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강[誕降]과 유소[幼少]시대
1장 1절 天主님의 姓은 姜이요 이름은 壹淳이요 字는 士玉이요 號는 甑山이시니 檀君紀元 사천이백사년 이조고종팔년 辛未九月十九日 (西曆 1천8백7십1년 11월 1일)에 朝鮮 全羅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지금 井邑郡 德川面 新月里(新基)에서 탄생[誕降]하시니라.
天主 通稱 (姓=姜) (姓銜=一淳)(字=士玉)(號=甑山) (天開甲子五二二八) (檀紀四千二百四) (大巡三十二) (李祖高宗八年) (西紀一八七一年十一月一日) (陰 辛未年九月十九日) 조선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현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신기) (朝鮮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 * 現 井邑郡德川面新月里新基)
[解]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가 생성(生成)되어 변화를 시작하여 그 변화(變化)차서(次序)가 하늘 땅 사람으로 변화(變化)를 하므로 변화하는 차서에 따라 각기 그 특성(特性)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 일러 河圖(하늘시대) 洛書(땅시대) 龍潭(사람시대)으로 구분한다. 하도(河圖)시대는 하늘이 변화의 주체가 되어 행하는 정사(政事)를 천상공정(天上公庭)이라 하고 낙서(洛書)시대는 땅이 변화의 주체(主體)가 돠어 행하는 정사(政事)를 천지공정(天地公庭)이라 하고 용담(龍潭)은 사람이 변화의 주체가 되어 행하는 정사를 천황공정(天皇公庭)이라 한다. 천상공정(天上公庭) 천지공정(天地公庭) 천황공정(天皇公庭)으로 바뀌어 지는 것은 우주(宇宙)의 중심(中心)이 하늘 땅 사람으로 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천주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탄강(誕降)하신 이유도 우주의 중심이 사람으로 이동하는 천시(天時)가 도래(到來)했기 때문에 사람으로 오셔서 우주의 중심을 사람에게 옮기는 대역사를 하시니 이것이 천지공사(天地公事)이다. 그러므로 천주님의 탄강(誕降)은 천지(天地)의 도수(度數)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니 천주님의 탄강(誕降)과 성장과정 천지공사(天地公事)등 일거수일투족을 도수(度數)라고 보고 살펴보아야만 천주님의 천지공사(天地公事) 내용을 살펴 볼 수가 있다. 천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시대인 선천(先天)을 개벽(開闢)하여 사람의 시대인 후천(後天)을 건설하셨으니 천주님의 모든 일상 생활의 모습을 도수로 보고 분석을 하여야만이 그 대의을 정확하게 알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므로 六何原則에 입각하여 살펴보아야한다.
(1). 천시(天時)
천주님께서 탄강(誕降)하신 천시(天時)를 살펴보면 신미년(辛未年) 경술월(庚戌月) 경자일(庚子日)이다.
태어나신 신미년(辛未年)은 辛은 立十이니 낙서(洛書) 중앙(中央)의 숨은 십(十)을 세우니 오십토(五十土)에 갇혔던 인류(人類)를 땅을 열고 십(十)을 용사(用事)하게 하심이고 그 기점이 미(未)에서 시작이 된다는 뜻이다. 선천(先天)의 시작인 하도(河圖)가 나온 때는 천시갑자(天始甲子) 임오(壬午)이므로 임오(壬午)는 하루에서 보면 정오(正午)에 해당된다. 태양계(太陽系)의 일주기(一週期) 일원상수(一圓常數) 129,600년에서 볼 때 일원(一圓)을 12지지(地支)로 구분하면 하나의 지지(地支)는 10,800년이 된다. 午會 10,800년에서 하도(河圖)가 나온 임오(壬午)는 午會 선반 5,400년이 지나고 午會 후반 5,400년의 시작처이다. 일원상수(一圓常數)에서 볼 때 子會 후반5,400년에서 午會 선반 5,400년까지 6會는 64,800년으로 선천(先天)이고 午會 후반 5,400년에서부터 子會 선반 5,400년까지 64,800년이 후천(後天)이다. 선천 양국(陽局)은 자축인묘진사(子丑寅卯辰巳)의 6會이고 후천(後天) 음국(陰局)은 오미신유술해(午未申酉戌亥)의 6會이나 양국(陽局)에서 음국(陰局)으로 넘어갈 때는 음양(陰陽)의 분계선(分界線)을 넘어가므로 양국의 중심은 양(陽)이 되고 음국의 중심은 음(陰)으로 바뀌니 음국(陰局)의 머리가 午이나 중심(中心)인 음(陰)에서 시작되는 머리는 午未 一陰中에서 未가 陰이므로 未에서 새로운 음국(陰局)의 기점이 된다. 이것이 후천(後天)이 午會에서 열리지않고 未會에서 열리는 것이다. 천주님께서 辛未로 오신 것은 十을 세워서 후천음국(後天陰局)을 여는 머리가 未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타냄이라 볼 수 있다. 천개갑자(天開甲子)는 천시갑자(天始甲子) 임오(壬午)에서 103년차이므로 하도(河圖)가 출한 午會 후반 5,400년은 천개갑자(天開甲子) 5,298년(서기 1941년)이 午會 후반 5,400(102+5,298=5,400)년이 떨어지는 자리이다. 서기 1,941년 신사년(辛巳年)은 일본이 서양인 미국을 침공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해이니 天主님께서 일본을 큰 머슴으로 내세워 동양패장으로 동서양 국경을 열어 선천상극(先天相剋)을 쓸어버리는 커다란 전환점임을 알아야한다.
九月은 경술월(庚戌月)로 일년중에서 가을에 해당하고 九月戌은 서리가 내려서 허상(虛像)과 실상(實像)을 구분짓게 하니 허상(虛像)을 떨어버리고 실상만이 존재할 수 있는 천시(天時)를 나태낸다. 천주님께서 심판하심을 나타낸다. 선천(先天)은 진술축미(辰戌丑未) 사고장에서 천(天)의 중앙(中央)인 진토(辰土)가 주인노릇을 하였고 후천(後天)은 천지(天地)의 중앙(中央)인 술(戌)이 중앙(中央)노릇을 한다. 경(庚)은 방부(方夫)로서 방위(方位)는 땅에서 나타남으로 낙서(洛書) 무기(戊己) 오십토(五十土)를 경(庚)이 방부(方夫)로 하늘을 뚫어서 지옥을 헐어버리고 천상세계(天上世界)의 문을 열게되니 양국(陽局) 진토(辰土)를 헐어버리고 음국(陰局) 술토(戌土)를 세우니 경술월(庚戌月)이다.
19일 경자일(庚子日)은 19는 천지적멸이종지수(天地寂滅二終之數)이고 경자(庚子)는 하늘을 열고 땅에서 새로 시작하는 자(子)이니 후천(後天)의 시작처이다. 천주님께서 도솔천에서 지상으로 하강하신 때가 庚子年(1,840)이다. 洛書는 북쪽에서 子가 시작을 하였으나 후천용담(後天龍潭)은 子가 남쪽에서 시작하니 先天의 未자리에서 시작이 되니 그 머리가 庚子이다. 태세(太歲) 辛未는 상수(常數)에서는 후천(後天)의 시작이 未會이니 지구상에서의 새로운 기점은 未자리에서 子가 시작이 된다. 그러므로 천주님께서 탄강(誕降)하신 천시(天時)에서 후천(後天)의 중요한 분수령을 암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 地名
전라도(全羅道) 고부군(古阜郡) 우덕면(優德面) 객망리(客望里)
전라도는 온전히 벌린다는 뜻이니 전세계(全世界)를 나타내고 고부(古阜)는 옛 언덕이란 뜻이니 선천(先天) 낙서(洛書)를 나타내고 우덕면(優德面)은 넉넉한 덕이니 후천(後天)을 열 수 있는 德을 지닌 곳을 나타낸다. 객망리(客望里)는 손님을 기다리는 마을이니 천주님께서 선천(先天)을 개벽(開闢)하여 후천(後天) 선경(仙境)을 열기위해 강세(降世)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을 나타낸다. 천주님께서 탄강(誕降)하신 신미년(辛未年)은 천개갑자(天開甲子) 5,228년으로 午會로부터 5,330년(102+5,228=5,330)으로 午會에 속하니 고부(古阜)에 탄강(誕降)을 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3) 인명(人名)
천주(天主)님의 성(姓)은 강(姜)씨요, 이름은 일순(一淳)이고 자(字)는 사옥(士玉) 호(號)는 증산(甑山)이시다.
강(姜)씨는 강(姜)은 팔왕녀(八王女)로 여덟 왕의 딸이니 후천팔괘(後天八卦)를 의미하고 강씨는 성(姓)의 시조(始祖)로 원시반본(原始反本] 함을 나타낸다.
