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조직화된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에서의 한계
Ⅰ. 독자조직화 될 수밖에 없는 상황
2000년 동안의 투쟁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은 매우 중요한 화두였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은 누구나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이 현실화된 곳은 거의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처럼 정규직 자체가 없는 곳도 있지만, 정규직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래서 같이 조직할 가능성이 많으면서도 정규직과 함께 조직되지 못하고 독자적으로 싸웠던 곳은 다른 비정규직들보다 더 힘든 투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고, 그 투쟁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은 우리 운동 내에 통합노동조합 건설이 익숙하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과정을 보면, 비정규직이라서 임금과 고용조건에서 설움을 많이 당했고, 설령 정규직 노동조합이 있더라도 자신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불신이 팽배해있으며, 경제위기나 회사 구조조정의 책임이 비정규직들에게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비정규직들이 독자적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많이 만들어진 것은 2000년 이후이다. 1999년만 해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이나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 등이 만들어졌으나 운동진영 내에 일반화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0년 들어와서는 폭발적인 조직률을 보여서 90여개의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경제위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혹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때는 그럭저럭 감수했지만 2000년 들어와서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정규직과는 달리 비정규직들은 전혀 임금이나 노동조건에서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열악한 환경을 강요받았다. 임금삭감은 계속되었고, 더 열악한 비정규직 처지를 강요당했다. 예를 들어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은 계약직에서 도급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모순을 딛고서 노동조합 건설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1.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대체적으로 독자조직화되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조직화는 대체적으로 독자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업별 노조가 고착된 현재 상황에서 법인체가 다른 간접고용 노동자들까지 포괄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내하청을 포괄할만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원청에서 직접적으로 심혈을 기울여 조직한 사례로는 이랜드 노동조합이나 금속노조 인천제철지부 포항지회 정도이다. 이랜드 노동조합은 도급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조직했는데, 현재 행정관청의 편의적 해석 때문에 규약 변경을 인정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천제철 포항공장의 경우에는 산별노조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지회의 규칙을 변경하고, 하청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독자조직화되었는데, 정규직과의 불평등한 대우나 고용불안정에 원인이 있다. 즉 정규직보다 심하게 경제위기의 고통이 전가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들은 비정규직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오히려 고통을 전가하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해왔다. 그러다보니 비정규직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때에도 정규직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든다거나 정규직 노동조합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조직하고자 할 때 정규직으로 포괄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규약도 변경해야 하고, 정부와 자본의 간섭이 훨씬 심해진다. 그러느니 차라리 손쉽게 먼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조직해놓고, 노동조합을 안정화한 이후에 조직통합 등을 모색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갖고 있다. 또는 정규직 노동조합으로 들어갔을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충실하게 보장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갖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선도적으로 먼저 조직을 건설하고자 했을 때 독자적으로 조직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 못지 않게 그동안 우리 운동에서는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협조를 하더라도 완전히 자신의 노동조합으로 받아들이려는 계획을 가지고 결합했던 것은 아니라는 문제가 더욱 크다. 그것은 기업별 의식의 연장이거나 자본이 주입한 우월의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실제로는 불법파견에 불과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기업의 노동자라는 이중적 인식을 하고 있고,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바라보지도 않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괄하면서 이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인지 자신감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제도적으로도 함께 조직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속에서 적극적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비정규직들이 먼저 조직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정규직 노동조합과 함께 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정규직 노동조합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독자조직화를 시작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함께 받아안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준비는 필수적이다.
2. 직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독자조직화보다는 정규직 조직화 방식을 택한다.
민주노총에서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경우 '규약을 변경하여 정규직 노조로 포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규약변경이 많이 되지 못했다. 한국중공업처럼 규약변경안을 올렸다가 대의원대회에서 번번이 부결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한국통신처럼 계약직을 조직하려고 규약을 변경했다가 제대로 조직을 하지 못해서 결국 이 조항이 비정규직의 독자조직화를 가로막는 조항으로 악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규약을 변경했다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규약변경 방침이 사실상 허구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계약직 노동자들을 받아들였을 때 이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간다면 파업까지도 불사한다는 결의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결의를 갖고 조직한 서산의 한국항공우주산업이나 롯데호텔 등에서만 긍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자.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독자조직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업무의 구조가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거나 정규직의 보조역할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에서의 계약직이 사라지고 OA시스템의 개발로 사무직에서 임시직 계약직이 많아지고, 서비스업에서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많아진 이래로 이들의 업무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조직화의 길을 걷기 어려운 요소들이 있었다.
또한 임시적으로 거쳐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노동자들에게 지배적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독자 조직화를 하는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올라가는 통로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그런 가능성이 사라진 지금은 기업에 애착이 사라져서 조직화보다는 개인이 떨어져나가는 편을 택한다. 그러다 보니 정규직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경우 독자적인 조직화보다는 여성노조나 지역노조로 포괄되는 경우가 많다.
3.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독자조직화되는 경우는 구조조정 때문이다.
직접고용 노동자들은 대체적으로 독자조직화되지 않지만,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 등 독자조직화되어 투쟁하는 사업장들도 있다. 이것은 왜 그런가? 바로 구조조정 때문이다. 자본은 구조조정을 하면서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간접고용으로 내몰기도 하였다. 고용인원을 줄이면서 외부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가 되면 더 열악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직접고용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해서 투쟁하게 된다. 구조조정은 일단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을 더욱 열악한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 예전 계약직의 경우 승진사다리를 통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또 반복갱신해서 계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고용의 안정성은 보장받는 편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면화되면서부터는 계약직을 간접고용화하거나 계약기간을 단기간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고용의 불안정성을 계속 부추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직접고용 비정규직들은 독자적으로 조직하는 방안을 택해서 투쟁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들을 포괄하려고 하지 않을 경우 독자조직화는 필연적이겠지만, 이것은 우리 운동의 낙후성을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획책하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통일과 단결을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에서는 정규직이 규약을 변경하여 비정규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으나 그것은 여전히 공문구이다. 비정규직들이 독자조직화를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살펴보고, 대안을 찾지 않으면 계속 '산별노조가 건설되면'이라는 단서 조항 속에서 허덕이거나 규약변경 운운하면서 조직화를 늦추면서 비정규직들이 독자노조 건설, 그리고 힘겨운 싸움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Ⅱ. 독자조직된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문제점
1. 불안정한 고용관계로 인한 노동조합의 유지 어려움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파견법에 의한 주기적 고용불안으로 노동조합 유지가 어려운 것이다. 파견노동자들은 파견법을 악용한 사업주들에 의해 해고의 위협에 처해있다. 파견법에는 파견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2년 이상 고용한 파견노동자는 사용업체가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그러나 사용업체들은 이렇듯 파견법 6조 3항에 명시되어 있는 직접고용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량해고 및 배치전환을 자행하였다. 실제로 노동현장에서는 "당신은 파견노동자이기 때문에 2년 이상 이 사업장에서 일할 수 없다"는 사용업체의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계약기간 2년을 채운 파견노동자들의 해고가 주기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와중에 지난 2000년 7월 17일 노동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파견근로제 시행 2년째를 맞아 파견기간 2년 제한 규정을 처음 적용받게 된 파견노동자들 중 86%가 고용을 보장받은 것으로 나타나 우려되었던 대량해고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고용이 유지되었다고 하는 5,025명의 고용형태를 살펴보면,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395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다수는 계약직(2,039명), 임시·일용직(547명)의 형태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계약직이나 임시·일용직의 대다수는 안정적인 일자리와는 거리가 먼 초단기 계약직이 차지하고 있다. 일례로 SK 텔레콤의 경우 파견법 시행 2년을 앞두고 파견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한 이후 해고한 노동자들을 그대로 다시 채용했는데, 모두 1개월 짜리 단기 아르바이트였다.
