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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그림자 춤 · 15
윤 중 리
카페 ‘다리’ 문 앞에 도착했더니 수해 복구 공사 관계로 다가오는 토요일에 문을 연다는 안내문이 손잡이 위에 붙어 있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지는 않아서 쉽게 들어갔다. 그런데 멀리 가야산에서 출발했을 상수가 먼저 와 있다.
“어이 박 사장. 가야산 살더니 도사 다 됐나? 가까이 사는 나보다 먼저 왔어? 축지법 쓴 모양이지?”
나는 상수의 손을 잡은 채로 내부를 훑어본다. 청소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다. 벽에 칠도 새로 한 모양이다. 그러니 복구라는 단어를 썼겠구나 싶다.
영숙 씨가 코리아노(카페 ‘다리’에서는 아메리카노를 이렇게 부른다) 석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나오자 우리 셋은 금호강 습지가 내다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오면 늘 앉던 우리들의 자리다.
“금호강 넘쳤단 소식 없길래 이 집 걱정은 안 했더니, 왜 이렇게 됐어?”
“혼자서 고생께나 했겠네. 돈도 많이 들었을 것 같고?”
나와 상수는 위로의 인사를 이렇게 던지며 커피잔을 들었다. 물난리 수습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한 것인가? 화장을 안 해서 그런가? 영숙 씨의 얼굴이 좀 초췌해진 느낌이다.
“복구 끝났습니다. 코리아노 드시러 오셔요.”
영숙 씨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은 그 전날 오후였다. 복구가 끝나다니? 그럼 거기도 물난리를 겪었단 말인가?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나 금호강이 범람했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런데 복구는 무슨 복구? 영숙 씨의 카페 ‘다리’도 수해를 입었단 얘기?
영숙 씨보다 상수한테 먼저 전화를 했더니, 상수한테도 똑같은 문자가 왔단다. 그러면서 보태는 농담 한마디. 김 선생 베아트리체만 걱정되고 이 산골 농부는 걱정 안 되더라는 얘기인가? 그래서 내가 그럴 리는 없고, ‘다리’에 가서 코리아노 마시면서 얼굴도 한번 보자고 했고, 상수도 무너진 밭 귀퉁이는 대강 여며놨으니 가겠다고 해서 이렇게 만난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물난리 난 산청, 합천 생각만 하고 있었더니 우리 박 마담 가게가 물을 담았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요?”
윗동네에서 금호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개울이 하나 있는데, 떠내려온 쓰레기들이 수문을 막아버리는 통에 그 물이 온통 길 따라 쏟아졌고, 이 카페 문을 밀고 들이닥친 것이라고 영숙 씨가 설명을 해 준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산불 나서 마을 태우고 산 태우고 하더니, 또 큰비 와서 산사태 나고 마을 떠내려가고, 비 그치니 이번엔 불볕더위. 폭우도, 더위도 백몇십 년 만에 최악이라고 하데? ”
“텔레비전에서 나도 봤어. 여기엔 나쁜 사람들이 많아서 하느님이 벌주시는 거라고 했더니 그것도 아닌가 봐. 온 나라가 다 기후와 재해의 악순환이니.”
“전에 김 선생이 뭐라고 했어? 신발 장수 얘기할 때 그랬지? 우리나라 사람 80퍼센트는 지옥 간다고. 지옥 갈려면 한 사람이 신발 두 켤레씩은 준비해야 된다고, 그때 온 나라가 시끄러웠는데, 이번엔 날씨가 말썽이구먼. 날씨도 지옥 얘기와 같은 선상에 있는 건 아닌가?”
“그 전조현상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 좀 봐. 마음 하해와 같으신 하느님도 화나실 거야.”
“참. 산청 어디는 마을이 통째로 쓸려 내려가서 복구 불가능이라고 하데. 사람도 죽고, 가축도 떠내려가고.”
