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0년 6월 26일, 제주올레 18-1코스인 추자도 올레길이 열리는 날 참가한 여행기입니다. 의미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여기에 올립니다.]
천국
강제윤(시인)
인간에게 천국이란 연인과 여행자에게만 허락된 공간이다.
어떠한 여행지도 여행자에게는 천국이다.
어떠한 연애도 연인에게는 피안이다.
하지만 명심하라 여행자여!
어떠한 천국도 정착지가 되는 순간 지옥으로 돌변한다.
명심하라 연인이여!
그대들의 천국 또한 그러하리니.
출처 : 『올레, 사랑을 만나다』(강제윤의 제주 올레길 여행기, 255쪽에서)
추자도올레 개장식 행사를 함께 한 시인 강제윤님
▲ 강제윤님의 책들. '올레, 사랑을 만나다' 라는 책은 서명숙 이사장님이 펴낸 '제주걷기여행' 책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
▲ 추자도 올레 개장식 행사를 알리는 환영 현수막
▲ 추자도 올레 코스 브로셔. 왼쪽 위 상추자도 추자항에서부터 올레길이 시작한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라는 동요 가사에 해당하는 아침을 맞이했으면 좋겠지만 결국 아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와장창’ 내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개장식 행사는 아침 9시에 시작한다는 전달 사항이 전해졌다. 다들 아침 볼 일을 보고 이불과 짐을 정리하고 배낭을 짊어지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아침식사는 각자 알아서 식당가서 할 분들은 하고, 나처럼 아침을 안 먹는 사람은 물 한잔으로 때우고 행사장으로 갔다. 비가 오고 있기 때문에 다들 우비를 걸치고 나왔다.
바람도 약간 세차게 부는 편이었다. 그래도, 내가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행사 내내 비가 엄청 쏟아졌던 올레2코스(광치기 해안 ~ 온평포구) 개장식 날의 날씨에 비하면 무지 양호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날 날씨는 내가 참석했던 올레 개장식 행사일 날씨 중에는 (내가 제주도에서 걷기 여행을 한 날을 포함하여) 가장 안 좋은 편이었다.
허지만, 걷기 시작한지 두 시간 뒤에 비가 그치고 점차 날씨가 개었기 때문에(안개는 계속 우리들을 따라 다녔지만), 그야말로 덥지도 춥지도 않고 시원한, 걷기에는 최적의 날씨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의‘(날씨)여행복’은 지금까지 확률 98%(!?)를 유지하면서 계속될 수 있었다. ^^
우비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제주올레 역사상 ‘올레꾼’이 가장 적게 참여하여 치러진 새 코스 개장식 행사였다. 앞으로도 깨지기 ‘불가능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 개장식 행사에 참여한 올레꾼과 주민들 및 행사 관계자분들
내가 올레 개장식에 참여한 숫자를 헤아려 보니 모두 13번이다. 이번 추자도올레 개장식을 포함하여 총 21개 코스 중에 13개 코스 개장식에 참석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 가장 많이 개장식에 참여한 올레꾼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적어도 랭킹 3등 안에는 들 것이다.), 그만큼 시간만 나면, 혹은 시간을 내서라도 놀러(여행) 다니기를 좋아한다는 얘기다.
‘잘 놀아야 직장 생활도 잘 할 수 있다’는 ‘소신’을 지니면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직장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잘 ‘놀고’ 있다. 직장 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 중에는 제대로 놀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또 잘 놀지만 직장 생활을 대충대충 적당히 하는 사람도 만만치 않게 보아왔다. 나는 둘 다 열심히 잘 하려고 하는데 글쎄... 남들은 ‘그건 니 생각이고’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모든 올레 개장식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처음에는 제주올레라는 것이 있는지를 몰라서, 그 다음에는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거나 직장 혹은 가정에 일이 생겨서 참여하지 못했다.
앞으로 제주올레의 모든 코스가 완성될 때까지 특별한 일이 생기기 않는 한, 적어도 분기별로 열리는 올레 개장식 행사에는 모두 참석할 예정이다. 개장식 행사의 북적되는 맛이 ‘별미(!)’이기 때문이다. 휴가철에도 기회가 닿는 대로 나는 제주도에 내려와 올레 걷기를 하거나 지인들과 놀다가 가게 될 것이다.
