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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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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복지순례 스크랩 연극배우출신 방송PD, 초보 연극인을 만나보니
이창대 추천 0 조회 85 09.04.22 15:45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나는 연극배우 출신의 방송PD다. 갓 스무 살을 넘겼던 그 때, 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수원의 한 극단, 비좁고 퀴퀴한 냄새가 지독했던 지하 연습실에서 난 배우로서의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길은 역시나 순탄치 않았다. 하루 종일 거리를 쏘다니며 홍보 포스터를 붙이다 부르튼 발바닥이며, 교통비마저 없어 수십Km를 걸어 돌아왔던 기억, 그리고 다른 배우들 몰래 화장실에 숨어들어가 오백원짜리 계란빵을 혼자 먹으며 흘렸던 눈물. 그 시절을 회상하면 쉬웠던 일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억센 부산 억양 탓에 내게 떨어진 배역은 언제나 비중 낮은 단역이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20대의 푸른 청춘을 서럽고 배고픈 극단 생활로 보냈다. 화려한 조명과 박수 갈채를 꿈꾸지만 현실은 언제나 춥고 배고픔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 극단적으로 말하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절대 빈곤의 삶이라고나 할까.

  

 그 때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지금 방송 PD로서 다시 대학로 연극판에 돌아왔다. 이제 막 연극을 시작하는 한 초짜 연극배우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그의 이름은 이창대. 스물아홉 살 창대씨는 이제 2년차 연극배우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배역으로 무대에 선 경험도 없다. 이름 없는 젊은 배우에게 무슨 얘깃거리가 있을까라는 회의도 들지만, 그래도 10년 전 나와 같은 꿈을 꾸던 창대씨를 만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대학로 연극가에서도 변방으로 취급받는 구석진 동네의 건물, 그 지하에 선교극단 <우물가>가 있다. 그곳에 처음 들어가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연극쟁이들이 모여 사는 연습실 특유의 곰팡이 냄새와 습한 공기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카메라를 들고 불쑥 들어온 나를 단원들은 조심스러워 한다. 그들 중 그래도 나를 반기는 사람은 창대씨. 짙은 눈썹에, 반듯한 얼굴의 ‘모범생스러운’ 인상이다.   

 창대씨는 누나만 위로 다섯인 집안의 막대로 태어났다. 말 그대로 귀한 막내아들이지만 창대씨의 성장기는 그리 행복하진 못했다. 창대씨는 어려서부터 목회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목회자의 꿈은 접어야 했고, 다들 다니는 대학마저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계속되는 부모님의 사업실패로 저까지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학교를 어떻게 다닐 수 있겠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집에 도움이 될까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던 중 우연한 기회에 방송보조출연을 하게 되었어요. 수입도 괜찮고, 유명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더욱 호기심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거다 싶었어요. 배우가 되자. 배우가 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 같았어요. 제 스스로는 소질도 있고 적성에도 맞을 것도 같았거든요."

 

 

   창대씨는 그렇게 배우의 꿈을 처음으로 품었다. 창대씨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무대를 동경하는 마음 보다는 당장의 생계가 급했다. 하지만 연극배우로 산다는 것이 더 험난한 길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극단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죠. 매일 같이 공연 포스터를 붙이고 차가운 연습실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청소며 배우들 허드렛일까지... 변변한 무대에 한 번 오르지도 못했으니 당연히 수입은 없겠죠. 지금까지도 한 달에 교통비 10만원정도 받는 게 전부에요. 그마저도 현재 몇 달치 밀려있는 상태지만. 제가 알기로는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연극배우 한 달 평균 수입이 20~30만원정도라고 해요. 일반인의 최저 생계비조차 되지 않는 액수죠. 그렇게 수개월을 극단에서 보내고 나니 진짜 폐인이 되더라고요. 처음에 품었던 꿈이나 희망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말았죠."

 

  그랬을 것이다. 나도 겪어 본 일이니 그 때 창대씨의 그 심정을 알만했다. 연극판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손꼽힐 정도로 가장 열악한 곳 중 하나가 아닌가. 가난과 고난은 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숙명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게 싫어서, 그 가난이 힘들어서 연극판을 뛰쳐나왔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결국 극단에서 나오고 말았죠. 한동안 무기력과 우울증에 시달려야만 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하는 절망감이 들었죠. 그러다가 제가 다시 소망을 갖게 된 건 신앙을 통해서죠. 기독 선교 극단의 배우들을 만나면서 다시 용기를 얻게 됐죠. 하나님의 무대에서 지친 영혼을 위해 열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하나님의 존재를 깊이 알게 되었고, 세상 속 배우보다 하나님 영광만을 위한 배우로서 살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지금 생활하는 게 예전하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여전히 백수나 다름없어요. 친구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얹혀살아야 하는 것이나, 야간에는 이곳저곳 아르바이트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것은 여전해요. 이제 2년이 조금 넘었네요. 낮에는 극단생활, 밤에는 아르바이트까지 몸은 지치고 힘들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소명이 있기에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어요."

 

   연극배우의 길을 접은 지 10년. 나는 단순히 ‘살기 힘들어서’ 포기했던 내 스무 살의 꿈에 항상 부채감 비슷한 미안함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창대씨의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내 마음 속 깊이 묻어둔 꿈의 잔해를 들춰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연극판의 삶의 조건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달려가는 창대씨는 내게 향수(鄕愁)와 같은 존재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끝은 창대하리라’ 욥기 8장 7절  

 

이제 방송 PD로서 10여 년 전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창대씨를 취재하면서, 바라기는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대로, 그리고 그의 이름대로 그의 끝이 ‘창대’하기를 소망한다.

 

 

 

 

 

 

 

<블로그다큐 예수와 사람들> 4화 '네 끝은 창대하리라' 1, 2부

4/27(월) 오후 3시 1부, 4/29(화) 오후 3시 2부

재방 5/1(금) 밤 12시 45분, 5/3(일) 낮 1시 1,2부 연속 방송

CBS TV(스카이라이프, 전국 케이블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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