일순(一淳)은 하나의 청정함을 나태내니 만물(萬物)이 시생(始生)한 태극(太極)을 의미한다. 자(字)는 결혼(結婚)하고 나서 이름대신 부르는 것이니 성인(成人)이 되었을 때의 이름이다. 사옥(士玉)은 선비의 옥이니 선비중에서도 가장 핵이라 볼 수 있다. 선비(士)는 학문을 공부하여 마음을 깨달아 도(道)를 행하는 사람을 말하므로 십무극(十無極)을 알고 활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낙서(洛書)의 중앙(中央)은 오십토(五十土)이다. 오토(五土)는 양토(陽土)로 낙서(洛書) 형상세계(形狀世界)의 중(中)이고 십토(十土)는 땅속에 묻혀서 용사(用事)를 하지 못했다. 낙서(洛書)는 만물(萬物)이 십무극(十無極)에서 일태극(一太極)으로 출하여 만물(萬物)이 형성(形成)되니 十無極(己十土)은 형상속에서 무형(無形)으로 내재되어 있고 형상(形狀)의 주인은 五土(戊土)가 주인 노릇을 하게 되니 이것이 물상(物像)의 중(中)이다. 土는 지평선상에서 십무극(十無極)이 형상(形狀)으로 들어난 것을 나타내고 士는 만물(萬物)의 형상속에 무형(無形)의 실상(實狀)을 깨달아서 형상(形狀)의 굴레를 벗어나서 실상(實狀)의 세상을 알고 도(道)를 행하는 사람이다. 사옥(士玉)은 형상(形狀)의 근원(根源)인 십(十)을 깨달은 사람중에서의 핵(核)이니 십일(十一)을 나타낸다. 이름과 자(字)는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이름은 생장기(生長期)를 나타내고 자(字)는 성장기(成長期)를 나타낸다. 일순(一淳)은 본래 청정한 자리인 천주님을 나타내고 사옥(士玉)은 이 땅에서 십무극(十無極)을 들어내어 용사(用事)를 할 때 변하지않는 본래 자리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성태극(成太極)을 나타낸다. 일순(一淳)이 이 땅에서 완성된 실상(實相)이 사옥(士玉)이라고 볼 수 있다. 호(號)는 이름과 자(字) 이외에 격의없이 부르는 것으로 그 사람이 추구하는 일을 상징(象徵)하는 것이다. 천주(天主)님께서 탄강(誕降)하신 객망리(客望里)에 시루산(甑山)이 있으니 이 地靈을 따서 증산(甑山)이라 하셨다. 시루란 가을에 결실한 곡식을 쪄서 떡을 만들 때 쓰는 그릇으로 결실한 곡식을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물질(物質)을 개혁(改革)하여 정신(精神)의 원동력(原動力)으로 돌리는 도구(道具)이다. 시루는 바닥에 다섯 개의 구멍이 있어 이 구멍을 통하여 증기가 올라와서 익히게 한다. 천주님께서 시루는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담아도 남는 가장 큰 그릇이라고 하셨다. 시루에 있는 다섯 개의 구멍은 형상(形像)의 근원(根源)인 十無極(成五 六七八九十)으로 이 십무극(十無極)을 통하여 윤하(潤下)하는 물과 염상(炎上)하는 불을 서로 바꾸어 수생어화(水生於火)로서 만물(萬物)을 상생(相生)으로 돌리는 그릇이니 가히 선천 상극(相剋)을 수화(水火)를 뒤집어서 상생(相生)으로 화(化)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 시루이다. 증산(甑山)이란 시루산으로 땅의 시루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증산(甑山)이란 지령을 취하신 것이라 볼 수 있다.
진표율사(眞表律師)께서 금산사(金山寺) 미륵불을 가마솥위에 시루를 얹고 세우시니 천주님께서는 가마솥 위에 시루를 얹어서 세상을 개벽(開闢)하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증산(甑山)이란 호(號)를 쓰신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증산(甑山)이란 일순(一淳)이 사옥(士玉) 되게하는 역할이라 볼 수 있다.
1장 2절 부친(父親)의 이름은 흥주(興周)요 모친(母親)은 권(權)씨요 집은 고부군(古阜郡) 우덕면(優德面) 손바래기라 권씨가 그 부근 답내면 서산리(畓內面西山里) 그의 친정(親庭)에 근친(近親)하려고 가 있을 때에 하루는 하늘이 남북(南北)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이가 내려와서 몸을 덮음에 천하가 광명(光明)하여지는 꿈을 꾸고 이로부터 잉태(孕胎)하여 열석달(十三個月) 만에 천주를 낳으시니라.
[解] 모친(母親)께서 꾸신 태몽(胎夢)이므로 모친(母親)은 땅이니 낙서(洛書)로 보는 시각에서 고찰하기로한다.
(1) 지명: 답내면(畓內面) 서산리(西山里)
낙서(洛書)가 오십토(五十土) 중앙(中央)이니 전(田)으로 보고 밭에 일육수(一六水)가 중앙(中央)에 들어가면 답(畓)이 되니 답내면(畓內面)은 후천용담(後天龍潭)을 상징(象徵)한다.
아침에 뜬 해는 저녁에 서산으로 지니 서산(西山)은 해가 지는 곳이다. 선천(先天) 양시절(陽時節)이 서산(西山)에서 끝이나고 서산(西山)에서 후천(後天)의 새로운 시작이 된다. 낙서(洛書)의 서쪽은 유(酉)로 이 유(酉)가 동(東)으로 넘어와서 자성(自性)의 태양(太陽)으로 떠오르니 옥추통부유(玉樞統符酉)로 유월세수(酉月歲首)가 됨을 알 수 있다.
(2) 내용
모친(母親)이 친정(親庭)에 근친(覲親)을 간 것은 친정(親庭)은 모친(母親)이 태어난 곳이니 원시반본(原始反本)을 나타내고 하늘이 남북(南北)으로 갈라지는 것은 동서(東西)를 나타내므로 동서(東西)는 일월지도로(日月之道路)로 큰 불덩이는 태양(太陽)이라 볼 수 있다. 태양(太陽)이 몸을 덮은 것은 하늘의 태양이 땅으로 떨어진 것이다. 불덩이를 본 것이 육안(肉眼)으로 본 것이 아니고 꿈에 영안(靈眼)으로 본 것이니 형상(形狀)의 태양(太陽)이 아닌 마음의 태양 즉 자성(自性)의 태양(太陽)이라고 보아야한다. 이 자성(自性)의 태양(太陽)이 유월세수(酉月歲首)로 나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밝히니 천하(天下)가 광명(光明)하여지는 것이다. 13개월은 월행(月行)13도로 유월(酉月)에서 12개월 일년(一年)이 지나고 13개월째 나타나는 유월(酉月)을 나타낸다.
1장 3절 낳으실 무렵에 부친(父親)이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두 선녀(仙女)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산모를 간호(看護)하더니 이로부터 이상한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고 밝은 기운이 집을 둘러 하늘에 뻗쳐서 이레동안 계속하니라.
[解] 부친(父親)이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본 것이니 이것은 부친(父親) 즉 하늘에서 본 것이므로 하늘입장에서 고찰하여야한다. 부친(父親)은 하도(河圖)의 남(南)쪽 건(乾)자리로 보고 비몽사몽(非夢似夢)에서 비몽(非夢)은 꿈이 아니고 육안(肉眼)으로 보는 형상세계(形狀世界)를 나타내니 낙서(洛書)의 남(南)쪽으로 보고 사몽(似夢)은 꿈같은 것이니 낙서(洛書)가 아닌 후천용담(後天龍潭)의 남(南)쪽 곤(坤)이라 볼 수 있다. 용담(龍潭) 남쪽 곤(坤)에서 천주(天主)님을 낳으니 후천(後天) 인도(人道)를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낙서(洛書)의 중앙십(中央十)에서 새로운 자식(一)을 낳으려니 땅문을 二로서 열 수 밖에 없다. 두 선녀가 모친(母親)을 간호(看護)했다는 것은 곤(坤)을 이(二)로써 연다는 것을 입증(立證)함이다. 향기가 가득하고 밝은 기운이 칠일(七日)간 하늘에 뻗친 것은 칠(七)은 천도수(天道數)로 천도(天道)가 지상(地上)에서 행해지는 것을 나타낸다. 용담(龍潭)은 낙서(洛書)를 천도(天道)인 칠도(七度)로써 개벽(開闢)을 한다.
1장 4절 점차 자라심에 얼굴이 원만(圓滿)하시고 솔성(率性)이 관후(寬厚)하시며 총명(聰明)과 혜식(慧識)이 출중(出衆)하시므로 모든 사람에게 경애(敬愛)를 받으시니라.
1장 5절 어려서부터 호생의 덕(好生之德)이 많으사 나무심기를 즐기시며 자라나는 초목(草木)을 꺾지 아니하시고 미세한 곤충(昆蟲)이라도 해하지 아니하시며 혹 위기(危機)에 빠진 생물을 보시면 힘써 구하시니라.
1장 6절 [丁丑年1877] 일곱살 되시던 정축(丁丑)년에 농악[農樂]을 보시고 문득 혜각(慧覺)이 열리셨으므로 장성(長成)하신 뒤에도 다른 굿은 구경치 아니하시되 농악(農樂)은 흔히 구경하시니라.
[解] 정축(丁丑)년은 신미년(辛未年)에서 칠도(七度)로 들어서는 해이다. 칠(七)은 천수(天數)로서 천주님께서 일곱 살로 칠도(七度)가 서는 해이니 천주님의 본 자리가 나타나니 혜각(慧覺)이 열리심이라 볼 수 있다. 그 매개가 농악(農樂)이 된 것은 농자(農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 봄에 씨앗을 심어 가을에 거두는 것으로 천도(天道)에 따르는 것이고 농악(農樂)은 농사(農事)를 음악(音樂)으로 구성(構成)하여 일년 12달처럼 12마당으로 구성(構成)을 하여 자연(自然)의 변화(變化)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1장 7절 이 해에 부친(父親)이 훈장(訓長)을 구하여 천주께 천자문(千字文)으로 글을 가르칠 새 하늘천(天)자와 따지(地)자를 가르칠 때에는 따라 읽으시나 검을현(玄)자와 누루황(黃)자를 가르칠 때에는 따라 읽지 아니하시거늘 훈장(訓長)이 만단개유(萬端開諭)하되 종시(終是) 읽지 아니 하심으로 할일없이 그친지라 부친(父親)이 천주(天主)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연고(緣故)를 물으니 가라사대 하늘천(天)자에 하늘이치(理致)를 알았고 따지(地)자에 땅이치를 알았으니 더 배울것이 어디 있사오리까 남의 심리(心理)를 알지 못한 훈장(訓長)이 남 가르치는 책임[責任]을 감당(堪當)치 못하리니 돌려 보내사이다 하시거늘 부득이(不得已) 하여 그 훈장을 보내니라.
[解] 일곱살은 천도수(天道數)로 천주님이 본래의 자리를 깨달은 해이니 선천(先天)을 개벽(開闢)하여 후천(後天)을 건설(建設)하실 일을 준비(準備)하여야 할 때이다.
그러므로 선천천지(先天天地)는 이미 행세(行勢)되었으니 하늘 천자에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 따지자에 땅의 이치를 알았고 이제는 인도(人道)를 열어야하므로 인도(人道)는 천주님께서 친히 열 자리이지 선천(先天)의 문명(文明)으로 열 수 없으므로 따라 읽지 않으심이라 볼 수 있다.
1장 8절 [己卯年1879] 아홉살 되시던 기묘년(己卯年)에 부친(父親)께 청하여 후원(後園)에 별당을 짓고 홀로 거처하사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고 간일[間日]하여 암軷 한마리와 비단 두자 다섯치(二尺五寸)씩 구하여 들이시더니 두달 후에 문득 어디로 나가셨는 데 방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더라 그 뒤에 집으로 돌아오사 자의(自意)로 외접(外接)에 다니면서 글을 배우시니라.
