍업이 되었다.
4. 길 잇기 : 통점재 → 질고개 : 10.1km/3시간55분
통점재는 고개 좌측의 청송군 부남면에 통점리라는 마을이 있어 그냥 통점재로 부르는 것 같다. 통점재를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는 최근에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절개지에서 내려와 도로를 건너 절개지 사면으로 오른다. 아침 6시 22분 제법 훤한 시간이고, 본격 정맥길의 시작이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는 중간에 있는 묘를 지나쳐 계속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706m로 추정되는 봉우리에 오른다. 이곳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폐묘가 있는 봉우리에서 내려선다. 이 이후에는 고도차가 거의 없는 완만한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봄이 오는 춘3월에 눈길 트레킹이다. 지금까지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제대로 눈길을 걸어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미진한대로 겨울의 끝자락에서 눈밭 길을 걸어본다. 봄눈은 따스함이 묻어나는 눈이다. 따스한 봄눈이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녹여주어 생명의 피를 돌게 한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능선이 좌로 꺾여 이어진 능선의 3거리 분기봉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눈과 낙엽이 섞여있는 솔숲 길을 지그재그로 내려가다 보면 4거리 안부가 나온다. 간장현(干長峴)이다. 이 고개 좌측으로 가면 간장리라는 마을도 있고, 간장저수지도 있다.
간장현에서 직진하여 오르막을 오르다가 어떤 봉우리의 우측사면을 돌아 내려서면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데 동쪽 하늘이 붉은 색으로 타오르면서 일출의 기운의 감지된다. 다시 어떤 봉우리의 좌측 사면을 돌아 내려섰다가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이곳에서 내려선 후 오르막을 오르는데 동쪽 산줄기 위로 아침해가 솟아오른다. 시간은 7시 14분, 이미 해는 솟아올랐을 터이지만 산줄기에 막혀 조금 늦게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리라. 이렇게 매양 떠오르는 해이지만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하루하루가 똑 같은 날이지만 매일 새로운 날이듯이. 전신으로 일출을 기운을 들이마시며 10분간 휴식. 한기를 느껴 자켓을 껴입는다.
이곳에 오면서 나는 첫 번째 헬기장을 보지 못하고 지났는데 범털 총무님은 보았다고 하여 그런가보다 한다. 어떤 봉우리 우측 사면을 따라 진행하다가 올라선 곳에서 내려와 완만한 오르내림을 하다가 오르막 중간의 묘를 지나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이 봉우리에서 내려서서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가면 또 헬기장이 있는 3거리 봉우리가 나오고 꽤 공터가 넓다. 그런데 이곳의 나뭇가지에 785m 코팅 표찰이 걸려있다. 지도상은 직전에 지난 봉우리가 785m일 텐데 이곳에 785m표찰이 걸려 있어 헷갈린다.
아까 헬기장을 지나면서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어느 분이 삼각점을 깔고 앉았다고 하니 이 헬기장이 785m인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확인해보기로 한다[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보니 785m 코팅 표찰이 붙어있는 헬기장이 785m이고, 그 전의 헬기장은 지도에 따라 805.5m로 표기된 봉우리다].
이 헬기장에서 25분간의 조식 및 휴식시간을 갖는다. 요새는 산에서는 밥을 먹고 싶지 않아 오늘도 빵과 우유 중심으로 준비하여왔다. 헬기장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 후 나아가다보면 분기봉이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야 할 것을 잠시 직진했다가 뒤돌아왔다.
무심코 발자국을 따라갔더니 발자국이 없어진 것을 알고 되돌아와 분기봉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등산이라기보다는 호젓한 눈길 트레킹이 계속된다. 우측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내연지맥의 산줄기가 언뜻언뜻 눈에 들어온다.
다시 오른 봉우리의 좌측 내리막을 내려선 후 능선길이 좌측으로 꺾이는 곳에서 오르막을 올라 정맥길이 좌측으로 확 꺾여 내려가는 곳이 있다. 포항시계의 끝 지점인 이곳에서부터 우측으로는 포항을 벗어나 청송으로 진입하는 구간이다. 이곳에서 질고개까지는 거의 西進길이다. 등 뒤에서 아침 햇살을 받은 그림자가 내 앞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내리막 안부에서 오르막을 올라선 봉우리의 좌측 내리막을 내려서고, 다시 오른 봉우리의 우측 내리막을 내려선다. 다시 오른 능선분기봉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는 요리조리 춤추듯 일렁거리며 뻗어가는 정맥길이다. 마치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한바다에서 롤링(rolling)과 피칭(pitching)을 하는 조각배를 타고 가는 느낌이 든다. 숱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리지만 고도차가 그리 크지 않고 유순한 능선길이라 큰 부담이 없다. 적당한 up-down이 계속된다.
