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公共)은 사회나 단체 구성원에게 공동으로 딸리거나 관계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공공복지는 사회구성원전체에 공통되는 이익이다. 공공건물, 공공경제, 공공단체, 공공(공영)방송, 공공사업, 공공선(善), 공공시설, 공공요금, 공공재산, 공공자금, 공공조합 등등에서 우리는 공공성(公共性)을 느낄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의 개인주의 삶에서 의외로 많은 공공분야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성이 점차 사적(私的)영역에 포섭되고 있다. 그것을 시대의 흐름이라 자연스레 받아들이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공공(公共)은 이제 공공(空空)이 되고 만다. 산업공동화뿐만 아니라 공공성의 공동화 역시 촉진된다.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 부른다. 그런데 대부분의 자본언론이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국가이므로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기업의 이윤을 보장할 때만이 자본이 투자하고 경제는 성장하며 그 결과 일자리가 창출되고 분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오랜 프랑스에서의 망명생활을 거쳐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홍세화씨의 경우 민주공화국을 강조하는 정도다. 공화국(共和國, Republica)에는 엄연히 공공적(public)인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사적(私的, private)이거나 사영(私營) 또는 사용(私用)을 뜻하는 의미와 대립하는 용어다. 대한민국헌법에도 엄연하게 사유재산이라 할지라도 공공의 목적을 위해 규제와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 공중(공)교육(public education)이나 공중(공)위생(public health)이란 말은 이제 어색하게 들리고 있다. 마치 새마을운동 시절의 구호처럼 말이다. 공공을 버리고 지극히 사적인 것은 세련되고 현대화되는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한자말인 공공(公共)은 사적인 것을 나누어 공평한(fair)하다는 뜻의 공(公)과 그야말로 함께(together)할 공(共)이 결합한 단어다. 공(公)은 나누다(分)와 사사롭다(私) 라는 단어에서 각각의 획이 합해진 말이다. 말하자면 공공성이라 해서 모든 것을 그리고 소비의 모든 과정을 공공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개인에게 나누되 공공적 성격과 절차를 통한다는 의미다.
이제 의료(醫療)에 대해 알아보자. 의료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일이다. 의사(醫)와 병 고치는 행위(療)의 결합이다. 다른 말로는 의술(醫術)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醫)자는 의사가 쓰던 공구를 합쳐놓은 글자 모양이다. 수술도구를 넣는 상자(ㄷ), 살을 째는데 사용하는 화살 또는 촉 같은 작은 칼(矢), 창 같은 큰 칼(殳), 마취나 소독에 사용하는 알콜 담은 병(酉, 酒)을 뜻한다. 후에 의원(醫院, hospital)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료(療)자는 병 고친다(cure, remedy)는 뜻이다. 환자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모습을 본 뜬 것이 변화된 병들어 기댈 녁(疒)이 의미이고 나머지는 발음인 동료 료(僚) 또는 멀 료(遼)자와 합해진 말이다. 쉬면서 치료(療養)하거나 병을 다스려 낫게(治療)하거나 굶주림을 낫게(療飢)하는 말의 뜻도 이와 같다.
이런 의미들의 결합인 공공의료에 공공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민간(民間)으로 포장된 사영(私營) 또는 사적(私的)의료기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말았다. 10%도 안 되는 공공의료기관 조차 시장에 내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公共)이 떨어져 나가고 시장에 맡겨진 의료(醫療)는 그야말로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인술(仁術)이 아니라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돈이 된다면 과잉진료와 과잉투약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돈이 없는 환자는 병원 문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고 병이 낫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쫓겨난다. 여기다 의료시장이 개방되면 외국의 의료자본에 의한 이윤획득과 이를 위해 공공의료체계의 급속한 붕괴를 촉진시킬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의 공공의료강화투쟁은 단순히 해당노조만의 투쟁과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전 민중적 투쟁과제다. 지난 상반기 투쟁과정에서 보건의료노조의 산별투쟁은 많은 조직적 어려움을 남겼지만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공공의료의 과제를 제기한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지난 8.28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보건의료노조 산별합의안 10장2조 문제점에 대한 전국토론회에서 10장 2조를 둘러싼 조직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문제와 함께 의료소비자 단체에서 제기한 의료의 공공성강화에 대한 노동조합의 투쟁의지에 대한 질책성 문제제기는 매우 의미 있는 지적이라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투쟁과제가 공공성이 무너져 내리는 상태에서 기업 내 분배투쟁만으로 설정되거나 그 범위에서의 투쟁으로만 머문다면 운동은 확실하게 고립되거나 후퇴할 것이다. 인간의 삶을 통해 맞이하는 생노병사(生老病死)중 병(病)은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상대다.
그런데 이를 공동체적인 사회적 문제해결이 아니라 개인에게 맡겨진다면 그 불평등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그럴 때 한 인간의 병보다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 때문에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인간의 병을 고치는 것은 물론 인간의 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사회의 병을 치유하는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의술을 베풀기 위해서 의료의 공공성은 강화되어야한다. 병든 사회를 치료하기 위해 흰 가운 대신 전투복을 입었던 혁명 전사들이 바랐던 사회는 바로 평등한 의료혜택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건의료노조의 조직적 아픔도 빨리 치유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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