[解] 아홉살은 구궁수(九宮數)로 땅의 중앙(中央)을 기묘년(己卯年)에 낙서(洛書) 무기중앙(戊己中央)에서 십기토(十己土)를 여는 자리니 후원(後園)에 별당(別堂)을 짓고 홀로 거처하심이다. 중앙기토(中央己土)에서 땅문을 열려니 낙서(洛書) 남방구리화(南方九離火)와 이곤지(二坤地)가 구이착종(九二着宗)으로 서로 자리를 바뀌게 하는 공사라 볼 수 있다. 꿩은 리괘(離卦)를 나타내고 낙서(洛書)는 구리화(九離火)이니 장끼라고 볼 수 있는데 암꿩을 구해들이신 것은 낙서 二자리에 龍潭離卦가 간다는 것을 암시하고 비단 두자 다섯치를 間日하여 구해들이신 것은 비단은 사람이 짠 것이니 용담인도(龍潭人道)를 나타내고 비단은 화려하니 역시 리괘(離卦)를 나타내므로 용담(龍潭)의 리괘(離卦)는 그 수(數)가 九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두자 다섯치니 25치로 이는 一 三 五 七 九의 합 25를 의미하고 낙서(洛書)가 일(一) 삼(三) 오(五) 칠(七) 구(九)로 구리화(九離火)가 용담(龍潭)에서도 구리화(九離火)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심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달 동안은 일원(一元)60갑자(甲子)를 나타내고 어디를 나갔다가 돌아오신 것은 낙서(洛書)를 용담(龍潭)으로 九二錯綜으로 돌리는 작업(作業)으로 볼 수 있고 집에 돌아오사 외접에 다니면서 글을 배우신 것은 용담(龍潭)의 구궁(九宮)을 열었으니 인도(人道)가 열렸으니 글을 배우심이라 볼 수 있다.
1장 9절 서당에서 한문(漢文)을 배우실 때 한번 들은 것은 곧 깨달으시고 동무들과 더불어 글을 배우심에 항상 장원(壯元)을 하시니라 하루는 훈장(訓長)이 여러 학부형[學父兄]에게 미움을 받을까하여 문장이 다음 되는 다른 아해에게 장원을 주려고 뜻을 정하고 글을 꼲었더니 또 천주 께로 장원이 돌아가니 이는 훈장의 뜻을 미리 알으시고 문체와 글씨를 변하여 분별치 못하게 하신 까닭이라 모든 일에 이렇게 혜명[慧明]하시므로 보는 자가 다 이상히 여기니라.
[解]인도(人道)에 따라 글은 배우시나 천주님은 인도(人道)를 열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것이지 인간의 생활을 하기위해 오신 것이 아니므로 인도에 따르나 인간과 경쟁 상대가 아님을 보여주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천주님께서 사람들 보다 뛰어남을 과시하기 위해 늘 장원(壯元)이 되신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천주님은 절대자로 인간과는 그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늘 장원(壯元)을 하시는 것은 절대자임을 나태내는 한 방편(方便)이라고 보아야한다.
1장 10절 부친(父親)이 정읍읍내(井邑邑內) 박부호(朴富豪)에게 수백냥 빚이 있어서 독촉(督促)이 심하므로 걱정으로 지내거늘 천주 부친께 청하여 돈 오십냥을 준비하여 가지고 박부호에게 가사 돈을 주시고 그 집사숙(私塾)에 가서 학동들과 싸여서 노실 새 훈장이 운자(韻字)를 불러 학동들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하니 천주 함께 글짓기를 청하사 낙운성시(落韻成詩) 하심에 시격(詩格)이 절묘(絶妙)하거늘 훈장과 학동들이 크게 이상히 알며 박부호도 심히 기이히 여겨 집에 머물러 그 자질들과 함께 글읽기를 청하는지라 천주 부득이하여 며칠동안 머무르시다가 부친의 빚을 걱정하시니 박부호가 모든 일에 크게 기특히 보고 심히 사랑하여 드디어 채권(債權)을 포기하고 증서(證書)를 불사르니라.
[解] 부친(父親)이 박부호에게 수백냥의 빚으로 근심을 하는 것은 낙서(洛書)의 물질(物質)로 인하여 진 빚으로 마음의 고통(苦痛)을 받고 있으니 이는 대연수 49가 만물을 이루어 놓았는데 이 물질로 마음의 빚이 되어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천주님께서 만물을 낸 중심(中心)을 합한 오십으로 채권자(債權者)의 마음을 돌리게 하여 물질(物質)에 빠진 인류(人類)의 고통(苦痛)을 해결함이라 볼 수 있다.
1장 11절 하루는 부친(父親)이 벼를 말리는 데 새와 닭의 무리를 심히 쫓으시니 천주 만류[挽留]하여 가라사대 새 짐승이 한알식 쪼아 먹는 것을 그렇게 못 보시니 사람을 먹일 수 있나이까 하시되 부친이 듣지 않고 굳이 쫓더니 뜻밖에 백일(白日)에 뇌우(雷雨)가 대작(大作)하여 말리던 벼가 다 표류(漂流)하여 한알도 건지지 못 하였더라.
[解] 부친이 새와 닭의 무리를 쫓으신 것은 사람이 먹을 벼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함이니 이는 형상(形狀)의 벼에 치중(置中)된 선천(先天)의 시각(視覺)이다. 새 짐승이 한알씩 먹는 것을 그렇게 못 보시니 사람을 먹일 수 있나이까 하신 것은 뒤집어보면 새 짐승이 쪼아 먹어야 사람을 먹일 수 있다는 뜻이니 이는 인도를 여시는 것은 새가 먹어야 된다는 뜻으로 후천(後天) 인도(人道)는 새 乙로써 머리를 들어야 인도(人道)가 된다는 뜻이다. 선천(先天)은 양인 갑병무경임(甲丙戊庚壬)이 용사(用事)하고 후천(後天)은 음(陰)인 을정기신계(乙丁己辛癸)가 용사(用事)하니 후천용담(後天龍潭)은 음(陰)으로 머리를 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부친(父親)이 천주님 말씀을 듣지않는 것은 낙서(洛書)를 나타내고 백일에 뢰우(雷雨)가 대작함은 낙서(洛書) 진손(震巽)이 뢰풍상박(雷風相拍)하여 삼진뢰(三震雷)가 육건천(六乾天) 부친자리로 돌아와 좌선(左旋)으로 일육수(一六水)가 중앙(中央)됨을 나타낸다. 벼가 모두 물에 떠내려가는 것은 용담(龍潭) 일육수(一六水) 중앙(中央)이 서니 선천(先天) 낙서(洛書)를 물로써 쓸어버리는 것이다. 낙서 삼진뢰(三震雷)가 육건천(六乾天)자리로 돌아오니 진래원천신동기(震來遠天新動機)(震이 먼 하늘자리로 오니 새로 움직이는 기틀이다.)이다.
1장 12절 [癸未년1883] 열세살 되시던 계미년(癸未年)에 모친(母親)이 친히 짠 모시배 예순자(六十尺)를 마을 사람 유덕안(柳德安)에게 들리사 정읍장(井邑場)에 팔러 가셨는 데 덕안은 다른 일이 있어서 다른 곳에 가고 천주께서는 모시베를 포목전(布木廛) 곁에 놓고 앉으셨더니 문득 헛 눈을 파는 사이에 모시베를 잃어버렸더라 덕안이 이 말을 듣고 빨리 돌아와서 찾으려하나 날은 저물고 많은 사람중에 찾을 길이 없으므로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시기를 청하니 천주(天主) 듣지 아니하시고 즉시 고창(高敞)으로 가시며 가라사대 내일 들어가리라 하시거늘 덕안은 어찌하는 수 없이 혼자 돌아가니라 이튿날 천주께서 모시베 값을 가지고 돌아와서 모친(母親)께 올리시니 온 집안이 이상히 여겨 사실을 물으매 가라사대 모친이 무한한 근고(勤苦)를 들여서 짜신 물건을 잃었음에 얼마나 애석(哀惜)히 생각하실까 하여 오늘이 고창(高敞) 장이므로 반드시 장에 나올 듯 싶어서 바로 고창으로 갔더니 다행히 찾아서 팔아 왔나이다 하시니라.
[解]
(1) 천시(天時) : 계미년(癸未年)
북쪽 癸水 음수(陰水)에서 땅의 남극(南極)을 여는 기점. 13세는 천유13도를 나타냄
(2) 지명(地名) : 정읍(井邑) 고창(高敞)
정읍(井邑)은 낙서(洛書) 홍범구주(洪範九疇)로 낙서(洛書)를 나타냄. 정읍장(井邑場)은 낙서(洛書) 오십토(五十土)를 나타냄. 고창(高敞)은 가장 창창(敞敞)한 곳으로 낙서(洛書)의 끝 남쪽 구리화(九離火) 자리를 나타냄.
(3) 물명(物名) : 모시베 60자, 포목전(布木廛)
모시베는 경위(經緯)로 짜여진 것으로 모시베 60자는 선천(先天)의 도수(度數) 일원(一元)60갑자(甲子)로 볼 수 있음. 포목전(布木廛)은 목(木)을 펴는 전(廛)이니 동방(東方)의 목(木)을 펼쳐내는 곳.
(4) 인명 : 유덕안(柳德安)
유(柳)는 목묘(木卯)이니 동(東)쪽 묘(卯)를 나타냄, 덕(德)은 땅을 나타냄, 안(安)은 편안하게 함. 유덕안(柳德安)은 동쪽의 목인 묘에서 낙서(洛書) 땅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 현무경(玄武經)의 기서재동(其瑞在東)으로 서(西)쪽의 유(酉)가 동(東)쪽으로 넘어와서 인도(人道)를 열므로 덕안(德安)이 됨.