다시 오른 봉우리에서 내려서고 또 올라서니 더워 다시 자켓을 벗어 넣고 거름보시도 한다. 다시 한 봉우리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서 숲길을 오르는데 묘를 지나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이런 식으로 3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솔숲과 참나무숲이 어우러진 완만한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또 한 봉우리에서 내려서고 솔숲 오르막을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질고개 직전의 마지막 봉우리에 이른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보는 주왕산-별바위
이 산불초소가 있는 곳은 이번 구간의 최고의 전망대이다. 원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는 그 기능상 조망이 좋은 곳일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본 산불감시원 아저씨가 오늘 구간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다. 아저씨로부터 이곳저곳에 대한 설명을 들어본다. 북쪽으로 주왕산과 다음 구간에 진행할 별바위 등 주왕산의 산군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구천저수지와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곳으로 휘어져 오기 전의 정맥마루금도 조망된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주왕산줄기를 등지고
산불초소 좌측의 오솔길로 5분쯤 내려가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질고개이다. 질고개는 고개가 전부 진흙으로 되어 있다 있어 길이 질어 질고개이다. 통점재에서 질고개까지 10여km를 오는데 4시간이 약간 덜 걸렸다.
5. 길 닫기 : 질고개 → 피나무재 : 6.8km/2시간10분
오전 10시 16분 바로 질고개 도로를 건너 부동면 표지판 옆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오늘 구간의 종점인 피나무재까지는 2시간 정도면 이를 수 있다. 솔숲에서 빠져나오니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건너 다시 솔숲으로 들어간다. 임도에서 스틱 하나를 놔두고 진행했다가 이를 찾으러 되돌아가는 알바 아닌 알바를 하기도 한다. 산길은 솔잎이 수북이 깔려있는 전형적인 마을 뒷산모습이다.
오르막에서 내려서서 낙엽길 오르막을 올라선 봉우리에서 내려서서 참나무 숲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헤진 묘가 있는 곳에서 어떤 봉우리의 우측 사면을 따라 완만한 오름길을 따르다가 내려서서 봉우리 좌측 사면을 따라 오른다. 대개 봉우리의 좌우측 사면으로 난 길은 정통 마루금이 아니고 일종의 샛길이다.
다시 봉우리의 우측 사면을 따라 오르다가 정맥길이 좌측으로 꺾이며 오르막을 올라섰다가 내려선 후 솔숲 오르막을 오른다. 거의 완경사의 솔숲이다. 어떤 묘를 지나 정맥길이 급격히 좌측으로 꺾여 완만히 오른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오르막을 올라서면 헬기장이 나온다.
이 헬기장에서 15분간 과일과 간식 등으로 휴식을 취한다. 처음에는 이 헬기장이 611.6m로 알았으나 611.6m는 다음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다. 변 회장님이 걸쭉하고 야시꾸리한 음담패설로 忙中閑의 절정을 이룬다.
이 헬기장에서 4분쯤 진행하면 헬기장터가 있는 611.6m봉이 나오고 삼각점도 있다.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지점의 공터도 옛 헬기장터로 추정된다. 방향을 좌측으로 바꾸어 진행하는데 은빛으로 눈부신 자작나무숲이 나온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갈한 모습으로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자작나무하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면서 며칠씩 지겹도록 봤던 일이 있다.
은빛 자작나무
저 자작나무들은 한겨울에 온몸을 드러낸 채 전신고독과 전신침묵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고통과 상처가 깊어야 저렇게 은빛으로 맑아질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저 자작나무와 같이 굴욕과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이 아닐까?