우리는 영숙 씨가 가져온 코리아노를 마시면서, 그간의 안부도 묻고, 텔레비전에서 본 세상사 이야기도 하고, 오랜만에 정다운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상수가 제안을 했다. 오늘은 박 마담 일 안 해도 되니, 함께 ‘어부의 오두막’ 가서 동태찌개 끓여놓고 소주든 막걸리든 한잔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동안 영숙 씨는 가게 일 때문에 동행하지를 못하고, 둘이서만 술을 마시면서 그걸 섭섭해하곤 했었지.
“그것 좋지. 그런 걸 유식한 말로 뭐라는지 알아?”
“끝내준다 아니야? 아니면 대박이라고 하든가?”
“그건 시정잡배들 수준이지, 유식한 말로는 말야.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감히 청하진 못했지만 바라던 바다. 뭐 그런 뜻이야.”
상수와 내가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영숙 씨는 말없이 미소만 띠고 있다. 말이 없다는 건 동의한다는 의미다.
술 마시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란 얘기도 나와서 잡담으로 시간을 좀 더 끈 다음에 세 사람은 카페 문을 나섰다. 그때 영숙 씨가 그랬다.
“그 집도 이번에 수해를 좀 입었답니다. 심하진 않다고 하던데.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요? 그 집 할머니가 결국 요양병원으로 가셨답니다.“
우리가 ‘어부의 오두막’ 낡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할아버지는 말도 웃음도 없이 눈인사만 보낸다, 그 분위기가 조금 전 영숙 씨가 하던 얘기와 연관이 있다 싶은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안녕하셔요’하는 수인사도 나오다가 입술 근처에서 머물고 만다. 가게 안을 일별해 보았으나 수해 흔적은 없다. 자세히 보니 바닥의 흙을 더 보태어 깔고 다진 듯할 뿐.
안주는 동태탕에 이의가 없다. 이 집의 대표 메뉴니까. 술은 의견이 달랐다. 상수는 막걸리, 나는 소주. 그러나 주문을 할 땐 나도 막걸리로 수정한다. 그것 별것 아니다 싶고, 개인 취향도 존중되어야 한다 싶지만, 내 주장도 굽힐 줄 알아야 한다고 늘 얘기해 온 나 아닌가 싶어서. 다른 사람 주장은 굽혀야 하고, 내 주장은 굽힐 수 없고. 거기서부터 모든 갈등과 분쟁이 발생한다. 그런 걸 두고 정치판에서 생겨난 유행어가 있었지.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나? ‘Naeronambul, If they do it, it's romance; if others do it, they call it an extramarital affair.' 미국의 유명한 시사 주간지 ‘타임’의 표지에까지 소개됐던 말이다. 그런 생각, 그런 판단이 규모가 커지고 국가 대 국가의 상황이 되면 전쟁이 터지고, 죄 없는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도 죽어갔던가? 이런 걸 생각하면 작은 걸 작다고만 할 수는 없다. 작은 것이 자라서 큰 것이 되니까.
안주 동태탕으로 인해서 전에도 여러 번 했던 명태의 이름 이야기가 또 나온다. 원래의 이름은 명천의 태 서방이 잡았다고 해서 명태, 살아있으면 생태, 얼리면 동태, 말리면 북어, 누런색 띄면 황태, 새끼는 노가리.
”또 하나 더 있지? 박 사장, 기억나나?”
“내 기억력이 신통찮지만 그건 알지. 이름이 좀 괴이하지만. 덕장에서 바닥에 떨어진 것은 낙태.”
“하하하. 박 사장 기억력은 수준급이야. 그러니 동기회장을 장기 집권할 수 있지.”
“장기 집권?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네. 정치판 생각나서 어감이 좋지 않아. 꼭 칭찬을 해 주고 싶으면 장기 봉사라고 하든가.”