(5) 내용
모친(母親)은 땅으로 낙서(洛書)로 볼 수 있고 모친(母親)이 친히 짠 모시베는 낙서의 도수(度數) 60갑자(甲子)로 볼 수 있다. 정읍장(井邑場)은 낙서(洛書) 오십토(五十土)로 낙서(洛書) 오십토(五十土) 중앙(中央)에서 선천(先天)의 결론(結論)을 지음이다. 유덕안(柳德安)에게 모시베를 들린 것은 낙서(洛書) 도수(度數)의 결론(結論)이 동방(東方) 목(木)에서 이루어 짐을 알 수 있다. 선천(先天)은 동방(東方)이 卯이나 후천(後天)은 기서재동(其瑞在東)으로 서(西)쪽으로 진 태양이 다시 동(東)쪽으로 떠오르니 이것이 서(西)쪽에 있던 酉가 동쪽으로 넘어옴이 유덕안(柳德安)이다. 모시베를 포목전(布木廛) 곁에 놓고 天主님께서 헛눈을 파는 사이에 모시베가 없어진 것은 특히 주목을 하여야 한다. 天主님께서 헛눈을 파신 것은 의도적(意圖的)인 것으로 보아야한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이 실수(失手)로 헛눈을 판다는 것은 상식적(常識的)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낙서(洛書) 중앙(中央) 포목전(布木廛)에서 목(木)을 펼쳐놓고 헛눈을 파신 것은 용담(龍潭)을 보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주님의 목적(目的)은 후천인도(後天人道) 용담세계(龍潭世界)를 건설(建設)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덕안(柳德安)이 찾아도 찾지 못하는 것은 유덕안(柳德安)은 선천(先天)의 목(木)이니 후천(後天)의 동방(東方) 목(木)을 나태내는 것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 고창(高敞)에서 모시베를 찾아 팔아 오신 것은 낙서(洛書)의 결론(結論)이 남쪽 구리화(九離火)에서 용담(龍潭)의 시작처가 됨을 나타냄이라 본다.
1장 13절 [丁亥年1887] 열일곱살 되시던 정해년(丁亥年) 어느날 외가에 가시더니 어떤 술주정꾼이 무고(無辜)히 패욕[悖辱]을 가하거늘 천주 아무 대항(對抗)도 하지 아니하시더니 문득 어디서 큰 돌 절구통이 떠내려 와서 주정꾼의 머리 위로 덮어 씌우니 주정꾼이 절구통 속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라 천주 몸을 빼쳐 다른 곳으로 가시니라.
[解]
(1) 천시(天時) : 정해년(丁亥年)
정해(丁亥)는 남(南)쪽 정(丁)자리에 해(亥)가 들어가니 낙서(洛書)의 북쪽 해(亥)가 남쪽으로 돌아옴을 나타내니 심령신대해(心靈神臺亥)라고 볼 수 있다.
(2) 지명(地名) : 외가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니 낙서(洛書)의 근본(根本)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3) 물명(物名) : 돌 절구통
돌은 손이니 손방으로 봄
(4) 내용(內容)
외가는 낙서(洛書)의 근본(根本)이니 낙서(洛書)는 북(北)쪽에서 시작(始作)되고 낙서(洛書)의 근본(根本) 하도(河圖)는 남(南)쪽에서 시작되니 정해(丁亥)는 남(南)쪽의 해(亥)이므로 해(亥)를 외가로 볼 수 있다. 해는 심령신대해(心靈神臺亥)이니 현무경(玄武經)의 심령신대해(心靈神臺亥)에서 허령부무이구곡(虛靈符武夷九曲) 지각부무이구곡(智覺符武夷九曲) 신명부무이구곡(神明符武夷九曲) 관왕(冠旺)으로 후천(後天) 유월세수(酉月歲首)가 용담(龍潭)의 칠손(七巽)에서 솟아나서 만민(萬民)의 마음을 밝혀주니 술취한 사람처럼 낙서시대(洛書時代)의 정신(精神)을 잃은 인류(人類)를 돌 절구통인 용담(龍潭) 손(巽)에서 나오는 유월세수(酉月歲首)로 정신(精神)을 회복하게 됨을 나타냄이라 본다. 선천(先天) 낙서(洛書) 사손풍(四巽風)은 땅에 있는 돌 절구통이고 사람의 머리위에 뒤짚어 쒸운 돌 절구통은 용담(龍潭)의 칠손(七巽)이다. 땅에 있는 절구통과 머리위에 쒸운 절구통은 상하(上下)로 뒤짚어진 것이다. 이는 낙서(洛書)의 사손(四巽)은 오중앙(五中央)으로 들어가서 육건천(六乾天)으로 나가나 용담(龍潭)의 절구통은 오진(五震)에서 육중(六中)으로 들어가서 칠손(七巽)으로 나오니 서로 반대임을 나타낸다. 술주정꾼은 방종(放縱)한 낙서시대의 인류(人類)를 나타낸다.
1장 14절 [甲午年1894] 스물 네살 되시던 갑오년(甲午年)에 태인(泰仁) 동골 사람 전봉준(全琫準)이 당시의 악정(惡政)에 분개(忿慨)하여 보국 안민(輔國安民)의 표호(標號)로 동학 신도(東學信徒)를 모아 고부(古阜)에서 혁명(革命]을 일으키니 온 세상이 들끓는지라 천주 그 전도[前途]가 이롭지 못 할 줄을 알으시고 월흑안비고(月黑雁飛高) 선우야둔도(單于夜遁逃) 욕장경기축(欲將輕騎逐) 대설만궁도(大雪滿弓刀)란 옛글을 여러사람에게 외워주사 겨울에 이르러 패멸(敗滅)될 것을 예언(豫言)하시며 망동치 말라고 효유(曉諭)하시니라.
[解]
(1) 천시(天時): 갑오년(甲午年)
정남(正南) 오(午)에서 천간(天干) 갑(甲)의 시작(始作)이니 일음(一陰)자리의 양(陽)의 기점이다.
(2) 지명(地名): 고부(古阜)
옛 언덕이니 낙서(洛書)를 나타냄
(3) 인명(人名): 전봉준(全琫準)
전세계(全世界)의 칼집 장식을 고른다는 뜻으로 세계(世界)의 무관(武官)들의 법도(法度)가 됨으로 선천을 부수는 무력혁명(武力革命)의 기준점이 됨
(4) 문명(文名) : 월흑안비고(月黑雁飛高) 선우야둔도(單于夜遁逃) 욕장경기축(欲將輕騎逐) 대설만궁도(大雪滿弓刀)달이 캄캄한 그믐밤에 기러기는 높이 날고 흉노의 왕은 밤에 달아나 숨고 빠른 기병으로 장차 쫓으려하나 큰 눈이 내려 활과 칼에 가득 쌓이네.
(5) 내용(內容) : 낙서(洛書) 24방을 상징하는 천주님 24세에 낙서(洛書)를 나타내는 고부(古阜)에서 전봉준(全琫準)이 혁명(革命)을 일으키니 이것은 선천(先天)의 폐습(弊習)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후천세계(後天世界)를 건설하려는 기점이 됨으로 동학혁명(東學革命)이 전세계(全世界)의 난(亂)을 끌어내었다고 천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동학(東學)은 동세(動勢)를 맡았고 천주님께서는 정세(靜勢)를 맡았으므로 망동치 말라고 효유하심이다. 동학(東學)이 패멸(敗滅)될 것을 예언(豫言)한 옛 글을 살펴보면 보다 더 천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알 수 있다. 이 글의 대의는 선우를 경기병으로 쫓으려하나 눈 때문에 쫓지 못하여 동학(東學)의 실패를 암시를 하였으니 선우를 쫓는 것이 동학의 역할이라 볼 수 있다. 선우는 북쪽 오랑캐라 불리는 흉노족의 왕을 선우라 하니 이는 북(北)쪽에서 시작된 낙서(洛書)의 子라고 볼 수 있고 낙서(洛書)의 북(北)쪽 子는 선천상극문화(先天相剋文化)의 근원(根源)으로 일양(一陽) 이양(二陽) 삼양(三陽)으로 물질문화(物質文化)의 극처를 이루니 이는 인간의 본성(本性)을 오도(誤導)하여 무도(無道)의 세상이 되어 끊임없이 투쟁(鬪爭)하는 역사(歷史)를 이루었다. 이러한 결과(結果)로 영웅(英雄)들이 천하(天下)를 지배하고 약한 백성(百姓)은 수탈(收奪)의 대상이 된 것을 하층 농민이 이것을 개혁(改革)하려고 일어선 것이 동학(東學)이니 동학(東學)이 낙서를 개혁(改革)하는 역할(役割)이다. 선우를 쫓으려 하나 큰 눈이 내려서 즉 하늘이 막아서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선우를 완전히 몰아내고 후천상생시대(後天相生時代)를 여는 것은 정세(靜勢)인 천주님의 역할(役割)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학(東學)이 잘못하여 천주님께서 동학(東學)을 부정(否定)하는 것으로 파악하면 그것은 너무나도 천주님의 뜻과는 멀어지는 것이다. 천주님 친필(親筆) 현무경(玄武經)에도 임오(壬午) 임신(壬申) 임술(壬戌) 임자(壬子) 임인(壬寅) 임진(壬辰)의 양(陽)인 동세(動勢)와 계미(癸未) 계사(癸巳) 계묘(癸卯) 계축(癸丑) 계해(癸亥) 계유(癸酉)의 음(陰)인 정세(靜勢)로 구분(區分)을 하여 양(陽)인 오(午)에서부터 현무(玄武)로 전쟁(戰爭)을 일으킨다고 경(經)에다 명시(明示)를 하셨고 미(未)에서부터 기초동량(基礎棟樑)으로 후천(後天)을 건설(建設)하시는 도수(度數)를 짜 놓으셨으니 동세(動勢)가 없는 정세(靜勢)가 성립(成立)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천주님께서도 동세(動勢)는 최수운(崔水雲)이 맡았고 정세(靜勢)는 내가 맡았노라고 친히 밝히신 것을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옛 글을 도법(道法)으로 해석을 하여도 이러한 뜻은 더욱 분명해진다. 월흑안비고(月黑雁飛高): 그믐은 30일로 새로운 달의 기점(基點)이 되는 것이니 새로운 달의 기점이 되는 자리이다. 기러기는 가을에 왔다가 봄에 돌아가는 철새이니 기러기는 가을철인 추분(秋分)자리 酉가 새로서 가을에 있는 새이니 기러기로 볼 수 있다. 기러기 높이 난다는 것은 서방의 酉가 낙서의 삼양(三陽) 하늘자리인 태세(太歲) 辰자리로 이동(移動)하는 것을 안비고(雁飛高)라 할 수 있다. 선천(先天) 삼월(三月) 辰자리에 후천(後天)의 새로운 세수 酉(기러기)가 시작되니 새로운 달의 기점이 된다. 기러기가 하늘 높이 날아서 후천(後天)이 되니 선천의 시작자리인 子(선우)가 후천(後天) 음세계(陰世界)로 넘어가니 밤에 달아나 숨는 것이다. 子가 일음(一陰)자리로 넘어가니 일음(一陰)은 오미(午未)이다. 경기병으로 쫓아서 선우를 잡으면 낙서 자(子)가 낙서(洛書) 오(午)자리로 간다는 것인데 이것이 동학(東學)의 동세(動勢)이다. 기병은 午로 후천음세계(後天陰世界)의 머리이나 양(陽)이므로 선천(先天)의 양시대(陽時代)의 문명(文明)을 개혁(改革)하는 혁명(革命)의 역할(役割)이다. 큰 눈으로 선우를 쫓지못하니 이것은 소설(小雪) 대설(大雪)이 10월로 亥月이니 낙서(洛書)의 午자리에 후천용담(後天龍潭)의 子가 오는 것이 아니라 亥가 온다는 것을 나타내고 무력(武力)의 혁명(革命)은 끝이나는 것이니 만궁도(滿弓刀)가 됨이다. 그러므로 선천(先天)의 子는 선천(先天)의 未자리로 돌아가니 이것이 신미(辛未)로 오신 천주님의 정세(靜勢)이다. 午는 동세(動勢)로 선천(先天)을 개혁(改革)하고 未는 정세(靜勢)로 후천(後天)을 건설(建設)한다.