지난 날 여러 형편 때문에(부모님 생활비 지급과 형님 사업 실패로 인해 돈을 왕창 꼬나박아서, 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주식판에 뛰어들었다가 ‘개박살’이 나서) 제대로 놀지 못한 것에 대한 한풀이를 하듯이, 요즈음 나는 틈만 나면 여행을 하는 등 밖으로 나다니려고 애를 쓰고 있다. 노는 것의 일환으로 올레 개장식 행사에도 나름대로 부지런히 참여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것이다.
[요즘은 과거처럼 스트레스를 푼다고 직장이 끝난 후 동료들과 술타령하는 횟수가 엄청 줄었다. 1주일에 1번 정도 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다들 바빠서 또 건강을 생각하느라고 혹은 자녀들을 키우느라고 들어가는 교육비와 기타 생활비 때문에 술자리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어서 그럴 것이다.
어쨌든 술을 덜 마시게 된 덕분에 절약하게 된 용돈을 모아서 올레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여행을 그나마 자주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맞벌이 아내 덕이 제일 크지만. ^^]
평소의 개장식을 열 때의 순서대로 추자도올레 개장식 행사가 진행되었다. 서명숙 이사장님의 인사 말씀, ‘성대한’ 올레 개장식 행사를 열 수 있도록 또 새로운 코스를 개척하는데 도움을 주신 관계 기관 여러분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고마운 말씀을 전해 드린 후, 드디어 추자도올레 개장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테이프를 풀었다. “가자! 올레!”를 외치면서.
▲ 개장식 인사말씀을 하고 있는 서명숙 이사장님
▲추자올레 개장을 알리는 테이프 풀기
이런 행사를 취재하고 있는 언론사는 KBS 제주방송과 KCTV 제주방송뿐이었다. 이들은 나처럼 미리 추자도에 들어왔기 때문에 개장식 행사를 취재할 수 있었다. 개장식 행사날 추자도로 들어오려고 있던 다른 방송사나 언론사는 결국 개장식 행사를 취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방송이나 기사를 내보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남이 취재를 한 것을 ‘베껴서’내보내거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장식 행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개인적으로 준비하거나 주최측에서 나누어준 1회용 비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미리 준비해간‘튼튼한’비옷을, 그것도 남의 눈에 확 띠는 빨간색 비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KBS 제주방송 제작자분(VJ 전부길님)의 눈에 띄어, 그분이 나에게 다가와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리하여 전국적으로 아니 제주도 안에서 ‘쪽팔리는 행운(?)’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
▲ 인사말씀을 하고 있는 서 이사장님과 올레에 참가한 꼬마 아가씨들
올레를 걷는 내내 간단히 몇 번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출연한’ 이러한 인터뷰 내용은 나흘 뒤인 6월 30일(수) KBS1 제주방송이 방영한 「생방송 제주가 보인다.」(월~목, 오후 5시 40분~6시에 방영함) 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이 되는 도중에 제주도에 계신 김차선님이 휴대폰 문자로 알려 와서 알게 되었다. 김차선님, 감사합니당~~ ^^)
이 번 뿐만 아니라 지난 날 올레 개장식 행사에 참여했을 때도 몇 번 방송 취재진의 눈에 띄어(똑딱이 디카를 들고 사진을 찍느라고 여기저기 설치고 돌아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올레에 참여한 소감을 간단하게 피력한 적이 있었다.
이번 개장식 때는 올레꾼들이 몇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리 잘 생긴 얼굴이 아닌데도 불구하고,(‘세파’에 시달려서 그런지 내가 보더라도 많이 ‘늙었다!’^^) 서명숙 이사장님과 함께 가장 많이, 가장 오랜 시간동안 취재 대상이 되어 버렸다. 마치 연기자가 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돌려보기’로 내가‘출연한’장면을 살펴보니까 다음과 같았다.
인터뷰(1)- 개장식 행사를 할 때
“비가 오는데 어떻습니까?”
“이런 비 오는 날에는 (올레길을) 처음 걷는데, (그런대로)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요?”
“(비를 맞고 걸으니) 꿈과 낭만이 있다고나 할까요?”
인터뷰(2)- 추자등대를 향해 걸어 올라갈 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으십니까?”
“이렇게 살다가, 그냥 계속 (이렇게 걸으면서, 여행하면서) 살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습니다.”
