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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작고, 백성 수는 적어야 한다. 온갖 도구가 있지만 쓰지 않게 하며 백성들이 생명을 중시하도록 하면, 살던 곳을
버리고 멀리 옮겨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배나 마차가 있어도 탈 필요가 없고,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 총명과 지혜를 끊어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인과 의 같은 도덕을 끊어 버리면 백성들이 옛날처럼
효성스럽고 자애롭게 될 것이다. 정교하고 편리한 물건들을 없애 버리면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 소극적
방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외모는 수수하고 마음은 소박하게 하며, 이기심과 욕망을 줄이게 한다. 천하는 불가사의한 그릇이어서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다. 잘하려고 애쓰면 실패하고, 꽉 잡고 장악하려 하면 천하를 잃고 만다. 언뜻 보면 원시적 자연 부락의 생활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을 하고, 백성들을 아무 생각이 없고 그저 배부르면 좋은 '행복한
돼지'로 만들려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노자의 '도'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이 말드을 새기면, 단순히 원시 사회로
돌아가자거나 우민 정치를 해야한다는 주장만은 아닙니다. 이 말들이 겨누고 있는 현실 상황은, 생산력의 발달로 주나라의 종법
제도가 무너지면서 옛 귀족과 새롭게 신분 상승을 꾀하던 신흥 지주 사이에 이익 다툼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여러 가지
정치적 이론들이 서로 논쟁하면서 직접 일하지 않고 지식을 밑천으로 살아가는 계층이 인기를 얻고 확대되어 간 상황입니다. 큰길은 넓으나 백성들은 샛길을 좋아한다. 관청은 깨끗하게 지었으나 논밭은 황무지가 되었고, 창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권력자들은 좋은 옷을 입고 고급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밤마다 연회를 열어 음식이 싫증날 정도이다. 그러고도 재물은 남도록 가졌으니, 이것은 도둑질하여 사치에 쓰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도가 아니다. 무위의 정치는 통나무와 같은 자연 상태를 유지하여야 하고, 어쩔수 없어 관청에 기구를 설치하더라도 가능한 한 기구를 축소하여 자연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위태롭지 않다고 합니다. 놀고 먹는 자가 많거나 일하는 사람보다 감독자가 잘사는 것은 거꾸로 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요점을 지키는 정치를 가리킨 것입니다. 정치가 너그럽고 간섭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순박해진다. 정치가 자질구레한 구석구석까지 감시하면 백성들은 불만을 품게 된다. 최고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고 칭송을 듣는다. 그 다음 수준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 아래는 백성들이 그를 경멸한다. 노자의 이러한 정치론은 현대 사회의 정치와 매우 거리가 먼 주장입니다. 인류 역사가 흘러온 방햐오가도 맞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인간의 계획과 노력의 가치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노자의 무위의 정치는 '예측할 수 있는 정치'나 '위로부터의 개혁' 같은 방법과 180도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자의 '대도(大道)'라는 것은 전제군주의 교묘한 통치술의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장차 그것을 축소시키려면 먼저 그것을 확장시켜야 한다. 장차 그것을 약화시키려면 먼저 그것을 강화시켜야 한다. 장차
그것을 없애려면 먼저 그것을 진흥시켜야 한다. 장차 빼앗고자 하면 먼저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은미한 지혜라고 한다. 여기에서 노자의 '대도'는 전제 군주의 비밀 정치를 옹호하고 군주의 통치술에 의존한 정치만을 논하였으며, '대도' 자체가 매우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민주적인 논의와 제도적 장치를 통한 합리적 통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 정치론은 전제 군주를 위한 '제왕학'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http://www.philosophylov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