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 관련 제도가 교육의 장해 요인이 되어서야 - 아이들을 위한 교육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 (소석)
교직사회의 어느 누구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황당하고 교육을 망치려고 작정한 무뢰한 일이라고 볼 것이다. 무서운 팔매질과 각종 통신에 의한 압력이 빗발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그릇을 지켜야 하니까. 우수교사 확보법을 제정하여 질 높은 교육으로 사 교육 없는 학습권자의 이익을 보장하자는 것은 지당한 말이다. 우수교사가 교직사회로 쏟아져 들어온들 이론뿐인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더 많은 교육부담금을 학부모는 내어야 하며 그네들은 편안히 앉아 더 많은 수입으로 편하게 살아가며 자신들의 영역을 어느 누구도 범하지 않도록 꼭꼭 묶어 둘 것이다. 자신들이 행하는 모든 행동이 학생을 위한 교육실천이라고 하면서. 마치 대통령의 통치행위인양 평가받기도, 평가받고 싶지 않으려고 한다. 이는 ‘전문가’라는 의미에 내포된 속성상, 전문가는 어느 누구에 의한 평가를 받고 싶지 않고 받지도 않는다. 그저 행한 행위에 박수나 받을 뿐이지. 학부모나 학생은 교육행위의 평가대상이지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당위성으로 규정을 한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행하는 행위는 전문행위니 비전문가가 어떻게 평할 수 있느냐 하는 식이다. 이 속에는 정말 위험성이 들어있다. 그네들이 행하는 모든 행위가 최선이며 그 행위의 결과가 어떠하든 무조건 행하라는 것이다. 객관적 척도에 의한 평가받지 않은 비 검증된 집단이 사회에서 그럴듯한 이슈에 내 세운 어떤 목적으로 일을 실천했을 때 사회는 더욱 혼란스럽고 그들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더 뭉쳐질 것이다. 그 비근한 예로서 신문에 의하면, 올해 고 3학생들의 성적지수가 예년에 비해 낮은데 이는 열었다는 교육 이론의 실천 결과라고 하면서 재수생이 월등히 높게 나왔다고 한다. 누가 책임을 지며 그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반성하고 자성할 사람이 있었던지 묻고 싶다. 이론가뿐 아니라 교단에서 교육을 실천한 전문가라고 하는 그네들도 역시 책임을 지겠다는 이가 없다. 오히려 그 일과 관련하여 위치가 굳어졌거나 한 단 높은 직에 오른 이가 있었으면 있었지. 손해 보는 이는 누구인지 뻔한 이치다. 요즘 교육현장에서는 교육의 질을 높인답시고 자율연수, 직무연수라 하여 많은 각종 연수가 개설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교사의 질을 한 단계 업 시키고 있는 것 같다. 다행한 일이라고 보지만 내 자신이 미시적이고 부정적 시각에서 그 결과를 폄하하는 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학생 가르치는 일보다 이 일이 우선 시 되는 것 같은 이가 더 많아서 마음 한 구석으로 가슴이 아프다.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을 상대로 하는 기관에서는 평생교육 차원에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일에 일조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겠지만 편안한 학원강의로 꽤나 장사가 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헤엄치기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싶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요인의 근거가 학생들의 학습의 질과 국가 장래를 위한다는 것도 있겠지만 과열을 부추기는 승진제도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의구심이 간다. 승진 제도에서 가산점의 한계는 있지만 더 많은 연수를 받으면 가산점이 높아지니 승진에 뜻을 둔 이라면 어느 누가 가만히 자기 스스로의 연찬에 의한 전문성 기르기에 힘을 쏟겠는가. 주어진 틀 속에서 결과가 인정되는 연수를 희망하지. 또한 이런 얘기를 하면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연구활동을 얘기할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드러내 놓고 한 집단의 그늘진 면을 단편적으로 말한다고 하기에 논하기 어렵다. 교육전문가라는 분들이 앉아서 연구하는 게 자리보존이나 꼼짝 못하게 무소불위의 힘을 기르기 위한 작태나 꾸미고 있는 것 같다. 진정 나라를 걱정하고 미래를 담보로 하는 교육이라면 모든 것 버리고 현실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얘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얘기로 그 서두를 끄집어내기란 자신 또한 부끄럽고 많은 이의 돌팔매질에 맞을지 모른다. 교육여건의 개선이나 교육과정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절실한 것은 교육을 하는 집단의 구조적 체제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한 예로 학교는 교사들이 오직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귀결을 맞추어야 한다. 