1장 15절 이해 十月에 동골에 가사 동학접주(東學接主) 안윤거[安允擧]를 방문(訪問)하시니 마침 태인(泰仁) 닥뱀이 안필성(安弼成)이 한 마을에 사는 동학신도(東學信徒) 최두연[崔斗淵]과 함께 와서 윤거(允擧)에게 도담(道談]을 듣고 있더라 천주(天主) 마루에 걸터 앉으사 윤거(允擧)와 더불어 성명(姓名)을 통하신 뒤에 일러 가라사대 고부(古阜)에서 난리(亂離)가 일어 나서 동학군(東學軍)이 황토마루(黃土峴)에서 승리(勝利)를 얻었으나 필경 패망(敗亡)을 면치 못하겠으므로 동학군(東學軍)의 발원지(發源地)인 이곳에 효유(曉諭)하러 왔노라 그대가 접주(接主)라하니 삼가 전란(戰亂)에 참가하기를 회피(回避)하여 무고한 생민(生民)을 전화[戰禍]에 몰아 들이지 말라 섣달이 되면 그들이 전패(全敗)하리라 하시고 돌아가시는 지라 윤거(允擧) 이 말씀을 듣고 드디어 접주(接主)를 사면(辭免)하고 전란(戰亂)에 참가치 아니하니 최두연(崔斗淵)은 믿지 않고 윤거(允擧)의 대(代)로 접주(接主) 겸 명사장(明査長)이 되어 윤거(允擧)의 부하를 인솔(引率)하고 출전(出戰)하더라.
[解] 十月은 乙亥月로 14절의 대설만궁도(大雪滿弓刀)와 연결(連結)되는 내용이다. 亥월에 천주님께서 정세(靜勢)의 머리를 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봉준장군(全琫準將軍)이 태인(泰仁) 동골 사람이므로 동학(東學)의 발원지(發源地)이니 動勢에서 靜勢로 돌리는 기점이다. 革命의 始作處에서부터 효유(曉諭)를 하신 것은 動勢를 마무리짓고 靜勢로 돌리기 위함이다. 천주님께서 진정으로 東學을 효유(曉諭) 하시려면 전봉준(全琫準)을 효유(曉諭)하여 동학혁명(東學革命)이 일어나지 않게 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절대자께서 동학혁명(東學革命)을 효유(曉諭)를 못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세(動勢)의 혁명(革命)이 일어나서 선천(先天)을 쓸어버려야 그 바탕에서 정세(靜勢)를 이루어야 되기 때문이다. 전봉준(全琫準)을 효유(曉諭)하신 것이 아니라 전봉준(全琫準)의 태생지(胎生地) 접주(接主)인 안윤거(安允擧)를 효유(曉諭)하심이다.
안윤거(安允擧)는 편안함을 진실(眞實)로 들어올린다는 뜻이니 정세(靜勢)의 머리가 됨이다. 안필성(安弼成)은 편안함을 도와서 이루게하니 안윤거(安允擧)가 머리가 되고 안필성(安弼成)이 도와서 이룬다는 뜻이된다. 안윤거(安允擧) 대신 출전(出戰)하는 崔斗淵은 가장 높고 큰 말 연못이라는 뜻이니 낙서(洛書)의 오십토(五十土)가 일육수(一六水)가 되면 십(十)이 일(一)이되니 즉 열 되가 한말이 되는 것처럼 큰 연못이 된다는 뜻이 숨어있다. 낙서의 십(十)은 열되로 한말이 되기위해서는 최두연(崔斗淵)이 안윤거(安允擧) 대신 출전(出戰)을 해야된다. 최두연(崔斗淵)이 접주(接主) 겸 명사장(明査長)이 된 것은 명사장(明査長)은 밝음을 살피는 어른으로 용담(龍潭) 일육수(一六水) 중앙(中央)에서 낙서(洛書) 태세(太歲)자리인 칠손(七巽)으로 용담(龍潭) 세수(歲首)가 시작되는 것을 살핀다는 뜻이니 용담(龍潭)의 밝은 달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1장 16절 필성(弼成)은 두연(斗淵)에게서 도(道)를 받은 뒤에 남원(南原)으로 와서 종군(從軍)하라는 군령(軍令)을 받고 스무날(二十日) 닥뱀이를 떠나 남원(南原)으로 향할 때 전주(全州) 구이면(九耳面) 정자리(亭子里)에 이르니 천주(天主) 길가에 서 계시다가 필성(弼成)이 이르름을 보시고 일러 가라사대 그대 올 줄을 알고 이곳에서 기다렸노라 함께 가자 하시고 필성(弼成)으로 더불어 두어마장을 행하여 임실(任實) 마군단 주막에 이르러 가라사대 날이 차니 이곳에서 쉬어 기다리라 남원(南原)에 가서 만날 사람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리라 필성(弼成)이 가로대 여비(旅費)가 없으니 만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곤란 하겠나이다 가라사대 밥 굶을 걱정은 하지말라 하시더니 두어시간이 지난 뒤에 문득 방포성(放砲聲)이 나며 과연 두연(斗淵)이 수천 군마를 거느리고 지나가며 필성(弼成)에게 남원(南原)으로 가지말고 전주(全州)로 따라오라 하는지라 천주(天主) 필성(弼成)에게 일러 가라사대 군마의 뒤를 가까이 따라감이 불가하니 천천히 가자 하시고 전주(全州) 수통목에 이르러 가라사대 오늘은 전주(全州)에서 소란(騷亂)하여 살상(殺傷)이 있으리니 이곳에서 자고 내일 가자하시고 필성(弼成)으로 더불어 수통목에서 쉬시니라.
[解] (1) 지명(地名):전주(全州) 구이면(九耳面) 정자리(亭子里)
전주(全州)는 전고을이니 전세계(全世界)를 나타내고 구이면(九耳面)은 아홉의 귀를 나타내는 면이니 눈은 태양(太陽)으로 리괘(離卦)이고 耳는 달로서 감괘(坎卦)이니 낙서(洛書) 구리화(九離火)자리에 반대쪽 북쪽의 일감수(一坎水)가 온다는 뜻이니 낙서(洛書) 남방(南方) 사오화(巳午火)자리에 북방(北方) 해자수(亥子水)가 자리잡아 수생어화(水生於火)되니 이를 나타내기 위해서 낙서(洛書) 남방(南方) 九자리에 감수(坎水) 해자수(亥子水)가 온다는 것을 암시(暗示)하고있다. 정자리(亭子里)는 새로운 남쪽의 시작자리인 자(子)가 후천의 12분야를 돌아서 새로운 12지지가 배열되니 정자리(亭子里)가 된다.
임실(任實): 임실(任實)은 열매를 맡겼다는 뜻이니 선천(先天)의 양기(陽氣)를 받아 가을철에 결실(結實)된 열매는 정서방(正西方)에 자리잡고 있는 서중유일(西中有一)의 유(酉)가 결실된 열매라고 볼 수 있다.
수통목: 물이 통하는 목이니 용담(龍潭)의 일육수(一六水) 중앙(中央)에서 밖으로 문을 열고 나오는 길목을 나타낸다.
(2) 인명(人名): 안필성(安弼成)
안필성(安弼成)은 편안함을 도와서 이룬다는 뜻이나 그 뜻을 더욱 세밀히 고찰하기 위해 弼자를 파자하면 弓 百 弓이니 좌궁(左弓) 우궁(右弓) 중간(中間)에 百이 있으니 이 백은 己獨百을 의미(意味)하므로 낙서(洛書)의 중(中) 오십토(五十土)가 천간(天干)으로 무(五土) 기(十土)는 기독백(己獨百)인데 낙서(洛書)는 무(戊)가 용사(用事)를 했고 己(十土)는 후천(後天) 용담시대(龍潭時代)에 용사(用事)가 되니 안필성(安弼成)의 이름에 기독백(己獨百)의 뜻이 있으므로 천주님께서는 우주(宇宙)의 중심(中心)자리인 만고불변(萬古不變)인 기독백(己獨百) 자성(自性)자리이니 안필성(安弼成)은 기독백(己獨百)에서 좌궁(左弓) 우궁(右弓)을 여는 것을 도운다는 뜻을 취해서 동세(動勢)에서 빼어냄이라 볼 수 있다.
(3) 내용(內容) : 안필성(安弼成)이 태인(泰仁)에서 남원(南原)으로 가기 위해서는 낙서(洛書) 중심(中心) 기독백(己獨百)에서 낙서(洛書) 구리화(九離火) 자리로 이곤문(二坤門)을 열고 나올 수 밖에 없으므로 천주님께서 구이면(九耳面) 정자리(亭子里)에서 "그대 올 줄을 알고 여기서 기다렸노라"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필성(弼成)으로 더불어 두어마장을 행하여 임실(任實) 마군단 주막에서 남원(南原)에서 만날 사람을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고 하신 것은 임실(任實)은 열매를 맡겨놓은 뜻이니 선천(先天)의 가을에 결실(結實)된 서방(西方)의 태양(太陽)인 유(酉)를 말함이다.
