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차이로 미황사의 낙조를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겠다. 겨울 해는 벌써 서산으로 기우뚱 고개를 숙이는데 좌충우돌 운주사 앞 좌우 양편의 길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오가도 매표소 직원이 얘기한 죽석주유소는 보이지 않았다.
서두르지 말자. 땅 끝 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어디 그리 쉽게 보여질 풍경이더냐. 이태를 별러 미황사를 보러 가는 길에 담양의 식영정과 소쇄원, 그것도 모자라 화순 운주사의 불상군(佛像群)을 두루 구경하는 욕심을 채웠으니….
어렵게 찾은 죽석주유소를 지나 강진, 성전방향으로 달렸다. 달마산 미황사 33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이고 서녘하늘의 해는 금빛으로 기울기를 시작하는데 차안엔 '아베마리아'에 이어 신경숙의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가 조수미의 음성으로 흐른다.
월출산 대흥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지나갔다. 마치 승천을 하려는 용들이 내뿜는 불꽃처럼 하늘로 치솟은 월출산 기암을 왼쪽으로 끼고 비산비야를 달리는 남도의 겨울 들녘, 낙조를 보려는 마음에 차 한 번 세워보지 못하는 여정이 바쁜데 다시 둔중한 트럭이 앞을 가로막고 비킬 줄을 모른다. 왼쪽 중앙선 건너편 도로는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고 마주 오는 차는 한 대도 없다. 이때다 하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아주 가볍고 날렵하게 덤프트럭을 밀어냈을 때 길가 갈대 섶에는 나를 환영하는 두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남자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환영의 모션을 취했다. 나는 저항을 모르는 순진한 백성인지라 얌전히 그 앞에 차를 갖다대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경관이 내가 위반한 범칙에 대해 설명하며 인정하는가를 물었다. 짧을수록 좋은 게 어디 연설뿐인가. 변명도 마찬가지.
"네, 인정합니다."
"면허증 제시하십시오."
아름다운 해남엔 경찰관의 감성도 아름답겠지.
"저는 저 해가 지기 전에 미황사를 가야합니다. 빨리 가서 낙조를 보아야 합니다. 선처 좀 해 주세요."
"우리 해남경찰은 그런 개인적인 사정은 들어 줄 수 없습니다. 면허증 제시하십시오."
"어렵게 오는 초행길에 마음이 급했습니다. 이제 조심할께요."
나는 붉어진 서편하늘과 시계를 번갈아 보며 인내심 있게 해남경찰의 아름다운 선처를 기다렸다.
"우리 해남경찰은 법을 시행할 뿐입니다. 면허증 제시하십시오."
나는 면허증을 내 놓았다. 그가 스티커 칸마다에 필요한 사항을 적어 넣는 시간은 정말 길었다. 그러는 사이 해는 홍시빛 애틋한 여운을 남기며 산너머로 기울고 사위는 푸른빛 투명한 노방커튼을 드리운 듯 설핏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안전운행 하시라는 그의 말은 끝내 나를 노엽게 만들었다. 하루해가 바다에 잠기도록 미황사는 멀었다.
진도 앞 바다를 계절마다 다른 빛으로 물들이며 진다는, 미황사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이미 내 마음속에 있었다. '바다와 섬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황금빛이 미황사 뜰과 가람을 물들이고, 달마산 바위로 번지는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가 이미 내 마음속에 있거늘. 고통을 참는 짐승의 신음 같은 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나왔다.
미황사 가는 길….
출렁이는 억새 밭이 끝나면서 시멘트 도로가 더욱 좁아지고 울창한 숲 사이로 부드럽게 휘어져나가는 불국정토(佛國淨土) 미황사로 향하는 아늑한 숲길에서 그만 목이 메인다.