“아니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마음이 좍 가라앉으면서 근심 걱정이 없어지니까요.”
“오늘은 비가 오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이 정도 비는 괜찮네요. 아주 더운 것보다는 지금 현재 약간의 가랑비 정도 내리는 거니까 걷기에는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인터뷰(3)-돈대산 정상에서
“올레를 걸으시니 어떠세요?”
“여기 추자도올레도 너무 좋다, 환상적이었다, 이런 생각이 또 드네요. 특히 해안가 절벽 옆길(예초리 기정길)을 따라 걸을 때 그곳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 외에도 걸어가는 모습이 많이 찍혔다. TV나 사진에 찍힐 때 화면빨을 제대로 받으려면 빨간색과 같은 원색 계통의 복장을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나야 우연히 빨간색 우비를 입었을 뿐이지만.
개장식 테이프를 풀은 후 개장식 행사에 참여한 올레꾼 몇 명과 마을 주민 및 행사 관련자분들 대부분이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추자도올레는 최영 장군 사당으로 올라가는 골목길 입구로 들어서면서 시작한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충분히 견딜만한 했다.
▲ 최영장군 사당으로 올라가는 골목올레길
▲ 최영장군 사당으로 올라가고 있는 올레꾼들
최영장군 사당을 지나 계속해서 봉글레산으로 올라갔다. 봉글레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해지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하는데,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안개마저 잔뜩 끼고 있어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언젠가 다시 와서 이번 올레 개장식 때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추자도 풍광을 마음껏 즐기리라고 다짐했다.
▲ 봉글레산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서 이사장님과 동철님.(아래칸 왼쪽) 비가 많이 와서 길에 물이 고인 곳이 있다.
▲ 봉글레산 정상으로 가는 도중에 앙증맞은, 올레 방향표식인 '간세'가 보이며 (위칸), 정상에 자리잡은 정자가 안개 속에 갇혀있다.
봉글레산 아래로 내려올 때는 다들 조심조심해서 걸었다. 비가 내려 길이 상당히 미끄럽기 때문이다.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무엇보다도 두 다리가 성해야 한다. 다리를 다치면 여행은, 특히 걷기 여행은 영원히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 길이 미끄러워 조심해서 내려가고 있는 올레꾼들
운동을 할 때(등산이나 달리기를 포함하여) 발목이나 무릎은 특히 잘 다치는 부위이기 때문에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나는 특히 발목을 삐는 경우가 가끔씩 생기기 때문에, 또 무릎 관절도 아주 튼실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운동을 할 때 조심조심 하는 편이다. 조심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기 때문이다.
봉글레산을 내려온 후 마을 올레길을 거쳐 추자 등대로 올라가는 도중에, 개장식 행사에 참여했던 마을 사람들과 행사에 도움을 주신 관계자분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들 일상생활로 되돌아가거나 자기 볼일을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순효각 근처를 지나며
순효각 근처를 지나면서 마을 주민들은 점차 각자의 볼 일을 보기 위해 사라졌고, 그러다 보니 제주올레 관계자분들과 나를 포함한 올레꾼 서너명과 KBS 제주방송 취재진만 남게 되었다. 결국 제주올레스탭진을 포함하여 열대여섯 명 정도가 끝까지 올레 개장식 행사를 이끌었던 것이다. 참으로 단출한 멤버였다.
이날 나와 같이 동행을 하면서 추자도 올레길을 끝까지 걸어서 (점심 식사 후, 몽돌해안에서 황경헌의 묘소로 올라갈 때 1톤 트럭을 타고 500여 미터 언덕길을 ‘신나게’ 달린 것을 빼고) 완주한 사람은 세 명이었다. 나, 한산도님 그리고 김홍석님이다. 다른 분들은 이동할 때 시간 절약과 체력 관리를 위해서 군데군데 차량으로 이동했다. (오산에서 오신 추 회장님 부부는 따로 움직였기 때문에 자세히 모르겠다.)
▲ 순효각과 골목길을 지나 추자등대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
상추자도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추자 등대에 올라섰다. 추자군도 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도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었다.
▲ 안개 속에 파묻힌 추자등대와 셀프 사진
등대 옥상에도 올라가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비경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마음을 위로해 주는 말이 생각났다.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모든 행복을 '일시에' 다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무엇을 얻으려면 무언가를 내 놓던가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삶의 이치’이다. 이러한 삶의 이치를 거스르면 나나 내 가족에게 더 큰 불행이나 고통이 반드시 닥친다.”