우리가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는데, 동태탕 냄비가 나오고, 이어서 막걸리병 두 개가 냄비 곁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고, 우리는 ‘잘 먹겠습니다’하는 인사 외에 다른 얘기는 할 수가 없었다. 수해 얘기도, 요양원에 가신 할머니 얘기도.
“이런 집에다 주었으면 좋지 않았겠어요? 그 돈 말예요.”
건배한 막걸리 잔을 내려놓으면서 영숙 씨가 하는 말이다. 그렇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래서 그 돈 18만 원은 술 사 마시고 밥 사 먹고 하는 대신 다른 데 기부를 했지. 그런데 이심전심인지 상수도 새로 설립되는 어느 재단에다 기부를 했단다.
“혹시 그 재단 ‘국민 희망재단 새빛’이란데 아냐?”
“응. 맞아. 그 사람 알지? 우리 후배, 소설가 김장환이. 거기서 연락이 왔데. 뜻있는 사람들 몇이서 국민에게 희망 주는 재단을 만든다고.”
“잘했어. 나도 거기에 기부했어. 내가 아는 변호사가 한 사람 있는데, 사실은 잘 아는 건 아니고 통성명 정도 한 사람인데, 어느 행사장에서 만났어. 노태호 변호사라고. 나라에서 주는 돈 안 받겠다고들 하지만, 그것보다는 받아서 유용하게 쓰는 게 더 의미 있는 일 아니겠느냐고 하데. 용모도 깔끔하고 단정했지만 얘기를 나누어 보니 인품이 돋보여. 나라와 백성 생각하는 마음도 깊고. 당장에 동참하겠다고 했지.”
언젠가. 대구에 사는, 내가 아는 소설가가 소설책을 펴냈다고,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초대장이 카톡으로 들어왔다. 축하도 해 주고, 아는 사람들도 만나고, 또 소설책 한 권 얻거나 잔칫술도 한 잔 얻어 마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갔었다. 원형 테이블 내 옆자리에 말쑥한 정장 차림의 신사가 앉아 있었다. 내가 먼저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그도 응답으로 명함을 주었는데, 그가 바로 ‘진실과 정의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노태호였다. 오늘의 주인공인 소설가와는 고등학교 동기라고 자기소개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도 소설을 여러 편 발표한 소설가였다. 소설가 변호사라? 관심이 갔다. 그가 그날 그랬었다. 자기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나랏돈을 풀어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포퓰리즘은 정의롭지 못하다. 그래서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재단을 하나 만들 생각이라고, 벌써 몇몇 의기투합하는 사람들과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나는 첫 만남인데도 신뢰가 갔다. 그날 내가 약속했다. 나도 작은 돈이지만 그 재단 설립에 보태겠다고.
“그런데 그날 노 변호사가 말한 ‘의기투합’한 몇 사람 중에 김장환 소설가가 들어있었던 모양이야.”
“그럴 수도 있지. 같은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김장환은 국회의원 보좌관을 오래 했으니 법조계에서도 아는 사람 많지 않겠어?”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지. 그런데 오늘 그 재단 준비위에서 문자가 왔어. 내 전화기에 있는 대로 읽어볼게. 한번 들어봐요.”
나는 술상 구석에 누워있는 내 전화기를 집어 들고 메시지를 찾았다.
김영근 출연자님 안녕하십니까? ‘국민 희망재단 새 빛’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9월20일 오후 2시 현재 출연금은 16억 5천8백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7월 17일 계좌 공개 후 8월 5일 서울시에 설립 허가 신청 서류를 접수하였고, 사무실 현장 실사도 마쳤습니다. 서울시가 상급 주무관청인 중기벤처부에 보고서를 올린 뒤 몇 가지 보완 요구가 있어서 현재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한시바삐 최종 허가를 받아 기쁜 소식 알려 드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얼마나 귀한 정성을 모아주신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빛나는 열매를 미래 세대에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새 빛 재단 설립 준비위원회 드림
“어때요? 믿음이 가지 않아요? 이런 편지까지 왔는데.”