속깊은 기침을 오래하더니
무엇이 터졌을까
명치 끝에 누르스름한 멍이 배어 나왔다
길가에 벌(罰)처럼 선 자작나무
저 속에서는 무엇이 터졌길래
저리 흰빛이 배어 나오는 걸까
잎과 꽃 세상 모든 색들 다 버리고
해 달 별 세상 모든 빛들 제 속에 묻어 놓고
뼈만 솟은 서릿몸
신경줄까지 드러낸 저 헝큰 마음
언 땅에 비껴깔리는 그림자 소슬히 데워 가며
제 명을 완선해 가는 겨울 자작나무
숯덩이가 된 폐가(肺家)하나 품고 있다
까치 한 마리 오래오래 맴돌고 있다
- 정끝별, “자작나무 내 인생”
자작나무 숲을 지나 다시 오르막을 올라 3거리 능선분기봉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면 좌측 전면으로 벌목을 해놓아 시원한 개활지가 펼쳐진다. 개활지를 끼고 올라선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봉우리의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무포산(716.7m) 갈림길에서 우측능선을 탄다. 무포산(霧抱山)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안개로 포위되듯 조망이 없을 터이고 별 볼만한 산도 아닌 듯 하여 바로 피나무재를 향하여 진행한다. 완만한 능선을 타고 가다가 임도가 끝나는 지점의 좌측 산길로 접어든다. 임도는 포장공사를 하려고 자갈을 깔아놓았다. 한 봉우리를 넘어서 가파른 경사를 내려오니 그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건너 다시 산길에서 빠져나오니 또 임도이다.
지도를 보니 임도와 마루금의 거의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제 양지에는 눈이 녹아 길도 질척거리고 다시 산길로 들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금의야행(錦衣夜行)격이다. 이런 곳은 고지식하게 마루금을 따를 필요가 없다. 지난번에 낙남정맥 종주 중 발산재에서 오곡재 가는 길에 임도를 버리고 고지식하게 산길을 따르다가 비난을 받은 일이 있다.
뒤에서 후미대장이 임도로 가면 무효라고 소리치는 것을 뒤로 하고 그대로 임도를 따라 피나무재로 가기로 한다. 임도에는 깨끗한 눈이 녹지 않은 미답의 길이고 산짐승들의 발자국만 나있을 뿐, 인간들의 발자국은 없다. 13분쯤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청송에서 영덕으로 가는 914번 지방도이다.
피나무재는 이 도로에서 고갯마루로 조금만 올라가야 한다. 밤안개님이 밑에서 올라오는 트럭을 세워 고개까지만 태워주기를 부탁하여 트럭 화물칸에 타고 보니 양조장 차이다. 2분 만에 피나무재에 도착하고 밤안개님은 트럭 기사로부터 생막걸리 10개를 만원에 구입하면서 서비스로 1병을 더 받아왔다. 그 막걸리로 하산주를 하면서 널널한 산행을 마쳤는데 참으로 한가로운 시간이다.
질고개에서 피나무재까지는 2시간 10분이 걸렸고, 들머리인 가사령에서 이곳까지는 7시간 40분이 걸렸으므로 당초 예상한대로다. 이번 구간에는 볼만한 산이나 뚜렷한 포인트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다음의 주왕산 구간을 위한 예비 전초산행이었다. 호젓한 산길을 휘어이 휘어이 걸을 수 있는 자만이 정맥의 맛과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구간이었다. 이런 오지의 정맥길을 다니다 보면 저자거리보다 더 시끄러운 주말의 서울 근교산은 도저히 다닐 수 없다.