최두연(崔斗淵)은 용담(龍潭) 일육수(一六水) 중앙(中央)에서 칠손(七巽)자리로 기유(己酉)로 열고 나오는 자성(自性)의 태양인 유월세수(酉月歲首)를 나타내므로 최두연(崔斗淵)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낙서(洛書) 서방(西方)의 유(酉)가 바로 최두연(崔斗淵)이 나타내는 임실(任實)의 결론이고 정자리(亭子里)에서 두어마장 간 것은 용담(龍潭) 자(子)에서 축(丑) 인(寅)하니 낙서(洛書) 서방(西方) 유(酉)자리에 洛書 세수(歲首)인 인(寅)이 자리함을 나타낸다.
최두연(崔斗淵)은 용담(龍潭)의 오진(五震)에서 육중(六中) 칠손(七巽)으로 유(酉)가 나옴을 나타내는데 필성(弼成)은 천주님과 동행(同行)을 했으니 용담(龍潭) 일(一)(기(己))에서 남쪽으로 이문(二門)을 열고 나왔으니 남원(南原)인 칠손(七巽)으로 바로 나갈 수 없다.
그러므로 낙서(洛書) 서방(西方) 유(酉)자리에서 최두연(崔斗淵)을 만나 남원(南原)으로 오지 말고 전주(全州)로 따라오라 함이니 용담중앙일(龍潭中央一)에서 이곤(二坤) 삼감(三坎) 사태(四兌) 오진(五震) 육중(六中) 칠손(七巽)으로 나와서 팔간(八艮) 구리(九離) 십건(十乾)으로 전세계(全世界)를 열라는 뜻이 암시된 것이다. 군마를 가까이 따라감이 불가함은 동세(動勢)와 정세(靜勢)를 구분함이며 수통목에서 하룻밤을 자고 감은 용담(龍潭)을 열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1장 17절 이튿날 필성[弼成]을 데리시고 전주(全州)에 이르사 조용한 곳에 주인을 정하시고 저녁에 필성(弼成)에게 일러 가라사대 거리에 나가면 볼 것이 있으리라 하시며 함께 나가사 한 곳에 이르니 세 사람의 머리가 길 바닥에 구르는지라 가라사대 저것을 보라 이렇게 위험한 때에 어찌 경솔(輕率)하게 몸을 움직이리오 하시더라 필성(弼成)은 이곳에서 천주(天主)와 작별(作別)하니라.
[解] 전주(全州)의 조용한 곳에 주인을 정함은 정세(靜勢)를 나타내고 낮이 아닌 밤에 나가게 하신 것도 음(陰)인 정세(靜勢)의 뜻이 있고 세 사람의 머리가 길 바닥에 구르는 것을 보게한 것은 무기(武器)를 든 동세(動勢)의 폐단(弊端)을 지적(指摘)하신 것이라 볼 수 있다. 경솔(輕率)하게 몸을 움직이리요 하신 것은 동세(動勢)와 정세(靜勢)를 구분(區分)을 하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장 18절 그믐께 동학대군(東學大軍)이 전주(全州)를 떠나서 경성(京城)으로 향할 때 필성(弼成)이 종군(從軍)하여 여산(礪山)에 이르니 天主 길 가에 서 계시다가 필성(弼成)을 불러 물어 가라사대 이제 종군(從軍)하느냐 대하여 가로대 그러 하나이다 가라사대 이 길이 크게 불리하리니 조심(操心)하라 하시더라 필성(弼成)은 천주(天主)를 작별(作別)하고 종군(從軍)하여 진잠읍(鎭岑邑)을 지나서 유성(儒城) 장터에서 쉬고 다시 하루를 행군(行軍)하여 다음날 새벽에 청주(淸州) 병영을 진공(進攻) 할 새 삼십리(三十里) 가량 미치지 못하였는데 천주(天主) 또 길 가에 서 계시다가 필성(弼成)을 불러 물어 가라사대 너의 군중(軍衆)에 한 중이 있더냐 대하여 가로대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는 이길을 따르지 말라 저희들이 요승(妖僧)의 말을 듣고 멸망(滅亡)을 당하리라 필성(弼成)이 가로대 이런 중대한 일에 어찌 불길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가라사대 나의 말을 믿지아니 하는도다 내가 어찌 저희들을 미워 함이리오 저희들의 불리(不利)한 장래(將來)를 앎으로 한 사람이라도 화(禍)를 면(免)케하려 함이로다 가로대 그러면 선생은 어찌 이곳까지 오셨나이까 가라사대 나는 동학(東學)에 종군(從軍)하여 온 것이 아니오 구경(求景)하러 왔노라 하시니라.
[解]
(1) 천시(天時): 십월(十月) 그믐께
을해월(乙亥月)은 십월(十月)로 그믐께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그믐으로 보면 그믐은 새로운 월(月)이 시작이 되는 기점이니 후천(後天) 유월세수(酉月歲首)를 내는 시점(時點)이라 볼 수 있다.
(2) 지명(地名): 경성(京城) 여산(礪山) 진잠읍(鎭岑邑) 유성(儒城) 청주(淸州)
경성(京城)은 서울로 동학대군(東學大軍)이 경성(京城)을 점령(占領)하는 것이 목표이니 경성(京城)은 낙서(洛書)의 서울 중앙(中央) 오십토(五十土)로 볼 수 있다. 礪山은 칼을 가는 숫돌산으로 칼을 간다는 것은 동세를 뜻할 수도 있지만 지혜의 칼을 가는 숫돌산으로도 볼 수 있다.
鎭岑邑은 높은 것을 진정시킨다는 뜻이니 낙서의 영웅시대를 진압시킨다는 지명이다.
儒城은 선비의 성이니 후천정사를 맡은 선비가 있는 곳이란 뜻이다.
淸州는 맑은 고을이니 맑은 고을은 선천의 오탁을 모두 씻어낸 맑은 고을이니 청주는 후천의 새로운 세상을 여는 고을이다.
(3) 내용 : 天主님께서 礪山에서 弼成을 기다린 것은 礪山은 巽으로 洛書의 巽자리와 龍潭의 巽자리는 같은 자리로 天主님께서 기다린 礪山은 龍潭의 巽자리로 보아야한다. 弼成이 龍潭의 中央 己에서 左弓 右弓을 여는 뜻이니 16절에서는 己에서 庚으로 남북을 열었으니 이번에는 乙로서 동서를 열어야하므로 礪山에서 기다린 것은 七巽자리로 弓을 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礪山에서는 弼成에게 조심하라 하신 것은 중앙 甲에서 七巽으로 乙을 여는 것을 조심하라 하신 것으로 볼 수 있고 弼成이 礪山에서 鎭岑邑과 儒城을 지나는 것은 龍潭七巽에서 後天 酉月歲首가 나오니 洛書의 영웅시대를 쓸고 酉月歲首로 後天文明을 여는 선비城에서 쉰 것은 靜勢로 돌리는 기점으로 볼 수 있다. 하루를 지나 淸州로 진공할 때 天主님께서 길에서 弼成에게 군중에 중이 있더냐고 묻고 너는 이 길은 따르지 말라고 하신 것은 淸州는 後天 酉月歲首가 12월을 政事하는 맑은 고을이니 이는 後天龍潭世上을 나타내니 動勢가 끝난 자리이다. 그러므로 中央에서 弓을 연 弼成의 역할은 끝나니 弼成을 보고 따르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酉月歲首를 맡은 사람은 金末順 후비의 부친 亨烈의 임무이니 여기서 弼成과 天主님 亨烈이 만나게된다. 군중에 중이 있느냐고 물은 것은 중은 佛道를 추구하니 이는 辰戌丑未 地道를 나타내므로 洛書의 地道를 따르면 멸망을 하게되니 따르지 못하게 함이고 洛書 地道 辰戌丑未자리에 酉卯午子가 들어가서 낙서 辰자리에 옥추통부酉가 자리잡아 후천용화세계를 이루니 淸州가 됨이다. 1장 19절 이때에 김형렬(金亨烈)이 필성(弼成)의 곁에 있다가 천주(天主) 필성(弼成)과 수작[酬酌]하시는 말씀을 듣고 인사를 청하거늘 천주 형렬(亨烈)에게도 종군(從軍)하지 말라고 권하시는지라 필성(弼成)과 형렬(亨烈)은 천주(天主)의 말씀을 믿지 않고 종군(從軍)하여 가다가 청주(淸州) 병영(兵營) 앞 산골에 이르니 좌우(左右)에서 복병(伏兵)이 일어나서 포화(砲火)를 퍼부음에 동학군(東學軍)에 죽는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지라 필성(弼成)과 형렬(亨烈)은 황겁(慌怯)하여 몸을 빼어 송림 속으로 들어가니 천주(天主) 이곳에 계시다가 불러 가라사대 너희들은 잘 도망하여 왔도다 이곳은 안전하니 안심(安心)하라 하시니 형렬(亨烈)은 비로소 천주의 지감(知鑑)이 비상(非常)하심을 감복(感服)하니라 두 사람은 종일 먹지 못하여 주림을 이기지 못하거늘 천주 돈을 내어주시며 가라사대 저곳에 가면 떡집이 있으리니 주인이 없을지라도 떡 값을 수효대로 떡 그릇안에 두고 떡을 가져오라 필성(弼成)이 명하신 대로 하여 떡을 가져오니 천주 두 사람에게 나누어 먹이시니라.
[解] 亨烈과 弼成이 松林속으로 들어가니 天主님께서 잘 도망하여 왔다고 하신 것은 松은 十八公으로 龍潭圖 18度數의 공편함을 나타내고 林은 龍潭圖 五震에서 六中으로 들어가서 七巽으로 震陽木 巽陰木으로 林이되어 七巽에서 酉月歲首가 출하니 龍華世界가 펼쳐지니 잘 도망하였다는 말씀이다. 松林속에서 떡을 사서 두 사람에게 주린배를 채우게 하신 것은 떡은 시루로 찌는 것으로 물질을 개혁한 결론이고 또 송림속에 떡을 파는 집이 있을 수도 없고 천주님께서 주인이 없을지라도 떡 값을 지불하라는 말씀은 地上에서 파는 떡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떡은 地上에 있는 물질의 떡이 아니라고 보아야한다. 떡을 파는 주인이 안 보이는 것은 하늘의 떡이니 안보이는 것이 당연하니 이 떡은 玉樞統符酉라고 보아야한다.