“그 편지 나한테도 왔어. 난 다 지워버렸지만.”
“그분, 변호사란 분 소설 쓰신다더니 그것 설마 소설은 아니겠죠?”
박 사장 말끝에 영숙 씨가 끼어든다. 의심해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양념을 치려는 농담이겠지. 조금 전에 자기도 이런 일에 쓰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했으니까. 그리고 전에도 우리 이런 농담을 자주 주고받곤 했었으니까. 국회에서 군인인 아들 미귀 사건 논란이 있었을 때, 그 사람이 그랬었지. ‘소설 쓰시네.’ 그때 소설가들이 항의를 했었지. ‘소설은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은 허구이나 추구하는 정신은 진실이다. 정치인들 당신네보다는 훨씬 진실하다‘하면서. 그 뒤에 거짓말한다는 말이 ’소설 쓰시네’에서 ’정치하시네‘로 바뀌었다는 건, 이건 아이러니인가? 정치인들 스스로 만든 치욕인가?
술은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더니, 정말로 오늘은 친구 좋아 그런지 술이 잘 넘어간다. 술 못하는 줄만 알았던 영숙 씨까지도 벌써 막걸릿잔을 몇 번이나 입으로 가져갔는지 모른다.
“영숙 씨는 커피만 마시는 줄 알았는데, 술도 좀 하시네요?”
상수가 동태 살을 한 점 집어먹고 젓가락을 놓으면서 영숙 씨를 돌아본다.
“신발 장수 헌신 신는다는 얘기 있잖아요. 커피 장수는 맨날 커피 마시지 싶어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저녁에 결산할 때는 내가 한 잔 덜 마셨더라면 싶을 때가 더러 있어요. 젊을 때는 술자리에도 더러 어울리곤 했는데, 혼자된 뒤로는 끊었죠. 그 사람 술버릇 때문에 고생했던 것 생각나서.”
“영숙 씨 술 생각나면 언제라도 전화해요. 내가 기꺼이 사지. 돈은 없어도 카드는 있으니까, 전에 내가 성당에서 임원 맡아 있을 때, 돈은 없고 카드뿐이라고 내 별명이 ’카드 신사‘였다니까. 하하하. ”
나도 추임새를 넣는다.
“제발 그 희망재단이 잘 돼서 불쌍한 백성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낼 수 있으면 좋겠어. 요즘은 희망이 없어. 텔레비전을 가끔 보기는 하는데, 뉴스는 안 봐. 특히 정치 얘기는. 뉴스 보다가도 정치 얘기 나오면 꺼 버려. 무덤 속에서 경석이가 ’그것도 그림자 춤이야‘ 하고 외치는 것 같아서.”
“나도 그래. 그래서 ’견제와 균형‘이란 말을 좋아하는데, 그게 희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것하고 비슷한 거지 싶은데, ’협력과 상생‘이란 말도 있었지. 김 선생 그래야 한다면서 자주 강조했었잖아?”
“나는 무식한 커피 장수지만 나라 걱정은 할 줄 알아요. 두 분 어르신처럼 나라 걱정하는 사람이 국민의 절반만 된다면 희망이 있겠죠, 이 나라 앞날에.”
영숙 씨도 대화에 적극성을 보인다.
“그렇죠. 그래서 내가 정치인들한테 그 책, ’가이아‘를 권한다고 한 거죠.”
“참, 그 김장환이란 사람. 우리 고등학교 후배 소설가 말야. 새 책 냈다고 한 권 보냈더라.김 선생한테도 보냈지 싶은데 못 받았어? 아침에 집 나서는데 와 있길래 목차만 훑어보고 그냥 왔어. 그런데 말야. 책 제목이 웃겨. ‘정치동물 해부학 개론’이라니.“
”정치 풍자하는 내용이지 싶네. 제목 보니. 전에 그 ‘금수회의록’도 그랬잖아. 국회 근처에 얼찐거리면서 정치에 대해서 느끼는 게 많겠지. 가부간에.“
”그런데 그 책에 실린 소설 제목에도 ‘가이아의 마지막 카드’라는 게 있더라. 읽어보진 못했지만 김 선생 자주 하던 얘기다 싶어서 관심이 가더라고. 그 가이아 얘기했을 때 느낌이 왔었는데, 다시 얘기 좀 해 봐. 다 잊어먹었어.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나도 치매가 오는지 요즘은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어.”