더욱이 정부 발표에 의하면 원래 사용업체로터 계약해지되어 파견업체에 계속 고용된 채 다른 사용업체에 파견되거나 유급휴가훈련을 간 인원이 771명, 도급 계약으로 전환된 인원 등 기타가 1,970명에 이르렀다. 정부 발표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실제로 노동현장에 만연한 불법파견실태를 고려한다면,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파견근로실태는 대단히 제한적인 것으로 노동현장의 실태반영과 거리가 멀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한 노동자는 극소수이고 대다수의 파견노동자들은 언제 다시 잘릴 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처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서 노동조합을 만든다 하더라도 노동조합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태이다. 조합원들이 2년마다 갈리기 때문이다. 방송사 비정규노조의 경우 2년이 된 노동자들의 계약해지를 막기 위해 노동조합을 건설했는데, 매월 주기적으로 2년된 노동자들이 해고되다보니 새로 오는 조합원들을 다시 조직해야 하고, 또 2년이 되어서 나가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새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에게 조합 활동을 하지 말고, 2년 동안 관리자들에게 잘 보여서 잘 버티라고 말하고 나가기도 한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2년 후에 짤릴 것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힘들지 않게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자리는 계속 있으되, 노동자들의 고용형태가 계속 바뀌고, 2년마다 해고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활동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게다가 남부지원에서는 정규직으로 고용을 하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2년 전에 해고한 것은 인정되나 직접고용 회피를 위한 사전해고에 대한 별도의 입법이 없다는 이유로 방송사 비정규노조가 낸 소송을 기각하기까지 하였다. 즉 노동자들은 사용자측이 직접고용을 피하기 위해 2년마다 한번씩 주기적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해도 이에 대해서 처벌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만큼 파견 노동자들의 고용관계는 극도로 불안정하다.
또한 대부분의 간접고용은 원청과의 계약관계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유지가 매우 어렵기도 하다. 하청은 원청과의 계약관계에 의해 생존할 수 있고, 시설관리 회사들의 경우 공개 입찰을 통해 사업자가 선정되므로 공개입찰에서 실패하고 나면 회사를 계속 운영할 수 없게 된다. 시설관리 노동자 30만 명은 '용역계약 만료'라는 이유로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시설관리의 경우 업무용과 비업무용 모두 직접고용형태(직영, 자치관리)와 간접고용형태(용역, 위탁관리) 방식으로 고용되고 전국 약 90%는 간접고용(용역관리)이다. 계약기간은 대략 1-2년이며 아파트 등은 수시로 바뀐다. 용역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전 직원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내몰리거나 자의적으로 선별하여 재고용되거나, 재고용을 조건으로 엄청난 근로조건 저하를 강요하는 비상식적인 모습들이 반복된다. 이로 인해서 노동조합의 활동 자체가 마비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임시직이나 계약직으로 활용되는 비율이 높아졌다. 그래서 하청업체가 계속 원청과의 계약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원청의 단가인하 압력을 견디기 위해 노동자들이 임시직과 계약직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매번 주기적으로 더 낮은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노동자들을 갈아치운다. 이러한 불안정한 고용상태가 노동조합의 지속적 유지를 매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계약관계로 인한 어려움은 계약직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계약직 노동자들의 경우 계약기간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면 계약기간 동안은 그대로 두지만 계약기간이 끝나면 가차없이 짤라버린다. 꼭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짜르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은 계약직 자체가 예전과는 달리 일상적인 고용불안정을 목표로 하는 것이고, 또한 노동자들의 고용형태가 너무나 다양하게 바뀌기 때문에 안정적인 노동조합 활동이 매우 어렵게 된다. 계약직이었다가 도급이 되었다가 파견노동자가 되었다가 하면서 왔다갔다 하고, 기껏 조직이 되었어도 문제가 생기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풀기보다는 그냥 개인이 퇴사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크다. 그만큼 계약직의 경우 회사에 대한 애착이 적고 잠시 머물다 가는 곳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직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아니면 이미 정년퇴직을 한 노년층, 그리고 군대 가기 직전의 남성노동자들로 구성되기 일쑤이다. 이것이 노동조합의 안정적 활동을 방해한다.
코리아정공의 계약직노동자들은 99년 5월과 6월 사이에 계약직인지도 모른 채 50명 정도가 입사하였고, 회사에서 정규직 사원 채용을 할 것으로만 믿었던 계약직 사원들은 6개월 단위로 반복되는 재계약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계약만료일이 지난 상태에서 계약서를 쓰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면서 1년 6개월 동안 세 번의 계약을 하였는데, 회사는 재계약 날짜가 되면서 선별적인 계약 종료를 실시하였다.
2.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업체 전체의 폐업과 계약해지와 해고
독자조직화된 노동자들이 가장 크게 걸리는 문제는 노동조합 건설을 이유로 한 각종 부당노동행위이며, 이 행위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먼저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원청이 사용자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계약직의 경우는 사측이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들어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일삼기 때문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에서 가장 큰 문제는 원청업체가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원청업체가 부당노동행위의 당사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사내하청 업주는 아무런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원청업체의 힘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데, 법적으로는 아무런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각종 부당노동행위가 난무한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조합 건설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 그로 인한 업체의 폐업이다. 여기에 많은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다.
가장 흔한 사례는 노동조합 결성을 이유로 파견·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파견·용역계약엔 노동조합이 결성되거나 파업을 하는 경우 계약을 해지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이런 조항이 없더라도 사용업체는 '생산 차질'등의 이유로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실제로 간접고용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계약이 해지되면 법적으로 구제받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를 보건대 사용업체의 계약해지 위협은 노동조합의 결성 자체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AMPM은 힐튼호텔과 청소도급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로 객실정비를 맡을 노동자를 공급하고 있다. 2000년 서울지역여성노조 호텔종사원 지부가 힐튼호텔에 결성되자 도급계약에 "노동쟁의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행동으로 본 계약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계약해지 할 수 있다는 내용을 거론하며 위협하였다.
대상식품은 2000년 4월 사내하청 업체에 노동조합이 생기자 노동조합 해산을 직간접적으로 종용하였고, 노조파괴에 실패하자 5월 31일 사내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였다. 대상식품과의 계약서에도 노조결성시 계약해지 조항이 있었고 사내하청 노동자는 노조활동시 해고된다는 각서를 입사할 때 제출해야 했다. 계약해지와 동시에 사내하청업체는 '생산 부진'을 이유로 폐업하였다. 이에 의해 조합원들은 대상식품 공장으로의 출입권조차 빼앗기고 본사와 공장 앞에서 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6개 업체들은 조합원들에 대해 부분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리고 불법파견 판정을 받자 캐리어는 이 사업장과 바로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사내하청의 경우 볼보측에서 아림을 대상으로만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용인해주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대부분 숙련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해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비조합원을 중심으로 대체인력을 준비한 후 1년이 지나자 아림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노동자들은 다시 길거리로 쫓겨났다.