추자도올레 개장식에 참가하게 된 것만 해도 나에게는 행운이요 고마울 따름인데, 그 이상 뭘 더 바라겠는가? 추자도올레 개장식은 평생 한 번뿐이지만, 올레 여행은 나 혼자서 혹은 다른 사람과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으니까 비경을 감상하지 못했더라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다음에 하면 되지 무엇이 걱정인고. ‘하쿠나 마타타!’”
▲ 오산에서 오신 추 회장님 부부가 방송 취재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위칸). 등대 옥상에서 내려다 본 모습(아래칸)
▲ 추자등대에서 추자교 쪽으로 내려가는 올레길
▲ 산딸기도 따먹으면서 멀리 보이는 추자교 쪽으로 내려갔다.
등대를 내려와 추자교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도우미분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올레 개장식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이런 분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 든다.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쑥떡도 하나 사서 나누어 먹었다.
▲ 수고하고 계신 도우미분들과 쑥떡(위 오른쪽)
배가 뜰 수 있어서 500여명의 올레꾼들이 함께 했더라면 잔치 분위기가 나고 북적댔겠지만, 어떡케 하겠는가? 하늘이 뒷받침을 해주시 않은 것을.
많은 준비를 했을 이런 분들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쑥떡을 하나라도 사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한 개(3천원인데 세 조각이 들어있다.)를 사서 나도 한 조각 먹고 다른 분에게도 한 조각씩 나누어 드렸다. 아침을 안 먹고 다니는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 어렸을 때 시골 할머니가 해주시던 바로 그 쑥떡 맛이라고나 할까?
▲ 끊어진 구추자교의 흔적이 보이며(위), 한산도님과 김홍석님이 추자교를 건너가고 있다.
▲ 추자교를 걸어오다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서명숙 이사장님과 안은주 국장님 ⓒ 라르고 강길순
추자교 삼거리부터는 혼자 떨어져 걷게 되었다. 계속 동행을 했던 한산도님과 김홍석님이 앞서가는 바람에, 그리고 다른 분들이 따로 걸어가거나 차로 이동했기 때문에 혼자서 걷게 된 것이다. 추자교 다리 건너편 삼거리에서 묵리 고갯마루를 향해 치고 올라섰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 묵리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올라가고 있는 저 로망과(위칸)과 김홍석님과 한산도님 ⓒ 라르고 강길순(위칸) & 로망(아래칸)
묵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섬이 아니라 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이 숲길은 이번에 제주올레팀과 추자도 올레지기인 김정일님을 포함한 추자도 주민들과 공무원분이 힘을 합쳐 새로 길을 낸 것이라고 한다.
수고를 많이 하신 이런 분들 덕분에 새롭고 멋진 올레길을 걸을 수 있어서, 비록 혼자 걷고 있지만, 더욱 행복했다. 이러한 길이 없었을 때는 멋대가리 없이 그냥 콘크리트길을 따라 뙤약볕을 맞으며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휘익~지나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콘크리트 포장길과 숲길을 함께 걸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숲길이 어머니의 포근한 젖가슴과 같은 길이라면 콘크리트 포장길은 우락부락하고 험상 굳게 생긴 사내의 딱딱한 가슴과 같은 길이라는 것을.
▲ 묵리 고갯길로 올라가다가 뒤돌아서 내려다본 추자교 모습
뒤돌아 주변 경치를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갔다. 다른 분들과 점심을 함께한 모진이 몽돌해안까지 나 혼자서 걸어갔다. 앞뒤에 아무도 없었다. 추자교 삼거리부터 몽돌이 해안까지 십리 길을 그야말로 혼자서 추자도를 전세 낸 기분으로 걸었던 것이다.
▲ 묵리로 가는 숲길
콘크리트로 포장된 묵리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비는 그쳤지만 안개는 아직도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저 멀리 돈대산이 드러났다. 맑게 갠 날, 좌우로 섬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탁 트이고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다음을 기약하면서 묵리 교차로로 내려왔다. 출발지에서 묵리교차로까지의 거리는 대략 6킬로 정도가 되는데, 이 거리는 추자도올레길 총거리의 1/3 정도에 해당한다.