“그러지. 영숙 씨는 못 들었으니까. 혹시 아는 얘기인지도 모르긴 하지만. 영국 사람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쓴 책인데, 제목이 ‘가이아(GAIA)’야. ’지구의 체온과 맥박을 체크하라‘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 여기서 지구의 이름이 ’가이아‘인데 알다시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땅의 신 이름이지.”
한 중년의 사나이가 의사에게 찾아와서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호소한다. 의사는 악성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이 사나이는 지구이고 바이러스는 인간이다. 지구는 인간이라는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하나의 비유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물과 공기와 토질의 오염, 황폐화해 가는 산림, 기후의 변화와 기상의 이변, 의술이 발달하고 의약이 개발되어도 늘어만 가는 질병.
이렇게 병든 지구, 가이아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네 가지의 경우를 가정할 수가 있다.
첫째는 숙주의 저항력으로 바이러스를 섬멸하는 경우다. 이 바이러스가 바로 인간이니 이것은 곧 인간의 멸종을 의미한다.
둘째는 숙주와 병원체가 장기전으로 들어가는 경우다. 지구도 인간도 병든 상태로 고생해야 하니 물론 바람직한 상태가 아니다.
셋째는 숙주가 바이러스에게 정복당하는 경우다. 숙주가 없이 병원체는 살아있을 수 없다. 따라서 지구가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넷째는 숙주와 병원체가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다. 지구도 살고 인간도 산다면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상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러브록의 결론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논거로 미토콘드리아를 들고 있다.
위 네 가지 가설 중 어느 경우라도 지구가 살지 않고서는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은 없다.
자원의 소비를 억제하고 파괴와 오염과 난개발을 막아서 지구의 자연환경을 보존하지 않으면 가이아는 '인간과의 결별(인간의 멸종)'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내밀게 될 것이라고 러브록은 온 인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얘기가 좀 어렵다만 대강 뜻은 알겠어. 결론적으로 공생해야 산다, 계속 싸우면 다 죽는다, 그 말이군.”
“맞아. 여기에서 말야, 가이아에 기업을, 바이러스에 노동을 대입해 봐. 무슨 암시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아?”
“기업을 죽이면 노동자도 죽고, 노동자를 죽이면 기업도 못 산다? 그런 말씀 아뇨? 김 선생님 하시고 싶은 얘기가?“
영숙 씨도 적극성을 보이면서 얘기에 동참한다.
”그렇죠. 노란봉투법이란 걸 반대하는 사람들을 노동자 무시라며 비판하지만,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거죠. 길은 결국 하나죠. 함께 사는 것, 상생.“
”그런데도 이 나라는 국민도 정치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니 걱정이야. 저기 텔레비전 좀 봐. 지금 정오 뉴스인 모양인데,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인가 거기 불난 얘기 나오네.“
”엊저녁 뉴스에서 봤는데, 난 그런 쪽엔 무식해서 이해가 잘 안돼. 거기가 뭘 하는 곳인지, 거기 화재가 왜 온 나라 정보를 마비시키는지, 언제쯤 복구가 되는지.“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국가적 대재난이라고 하는데, 우린 실감 안 나지만. 저기 좀 봐요. 저 사람 말하는 것. 정부 쪽 높은 사람인가, 국회의원인가 모르겠는데, 그것도 다 전 정부에서 관리를 잘못한 탓이라고 열을 올리고 있네.“
”일리가 있는 얘기이긴 하지만 잘못된 것은 무엇이나 전 정권 탓으로 돌리는 정치인들의 저 행태는 문제가 많아. 모두가 전 정권, 전 정권으로 계속 책임을 미루면 결국은 단군 할배가 혼자 책임지는 수밖에 없을 거야.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모든 잘못은 남 탓으로 돌리는 저 교활한 말씨. 정치가 뭐야? 국리민복, 국태민안. 국가와 국민에 대한 무한책임 아닌가? 그 책임 못 지겠으면 정권 내놔야지.“
”음모라는 얘기도 떠돌던데요? 죄지은 기록, 심지어는 부정 선거 흔적을 지우려고 그랬다는 얘기까지.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설마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마는?“
영숙 씨도 빠질 수 없다는 듯 자주 끼어든다.