'동명'은 파견업체로 광주 하남공장 카스코(구 기아정기) 공장에 파견노동자를 투입해 일을 시켜왔다. 2000년 5월 2일 파견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고자 노조를 만들어 광주지역금속노조 분회로 가입하자, 동명은 노조활동 인정과 단체교섭을 하기로 합의하도록 5월 31일 폐업을 단행하였다. 이에 앞서 원청인 카스코는 동명과 용역계약을 해지했다.
삼창프라자 역시 2000년 9월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자 건물주는 곧바로 용역계약을 해지하고 전원 해고한 후 3개의 용역회사로 분할하여 계약 관리하기 시작했다. 99년 장기간 천막농성 투쟁을 진행했던 한라중공업, 2000년 노동조합을 설립한 후 곧바로 계약을 해지당했던 인천제철의 거림산업 등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계약해지 당하고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또한 노동조합 건설로 인한 계약해지만이 아니라, 불법파견 판정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도 많다. 불법파견이라 함은 겉으로는 도급이나 용역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청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불법의 당사자는 원청과 파견업체 모두이다. 하지만 불법파견임이 발견되면 피해를 당하는 것은 바로 파견노동자들이다. 지금의 행정해석으로는 불법에 대해 파견업체가 벌금을 내고 업무를 폐쇄하게 된다. 그 노동자들은 이미 원청이 직접고용해야 하는 것을 불법적으로 도급 형태를 취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직접고용으로 이어져야 하나, 원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불법파견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해서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곧이어 또다른 불법파견을 저지른다. 게다가 행정해석상 이러한 불법파견 역시 파견법의 적용을 받아 2년 이상자만 정규직으로 하면 된다는 이상한 해석이 난무하여 불법 행위 자체를 합법적 행위로 눈감아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파견업을 26개 업종으로 제한해놓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사이트코리아의 경우 노동조합에서 불법파견으로 진정을 냈고, 결국 승소했다. 하지만 원청인 SK는 핵심 조합원들을 해고한 후 나머지 노동자들을 3개월 내지 1년짜리 계약직으로 고용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자 3개월 계약직 노동자들을 전원 도급으로 다시 전환했다. 게다가 최근 중노위에서는 인사이트코리아 조합원 중 일부에 대해서만 정규직으로 고용하라고 하고, 나머지는 파견업종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아니므로 불법파견으로 2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직접고용의 의무가 없다는,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놓기까지 했다. 이랜드의 경우도 부곡물류센터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냈으나 오히려 도급업체를 폐업하고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기도 했다. 또한 캐리어에서도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놓고도, 2년 이상 일한 사람만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불법행위를 저지르고도 합법적 파견법의 적용을 받겠다는 이상한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대송텍의 경우도 불법파견으로 판정을 받자 오히려 계약을 해지하고 노동자들과의 어떤 논의도 하지 않는 등 대한송유관공사의 태도가 오만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불법적 행위를 저지른 자들이 문제를 피해가고, 오히려 노동자들만 계약해지의 피해를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법이 파견법이다. 이로 인해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노동3권은 완전히 무시되는 것이다.
계약직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조합의 건설을 이유로 한 각종 탄압이 가해진다. 명월관 노동조합의 경우 복수노조 금지조항 때문에 노동조합이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했는데, 사측에서는 이것을 핑계삼아 노동조합 간부 및 활동가 11명을 해고해버렸다.
한국통신에서도 노동조합 건설을 놓고 각종 부당노동행위들이 자행되었다. 노조 행사날인 일요일에도 강제근무를 시키는가 하면, 노조 체육대회 행사를 이유로 한 연월차 신청도 무조건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회유와 협박, 노조에 대한 비방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노동조합 간부를 징계해고 하는가 하면 가족을 동원한 지속적 회유와 협박을 자행하기도 했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성과급도 지급하지 않는가 하면 파업시에 업무 공백을 메운다는 이유로 불법적 대체근로를 자행하기도 했다.
비정규직들은 대체적으로 아는 사람의 소개로 들어온 경우가 많다. 사측에서는 소개를 시켜준 사람을 동원해서 회유와 협박을 하기도 하고, "당신이 파업에 계속 동참하면 당신을 소개시켜준 사람이 다친다"면서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인력감축 위주의 구조조정 시나리오에 입각하여 작년 5, 6월경부터 계약직 노동자에 대한 계약해지 조치를 남발했다. 이 때 회사 쪽에서 들이댄 근거는 '계약직은 2년 이상 초과 근무할 수 없다'는 계약직 관리지침 제11조 제7항이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3개월 내지 1년 단위로 본인도 잘 모르는 사이 재계약이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한국통신에서, 이 조항은 제정 당시부터 사문화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 와서 이 조항을 들먹이는 것은 해고의 정당한 근거가 전혀 될 수 없었다. 더욱이 5, 6월 대량 해고사태가 있은 후, 한국통신은 재계약이 불승인된 계약직원들에게 "다른 사람 명의로 다시 계약하자", "도급으로 다시 들어와라", "아르바이트로 일해라"는 등의 요구를 해와, 일이 없어서 해고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3. 정규직과의 갈등 증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는 양식을 보면 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조직하려고 노력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정규직에서 조직계획을 갖고 결합을 한 곳은 반드시 정규직과 통합노조를 건설했다. 이랜드 노동조합이 그랬고, 금속노조 인천제철지부 포항지회가 그랬다. 독자조직화 된 곳은 준비과정에서 비정규직들이 먼저 조직화를 시작하고, 이후에 정규직과의 관계를 모색하게 되었던 곳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초기에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정규직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형성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독자적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한 이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정규직과의 갈등이며, 자본은 정규직과의 갈등을 부추겨서 노동조합을 깨는 데 주력하게 된다.
이렇게 갈등이 벌어지는 데에는 정규직의 배타적인 태도가 큰 몫을 차지한다. 정규직의 배타적 태도를 낳는 가장 큰 원인은 구조조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직이 고용의 안전판으로 기능하기를 원한다.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 비정규직이 먼저 짤리면 정규직 노동조합으로서도 큰 부담을 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에서 '고용안정협정서'를 만들면서 사내하청 비율을 16.9%로 제한하고,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 사내하청을 먼저 정리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미 전주공장이나 아산공장에서는 하청의 비율이 40%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면서 정규직의 고용불안을 더욱 심화시킨다. 한국통신에서도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원정리의 명수가 확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장 조건이 나쁜 계약직 노동자들부터 짜르고자 했다. 그래서 계약직 7,000명이 한꺼번에 정리해고 되었는데, 정규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이것이 자신들의 고용안정성을 높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들의 투쟁에 오히려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명월관 노조의 경우 기존노조인 한국노총 소속의 워커힐노조에 수차에 걸쳐 실제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가입을 받을 의사가 없을 경우 규약을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민주노총 가입을 하려고 하여 이념이 틀린 노조이다." "받아줄 수 없다" "면밀히 검토하여 볼 터이니 인내하고 기다리라, 그러나 오직 노조설립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면 법률적으로 대응하겠다" 거나 "비정규직을 노조에 가입시켜 주면 상여금, 복리후생 등을 정규직과 똑같이 해주어야하는데 당신들 같으면 받겠느냐?" 라는 등 명월관 노조에 대한 탄압을 일삼았다. 또한 명월관 노조가 노조 설립에 따른 회사측 탄압,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 등에 대해 구제신청 및 고소를 진행하자 명월관 조합원들과 면담을 추진하며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해보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조합원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수차에 걸쳐 노조설립 시도를 무마시키려고 시도를 하였다.