무례한 쇳덩이에 올라앉아 경내로 불쑥 들어가게 될 것을 조심하며 동백나무 숲 아래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드니 푸른 비단 폭에 몸을 감춘 공룡의 등뼈 같은 달마산 희미한 암벽 아래 절 집의 지붕만 보인다. 석축 사이 돌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미황사는 내가 오른 만큼만 그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지막 계단을 올라섰을 때 아름다운 절 집은 휑하니 눈 앞에서 사라지고 네모반듯한 너른 마당엔 아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과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녀만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붉은 낙조의 잔영조차 사라져 아슴아슴한 서해를 돌아다보는 아쉬운 시선 끝에는 손바닥만한 뭇섬들과 함께 검은 빛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이백 년 장구한 풍우에 단청이 벗겨져 순정한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낸 미황사,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가 다시 사뿐 시야에 들어오는 미황사. 나는 내 다음 여행지가 다시 미황사가 될 것임을 알았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고요함'이 무엇인지, '말없는 말'이 무엇인지… 나는 이제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을 것이다.
미황사에서
금강스님은 세심당 툇마루 앞에서 마대자루를 쏟아놓고 무언가를 찾고 계셨다.
"어디서 오셨어요?"
"제가 민들렌데요."
"우선 들어가 공양부터 하세요."
떠나오기 며칠 전 미황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냥 가겠노라는 글을 남겼을 때 금강스님은 아름다운 탁본 사진과 함께 그냥 오시구려 라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세심당 맞은 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공양을 하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오니 깊은 산중은 어느 사이 어둠에 잠겨있었다. 스님은 세심당이 기역자로 꺾어진 끝방을 가리키며 오늘밤 그 방에서 묵으라고 일러주시곤 예불 드리러 갑시다 하시며 앞서 걸으셨다.
몇 분의 스님과 공부하러온 학생들 틈에 끼어 옆에서 하는 대로 따라 절을 하였다. 목탁소리, 독경소리, 집에 두고 온 오래된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끊임없이 내 안에서 만들어져 나를 흔들어대는 아귀(餓鬼)들의 함성이 한데 어울려 꼼짝 못한 채 두 손과 두 발을 모아 미황사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스님이 일러주신 세심당의 끝방으로 돌아와 지도를 펼쳐놓고 메모를 하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공양을 같이했던 아가씨였다. 한 번 출가를 하였다가 집으로 돌아갔으나 아직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아가씨의 머리카락 길이는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 자라있었다. 어떻게 혼자 여행을 다니느냐며 정말 용기가 대단하다고 하는 말에 스님이 되겠다는 아가씨 용기가 더 대단하다고 하니 지그시 방바닥을 내려다보는 눈썹이 동요하듯 떨린다. 아가씨가 자기가 묵을 방으로 돌아가고 나는 다시 옷을 껴입고 나와 동백나무 숲을 걸었다. 깜깜한 겨울 숲에 가느다란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산아래 먼 마을에서는 몇 점 불빛이 미황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느 영화 감독이 아무 말 못하고 그냥 퍽퍽 울다가 갔다는 미황사 뜨락, 내 안에서 그가 또 울었다. 나는 그가 마냥 퍽퍽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낯선 곳에서의 뒤척임도 없이 산사의 밤이 지나고 눈을 떴을 땐 새벽 4시였다. 타일바닥에 보일러를 깔아 훈훈한 미황사 샤워실에서 더운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 비는 그쳤으나 겨울나무 서러운 가지에선 여전히 빗방울이 떨어졌다. 부도밭이 있는 미황사 남쪽 오솔길을 걸었다. 랜턴의 불빛은 비가 그친 후의 짙은 새벽안개를 뚫지 못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은 세심당 앞에서 등산화 끈을 조이는 나를 스님 한 분이 말렸다.
"바위가 많아서 혼자는 위험해요. 더구나 아직 이렇게 깜깜한데, 날이 새거든 올라가세요."
7시가 되어서야 칠흑 같은 어둠의 자락이 서서히 걷히며 미황사 대웅보전 처마의 윤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당쇠를 자처하시는 처사님께 길을 물어 산을 올랐다. 7부 능선까지는 완만한 경사였던 달마산은 갑자기 급격한 경사가 시작되면서 조릿대사이의 보드라운 흙길이 바위산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남도 금강' 달마산 정상이다.