”그렇지요.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도 있죠. 유튜브라는 새로운 세력이 나라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그것도 희망인지, 걱정인지.“
”전에 김 선생 자주 얘기했잖아. 정치는 열등감의 소산이다. 정치인은 태어나는 게 아니고 배설된다, 뭐 그런 얘기들.“
”그게 그리스 시대의 얘기라니 더 웃기지? 세상은 변해도 그런 건 안 변하나 봐.’“
막걸릿병 두 개가 빈 플라스틱병으로 변하고, 동태탕 냄비 시커멓게 탄 바닥이 드러나자 영숙 씨가 대화에 제동을 건다.
”술로 끼니 때우실 참입니까? 어디 가서 점심 먹읍시다. 오늘은 수해복구도 마무리됐고, 또 동참시켜 주신 보답으로 제가 한 턱 쏠게요.“
”그것 좋지. 오래 살다 보니 온갖 행운이 다 있네. 박 마담 점심을 얻어먹을 줄이야. 그나저나 수해 위로한다고 와선 점심까지 얻어먹는 건 너무 낯짝 두꺼운 짓 아닌지 몰라.“
”아까 뭐랬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함포고복(含哺鼓腹) 하여보세.“
우리가 이렇게 노닥거리며 어부의 오두막 문을 나서자 비가 후두둑 쏟아졌다. 아까 올 때는 하늘에 구름이 약간 낀 정도였는데, 이렇게 비를 맞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를 못했었다. 아무도 우산을 못 챙겼는데, 이런 낭패라니.
”어이, 김 선생. 전에 우리 곡주사에서 술 먹고 나오다가 이런 일 한번 당했지. 그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그런 걸 잊으면 안 되지. 하늘의 교훈. 재난은 언제 닥칠지 모르니 미리 준비하라는 말씀.“
”아무리 좋은 교훈이라도 실천 안 하면 소용없지. 오늘 일기예보만 미리 보았더라도 이런 낭패를 안 당할 수도 있었는데 말야.“
그다음 날 오전에 밖에 나갔다가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니, 우리 우편함에 무언가가 얼굴을 반쯤 내밀고 꽂혀 있다. 김장환의 소설집 ‘정치동물 해부학 개론’이었다. 봉투를 벗기자 표지 그림부터가 인상적이다. 김장환답다고나 할까? 표지는 책의 얼굴인데, 내용과 어떻게든 상관성이 있을 것 아냐. 분명하진 않지만, 어떤 상징적 의미까지 담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기억의 지속’.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그림이다. 나뭇가지에 걸린 시계가 녹아내리는 희한한 그림. 언젠가 국회의사당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이 그림이 거꾸로 걸렸다. 왜 거꾸로 걸었느냐는 기자 질문에 주관을 했던 국회의원이 그랬다는 것 아냐. ‘달리’ 그렸으니까. 한바탕 웃고 말았으나 뒷맛은 씁쓸했다.