조합원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다.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개인의 힘으로라도 살아남기를 원한다. 비정규직의 존재 자체가 노동자들을 안심시키는 기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신뢰를 주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지 못하는 이상 조합원들의 의식수준은 비정규직에 대한 배타적 태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함께 조직을 만들어나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캐리어 사태에서 우리는 이것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아무리 비정규직 노동조합과 함께 하고자 하더라도 이런 조합원들의 의식수준에 편승하는 이상 절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통합노조의 건설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외자기업이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자신들이 먼저 짤릴 것이라는 직반장들의 불안감을 극복하는 투쟁의 전망을 제공해주지 못하면서 결국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배신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처했다. 구조조정에 대한 명백한 반대, 기업의 틀을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견지하지 않는 이상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필연적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함께 부여안고 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한노사연에서는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점잖게 충고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어려움은 정규직과의 연대를 통해서 극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규직과의 연대를 배척하지 말고 가자. 캐리어 사태에서도 정규직과의 관계를 슬기롭게 조절하지 못한 상급단위 활동가와 지원단체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고 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치고 정규직과의 연대를 부정하는 노동자들은 하나도 없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투쟁을 통해 절실하게 깨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힌다. '고용 문제'가 닥쳤을 때 정규직들이 얼마나 매몰차게 비정규직들을 내팽개치고 자신들의 살길을 찾는지 뼈아프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계를 조절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규직과의 관계를 슬기롭게 조절하는 것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를 자본의 논리에 빠뜨리는 일부 기회주의적인 지도부를 정확하게 비판하고, 노동자계급의 통일과 단결이라는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정규직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것이지, 상층 차원에서의 적당한 타협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각종 차별을 통해 정규직의 우월의식을 재생산하며 고용을 매개로 둘 사이를 갈라놓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극복하게 하는 것은 기업별-정규직주의를 극복하자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현실 속에서 기업별-정규직 주의가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밝혀서 현장투쟁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고, 구조조정에 대한 원칙적인 대응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동투쟁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정규직의 배타적인 태도 때문이고, 그것은 구조조정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런 왜곡된 인식은 자본의 철저한 관리전략 속에서 재구성된다. 자본은 원청 노동자들에게 이런 왜곡된 우월의식을 심어주고, 일상적으로 차별을 강화하는 관리체계를 만들어간다.
그 전략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위험하고 힘든 일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활용하게 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노동자들이 작업을 기피하는 라인, 산재빈도가 높은 일에 많이 투입된다. 자동차의 경우 유기용제, 솔벤트와 관련된 일이 매우 많다. 조선업종의 경우 도장 중에서도 어둡고 위험한 곳을 하청이 맡는다. 밀폐된 공간에 가스가 꽉 차 있는 곳은 당연히 하청의 몫이다. 원청 노동조합은 심지어 '그라인딩 등 유해업무는 하청을 활용한다'는 단협조항을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한다. 자신들의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투쟁해야 할 하청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일상적 매카니즘이 하청과 원청을 분리시키고, 투쟁 시에도 함께 하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 한국통신 계약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계약직은 정규직이 하기 싫어하는 일, 비오는 날의 일을 도맡아 한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시다바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자본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차별체계를 동원한다. 노동자들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차별을 당한다. 이름표, 작업복, 안전장비, 식당의 밥에서까지 말이다. 하도급 작업복하고 직영 작업복이 서로 다르다. 원청은 옷을 벗어서 세탁기에 넣으면 빨아주는데 하청은 직접 빨아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작업복이 완전히 다르다. 정규직은 겨울에 따뜻하지만 비정규직은 그렇지 않다. 식당은 아주 추접스럽게도 직영이나, 하청이라고 식권에 찍혀서 나온다. 밥값도 서로 틀리다. 안전장구를 사는데도 정규직은 좋은 장구를 사고, 비정규직은 금액이 낮은 안전장구를 산다. 심지어는 안전장구를 비정규직 자신이 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차별을 하는 이유는 단지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자신들은 뭔가 비정규직과 다르다는 허위의식을 심어놓아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공동투쟁을 꺼리게 만든다. 하청 노동자들은 축구를 하고 있다가도 원청이 가면 축구장을 비워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같이 바둑을 두다가 싸움이 벌어졌을 때 하청이 원청의 뺨을 때렸다고 해고당한 일도 있다. 심지어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생일을 알아서 챙겨주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허위의식으로 물들어 비정규직을 깔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본의 이런 차별 때문에 자신을 이류노동자라고 생각하여 차별을 내면화하고 적극적으로 개선의지를 갖기보다는 못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본의 분리전략이다. '자신들도 하인이면서 우리를 노예 취급한다'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자본가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시에 하청 노동자들을 투입해서 파업을 방해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 사이에 불만이 쌓이도록 만든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의 경우 계약직 노동자들까지 조직하여 함께 투쟁하고 정규직화한 모범적 사례이지만 이들이 투쟁할 때 도급노동자들은 공장을 돌렸다. 이로 인해서 도급 노동자들에 대한 불만이 매우 쌓였고, 이후 이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이 파업을 할 때 자신들이 일을 못하게 되면 그것을 곧바로 생계의 어려움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정규직의 파업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고, 기회가 닿으면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분리전략은 파업투쟁 기간 동안 더욱 극명하게 효과를 나타낸다.
이것이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골을 깊게 만들어서 단결투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본의 관리전략이다. 이러한 관리전략이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공동투쟁을 하는 것을 방해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런 차별적 의식 때문에 한국중공업에서는 4번이나 규약변경안을 올렸다가 부결되기도 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들과 같은 노동조합활동을 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이 노동자들을 분할통치하고 그를 통해 힘을 최대한 빼려고 하는 작전을 구사하는데 노동자들이 놀아나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인격적으로 멸시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노동자들이 있는 한, 그래서 자본의 의도에 놀아나는 노동자들이 있는 한 통합노동조합 건설은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조합원들의 심리는 노동조합이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심리를 핑계삼아서 통합노조 건설을 미루거나 비정규직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은 노동조합 스스로가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다. 때로는 악의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그 투쟁을 망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한국노총의 홍익회는 성과급영업사원인 홍익매점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교섭 때마다 홍익매점 노동자들을 교섭 카드로 활용해왔다. 그들이 독자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자 복수노조라면서 오히려 노동조합을 무너뜨리려 했다. 워커힐호텔의 명월관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의 규약을 변경해서 그 노동자들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해놓고는 그 노동자들이 독자적으로 조직되는 것을 가로막는 일을 한 것이다. 이런 악의적인 정규직 노동조합의 태도 때문에 독자적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도 힘겨운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구조조정에 대한 불철저한 태도를 버리고, 조합원들의 낮은 의식수준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기를 그만두고 원칙적 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하기를 촉구하면서 교육하고 선전하고 투쟁하지 않는다면 함께 조직을 건설하기도 요원하고, 투쟁으로 자본에 맞서 승리하기도 어렵다.