1장 20절 천주(天主) 두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동학군(東學軍)이 미구(未久)에 쫓겨오리니 우리가 먼저감이 옳으리라 하시고 두 사람을 데리고 돌아오실 때 진잠(鎭岑)에 이르러 문득 가라사대 동학군(東學軍)이 이 곳에서 또 많이 죽으리라 두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심히 불쾌히 생각 하거늘 가라사대 저희들을 미워함이 아니요 사태(事態)의 진전(進展)될 기미(機微)를 말함이니 아무리 듣기 싫을지라도 불쾌히 생각하지 말라 하시니라 산중유벽(山中幽僻)한 곳에 쉬시더니 얼마 아니하여 총소리가 어지러히 일어나며 그 곳에서 격전(激戰) 끝에 동학군(東學軍)이 많이 사상(死傷)하니라.
1장 21절 이곳을 떠나 산 길을 행하시더니 문득 목탁소리가 들리거늘 찾아가니 곧 계룡산 갑사(鷄龍山甲寺)더라 가라사대 해는 아직 이르나 더 가다가는 해(害)를 입으리니 이곳에서 자고 가자 하시고 쉬시더니 얼마 아니하여 한 중(僧)이 이르러 말하되 동학군(東學軍)이 노성[魯城]에 유진[留陳]하야 도망하는 군사를 붙든다 하거늘 필성(弼成)과 형렬(亨烈)이 크게 근심하니 가라사대 이곳에서 쉬자는 것은 정히 이러한 화를 피하려 함이라 내일 아침에 떠나가면 아무 사고가 없으리니 염려 하지말라 하시더라.
1장 22절 이튿날 아침에 갑사(甲寺)를 떠나시면서 가라사대 그대들은 이로부터 큰 화가 없으리니 각기 갈려가라 하시니 두 사람은 오히려 두려운 마음을 놓지 못하여 천주(天主)와 동행(同行)하기를 청하거늘 허락하시고 함께 여산(礪山)에 이르사 가라사대 만일 읍내(邑內)를 지나면 옷을 빼앗기리라 하시고 샛길로 들어 고산[高山] 인내 장터로 향하시니라 이때에 여산읍(礪山邑)으로 지나는 동학군(東學軍)은 모두 읍사람에게 옷을 빼앗기고 벗은 몸으로 흩어져 가니 대개 전번에 동학군(東學軍)들이 북상(北上)할 때에 읍사람들의 옷을 빼앗아 갔음을 보복(報復) 함이러라.
1장 23절 이 길로 전주(全州)에 이르사 두 사람을 각기 돌려 보내실 때 필성(弼成)과 형렬(亨烈)이 숙박비가 없음을 걱정하거늘 가라사대 내가 이곳에 있으니 염려하지 말고 돌아가라 하시거늘 이에 천주께 작별하고 형렬(亨烈)은 구릿골로 필성(弼成)은 닥뱀이로 각기 돌아갔더니 이 뒤에 동학(東學) 전군(全軍)이 도망해와서 섣달 열사흗날(12月13日) 원평(院坪) 접전(接戰)과 보름 날 태인(泰仁) 접전(接戰)으로 연전 연패(連戰連敗)하여 산망(散亡)하여 버리니라.
1장 24절 [乙未年1895] 스물 다섯살 되시던 을미년(乙未年) 봄에 고부(古阜) 지방 유생(儒生)들이 평란(平亂)되었음을 축하하는 뜻으로 두승산(斗升山)에 모여 시회(詩會)를 열때 천주께서도 참여(參與)하였더니 한 노인(老人)이 천주를 조용한 곳으로 청하여 적은 책(冊) 한 권을 전하거늘 천주 그 책을 통독(通讀)하시니라.
[解] 甲午年은 動勢이고 乙未는 靜勢로 볼 수 있다. 天干의 머리는 先天은 甲이나 後天은 乙이고 先天은 북쪽에서 子가 시작되었으나 後天은 남쪽 未에서 새로운 子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斗升山은 말과 되의 산으로 洛書의 生에서 龍潭의 成으로 말과 되로 퍼넘기는 뜻이니 龍潭의 七巽으로 볼 수 있다.
1장 25절 하루는 송광사(松廣寺)에 가서 여러 날 동안 지내시더니 어떤 중이 무례(無禮)하게 대접(待接)하는지라 천주 노하사 꾸짖어 가라사대 요망(妖忘)한 무리들이 산속에 모여 불법(佛法)을 빙자(憑藉)하고 백악(百惡)을 감행(敢行)하여 세간(世間)에 해독(害毒)을 끼치니 이 소굴(巢窟)을 뜯어 버리리라 하시고 법당기둥을 손으로 잡아 당기심에 기둥이 한 자(一尺)나 물러나는지라 온 절이 크게 놀래어 여러 중들이 몰려와서 절하며 사죄하거늘 이에 노(怒)를 그치시고 그대로 두셨더니 그 뒤에 그 법당을 여러번 수리[修理]하여도 물러난 기둥이 원상대로 회복(恢復)되지 아니하더라.
[解] 松廣寺는 十八度數를 공편하게 넓힐 절이니 後天龍潭圖를 펼치는 뜻이 있으므로 松廣寺의 중은 後天佛道를 들어내야하는데 오히려 인권을 무시하여 先天佛道의 폐습을 들어내므로 이를 뜯어고치시는 것을 보여주심이다. 절은 승려가 생활하는 집으로 地道인 辰戌丑未로 볼 수 있고 先天의 地道를 뜯어 고치심이 기둥을 당겨 한 자나 물러나게함이다. 이는 洛書의 地支가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순서로 天地人이 回轉을 하는데 기둥을 당김은 낙서의 辰戌丑未가 寅申巳亥자리로 한 자리 물러남을 보여주심이라 본다.
1장 26절 이 뒤에 전주(全州)에 가사 백남신(白南信)의 아우 소실(小室) 기생(妓生)의 친가(親家)에 사관(私館)을 정하시고 오랫동안 머무르시더니 그 기생이 천주(天主)의 우아(優雅)하신 의표(儀表)를 탐(貪)내어 하루는 밤을 타서 천주의 거처하신 방으로 들어 오거늘 천주(天主) 꾸짖어 보내셨더니 그 뒤에 다시 수차 들어오거늘 여전(如前)이 개유(開諭)하사 돌려 보내시니라.
[解] 白南信은 西方淨土世界의 남쪽을 믿음이니 白은 서방을 나타내니 洛書의 西方이 庚辛이니 白이다. 洛書의 中이 戊己인데 龍潭은 西方의 庚이 中央으로 들어와 庚己로 역을 하니 己庚 中央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은 남쪽이니 白南信은 白은 龍潭 中央의 庚이라 볼 수 있고 南信은 龍潭 中央에서 남쪽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다. 白南信의 아우는 같은 姓씨이니 西方 白 庚辛에서 立其十字 辛이라 볼 수 있고 白南信의 아우의 小室은 地支로 볼 수 있다. 先天에 小室은 부인이지만 부인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여자이니 先天 洛書의 地支가 아니라 龍潭의 地支로 볼 수 있다. 白南信의 아우의 正室은 洛書의 西方의 地支는 申酉이니 辛과 짝이 되는 것은 酉이므로 辛酉를 正室로 볼 수 있고 小室은 龍潭의 地支로 본다. 洛書의 地支는 河圖의 坤자리에서 나왔으니 小室 妓生의 親家는 河圖의 坤자리인 북쪽으로 보면 河圖의 坤자리에 天主님께서 私館을 정하시니 북쪽 十乾天이라 볼 수 있다. 天主님께서 북쪽에 자리를 잡으니 龍潭의 北南을 여는 地支는 巳亥로 巳는 三陽天文으로 하늘자리에 오르고 亥는 三陰으로 땅자리로 돌아간다. 白南信의 아우 小室은 남쪽으로 나오는 亥로 볼 수 있다. 小室 妓生이 밤에 天主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은 洛書의 三陰자리인 亥의 습성인 先天의 폐습이라 볼 수 있고 天主님께서 꾸짖어 물리친 것은 亥를 남쪽으로 넘김이라 본다. 수차례 天主님 방으로 들어온 것은 天地人 三變을 立證시키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1장 27절 혁명난 후로 국정(國政)은 더욱 부패하여 세속(世俗)은 날로 악화하고 관헌(官憲)은 오직 포악(暴惡)과 토색(討索)을 일삼고 선비는 허례(虛禮)만 숭상(崇尙)하며 불교(佛敎)는 무민혹세(誣民惑世)만 힘쓰고 동학(東學)은 혁명(革命) 실패 후에 기세(氣勢)를 펴지 못하여 거의 자취를 거두게 되고 서교(예수신˙구교)는 세력(勢力)을 신장(伸長)하기에 진력하니 민중은 고궁(苦窮)에 빠져서 안도(安堵)할 길을 얻지 못하고 사위(四圍)의 현혹(眩惑)에 싸여 의지할 바를 알지 못하여 위구(危俱)와 불안이 온 사회(社會)를 엄습(掩襲)하거늘 천주 개연(慨然)히 광구(匡救)할 뜻을 품으사 유불선 음양 참위(儒佛仙陰陽讖緯)의 모든 글을 읽으시고 다시 세태(世態)와 인정(人情)을 체험(體驗)하기 위하여 정유(丁酉年)로부터 유력(遊歷)의 길을 떠나시니라.