▲ 묵리교차로에 설치된 알림판. 계속 직진하면 돈대산 정상으로 가게 된다. 돈대산 정상에서 내려온 후에 정수장쪽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알림판(아래칸 왼쪽)과 묵리마을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알림판(아래칸 오른쪽)
묵리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묵리마을로, 왼쪽으로 내려가면 정수장으로 가게 된다. 만일 왼쪽 정수장 길로 들어서면 결국 추자교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이 길은 나중에 돈대산 정상에서 되돌아올 때 가는 길이다. 표지판이 잘 되어있기 때문에 헷갈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비도 오고 안개도 잔뜩 낀 상태에서 사진을 계속해서 찍다보니까, 7년 된 구닥다리 똑딱이 올림푸스 카메라에 습기가 차서 렌즈가 흐려지며 상태가 안 좋기 시작했다. 마른 손수건을 꺼내 카메라 겉 부분과 렌즈를 수시로 대충 닦았지만, 나중에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뿌옇게 흐려졌다. 방수가 제대로 되는 똑딱이 카메라를 하나 구입해야 하겠다.
[화질이 좋은 DSLR 카메라는 똑딱이 카메라보다 부피가 훨씬 크고 들고 다니기가 무거워서 도저히 사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냥 사용하기 무지 편리하고 간단하며 마구잡이로 찍을 수 있는 똑딱이 카메라가 내 체질과 성격에 맞는 것 같다. ^^]
▲ 묵리마을에 설치된 환영 현수막
▲ 신양2리 마을로 올라가다가 뒤돌아서 본 묵리마을
묵리 교차로에서 묵리 마을로 내려갈 때 내려다 본, 그리고 신양2리 마을로 올라갈 때 뒤돌아 본 묵리 마을은 그야말로 아담했다. 묵리 마을로 들어선 후 왼쪽 신양2리 방향으로 틀어서 콘크리트로 포장된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갔다가 내려서니 신양2리 마을이 나타났다. 그 마을 한복판에는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깨끗한 신양2리 경로당과 정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 신양2리 마을과 경로당 및 정자
경로당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으니까 경로당에서 어르신 몇 분이 얼굴을 내밀고 올레 행사에 참석하러 왔냐고 물으신다. 나는 꾸뻑 인사를 드리고 배가 못 떠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못해서 혼자서 걷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몇 마디 나눈 다음에 어르신들에게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드린 후 신양2리 마을을 빠져나왔다. 이 마을 입구에도 주민들이 내 건 올레 환영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 신양2리 마을 입구에 설치된 올레 환영 현수막
신양2리에서 신양항까지 가는 길은 그냥 평범한 콘크리트길이다. 신양항 가기 전에 추자10경 중에 하나라고 하는 장작평사(長作平沙, 신양포구 장작지의 자갈 해수욕장)가 있는데, 여기에서 바라보는 일출 광경이 환상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지 봤어야 알지. ^^
▲ 장작평사와 친수공원
잠시 정자에서 쉬면서 물도 마시고 한 숨을 돌렸다.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점심을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리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신양1리 마을에 설치된 혼인식 알림 현수막과 올레환영 현수막. 혼인하는 두분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세요~~
신양항에서 김홍석님에게 전화를 드려 지금 어디 계신지, 점심식사는 어떻게 하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신양항에서 10분 정도만 걸어오면 모진이 몽돌 해안이 나오는데, 추자도 새마을부녀회에서 식사를 준비했으니까 빨리 오라고 하셨다. 부리나케 달려갔다. ‘추자도올레 걷기도 식후경’이니까.
▲ 몽돌 해안가에 설치된 임시 식당
몽돌 해안가에 도착하니 추자도 주민들과 제주올레 관계자분과 KBS 취재진 그리고 올레꾼을 포함하여 이삼십명 정도의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배가 떴다면 몽돌 해안가가 500여명의 올레꾼들로 꽉 들어차서 왁자지껄 잔치분위기가 물씬 풍겼을 테지만, 오늘은 그냥 적적하고 고요한 분위기였다.