Ⅲ.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특히 더 문제가 되는 점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함께 투쟁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조직에서 다양한 쟁점들이 도출되어 있기도 하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쟁점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노동자들이 조직과 함께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따라서 조직의 문제점과 투쟁의 문제점은 일치한다. 이 문제점을 살펴보면서 어떤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지 검토해보자.
1. 사용업체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
현재 노동부의 입장에 따르면, 파견·용역업체와 사용업체가 노동3권 보장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떠한 법적, 제도적 강제도 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사용업체에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노동부와 사용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온전하게 활동하려면 조합활동이 인정받고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을 통한 교섭력이 보장되어야 하기에, 노동법은 이를 사용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파견·용역업체만을 상대로 노동3권을 주장하라는 노동부와 사용자의 주장 때문에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은 실질적으로 박탈되고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주된 활동장소는 당연히 사용업체의 사업장이며 파견·용역업체에 가본 적도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파견·용역업체 사무실에 가서 조합활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으며, 작업장과 분리된 조합활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대부분의 사용업체는 "우리 회사 직원이 만든 노동조합이 아니니 우리 사업장에선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논리로 조합활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 간부의 출입을 금지하거나 사업장에서의 회의를 금지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또한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업체는 근로계약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하고, 파견·용역 업체는 "우린 아무 능력이 없으니 어찌할 수 없다."며 불성실하게 교섭에 임한다. 설령 성실하게 교섭에 임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파견·용역업체를 통해서는 단체교섭의 실질적인 성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임금 및 노동조건은 전적으로 사용업체의 재량에 달려있으므로 파견·용역업체에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동3권 보장의무가 전가되는 상황에서 파견·용역업체가 책임질 능력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노동자들은 노동3권의 행사를 스스로 포기하기까지 한다. 책임질 사용자가 없는데 나서봤자 무얼 하냐는 것이다.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파견법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파견노동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파견법 제34조는 임금, 고용 문제에 대한 책임은 파견업체가, 노동시간 및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은 사용업체가 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최소한 사용업체가 책임질 부분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파견노동자는 다른 간접고용 노동자에 비해 유리하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견법은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 책임에 대해선 거의 규정하지 않는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노동조합과의 교섭의무를 누가 져야 하는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는지, 해고된 조합간부의 사업장 출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조항이 전혀 없다. '정당한 노동조합의 활동을 이유로 근로자 파견계약을 해지해서는 안 된다'는 파견법 제22조만이 사용업체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책임을 규정하는 유일한 조항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동부가 사용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사례가 없으며, 그러한 의지 또한 없는 상황에서 파견법 22조는 알맹이 없는 선언에 그치고 만다.
결국 파견법의 기준을 따라 합법적으로 파견된 노동자들 또한 노동3권은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른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현행 파견법이 파견노동자 보호보다 파견근로 합법화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사용업체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을 아예 인정치 않음으로 인해 조합활동에 치명적인 제한이 가해진다. 해고된 조합간부의 작업장 출입을 금지하거나 사업장에서 조합활동을 금지하기도 한다.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만성적인 임금체불에 항의하여 99년 3월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에 대해 한라중공업과 하청회사는 노조 집행부에 대한 납치, 협박, 현장출입 봉쇄 등의 노조탄압을 자행하였고, 노동조합은 사업장 밖에서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홍익매점 노동조합의 경우, 노동조합이 사측에 단협을 요구하자, 개인사업자로 되어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를 모두 제외하면 단협에 응하겠다고 해서 단협이 계속 늦춰지고 있는 상태이다. KBS는 방송사 비정규 노동조합 위원장이 해고되었다는 이유로 사업장 출입을 금지하였다. 또한 조합원들이 휴게시간에 회의나 집회를 하면 파견업체 직원이니 방송사 내에서 해선 안 된다고 하였다. 방송사에서는 2001년에 방송사가 공익 시설이니 만큼 집회를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기각당했다. 그러자 또다시 서류를 고쳐서 두 번째로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다시 기각당해서 자유롭게 집회가 가능했다. 하지만 걸핏하면 소송을 내 노조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얼마나 쉽게 노조활동을 방해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만하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사용업체의 사업장에서 사용업체의 노동조직에 편입되어 노무제공을 한다. 그런 만큼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구체적으로 좌우하는 자는 사용업체이다. 대개의 파견용역업체가 사용업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열등한 지위에 있고, 또 사용업체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모집하여 공급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노무지휘·감독을 하지 않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수준도 파견·용역계약의 내용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고, 사용업체가 계약해지를 요구하거나 어떤 노동자의 해고를 원한다면 그 노동자는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였을 때 단체교섭을 원하는 상대방은 사용업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용업체는 실질적 사용자로서의 책임이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단체교섭 거부로 일관한다. 현실적으로 능력이 없는 파견·용역업체에 단체교섭 의무가 주어짐으로써 간접고용 노동자는 실질적인 단체교섭 기회를 박탈당한다. 사용업체는 근로계약서상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제도적 공백으로 인해 간접고용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이 침해되는 것이다. 대상식품, KBS, SBS, 이랜드, 한라중공업등 대부분의 사용사업주는 단체교섭 거부로 일관하거나 비공식적인 교섭만을 고집한다.
서울대에서 경비, 미화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2000년 1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서울대를 상대로 파업을 벌였다. 노동조합은 서울대에 단체교섭을 요구하였는데, 이에 대해 서울대는 공식적으론 단체교섭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학내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비공식적인 대책기구를 통해 노동조합과의 교섭에 나섰다. 결국 서울대와 노동조합의 협상 끝에 파업에 종료되었다.
LG캐피탈엔 약 3500여명의 파견노동자가 카드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파견노동자에 대한 부당해고에 항의하면서 서울지역여성노조 카드사 지부를 결성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하였다. LG캐피탈은 사용사업체는 파견노동자와 교섭할 의무가 없다며 교섭을 회피하였다. 이와 관련해 LG캐피탈에서 노동부에 질의하자 서울강남지방노동사무소는 "일반적으로 단체교섭의 당사자가 되는 사용자는 근로계약의 당사자인 파견업체"라 하였다. 노동부의 비현실적인 법 해석에 의해 파견노동자의 노동3권이 무력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송유관공사 역시 노동부에서 불법파견이므로 대송텍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하면서 직접고용 또는 완전 도급으로 전환하라고 하였으나 이미 업체가 폐쇄된 대송텍을 중간에 끼워넣어 도급전환을 모색하는가 하면 노동조합과는 모든 교섭을 완전히 거부하면서 대송텍과 계약해지를 하고, 그 자리에 대한송유관공사 직원들을 투입했다.
