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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풍전(李春風傳) -작자 미상
✌ 길잡이
허랑 방탕한 이춘풍이 주색잡기(酒色雜技)에 탐닉(耽溺)하여 가산을 탕진(蕩盡)하였으나, 현명하고 합리적인 아내의 노력으로 바른 생활을 하게 된다는 풍자적 이야기다. 인물설정은 기존의 관념이나 질서가 파괴되고 물질을 가치의 중심에 놓는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어 가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 줄거리
숙종 때, 거부의 아들인 이춘풍은 가정은 돌보지 않고 방탕하게 놀러 다니며 가산을 탕진(蕩盡)하고 아내는 굶주림에 거동도 못 하고 누워 있다. 춘풍이 방탕한 생활을 반성하고 서약까지 하자 아내가 기뻐하며 품팔이로 돈 500냥을 모으자, 춘풍은 호조에서 빌린 2,000냥을 더해 평양으로 장사를 하러 간다.
춘풍은 평양의 명기 추월에게 미혹되어 돈을 탕진하고 급기야 추월의 집에서 하인 노릇을 한다. 아내는 이 소식을 듣고는 평양 감사로 가는 참판 댁에 부탁하여 남장을 하여 회계 비장(裨將)으로 가서 교묘한 상술로 많은 돈을 벌어 감사와 나누고 그의 신임을 얻는다.
그러나 나랏돈을 갈취한 추월을 엄히 문책하여 5,000냥을 남편에게 주게 하고 춘풍 역시 태장(笞杖)으로 죄를 다스린다. 춘풍은 돈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거드름을 피우다 비장이 아내인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춘풍은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데에 힘써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을 이룬다.
ㄱ) 이춘풍은 거부의 아들로 호강을 누리다가,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주색잡기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다. 춘풍 처는 침재, 길쌈, 방직 등으로 기운 가세를 다시 일으킨다.
ㄴ) 다시 방탕한 마음이 인 춘풍은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호조의 돈을 빌려 평양으로 장삿길에 나선다.
ㄷ) 평양에 간 춘풍은 기생 추월의 유혹에 빠져 돈을 다 털리고 그 집 하인이 된다.
ㄹ) 이 소식을 들은 춘풍의 처는 참판 댁의 대부인을 사귀어 신망을 얻고, 마침내 평양 감사로 가는 참판 댁에 부탁하여 비장 벼슬을 얻어 남장을 하고 평양으로 간다.
ㅁ) 평양에서 회계 비장을 맡은 춘풍의 처는 교묘한 상술로 많은 돈을 벌어 감사의 신임을 얻는다.
ㅂ) 남장을 하고 추월의 집에 간 춘풍의 처는 남루한 남편의 행색을 보게 되고, 춘풍과 추월을 잡아들여 형벌로 다스린다.
ㅅ) 춘풍의 처는 집으로 돌아와 춘풍의 귀환을 기다린다.
ㅇ) 춘풍은 장사로 돈을 번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집에 돌아와, 아내 앞에서 거드름을 피운다.
ㅈ) 회계 비장의 복장으로 갈아입은 춘풍의 처는 춘풍의 평양에서의 행적을 폭로한다. 비장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니, 춘풍은 부끄러워하면서 지난 일을 뉘우친다.
◈ 핵심 정리
▶연대 : 미상(19세기 이후)
▶작자 : 미상
▶형식 : 고전 소설, 판소리계 소설, 풍자 소설
▶성격 : 해학적, 교훈적, 풍자적
▶표현 : 판소리 사설의 문체 사용, 해학적이며 풍자적인 내용
▶주제 : 방탕(放蕩)한 남성에 대한 비판과 진취적 여성의 유능함
◈ 등장 인물
▶춘풍 : 윤리 의식 없이, 위선과 허세에 가득 찬 조선 후기 양반의 모습, 도학적인 선비정신을 상실한 인물→학문보다는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구조
▶춘풍 처 : 소극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 탈피→적극적인 여성상의 출현, 여성의 지위 향상
▶추월 : 정조나 절개보다는 금전적 욕심을 챙기는 기녀→물질 중심의 가치관
◈ 이해와 감상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필사본. 국립도서관본 · 가람문고본 · 김기동(金起東) 소장본 등 3종이 있다. 그밖에 김영석이 1947년 개작하여 협동문고로 간행한〈 이춘풍전 〉이 있고, ‘ 부인관찰사 ’ 라는 표제의 활자본이 있다.