6. 정맥길 보너스 : 주산지(注山池) 소묘
이번 구간을 널널하게 마치고 시간이 남아 예정했던 대로 주산지를 둘러보기로 한다. 이정표에는 피나무재에서 주왕산까지는 12km로 되어 있다. 914번지방도를 따라 청송쪽으로 가다가 외주왕산의 절골 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하다보면 주산지 주차장이 나온다. 절골과 주산지는 외주왕산의 비경을 대표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버스에서 내려 주산지까지 600여m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산정호수 같은 주산지는 2003년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물위의 사찰 세트는 어떤 경위인지는 모르나 현재 용평스키장 호숫가로 흘러들어가 세워져 있다. 주산지에 영화의 흔적이 지워지면서 주산지 관람객은 급감했고 청송군에서는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촬영 후에 버려진 곳곳의 세트장들을 보노라면 오히려 치워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각 지자체에서 관람객 유치를 목적으로 영화세트장들을 유치했다가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곳이 얼마나 많은가? 세트장은 말 그대로 눈가림의 세트이고 허상일 뿐이다. 그 세트에 숭고한 삶의 때가 녹아있는 것도 아니고 치열한 혼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별바위와 주산지
주산지는 조선 숙종 46년(1720년) 둑을 쌓기 시작해 그 이듬해인 경종 원년에 완성한 저수지로 300여년 세월 동안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주산지 둑 인근의 바위 위에 오래된 비석이 세워져 있어 살펴보니 “李公堤堰成功頌德碑”로 건륭(乾隆) 36년 辛卯 10월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李公堤堰成功頌德碑
왜 송덕비에 청나라 연호인 乾隆을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뒷면의 글자는 많이 마모되어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건륭은 청나라 6대 황제로 擁正帝의 넷째 아들로 1735년 즉위하여 1795년까지 60년간 재위한 인물이다. 따라서 건륭 36년은 1771년이고 조선 영조47년이 된다.
주산지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주왕산 별바위 등 둘러싼 산세와 어우러져 한껏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봄이나 가을에 그 계절과 함께 어우러진 물의 빛깔을 보아야 주산지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가라앉아 沈潛과 고요만이 못 주위를 감돈다.
물속에 뿌리를 박고 물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30여 그루의 왕버드나무는 주산지의 상징이다. 원래 버드나무가 물을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100여년 이상 물속에서 썩지도 않고 살 수 있는 것인지 전문가가 아니라서 알 수는 없다.
주산지 왕버드나무
주산지 관람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복귀하는데 모두들 청송사과 맛을 보고는 맛이 좋고 싸다고 하여 만원 어치 한 자루를 샀다. 버스는 주왕산국립공원입구로 들어가 인근의 음식점에서 회식을 갖는다. 주왕산 대전사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정비공사중이다.
점심값은 흑기사님이 골프연습장 개업기념으로 한턱을 쏘았고, 歡呼雀躍하며 맛있게 먹었다. 다음 구간에서 시산제를 지내기로 하고 그 구체적 준비는 총무가 까페에 공지하기로 하였다. 3월 18일은 백두대간 출정 2주년이 되는 날이고, 작년의 이 날은 태백산 천제단(하단)에서 시산제를 지낸 바 있다.
주왕산을 배경으로 회원 단체사진
오후 3시 33분 주왕산을 출발한 버스는 안동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한다. 남들은 코까지 골면서 잘도 자는데 술을 어중간하게 먹는 바람에 잠은 오지 않는다. 왕창 마시고 정신없이 잠 속으로 빠져버려야 하는데 멀뚱멀뚱 귀경길이 영 엉망이 되고 말았다.
영주를 지나면서 차창으로 보는 백두대간의 웅장함, 죽령터널을 지나 단양으로 들어서면서 예사롭지 않은 산세가 펼쳐지는 모습을 본다. 버스는 제천IC에서 충주방향으로 들어서서 박달재휴게소에서 쉴 때 간신히 참아왔던 오줌통을 터뜨리니 살 것 같다.
버스가 중부고속도로의 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나 저녁 8시경 잠실역에 도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영등포파도 해산하고 양재파 결성도 연기되었다. 밖에는 빗방울이 내리고 있어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들어오니 저녁 8시 20분, 지금까지 정맥길을 다니면서 가장 일찍 들어온 날이다.
이번 구간은 산행시간이 얼마 되지 아니하여 하루 일당벌이는 못했지만 주산지도 둘러보고 나름대로 여유롭고 의미있는 산행이었다. 다음 구간은 피나무재에서 황장재까지 24km의 산길이 기다리고 있고, 중간에 정맥길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주왕산의 최고봉인 왕거암에서 시산제도 지낼 예정이다.
살 때와 죽을 때
살 때는 삶에 철저히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일단 죽게 되면 조금도 삶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고
죽음 또한 내 자신의 일이니
살 때는 철저히 살고
죽을 때 또한 철저히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모란처럼 뚝뚝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게
얼마나 산뜻한 낙화인가.
새 잎이 파랗게 돋아나도록 질 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꽃은
필 때만큼 아름답지가 않다
- 류시화 엮음, 법정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조화로운삶, 20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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