사용업체가 단체교섭을 거부하면서 교섭예정 시간에 교섭위원을 작업에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사용업체는 단체교섭 상대방이 아니므로 교섭위원의 교섭시간을 보장하는 것은 파견·용역업체의 의무라는 것이다. 사용업체의 이런 주장은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3권 보장의 제도적 허점을 명백히 드러낸다. 사용업체가 교섭시간을 보장하지 않으면 파견·용역업체가 시간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교섭시간조차 맘대로 확보할 수 없는 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하는 것은 형식적인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2.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각종 부당노동행위의 만연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노동조합을 결성해도 파견·용역업체와 사용업체의 합작에 의해 무너지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사용업체의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할 제도적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횡행하는 것이다. 사용업체가 노동조합을 방해하는 조치를 해도 그것이 부당노동행위인지 구별할 법적, 제도적 방법이 없으며, 현재 노동부의 노동법 해석엔 이런 문제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어 보인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사용업체가 노조 간부나 핵심조합원을 해고 또는 전근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부당노동행위이다. 이러한 조치는 '형식적으로는' 사용업체와 파견·용역업체간의 인력공급 계약 내용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용업체가 노동조합 파괴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노동부와 사용자의 입장이다. 대부분의 인력공급 계약엔 사용업체의 요구에 따라 파견·용역업체는 직원을 교체하거나 배치를 바꿀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에 의해 단지 업무상 필요에 따라 업체에 요구했을 뿐, 노동자를 직접 해고한 것은 아니라고 사용업체는 주장하는 것이다. 아예 사용업체의 요구도 없는데 파견·용역 업체가 알아서 해고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INP중공업 사내하청의 경우 노조를 결성하자 계약해지와 함께 하청업체 이름을 바꾸어 재계약하면서 조합 간부들을 고용승계에서 탈락시켰다. 결국 위원장이 끝까지 남아서 농성투쟁을 전개하다가 울산 효성투쟁과 관련하여 구속되었고, 투쟁은 마무리되었다.
SK의 저유소에 인력을 파견하는 인사이트코리아에 2000년 3월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SK와 인사이트코리아는 노조해산 작업에 나섰다. SK의 관리과장 등은 개인면담을 통해 " 너희들은 도급제이므로 SK가 계약을 하지 않으면 끝이다."는 식으로 협박하면서 노조탈퇴를 강요하였다. 조합원들은 용역업체가 아닌 SK에 탈퇴서를 제출해야 했다. 이렇게 SK가 노조파괴의 중심이었음에도 중노위는 SK는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어서 사용자가 아니므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분당의 삼성-한신아파트의 경우 2000년 평소 노조의 존재에 불만이 있었던 입주자대표자회의가 용역회사에 경비용역으로 전환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자 용역회사는 조합원만 해고를 통보한 후 경비용역으로 전환하였고, 비조합원들만 신규입사 형식으로 재입사하였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이것을 '합법적 해고'로 판결하기도 하였다. 재채용된 비조합원들은 결국 임금삭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로얄오피스텔의 경우에도 99년 말 시설관리직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자 용역으로 전환시킨 후 위원장을 해고하였다. 위원장은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복직판결을 받았으나 복직을 시키지 않고 있다. 하남의 꿈동산 신안아파트의 경우에도 재계약시에 전직원 사직서를 요구하고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조 분회장이 거부했고, 다른 조합원들은 탈퇴서를 제출했다. 이에 98년 9월 용역전환시 분회장만 선별 해고 후에 임금이 삭감된 채 고용이 승계되었다.
부당노동행위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면 이후에 블랙리스트에 시달린다. 그 지역 내 사업장에 취업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원청 회사가 하청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다.
현대미포조선의 경우 사내하청업체 신아기업의 한 노동자가 총선과 관련해서 민주노동당 울산지부 현대 미포조선 대의원 활동을 한 바 있다. 그런데 그것을 이유로 하청 사장이 출입증을 빼앗아갔고, 대부분의 현대 계열사에는 전혀 취직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지역을 떠나야만 했다.
대우조선 하청업체 소영기업의 한 노동자의 경우 일이 너무 힘들고 생계 해결이 안되는 데다가 업체가 너무나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했다. 다른 하청회사로 옮긴 후 안전 교육을 받는데 퇴사처리가 안되었다면서 쫓겨나고 말았다. 원청의 정보시스템으로 관리가 되고 있어서 노동자들이 불만을 갖고 다른 하청으로 이동하려고 할 경우 취업 자체를 완전히 봉쇄하면서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불법파견 판정 이후 6개 사내하청이 모두 계약해지 당했고, 거기에서 일하던 노동자 600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취직을 하려고 하는데, 그 어떤 기업에도 취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캐리어에서 일했다고 말했기 때문에 취직이 안되는 줄 알았는데, 이력을 아무리 속이더라도 이름 석자 치면 캐리어에서 일했던 것이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지역에서의 취직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원청에서 하청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하청 노동자들을 노예노동시킨다. 또한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 자체를 완전히 차단하는 부당노동행위를 마음대로 저지르는 것이다.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에게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영세업체가 과열 경쟁하는 상황에서 원청업체의 의도에 반하는 행위는 곧 다음 입찰에서의 탈락, 당장의 계약해지를 의미한다. 하청업체의 생사여탈권을 사용업체가 쥐고 있으므로 업체는 원청업체의 뜻을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그래서 하청업체는 원청의 요구에 따라 노동조합을 강제 해산시키기 위한 각종 방법을 동원하지만 실질적 지배주인 원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대부분의 부당노동행위는 사용업체의 뜻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고 사용업체의 처벌 없이는 근본적인 규제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사용업체는 노동부의 편파적인 법 해석을 무기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사용업체가 노조탄압에 앞장섬에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책임을 사용업체에게 물을 수 없다는 것은 정부의 편파적이고도 안이한 현실인식의 결과이다.
부당노동행위의 만연은 노동3권이 구조적으로 억압되는 상황 속에서 더욱 심해진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실질적인 노동3권은 법, 제도적으로 전혀 보장되지 못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을 결성해도 사용업체에 의해 전혀 인정받지 못하므로 온전한 조합활동이 힘들어진다. 이렇게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이 구조적으로 억압받는 상황에서 사용업체와 파견·용역업체의 부당노동행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사용자들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인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을 존중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을 '부당하고 터무니없는 요구'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권을 방치하는 가운데 부당노동행위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며, 이를 처벌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다는 점이 사태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3권이 억압되면서 부당노동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악순환을 끊지 않고서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권은 결코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다.
3.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가로막는 정부의 태도
노동부의 비현실적인 노동행정 때문에 간접고용 노동자의 단결권이 침해되는 경우도 있다. 한 사업장에 여러 개의 사내하청 업체가 있는 경우 모든 사내하청 업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이 설립되는 것이 사용업체에 대한 교섭력 확보에 유리하다. 지역의 중심산업인 중공업 부문에서 자주 있는 현상으로, 19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 지역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노조를 설립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형태로 노조를 조직하는 것도 단결권의 내용이니 만큼 법리적으로는 어떠한 제한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행정관청이 노조설립신고 처리를 부당하게 지연시키거나, 사용업체가 노동조합의 명칭을 바꾸지 않으면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파견사업체에 압력을 가해, 노동조합 명칭을 바꾸게 한 경우가 있다. 파견·용역 노동자가 사용업체의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경우에도 노동부에 의한 단결권 침해가 일어난다.