[解] 丁酉는 天赤度 28星宿에서 보면 북쪽의 시작자리인 壁星이므로 軫翼張星柳鬼井 南方七宿 參澇畢昴胃婁奎 西方七星으로 180度가 되고 璧星으로 부터 角星까지 180度로 천행360도가 되니 丁酉璧星은 새로운 180度로 넘어가는 기점이므로 天主님께서 丁酉年에 유력의 길을 떠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간변화의 생성의 度數에서 살펴보면 丁酉에 유력의 길을 떠나신 것을 더욱 세밀히 살펴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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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天 |
後天 |
天干 |
甲 |
乙 |
丙 |
丁 |
戊 |
己 |
庚 |
辛 |
壬 |
癸 |
天 |
地 |
人 |
用 |
中 |
中 |
天 |
地 |
人 |
用 |
先天의 하늘은 甲에서 열리고 땅은 乙에서 열리고 사람은 丙에서 열리고 天地人 三界가 公轉을 하는 것은 丁에서 일어나고 中心은 戊가 된다. 後天은 中心은 己가 되고 하늘은 庚에서 열리고 땅은 辛에서 열리고 사람은 壬에서 열리고 天地人 三界가 公轉하는 것은 癸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선후천의 변화의 天干의 度數이다. 天干의 度數에 地支를 배합하면 天地變化의 度數가 나타난다. 地支는 天開於子 地闢於丑 人起於寅하니 先天은 하늘은 甲子에 열리고 땅은 乙丑에 열리고 사람은 丙寅에 열리고 삼계의 변화의 기점은 丁卯에 일어나고 중심은 戊辰에서 일어난다. 後天은 중심이 己亥가 되고 하늘은 庚子에서 열리고 땅은 辛丑에서 열리고 사람은 壬寅에서 열리고 三界의 변화의 시작은 癸卯에서 열린다. 天道는 36으로 변화하고 地道는 30으로 변화하니 땅에서의 선후천의 변화는 지지가 반대로 나온다. 一元 60에서 天干은 동일하고 地支가 반대로 나오는 것은 30度의 차이가 난다. 다시 말하면 甲子에서 甲午는 30도의 차이가 난다.
先天 |
後天 |
甲
子 |
乙
丑 |
丙
寅 |
丁
卯 |
戊
辰 |
己 |
庚 |
辛 |
壬 |
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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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
酉 |
戊
戌 |
己
亥 |
庚
子 |
辛
丑 |
壬
寅 |
癸
卯 |
先天 用인 丁卯에서 30도로 반대로 나오는 것이 丁酉이니 天主님께서 丁酉로부터 유력의 길을 떠나신 것은 선천의 用인 丁卯의 반대에서 後天으로 뒤집어내기 위함이다. 丁酉로부터 先天太歲 戊辰을 뒤집어 戊戌로 己巳의 반대 己亥에서 後天을 胞하고 庚子에서 후천의 하늘을 열고 辛丑에서 후천 땅을 열고 壬寅에 사람을 열고 癸卯에 후천의 天地人의 三界가 공전을 하는 것이다.
1장 28절 충청도연산(忠淸道連山)에 이르사 역학자(易學者) 김일부(金一夫)에게 들러시니 지난밤 일부(一夫)의 꿈에 하늘로 부터 천사(天使)가 내려와서 옥경(玉京)에 올라오라고 전하거늘 일부(一夫)가 天使를 따라 옥경(玉京)에 올라가 요운전(曜雲殿)이라고 액자(額子)를 써붙인 장려(壯麗)한 금궐(金闕)에 들어가서 상제(上帝)를 뵙고 내려왔는데 이제 天主를 뵈니 그 모습이 간밤 꿈에뵙던 상제(上帝)와 같은지라 일부가 심히 경대(敬待) 하여 절하고 맞이하니라.
[解] 玉京은 玉皇上帝가 사는 서울을 말하고 玉皇上帝는 道家에서 말하는 하느님이므로 金一夫께서 꿈에 曜雲殿의 上帝를 뵌 것은 天主님께서 도솔천을 下降하여 地上으로 下降하신 시점으로 볼 수 있다. 先天의 하느님은 불교용어로 彌勒佛인데 도솔천에서 主席하신다고 하니 一夫가 曜雲殿에 들어가서 上帝를 뵌 것은 彌勒佛이 도솔천에서 하강하여 太陽系로 移動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曜雲殿이라는 뜻을 보면 曜는 日月星辰을 나타내며 日月을 兩曜라하고 水火木金土五星을 합해서 七曜라 하니 이는 太陽系의 中央七星을 나타내는 것이다. 曜雲殿은 땅이 아닌 태양계의 七星을 말하니 曜雲殿의 上帝는 형상의 七星의 중심은 太陽이나 꿈에 靈으로 보았으니 自性의 태양으로 보아야 한다. 그 자성의 太陽이(上帝)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 사람이 바로 우주의 중심임을 나타내고 꿈에 본 上帝가 바로 甑山 天主님과 형모가 같은 것은 天主님께서 인간으로 탄강하신 것이 대우주의 중심이 인간으로 이동을 하였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된다.
一夫先生께서 正易을 지을 때도 靈像으로 後天八卦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미루어보나 正易에서 化無上帝의 분부로 지었다는 구절을 보나 天主님과 一夫 先生의 관계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一夫先生께서는 靈으로 받아서 正易을 지었으니 하늘의 달 입장에서 後天太陰度를 360日로 정립을 하여 첫 달을 卯月 첫 時를 亥時로 정립을 하셨으니 이는 꿈에 曜雲殿의 상제를 뵌 시각으로 볼 수 있다. 꿈에 본 上帝와 天主님과의 만남에서 曜雲殿 상제의 형모가 바로 天主님의 얼굴과 같아 曜雲殿上帝와 天主님이 同一人임을 확인시킨 것은 우주의 중심이 사람임을 바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天主님께서 親筆經典인 玄武經에 後天의 易法과 海印造化의 靈符를 사람에게 전해주신 것이다. 玄武經의 易法은 太陽度 366日 太陰度 360日 첫 달을 酉月로 첫 時를 巳時로 밝혀 놓으셨다. 靈으로 보는 것과 사람의 육안으로 보는 것은 그 시각이 반대이다.
육안으로 볼 때는 육신(땅)이라는 중심이 하나 더 개입이 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본 시각과 땅에서 사람이 보는 시각의 차이이다. 일부선생께서 卯月과 亥時로 본 것은 하늘의 달 입장이고 天主님께서 酉月과 巳時로 잡은 것은 지상에서 사람이 보는 시각이니 이는 天地公事를 하신 절대자께서 인류에게 직접 전해주는 것이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絶對者의 固有權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一夫先生께서는 그 疜를 나타내신 것이다. 一夫先生이 正易을 정립하신 업적이 얼마나 큰 지는 淸國冥府로 세우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1장 29절 이길로 경기 황해 강원 평안 함경 경상 각지(京畿 黃海 江原 平安 咸鏡 慶尙各地)를 차례로 유력(遊歷)하시니 천주의 혜식(慧識)은 박학(博學)과 광람(廣覽)을 따라 명철(明徹)하여 지시므로 이르는 곳마다 신인(神人)이라는 칭송(稱頌)이 높더라.
[解] 天主님께서 전국을 유력하신 것은 天地公事의 전초작업을 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전지전능하신 天主님께서 인간의 세태를 몰라서 알기 위해서 유력했다고 보기는 상식적으로 맞지않기 때문이다.
1장 30절 [庚子年 1900] 이렇게 수년동안 유력(遊歷)하시다가 경자년(庚子年)에 고향으로 돌아오시더니 이때에 전주 이동면 전용리 이치안(全州伊東面田龍里李治安)이 구혼(求婚)차로 충청도(忠淸道)로 향하다가 주막에서 천주(天主)를 만나 하룻밤을 같이 자고 그 이튿날 떠나려 할 때 천주 치안(治安)에게 일러 가라사대 그대가 이제 구혼차로 길을 떠났으나 반드시 헛 걸음이 될 것이니 이 길을 가지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전일부터 의혼(議婚)하여 오던 곳에서 매파를 보내 정혼(定婚)하기를 구하리라 만일 이 기회를 놓치면 혼로(婚路)가 열리기 어려우니 빨리 돌아가라 치안(治安)은 천주께서 자기의 사정(私情)을 밝히 알고 말씀 하심을 신기히 여겨 비로소 성명(姓名)을 통하고 천주의 주소를 자세히 물은 뒤에 곧 집으로 돌아오니 과연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라.
1장 31절 이 뒤로 치안(治安)이 천주의 신기하심을 흠모(欽慕)하여 자기집으로 모셔 오니라 치안(治安)의 아들 직부(直夫)는 그 마을 이장(里長)이라 마침 그 마을 인구를 긴급히 조사(調査)할 일이 있다 하거늘 천주(天主) 수를 놓으신 뒤에 호수(號數)와 남녀(男女) 인구(人口)를 자세히 일러 주시고 사흘 안에 한 사람이 적어질 것을 말씀하시거늘 직부는 믿지 아니하고 온 마을을 돌아 낱낱이 조사한 즉 과연 한 집 한 사람도 틀림이 없고 또 사흘만에 한 사람이 죽는지라 직부가 비로소 놀라 천주의 신기하심을 감복(感服)하니라.
1장 32절 [辛丑年1901] 설혼 한살 되시던 신축년(辛丑年) 가을에 집에 들어오자 선영(先靈)의 공명첩(功名帖)을 불살으시니라.
1장 33절 정씨부인(鄭氏夫人)이 간곡(懇曲)히 말씀하여 가로대 이제는 그만 돌아다니시고 집에서 남과 같이 재미있게 살림이나 하사이다 하니 천주(天主) 가라사대 그렇게 적은 말이 어디있느뇨 하시고 이로부터는 집에 가까이 아니 하시니라.
2장 1절 천주 여러 해 동안 각지에 유력(遊歷)하사 많은 경험(經驗)을 얻으시고 신축(辛丑)에 이르러서 비로소 모든 일을 자유자재(自由自在)로 할 권능(權能)을 얻지 않고는 뜻을 이루지 못할 줄을 깨달으시고 드디어 전주 모악산 대원사(全州母岳山大願寺)에 들어가 도(道)를 닦으사 七月五日(乙未月戊辰日) 대우 오룡허풍(大雨五龍噓風)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깨달으시고 탐음진치 사종마(貪淫瞋癡四種魔)를 극복(克服)하시니 이때 그 절 주지 박금곡(主持朴錦谷)이 수종(隨從)들었더라.
2장2절 이해 겨울에 본댁에서 비로소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실때 [窓門]에 종이를 붙이지 아니하시고 부엌에 불을때지 아니하시며 홑옷을 입으시고 식음[食飮]을 전폐[全廢]하사 아흐레 동안을 지내시니 새가 벼 말리는 뜰에 내리지 않고 이웃 사람은 공포증[恐怖症]이 들어 문 앞으로 지나기를 어려워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