표지를 넘겨 목차를 폈다. 맨 앞에 ‘지은이의 말’. 제목이 ‘이 시대 백성의 아픈 앙금들’이다. 그 밑으로 게재된 작품의 제목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모두 8편이다. 맨 앞의 것이 바로 그 표제작인 ‘정치동믈 해부학 개론’이고 맨 뒤의 것이 ‘가이아의 마지막 카드’였다. 그중에서 마지막 작품이 제목이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어제도 상수와 영숙 씨와 ‘가이아’ 이야기를 했을 뿐 아니라, 언젠가 성주 농민회관에서 국회의원 귀향 보고회 할 때, 보좌관으로 따라온 김장환과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내가 가이아 얘길 했고, 그가 관심을 보였었지. 어쩌면 그 기억이 이 소설의 씨앗이 됐는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자 얼른 읽어보고 싶다. 그래도 짧은 지은이의 말을 먼저 읽어야겠지? 그러라고 맨 앞에다 놓았을 테니까.
지은이의 말이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출판 동기,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 도움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 인사, 독자에 대한 겸손한 인사와 당부, 그런 것들의 나열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이 소설들을 쓰면서 고심했던 얘기를 하는 가운데 섞여 있었다.
고통과 질곡으로 점철된 역사. 손바닥만 한 국토는 아직도 분단되어 있는데, 밥술이나 먹을 만하다고 정신 줄을 놓아 버린 사람들. 나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정략적 싸움만 일삼고 있는 정치인들. 향락의 늪에 빠져 이기의 악어에게 발목을 물린 젊은이들. 국론은 사분오열, 도덕과 윤리는 이미 쓰레기통에 던져진 지 오래. 정의가 힘이 아니라 힘이 정의가 되어버린 사회. 아부와 아첨을 능력이라 하고, 권모와 술수를 지혜라고 부르는 나라. 이 나라 이 사람들은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도 괜히 코끝이 찡함을 느꼈다. 여기 실린 소설들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지 싶었다. 소설이 ‘거짓말하시네’, 혹은 ‘정치하시네’와 등가물이 아니라 진실을 위한 고뇌의 산물이라는 걸 웅변하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소설의 내용이 궁금했다. 특히 첫 번째 것은 ‘정치동물 해부학 개론’이란 제목이 희귀하고도 도전적이어서 구미가 당겼으나, 끄트머리의 ‘가이아의 마지막 카드’를 먼저 읽기로 한다.
첫머리에서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의 ‘가이아(GAIA)’ 소개가 먼저 나온다. 머리말이라고나 할까? 그 뒤를 잇는 본문 격인 스토리는 한 중소기업의 경영자가 사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독백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위한 연수회에서 어느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가 하는 강연을 듣고 심취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분이 강조하던 ‘가이아’ 이론이 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빛을 줄 수 있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하고, 사회의 모든 현상을 이 가이아 이론을 적용해 보는 형식으로 소설을 이끌고 있다. 물론 이건 학술 논문이 아니고 소설이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무리한 상상의 내용도 많았다. 그런데 여기서 내 관심을 끈 것은 작중 화자가 가이아 이야기를 어느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의 강연을 통해서 들었다고 하는 장면이다. 그게 어쩌면 전에 나와 김장환이 나눈 대화를 활용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 소설에서는 사건의 부스러기들도 튀기고 다듬고 하여 재활용하는 일이 많으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것은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복잡한 문제를 이 가이아 이론에다 적용시켜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가, 내가 그에게 했던 얘기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기업과 노동자 관계뿐 아니라 기성세대와 신세대, 정부와 국민, 부자와 가난한 사람, 종교가 다른 사람들, 여당과 야당,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심지어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까지 적용시키면서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그만치 이 가이아 이론의 적용 범위가 넓고, 가능성이 크다는 걸 강조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가이아의 카드는 모두 넉 장이다. 