▲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수호천사님과 끝까지 동행했던 김홍석님과 한산도님
나를 보더니 수호천사님이 오시느라고 수고했다고 식판을 들고 식사를 주문해서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식비를 지불하려고 하니 “로망님에게 대접해드리는 것이니 그냥 드시라.”고 해서 “잘 먹겠습니다.”하고 받아서 김홍석님과 한산도님 및 K님이 식사를 하는 곳으로 식판을 들고 가서 막걸리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운동을 한 뒤에 먹는 밥과 술 한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 몽돌 해안에서의 점심 식사 ⓒ 라르고 강길순 (위칸) & 로망(아래칸)
수호천사님(뿐만 아니라 추자도에서 신세를 진 제주올레 모든 분들)에게 나중에 식사 한번 대접해야 하겠다. 이왕 신세를 질 바에는 고마운 마음으로 왕창 신세를 지자고 하는 사람이 나 로망이다. 나중에 진 신세를 갚으면 되고, 만일 그 사람에게 갚지 못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라도 베풀면 되니까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삶이란 돌고 도는 면이 있으니까.
천천히 그야말로 놀멍, 쉬멍, 마시멍 맘껏 올레여행을 즐기니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늘 제주시로 나가는 배가 못 뜨니, 있는 것은 시간뿐이고 이러한 시간을 맘 놓고 즐길 수 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렇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올레개장식 행사를 맘껏 즐길 수 있는 기회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올레개장식 행사 때에는 늘 돌아가는 차편 시간에 맞추어서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몽돌 해안에 가장 늦게 도착하다시피 한 나는, 40여분 동안 먹고 마시고 한 후 다시 배낭을 챙겨 출발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길을 재촉하여 황경헌의 묘소를 향해 떠났다. 묘소로 가는 길은 콘크리트 언덕길로 되어있기 때문에 만만치 않게 힘이 드는 ‘난코스’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로 제주올레팀이 행사를 위해 준비한 1톤 트럭이었다. 타라고 해서 ‘이게 또 웬 떡이냐’하고 잽싸게 올라탔다. 점심을 잔뜩 먹은 상태에서 걸으니까 약간 불편했는데, 또 다시 횡재를 한 기분이 들었다. 황경헌의 묘소까지 그냥‘날아서’편안하게 갔다.
▲ 트럭을 타고 황경헌 묘소를 향해 신나게 달리는 모습
슬픈 사연을 지니고 있는 황경헌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여기 추자도에 외롭게 누어있는, 황사영과 정난주(다산 정약용의 조카) 부부의 아들인 황경헌.
이들 가족은 시대를 ‘더럽게’타고났기 때문에 그런 슬픈 삶을 살다가 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왜 그는(나는, 우리는) 그런 인생을 살아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이 또 들었다.
이럴 때 내가 준비하고 있는 ‘모범답’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각자가 타고난(!?) 자신의 운명과 팔자소관’대로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
▲ 산딸기도 따 먹으면서 걸어가고 있는 서 이사장님 일행 ⓒ 라르고 강길순
▲ 황경헌의 묘소와 샘터
황경헌의 묘소와 황경헌의 눈물로 불리는 샘터를 떠나 신대산 전망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황경헌의 묘소에서 신대산 전망대까지는 대략 1Km 정도 거리인데, 그리 힘들지 않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길로 되어 있지만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기 때문에 걷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 수봉님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신대산 전망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으며(왼쪽), 길옆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님(오른쪽)
신대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추자군도는 그야말로 환상이라고 하는데, 안개가 끼었기 때문에 그 환상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여기서도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 신대산 전망대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신 천진난만한 모습의 한산도님. 옆에 서 있는 간세와 닮았다.^^
▲ 안개로 뒤덮힌 신대산 전망대
드디어 예초리 기정길로 들어섰다. 추자도의 해안 절경을 두 눈에 가득 담으면서 걸을 수 있는 해안 절벽길인데, 이번에 제주올레팀이 새롭게 찾아서 만든 길이라고 한다.
예초리 기정길은 추자도올레 코스 중에서 탐사대원들의 노고가 가장 듬뿍 담겨져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번 올레길 중에서 내가 제일 감탄한 곳이기도 하다. 제주올레가 아니면 그 누가 이런 환상의 걷기 길을 낼 수 있겠는가?
추자도올레지기인 김정일님의 말씀에 따르면 장화를 신고, 숲길을 헤치면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환상적인 길을 냈다고 한다. 직접 걸어보면 제주올레 탐사대원들의 수고가 고스란히 느껴질 것이다.
▲ 예초리 기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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