아직 날은 밝지 않았다.
백두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바다를 앞두고 솟아있는 이 땅의 마지막 산, 다도해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달마산 정상에 홀로 선 나그네의 시력 나쁜 눈에는 바다와 섬들과 들판과 강들이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다만 땅끝을 막아선 채 길게 뻗어 말처럼 달리는 칼 같은 바위들, 바람이 불면 갈기를 세운 성난 사자처럼, 장엄한 일출 속에선 수천 수만의 타오르는 불꽃처럼, 날빛이 저물어 서해바다로 몸을 담그는 석양 무렵이면 바다에서 번져오는 황금빛이 바다와 가람과 달마산 흰바위를 온통 금빛으로 물들일 터였다. 겨울 이른 아침의 달마산 꼭대기에서 카메라 렌즈 속에 펼쳐지는 상상의 풍경에 몸이 떨렸다. 어디서 기진한 흐느낌이 들려와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언젠가부터 나는 울고있었나 보다.
산을 내려오며 잠시 길을 잃었다. 그쯤에서 바위산이 끝나고 조릿대 사이 흙이 보드라운 소로가 시작되어야하는데 나는 점점 너덜겅 지대를 오르고 있었다. 고개를 쳐드니 거기가 또 정상이다. 해일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다시 내려오다가 아닌가 싶어 다시 오르기를 세 번째, 갈 데까지 가보자 하는 직심으로 내려가는 내 눈에 흰색과 빨간색 페인트로 미황사 가는 길을 표시한 예쁜 팻말이 보였다.
미황사 절 아래 차를 세워둔 동백나무 숲에는 낙화한 동백이 붉었다. 1월이나 되어야 피는 동백이 일출도, 낙조도 보지 못한 나그네의 허탈한 심정을 위로하고 싶었나보다. 자판기의 커피를 빼들고 주저앉아 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떠나오기 전, 찾아 준비한 자료 속엔 돌불 꽃이 모여있는 화랑 같은 부도밭이며 대웅전 연화문 초석에 바닷게와 거북이 새겨진 모습이며 천불벽화의 설명이 있었건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저 대웅전 뜨락에 멍하니 서서 한 발짝도 그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가슴속에선 서러운 무엇인가가 복받쳐 올랐다.
혹시나 싶어 금강스님의 처소로 가니 어젯밤 예불 후 월출산 대흥사에 가셨던 스님의 까만 털신이 보였다. 스님은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스님께 용건이 있는지를 알아내셨다. 잘 정리된 책들이 방의 삼면에 그득한 넓은 방안엔 찻물이 끓고 있었다. 스님의 맑은 눈빛이야말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씀이었다. 스님은 늘 만나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미황사의 근황과 풍경을 얘기하셨다.
인사를 드리고 일어서는 내게 늦여름에 오세요, 석양이 좋아요. 하시며 다탁 위의 커다란 홍시 하나를 건네주신다. 스님의 방을 나와서도 대웅전 뜨락에 서서 한참을 머뭇거리며 미황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2년 전 보길도 여행길에 스치듯 지나친 달마산, 우두두 거친 말발굽소리를 내며 달리듯 남도의 평원을 바람처럼 달리는 흰바위산 준봉의 형상과 금빛으로 물드는 미황사의 고요가 뇌리 속을 떠나질 않았다. 가엾고 힘없는 나라의 땅끝을 막아선 끝간데 없는 외로움과 세상의 하루를 밝혔던 붉은 햇덩이를 조용히 잠 재우는 울력을 생각할때마다 꼼짝없이 신열이 오르곤 하였다.
그 턱없는 그리움을 어찌 하룻밤 벼락치기로 풀어내려는 생각을 했을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아쉬운 미련을 화두처럼 걸머지고 돌아오는 내내, 향기로운 차 향의 여운이 휑한 겨울길을 함께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