교사들이 평생 고생하여 얻은 결과가 교감, 교장이라는 자리바꿈이 아니라 존경과 위대함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수한 이에게는 많은 인센티브로 보상을 주고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과감한 퇴출의 시장경제 논리가 필요하다. 교사 자격이 자리를 영원히 지켜주는 딱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격제도도 다양화하여 어느 누구도 전문가로서의 자질이 있으면 교사가 될 수 있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그네들 하는 소리가 교사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덕체를 겸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품성과 자질을 갖추게 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자율성, 창의성, 등등의 게딱지같은 이야길 하지만. 그러면 양질의 교육을 받은 요즘은 옛날보다 더 인성이 반듯한 학생이 많아야 할텐데. 그런데, 그네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소리는 요즘 애들은 옛날보다 버릇없다고 늘어놓으니 어디에서도 교육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말인가. 오히려 사회구조나 가정의 탓으로 떠넘기기에 급급한데. 어느 강연에서 모 교수는 영어 강사들의 자율토론회에 토론의 불꽃이 밤늦도록 이루어졌다는 얘기를 했다. ‘21세기 영어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주제로 펼치는 논쟁이 진지해서 숙연해지더라고 한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퇴근 시간이 언젠데 지금까지 하느냐며 그야말로 난리를 쳤을 것이다. 학원가에서는 학생들이 그네들 입에서 얘기하기로 유명 강사가 많다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유명 교사가 없다고 한다. 왜 그런지 살펴볼 일이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는 지방자치 단체가 우수교사를 채용하여 방과후 학생교육을 위한 학원을 개설 운영한다고 하니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이제 학교는 어디로 가서 조용히 있어야 하는가. 학생들이 학원강사 말은 잘 듣는데 학교 선생님 말은 영 안 듣는다나.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참을 바르게 돌려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에서 전문가라고 칭하는 그네들이 앉아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학습권자인 학생과 그 부모들이 요구하는 교육을 펼치기 위해 전력 투구해야 하며 자기반성으로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할 것이다. 그 대안으로 학교에서 교감, 교장이라는 승진 제도 자체를 없애고 교사가 큰 틀에 의하여 교육과 수업을 책임지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자기가 행한 교육활동의 결과를 정확히 평가받고 그 결과에 의하여 인정되는 교육풍토 말이다. 맡은 어린이를 위하여 그네들에게 무한한 교육행위와 활동여건을 스스로 만들어 펼쳐 나갈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그 결과는 마땅히 정확하게 평가받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부족한 것은 각 개인에게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어야하며 결과가 우수한 이에는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교사평가를 위한 자격이나 능력은 몇 년 주기로 그 동안의 결과와 노력을 토대로 재심사를 하며 재계약으로 보수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질 높은 교육의 수준을 파악하여 학급, 학교경영에 적극 반영하고 그 결과는 그들이 평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들 평가의 척도가 어디에 있냐고 하지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쉬운 말로 시험점수로 할 것인가 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건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좋은 평가 척도를 만들 수 있음을 모두가 두려워 할 것이다. 감기에 걸려 며칠 다녀도 안되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듯이 자연스런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학생이 옮긴다는 것은 아니니까. 교사 자격도 교대라는 틀에서 양산된 사람에게만 줄게 아니라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여 자격부여의 폭을 넓혀야 한다. 또한 가칭 자격심사위원회나 교육수요자집단의 학교위원회에서 전문자격을 갖춘 다양한 이를 선발하여 시간제, 기간제, 일반교사로 채용하여 쓸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사 자격도 세분화하여 그에 응당한 차등화 된 보수 지급이 이루어지면 교육의 질은 높아질 것이며 학생을 위한 교육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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