한국후찌쯔 노동조합은 2000년 들어 규약개정을 통해 파견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려 하였다. 그런데 노조의 투표 공고를 본 회사는 노동부에 위법성 여부를 질의하였고, 노동부는 "특정 사업(장) 소속 근로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이 일방적으로 규약을 변경하여 다른 사업(장) 소속 근로자를 조직대상으로 포함한다면 그 규약 변경의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며, 다른 사업(장) 소속 근로자는 당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답하였다. 이에 노조는 일단 규약 변경안을 유보한 상태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실제 노무제공을 하는 장소가 사용사업체인만큼 사용사업체 노조에 가입하여 노동조건을 개선하려하는 것은 정당한 단결선택의 자유이다. 그럼에도 노동부가 행정해석을 통해 사실상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를 부당하게 강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볼보기계 건설 코리아의 사내하청 업체인 (주)아림의 노동자들이 볼보코리아 내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99년 11월 볼보건설기계코리아비정규직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애초 창원 시청은 볼보코리아에 직접 고용된 임시직 노조로 오인된 소지가 있으므로 명칭을 바꿀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노조가 계속 요구하자 결국 노조설립 필증을 발급하였다. 이후 아림 사장은 볼보측에서 노조의 명칭을 바꿔야 아림과 재계약 하겠다고 하였고 결국 노조는 (주)아림 노동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한다.
이랜드 노동조합은 규약을 개정하여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도급업체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 이랜드는 노동부에 규약개정의 합법성에 대한 질의 회시를 하여 노동조합을 압박하려 하였다. 뿐만 아니라 도급노동자와 임시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인 것을 핑계로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265일간의 파업투쟁 끝에 이 노동자들을 결국 정규직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행정관청에서 다시 도급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인 것을 핑계로 규약개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다시 새로운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성남노동사무소에서는 불법파견으로 판정을 받는 대송텍에 대해 업무폐쇄조치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대한송유관공사와 완전도급을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대한송유관공사에게는 2년 이상 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할 의무는 없다면서 오히려 정규직 고용을 방해하기도 했다.
노동부만이 아니라 법원도 임의적 해석을 하고 있다. 방송사 비정규노조의 사례처럼 파견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기 위해서 2년마다 주기적으로 해고하는 것을 타당하다고 판결하는가 하면, 분당의 삼성-한신아파트의 경우처럼 조합원만 해고하고 비조합원을 새로운 용역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합법적 해고'로 판결하기도 한다.
행정관청이 이렇게 임의적 해석을 하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 자체가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은 원청업체, 하청업체, 그리고 행정관청이라는 세가지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투쟁이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욱 힘든 투쟁을 전개하게 되는 것이다.
Ⅳ.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특히 더 문제가 되는 점
1. 단위사업장의 복수노조 금지조항의 문제
직접고용 노동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노조 설립" 자체가 어려움을 들 수 있다. 한국통신 계약직노조, 명월관 노조, 홍익매점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계약직 노조의 대부분은 노조 설립필증을 받는 것이 초반기 투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대부분 1년 가까이 노조 설립필증을 받기 위한 투쟁이 진행되야 하고 명월관 노조와 같이 아직까지도 법외노조로 투쟁을 진행하는 단위도 적지 않다.
명월관 노조는 워커힐 노조의 규약이나 단체 협약을 검토해 보아도 설립신고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라는 이유를 들어 설립신고를 4차례나 반려했다. 뿐만아니라 노조설립의 이유로 부당노동행위와 부당전직 등이 이루어졌고, 노조 결성이후 위원장을 비롯하여 11명의 집행부가 부당해고 되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의 경우 약 4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정규직 노조가 있었고, 여기에 계약직도 가입할 수 있는 규약이 있었기 때문에 노조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정규직 노조로부터 거부당하였다. 계약직 대량해고시 희생자구제기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통신 이동걸집행부가 제시한 계약직의 노조가입거부 이유였는데, 이에 독자노조를 건설하기로 하고 2000년 4월에 설립신고서를 냈으나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이유로 반려되었다. 결국 2000년 10월 11일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계약직을 조직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약변경을 한 후 10월 14일 서울지방노동청으로부터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받을 수 있었다.
우편물을 분류하는 대전의 상시집배원들의 경우 체신노조의 규약에 체신산업 관련한자로 가입대상을 설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야간에서 일하는 이들은 체신노조에 가입신청을 냈지만 확답이 없어서 독자노조를 만들기 위해 설립신고를 냈으나 복수노조 금지조항에 걸려 설립신고가 반려되었다.
2. 계약기간이 정해져서 노조를 만든 후 자동적으로 해고될 수밖에 없는 상태
한국통신의 경우 계약직의 상당수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근로를 해왔고, 이미 대법원의 판례나 사측의 약속을 보더라도 당연히 정규직 고용을 해야 했다. 하지만 2000년 들어서서 1개월짜리나 3개월짜리 계약서를 계속 들이밀면서 고용불안을 야기해왔고, 2000년 12월 3일까지 전국 10,000여명의 계약직 중 7,000명을 대량해고 되는 사태가 있었다. 부당해고 역시 아무런 설명 없이 계약해지통보서만 달랑 주거나 그냥 통보하는 것이라는 거짓말로 계약해지통지서에 서명을 강요하기도 했고, 계약해지 통보서에 서명을 유도하여 사직과 관계없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근거 없는 근무불성실을 이유로, 다리가 부러지는 안전사고로 입원해있는 계약직에게 해고 통보를 하기도 하였고, 노조 간부이기 때문에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다.
Ⅴ. 결론
비정규직 독자조직화에서 어떤 난점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모아보자.
1. 독자조직화는 한계가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일하는 곳에서 비정규직이 독자적으로 조직되면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가장 큰 어려움은 노조 자체의 생존이 어렵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이것은 큰 위력을 발휘해서 노동자들은 길거리에 내몰린다. 사내하청의 경우 노동조합을 만들면 바로 계약해지가 들어오고, 하청 사업장은 폐업을 한다. 파견노동자들 역시 일정한 파견기간이 지나면 바로 계약을 해지당한다. 이것은 계약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일정한 계약기간이 있고, 이 계약해지에 대해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장치가 없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곧바로 길거리로 쫓겨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설관리 등 도급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면 다음 번 입찰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기 때문에 언제라도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다.