숙종 때 서울에 사는 이춘풍은 가정은 돌보지 않고 놀러 다니며 가산을 탕진한다. 나중에는 아내가 품을 팔아 모은 돈까지 다 없애고 빚까지 진다. 박득만이라는 상인이 돈을 써서 벼슬을 사려고 한다는 소식을 얻어 듣고서 최참판에게 다리를 놓겠다고 찾아갔으나 용돈도 못 얻고 술대접만 받고 돌아온다. 춘풍은 돈이 떨어지자 기생 월향에게까지 천대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 김씨가 굶주려서 거동도 못하고 누워 있다. 춘풍은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반성하고는 아내에게 서약까지 한다. 이에 김씨는 기뻐하며 주린 배를 안고 열심히 품팔이를 하여 돈을 모은다. 춘풍은 다시 교만하여져서 호조 ( 戶曹 )에서 돈 2,000냥을 빌리고 아내가 모은 500냥까지 합해서 평양으로 장사를 하러 간다.
평양명기 추월에게 미혹되어 장사는 하지 않고 돈을 탕진하다가, 이윽고 박대와 수모를 받으며 추월의 집에서 하인노릇을 한다. 남편의 소식을 들은 김씨는 마침 이웃에 사는 참판이 평양감사로 부임하게 되자 청을 드려 비장(裨將)이 되어 남복(男服)을 하고 평양에 간다.
추월의 집을 찾아가 추월의 간교한 행색과 남편의 거지같은 모습을 확인하고, 추월을 엄히 문책, 5,000냥을 남편에게 주게 하고 춘풍 역시 태장(笞杖)을 쳐서 죄를 다스린다.
춘풍은 의기양양하여 집으로 왔으나 아내가 비장(裨將)의 복장으로 나타나서 꾸짖자 다시 망신만 당한다. 춘풍은 비장이 아내인 것을 알고 개과천선하여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데에 힘써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을 이룬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평범한 서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계 소설과 같은 평민문학이다.
가정이 무능하고 방탕한 남편 때문에 몰락하고, 슬기롭고 유능한 아내의 활약으로 재건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허위에 찬 남성 중심의 사회를 비판하고 여성의 능력이나 기능을 부각시키려 한 의식을 보여준다.
인간의 삶을 가정적인 차원에서 문제 삼고 있으며, 허위로 가득차고 방탕한 삶을 비판하고 근면과 슬기와 성실한 삶을 강조하는 교훈적 주제를 담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의 부패한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기도 하다. 돈으로 벼슬을 사려다가 집안이 망한 상인 박득만과 최참판 사이에서 대리청탁으로 돈이나 뜯어 쓰려는 이춘풍의 행위는 관직을 사고 파는 일이 성행했던 당시 사회상을 풍자한 것이다. 호조의 돈을 빌려 온 이춘풍을 갖은 수법으로 털어내고는 돈이 떨어지자 하인으로 구박하는 추월의 모습에서 신의와 인정이 메마른 각박한 사회를 공격한 점도 엿볼 수 있다.
한 여성의 활약으로 방탕한 남성을 개과천선하게 하고 몰락한 가정을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여성의 주인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이 작품은 작품으로서 의의가 있다.
◈ 더 알아보기
▲'남장(男裝)여인'의 의미
남장 여인은 남성 중심의 봉건적 사회 현상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장치이다. 이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습적, 제도적 억압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서 싸우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더 깊은 의도는 여성의 본질적 능력이 결코 남성에 뒤지지 않으며 오히려 남성을 능가한다는 사실은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태 소설의 성격 파악 : 당대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허위에 찬 남성 중심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
이춘풍전, 작자 미상
춘풍이 이십 바리 돈을 여기저기 벌이고 장사에 남긴 듯이 의기양양하니 춘풍 아내 거동 보소. 주찬을 소담히 차려 놓고, / “자시오.”
하니 저 잡놈 거동 보소. 없던 교태 지어 내어 제 아내 꾸짖으되,
【“안주도 좋지 않고 술맛도 무미하다. 평양서는 좋은 안주로 매일 장취하여 입맛이 높았으니, 평양으로 다시 가고 싶다. 아무래도 못 있겠다.”
젓가락을 그릇에 던져 박고 고기도 씹어 뱉어 버리며 하는 말이,
“평양 일색 추월이와 좋은 안주 호강으로 지냈더니 집에 오니 온갖 것이 다 어설프다. 호조돈이나 다집하고 약간 전량을 수쇄(收刷)하여 전 주인에게 환전 부치고 평양으로 내려가서, 작은 집과 한가지로 음식을 먹으리라.”】이춘풍이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드러냄
그 거동은 차마 못 볼러라. 춘풍 아내 거동 보소. 춘풍을 속이려고 상을 물려 놓고 황혼시에 밖에 나가 비장 복색 다시 하고, 오동수복 화간죽을 한발이나 빼쳐 물고 대문 안에 들어서서 기침하고,
“춘풍아, 왔느냐?”
춘풍이 자세히 보니 평양서 돈 받아 주던 회계 비장이라, 춘풍이 황겁하여 버선발로 뛰어 내달아 복지하여 여쭈오되,
“소인이 오늘 와서 날이 저물어 명일에 댁 문안코자 하옵더니, 나으리 먼저 행차하옵시니 황공만만하외다.”