숙주가 살고, 바이러스가 죽는 것, 그 반대로 바이러스가 살고 숙주가 죽는 것, 둘 다 사는 것, 그리고 마지막 카드는 둘 다 죽는 것. 공멸이다. 가이아가 그 마지막 카드를 내밀기 전에 인류는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게 그 소설의 주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내 평소의 주장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표제작 ‘정치동물 해부학 개론’이 구미가 당겼으나 일단 뒤로 미루고 책을 덮는데, 언뜻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이슬람 사회로 숨어들어 스스로 ‘미토콘드리아’가 됐다고 하던 강연수 목사. 그는 나와 학과는 달랐지만 교직과목을 함께 들으면서 알게 된 친구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됐으나 금방 포기하고 신학교엘 들어갔고, 개신교 목사가 됐다. 학창시절에는 종교 서클의 회장을 맡기도 해서 별명이 강 목사였는데, 정말로 목사가 된 것이다. 졸업 후에는 별 연락도 없이 지냈는데, 뜻밖에도 그를 요르단에서 만났다.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아마 2011년이지 싶다. 나는 가톨릭 신자 성지 순례팀에 섞여서 이집트엘 갔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노예살이를 끝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찾아간 그 길을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아직 우리가 카이로에 있을 때였는데, 어느날 아침에 도시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호텔 앞 도로에는 군인들이 줄을 서 있고, 사복을 한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 뒤를 받쳐 서 있다. 혁명이 일어났답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 말 한마디는 우리 모두를 긴장시켰고, 어쩌면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어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다급하게 카이로를 떠나서 아카바만을 통해 요르단으로 넘어왔고, 거기에서 튀니지의 독재정권이 시민들의 항거로 무너진, 소위 재스민 혁명이 이집트에도 영향을 미쳐서 무바라크 30년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팀의 안내역을 맡은 현지 가이드가 바로 강 목사였던 것이다. 첫날 페트라 관광을 마치고 숙소인 ‘왕의 길 호텔’(King’s Way Hotel)에 들었을 때, 그는 기독교 목사가 되어 이슬람 국가인 요르단에서 살고 있는 기구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는데, 그때 강 목사가 러브록의 저서 ‘가이아’ 얘기를 했었다. 공식적인 종교활동은 물론 못하고, 부항(附缸) 뜨는 기술로 친구를 사귀면서, 그렇게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처럼 살고 있다는 얘기를.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에서도 혁명이 일어났는데, 요르단은 괜찮으냐는 내 물음에 강 목사가 그랬다. 암만에서 소규모의 시위가 있긴 했지만 여기는 괜찮을 거라고. 목사도 밥벌이하며 살고 있고, 또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미국 유학한 사람들도 있어서 비교적 다양성이 인정되는 나라라고. 유전학에서도 잡종강세라는 게 있지 않느냐는 얘기도 보태면서, 자기는 여기 이슬람의 거친 광야에다 기독교의 씨앗을 심어, 미토콘드리아가 될 생각이라고도 했었다.
나는 귀국 후에 얼른 그 책 ‘가이아’를 사서 읽었고, 그 후로 ‘가이아의 카드’ 얘기를 많이도 써먹었다. 무쳐 먹고, 삶아 먹고, 볶아 먹고. 그런 점에서 보면 그는 친구이기만 한 게 아니라 선배요 스승이기도 한 셈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목사는 지금쯤 종교활동의 근거지라도 확보했을까? 아니면 아직도 관광객 안내나 하고 있을까? 그를 위해서 기도라도 좀 할까?
나는 성모상 앞에 촛불을 밝히고 묵주를 찾아 쥔다. 강 목사의 안녕이라도 빌어 주자. 그리고 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나라에 평화와 안정을 주십사고 하느님께 간구해야지. 하느님은 한 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신다니까.(*)
윤중리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작가협회 회원
*대구가톨릭문인회, 대구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탄리문학상, 이태원소설문학상, 대구문학상, 대구예술상 수상
*저서 : 소설집 <오렌지빛 가스등> 외, 장편소설 <바람의 둥지>, 연작소설 <그림자 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