자본가들이 비정규직들을 활용하는 이유는 저임금과 열악한 고용조건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것을 통해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노동조합의 힘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정규직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권익을 행사하려고 하면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요구를 내걸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진영 일부에서는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정규직화'등의 요구는 내걸지 말고 낮은 수준부터 차근히 요구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당장의 생존률을 높이는 데는 그것이 의미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약기간이 지나면 문제는 달라진다. 즉 요구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가들에게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독자조직화를 한 경우 모든 사업장에서 예외없이 계약해지와 위장폐업, 해고 등의 사태가 있었다. 인사이트코리아,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방송사 비정규직, INP중공업, 대상식품 사내하청,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물론 정규직과 함께 조직한다고 해서 이런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욱 손쉽게 이런 부당노동행위가 이루어지면서 노동조합의 생존 자체에 온 힘을 쏟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설령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실질적 사용주와 교섭을 하지 못하면서 노동조합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서울대 시설관리의 경우도 단 몇 만원의 임금을 올리기 위해 46일간이나 파업투쟁을 해야 했다. 실질적인 사용주인 서울대가 최저가입찰을 한 것이기 때문에 고용사업주로서는 도저히 임금을 올려줄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이다. 파견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해도 실질적인 권한을 모두 쥐고 있는 방송사와의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노동조합으로서의 실질적 성과는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정규직과의 공동행동이 마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이 깊어진다는 점이다. 사측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는 각종 이데올로기 공세를 취하는데 그것은 관념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적 근거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캐리어 사내하청의 투쟁에서 사측이 직반장들에게 사내하청이 정규직화하면 너희들이 먼저 짤린다고 협박해서 구사대로 뛰게 만든 것이나, 외자기업이므로 언제라도 철수할 수 있다고 협박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위협을 가하면서 비정규직과의 공동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을 생각해보라. 한국통신 계약직도 구조조정을 해야 할 인원은 정해져있고, 그것을 계약직으로 먼저 채우면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정규직들의 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등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만약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들을 완전히 끌어안고 자본과 사측의 구조조정 그 자체에 대한 공동의 투쟁전선을 만들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들은 증폭되기만 할뿐이다. 이것은 도덕적 훈계나 선전으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동투쟁을 해서 함께 자본의 구조조정을 박살 낼것인가, 아니면 비정규직을 볼모로 자신만이라도 살 길을 모색할 것인가의 기로에 놓여있는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함께 하자'고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투쟁에 대한 신뢰와 공동투쟁의 위력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것은 같은 노동조합으로 만들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때 가능하다.
2. 구조조정 분쇄의 관점을 갖고 정규직 노조에서 조직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에 있어 구조조정 분쇄의 관점을 갖지 못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는 만리장성이 생긴다. 우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비정규직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투쟁을 통해서만 노동자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함께 조직하지 못한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할시키는 자본의 전략에 놀아나게 되고, 이것은 투쟁의 힘을 더욱 위축시켜서 결국 자본에 순응하는 인간들만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단지 조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박살내는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서임을 이해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확산시키는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서 싸워야 한다. 분사, 용역, 외주화, 아웃소싱 등에 맞서 힘있는 싸움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간접고용이 정규직의 목에 칼날이 되어서 돌아온다. 이것은 계약직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금융이나 사무의 경우 계약직화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편중되어 있지만 이것은 곧 관리직의 비정규직화로 연결될 것이다. 서비스업에서도 비정규직의 확대는 곧바로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뜻하는 것이고, 이것은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구조조정 앞에 내몰리거나 비정규직화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반드시 정규직 노조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의 조직방침에 따르면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조로 조직하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차별철폐를 위해 먼저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 현재의 구조조정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 역시 정규직에서 함께 조직하지 않는다면 독자 생존은 거의 어렵다. 물론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함께 조직하는 데 있어서 걸리는 점이 너무나 많다. 일단 행정관청이 임의적으로 함께 조직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투쟁으로 돌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을 함께 조직하는데 있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은 투쟁으로 돌파하면 되지만 진짜 어려운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미 비정규직들을 자신의 고용안전판으로 사고하거나 차별의식에 찌들어있는 정규직들을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다시 조직하고 함께 조직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많은 노동조합들이 그 현실적 한계 앞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한계는 우리가 돌파해야 할 한계이지 편승해야 할 한계가 아니다. 힘들겠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조장하는 자본의 일상적 관리체계를 분쇄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깊숙하게 들어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지속적인 선전과 작은 실천을 통해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조합원들을 설득해가야 한다. 그것이 곧바로 우리 운동의 계급성을 복원하는 것이며, 진정 구조조정 분쇄투쟁을 제대로 힘있게 하면서 모두가 사는 길이다.
3. 만약 독자조직이 필요하다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독자적으로 조직된다면 각종 부당노동행위에도 속수무책이며, 정규직과의 갈등관계가 더욱 깊어진다. 그래서 함께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정규직 노동조합이라고 하더라도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노출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시키는 자본의 분리전략에 놀아나는 경우도 많고, 구조조정에 대한 불철저한 태도 때문에 비정규직을 총알받이 시켜서라도 자신은 살아남고 싶어하는 현재의 고통 때문에 노동조합을 함께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독자적으로라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정규직에서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미명 아래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것이며, 간접고용 노동자들 역시 투쟁을 통해 자신을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 주체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우리는 몇 가지 고민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의 요구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그것을 투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내용은 첫째로 간접고용 자체를 합법화하고 있으면서 파견 노동자들의 고통의 근원인 파견법 자체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이며, 실질적인 사용주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도록 만들어서 투쟁의 당사자와 부당노동행위의 당사자를 분명하게 확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업무가 계속 존속된다면 반드시 그 업무의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복갱신된 계약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와 임의로 계약해지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 투쟁의 주체는 한편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겠지만, 우리 운동 전체의 과제로 삼아서 대정부 투쟁을 힘차게 벌여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투쟁을 배치하면서 동시에 연대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생존은 그동안 연대투쟁의 힘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연대투쟁의 힘이 위력을 발휘했다. 또는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고강도 투쟁을 통해 자본에 실질적 타격을 입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생적 조직과 투쟁의 지원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제는 목적의식적 기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 지금 투쟁의 씨앗을 바탕으로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고, 비정규직 노조운동을 일반화할 때, 그리고 이것을 우리 운동 전체의 과제로 삼아서 전체적인 투쟁을 만들고 기획할 때 승리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4. 비정규직 노동조합 운동을 일반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선도적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힘겹게 투쟁을 사수해왔으나, 이제 이러한 방식의 투쟁은 한계에 부딪힌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제도적인 한계나 기타 한계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아무리 투쟁해도 그 성과를 잘 확산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운동 자체가 일반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화는 자생적 투쟁으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몇몇 정치조직이나 활동가들 사이에서 목적의식을 갖고 결합한 사례들도 많기는 했으나, 여전히 자생적인 노동조합 건설과 그 투쟁을 지원하는 방안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는 이것을 넘어서는 목적의식적 조직화가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서도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조직하고, 이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하나의 계기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 사내하청이 대규모로 있는 자동차나 조선업종, 그리고 이런 노동자들이 집약되어 있는 울산이라는 조건 등을 감안하여 가능한 수준에서 목적의식적 계획을 통해 이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조직하고, 조직된 이후 이 투쟁에 대한 대규모적이고 집중적인 투쟁을 만들어내며, 이렇게 만들어진 투쟁과 조직을 다시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조직화를 하기 위한 전초전의 성격으로 지금 대다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하에 있는 점을 감안하여 대대적인 불법파견 고발운동을 시작하자. 대대적 불법파견 고발과 이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에 대한 직접적 요구들을 만들고, 이 투쟁의 성과를 이어서 전략 지역을 중심으로 한 조직을 만들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인권유린과 건강 상황 등에 대해 폭로하면서 사회적 여론을 만들어가고 그것을 통해 결국 비정규직 노동조합 자체를 안정화해야 한다.
이 외에도 민간서비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70%가 넘는 임시직 계약직 일용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목적의식적 계획도 필요하다.
또한 정규직 노동조합에서는 적극적으로 조직한 사례들을 널리 알리고 그것의 의미와 가능성을 선전하고,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배신한 사례가 있다면 명백히 낙인을 찍어서 우리 운동 속에서 비정규직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 자체를 명백하게 해야 한다. 비정규직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일반화되면 그 자체로 동력이 살아나서 노동조합의 조직 자체가 수월해지고, 그 힘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는 제도적 요인들을 철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