“내 마침 이리 지나가다가 너 왔단 말 듣고 네 집에 잠깐 들렀노라.”
방 안에 들어가니, 춘풍이 아무리 제 안방인들 어찌 들어올까. 문 밖에 섰노라니,
“춘풍아, 들어와서 말이나 하여라.”
“나으리 좌정하신 데를 감히 들어가오리까?” / “잔말 말고 들어오라.”
춘풍이 마지못하여 들어오니, 비장이 가로되, / “그 때 추월에게 돈을 진작 받았느냐?”
“나으리 덕택에 즉시 받았나이다. 못 받을 돈 오천 냥을 일조(一朝)에 다 받았사오니, 그 덕택이 태산 같사이다.” “그 때 맞던 매가 아프더냐?”
“소인에게 그런 매는 상이로소이다. 어찌 아프다 하리이까?” / “네 집에 술이 있느냐?”
춘풍이 일어서서 주안을 들이거늘 비장이 꾸짖어 말하되,
“네 계집은 어디 가고 네게 일을 시키느냐? 네 계집 불러 술 준비 못 시킬까?”
춘풍이 황겁하여 아무리 찾은들 있을 소냐? 들며나며 찾아도 무가내(無可奈)라. 제 손수 거행하니 한두 잔 먹은 후에 취담으로 하는 말이, / “네 평양에서 추월의 집 사환할 제 형영도 참혹하고 걸인 중 상거지라, 추월의 하인 되어 봉두난발(蓬頭亂髮) 헌 누더기 감발버선 어떻더냐?”
춘풍이 부끄러워 제 계집이 문 밖에서 엿듣는가 민망하건마는, 비장이 하는 말을 제가 어찌 막을손가. 좌불안석하는 꼴은 혼자 보기 아깝더라. 비장 말하되,
“남산 밑 박승지 댁에 갔다가 술이 대취하여 네 집에 왔더니 시장도 하거니와, 해갈이나 하게 갈분이나 한 그릇 하여 오너라.”
춘풍이 황공하여 밖으로 내달아서 아무리 제 계집을 찾은들 어디 간 줄 알리요. 주적주적하더라.
비장이 꾸짖어 말하기를, / “네 계집을 어디 숨기고 나를 아니 뵈는고?”
차월피월하니,
“너는 벌써 잊었느냐? 평양 일을 생각하여 보라. 네가 집에 왔다고 그리 체중한 체하느냐?”
춘풍이 갈분을 가지고 부엌에 내려가 죽쑤는 꼴은 차마 볼 수 없더라. 한참 꿈적여서 쑤어 들이거늘, 비장이 조금 먹는 체하고 춘풍을 주며,
“먹으라. 추월의 집에서 깨어진 헌 사발에 누른 밥 토장덩이에 이지러진 숟가락도 없이 먹던 생각하고 먹으라.” / 춘풍이 받아먹으며 제 아내가 밖에서 다 듣는가, 속으로 민망히 여기더라. 비장이 말하되,
“밤이 깊었으니 네 집에서 자고 가리다.”
하고 의복 벗고 갓 망건을 벗으니, 춘풍이 감히 가란 말을 못 하고 속으로 민망히 여기더라.
관망 탕건 벗어 놓고 웃옷을 훨훨 벗은 후 일어서니 완연한 제 계집이라. 춘풍이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분명한 제 계집이라. 춘풍이 어이없이 묵묵무언 앉았으니 춘풍의 처 달려들며,
“여보소 아직도 나를 모르시오?” / 춘풍이 그제야 아주 깨닫고 깜짝 놀라며, 두 손을 마주잡고,
“이것이 웬일인가? 평양 회계 비장으로서 지금 내 아내 될 줄 어이 알리. 이것이 생신가 꿈인가, 태중인가, 귀신이 내 눈을 어리어 이러한가?”
춘풍 하는 말이, / “어떻게 평양 비장으로 내려왔으며, 또 내가 아무리 잘못하였기로 가장을 형틀에 올려매고 볼기를 친들 그다지 몹시 치니 그 때 자네 마음이 상쾌하던가?”
하니 춘풍 아내 말하기를, / “그 때 자청하여 글을 써서 내 장롱에 넣어 놓고, 무슨 미친 마음으로 호조 돈 수천 냥을 내어 가지고 평양 장사 갈 제 말린다고 이리 치고 저리 치고, 가계도 한 푼 없이 거지꼴 되었으나, 그 후 저는 참판 댁과 친근하여 참판 댁 대부인께 침재 품 판 돈으로 교자상을 자주 차려 정성으로 대접하고 비장으로 내려갈 제는 임자를 보게 되면 반만 죽이려 하였더니 만나 보니 차마 불쌍하여 더 치지 못하고 용서하였거든, 사오 년 내 고생하던 생각하면 그 때 맞던 매가 깨소금이오.”
이렇듯 내외가 서로 웃으며 일의 전후를 이야기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