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자가 계속 작아지면 미시세계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세계 과학기술계는 2010년쯤 지금의 반도체 방식은 심각한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시세계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개념의 정보 소자를 위해 치열한 연구개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십수년 안에 반도체의 후계자가 등장하면 컴퓨터 개념도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8~11일 앨런 히거와 존 로버트 슈리퍼 등 노벨 화학·물리학상 수상자 등 나노기술 분야 대가들이 참석하는 `합성금속과 양자기능반도체 국제학술회의'를 공동주관하는 동국대 양자기능반도체연구센터 강태원 소장(물리학 교수)은 “나노기술이 인공지능형 컴퓨터혁명을 현실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미시세계의 `양자현상'은 가장 큰 복병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고 물질의 위치와 운동량을 측정할 수 있는 거시세계의 고전역학과 달리, 10억분의1m 단위의 나노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물질은 `불확실성'의 양자현상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국제학술회의에선 탄소나노튜브, 전도성 고분자 등 분자·원자 단위의 나노 정보 소자와 함께, 현대과학에서도 다 밝혀지지 않은 양자현상에 대한 세계 수준의 연구동향이 집중 논의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
△ 지난 2월 삼성전자가 발표한 0.1미크론 초미세 공정을 적용한 4기기 메모리반도체
|
사실 반도체의 양자현상은 반도체가 초집적화의 길을 걸어오면서 예고된 것이다. 그동안 정보기술 혁명을 이끌어온 반도체의 발전 원동력은 `전자신호가 달리는 도로'인 회로의 선 폭을 얼마나 좁히느냐에 달려 있었다. 도로 폭을 줄임으로써 이동거리를 줄여 정보처리 속도를 높여왔다. 최근엔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회로의 선 폭을 1000만분의 1m(0.1미크론)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세계 과학기술계는 0.05미크론(50나노미터)을 한계점으로 보고 있다. 미국 과학기술발전협회(AAAS)도 지난 2월 “10~15년 이내 컴퓨터 소형화는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인 양자효과와 제조방법의 문제점으로 인해 급속히 느려지거나 중단되고 말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나노세계에선 전자신호를 고전물리학으로 통제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나노세계의 입자는 한 곳에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곳에서 발견될 가능성을 지닌 `불확실성'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위치와 운동량은 `확률'로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고, 입자는 확률상 벽을 통과기도 하죠.” 국가 21세기 프런티어사업으로 추진중인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의 이조원 단장은 “나노세계의 반도체는 회로가 밀집해 열이 발생하는 문제도 있지만 전자가 절연체까지 통과하는 `터널링 효과'로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며 “양자현상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것은 이제 나노소자 연구의 중요분야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
△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트랜지스터. 4개의 네모 막대 가운데 가느다란 십사형 선이 탄소나노튜브이며 두 선이 만나는 부분이 트랜지스터로 기능한다.
|
“양자역학 아래 작동하는 새로운 정보 소자로서, 전자를 하나씩 미세하게 발생시켜 통제하는 단전자 트랜지스터, 전자의 회전운동 방향(스핀)을 통제하는 스핀트로닉스 등 분자·원자 수준의 나노칩 개발 동향이 이번 학술회의에서 논의된다. 국내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과 양자기능반도체연구센터도 단전자 트랜지스터와 스핀트로닉스 분야의 연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초 나노기술 국가개발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일본도 6월께 나노기술 장기개발계획을 내놓을 전망이며 한국도 7월께 나노기술 종합발전계획을 밝힐 예정이어서 각국의 개발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조원 단장은 “나노 소자의 개발 여부가 2010년께 1조 달러 규모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냐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철우 기자cheolwoo@hani.co.kr
양자현상이란?
양자현상은 미시세계에서 나타나는 `불연속한 물리량'을 말한다. 0부터 무한대까지 모든 값을 연속적으로 가지는 `아날로그'의 거시세계와 달리 1, 2, 3 등 정수값의 특정 `양'을 갖기 때문에 양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
△ 원자 수준의 나노기술을 이용해 실리콘 원자를 산화시켜 쓴 글자. 나노기술은 미시세계의 양자현상을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
강태원 동국대 교수는 “양자현상의 물질은 연속적 중간값이 없이 똑똑 끊어지는 불연속의 값, 즉 디지털의 속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양자현상을 이용해 `0과 1'의 이진법 비트 체제가 아닌, `0, 1, 2' 등 다진법의 정보처리 방식을 응용하려는 연구도 계속된다. 이른바 `비트'에 대응하는 `큐비트'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그것이다.
양자컴퓨터는 다진법의 장점을 살려 현존 슈퍼컴퓨터의 1억배 이상 처리 속도를 지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2월 일본의 일본전신전화(NTT)와 반도체업체 엔이시(NEC)가 4~5년내 개발할 목표로 양자컴퓨터 공동연구에 나서는 등 첨단 연구기관들의 경쟁대상이 돼왔다.
강 교수는 “현재로선 정보의 유지시간이 너무 짧고 재현성이 어려워 실용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실현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