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드문 혹은 오지를 찾는 즐거움이란
이기적이지만 생김 이상의 기쁨이다.
공연한 허세가 아니라 알면 알수록 넓고 깊은 세상에서
차츰 희미해지는 나를 느끼는 것이다.
가장 좋은 여행 방법은 없다, 말하는
약관의 아마추어 여행가 정준수의 <The way>를 읽은 참이었다.
'이해 안돼'라고 말할 순 있어도
'그건 안돼'하고 할 수는 없다,는 그.
여행이건 산행이건 일상이건
그 법칙은 당연지사일 테니 마음, 한 숨 내려 놓아야지.
■ 일시 : 13.08.29~30
■ 코스 : 1일차 8시간(중식, 휴식 포함) → 얼음골 - 중봉(1박)
2일차 7시간(중식, 휴식 포함) → 중봉 - 묘향대 - 이끼폭골 - 뱀사골 - 반선
봉산골로도 불리는 얼음골을 거슬러 합수부에서 가운데 계곡을 타다
심마니능선에 닿고 이윽고 중봉에서 하루 묵어갈 것이다.
잦은 구름에 속살 감추고말 별무리야 마음으로 헤어보고
아침엔 지근의 반야봉에 들러 꿈틀대는 주능도 담을 참이다.
내려서는 길, 묘향대의 청아한 불경 소리와 석간수로 심장을 맑게 하고
지계곡을 쫓다 함박골 초입인 이끼폭포에 닿아 감탄도 해볼 참이다.
이어 걸어 제승교 못미쳐 뱀사골로 접어들어 선계인 양 아름다운 모습에
걸음걸음 흠씬 취하며 긴 걸음 재촉하여 드디어 속세로...
반선에서 이른 아침을 매식하고
산행의 초입인 쟁기소로 내려선다.
800m남짓에서 시작한 산행은
1700m를 훌쩍 넘어 멈출 것이다.
산은 올려야 하는 고도 만큼이나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모습일테지.
얼마나 많은 폭포를 만날 것이며
얼마나 울창한 숲을 만날 것인가.
새소리, 바람소리, 저 먼 눈맛은.
아침의 구름바다와 밤하늘 별무리는.
산이 품은 수 많은 계곡의 하나인 얼음골(봉산골).
북사면에 위치하여 겨울이 길고 그만치 얼음도 늦게 녹는가 보다.
아직은 여름이거나 막 가을이거나...
그에게 소리쳐 내 그리운 사람들을 불러 본다.
산의 북사면에 있는지라 계곡은 대체로 이끼계곡이다.
온통의 초록에 내 몸마저 초록으로 물들 것 같다.
급경사의 계곡오름에 하악하악 호흡도 가쁜데
그마저도 계곡 물소리에 묻히고 만다.
행여 미끄러질까 걸음에 집중하여 걷고
그리 걷다 서서 위며 아래며 마음에 담고
모든 것이 실로 벅차다.
오~ 시리도록 아름답구나. 지리여~
지체가 많다.
등로가 험한 탓도 있지만 그 보다는 비경에 쉬이 걸음 떼지 못하는 것이다.
말문이 막힌다.
그냥...
그냥 좋다,라는 말이
이토록 실감날까.
폭포는 위용이랄 규모는 아니지만 10~20m의 소폭이 연잇는데
온통의 이끼와 묘한 조합이 되어 걷는 내내 설레인다.
고도 1300m를 넘어서니 계곡이 듬성하다.
허기도 지는지라 자리를 찾아 쉬어간다.
제 철이 막 지나고 있는 전어회로 일순배 소주를 나눈다.
흔히 지리 심심산골의 석간수를 보약이라 한다면 이 좋은 숲의 술 한잔도 못지 않을 성 싶다.
허기도 채웠겠다 커피도 한잔 마셨겠다
기운 내어 짧지만 된비알의 너덜 지대를 낙석을 조심해 가며 오른다.
저 아래로 건천일랑 흐를까
조금 더 가면 조망도 트이고 능선에도 오르겠지.
경사의 위험 보다 역시 낙석의 위험이 상존하는지라
진행에 여유를 가지고 차분히 오른다.
그리 바짝 붙어선 직벽의 등로,
바로 내 코앞에 이리 고운 꽃이 어여오라 반긴다.
중심 잡고 마음에 담는 손길 미세하게 떨리지만
그 향이, 반김이 고마워 힘든 줄도 모른다.
이윽고 조망이 트인다.
구름이 잦아 시야가 환하지는 않지만 우러르는 마음에 한치의 부족함도 없다.
가운데 옴팍한 정령치를 기준하여
양쪽으로 서북능선의 만복대와 고리봉이 아스라하다.
보드랍게 구비구비 이어져 철썩 철썩 파도 치는
지리 능파의 장엄함이란.
아래로 S자로 휘어진 함박골이 선명하다.
함박골의 시원을 이루는 곳의 석간수가 오늘 야영의 식수원이 된다.
얼음골의 최상단에서 5분 정도 내려서 석간수로 식수를 채우고
재차 사면을 치고 올라 심마니능선의 투구봉을 제법 지난 능선에 닿아
채 10분 걸으면 구절초며 이질풀이며 투구꽃이며 아름다운
화사한 산상화원이 객을 맞는다.
자욱한 안개에 서둘러 이러 저러 채비를 하고
긴 걸음의 이야기며 허기며 채울 자리를 잡는다.
간단하게 에피타이저... 닭가슴살 샐러드
메인디쉬 No.1
오리양념불고기
메인디쉬 No.2
민물장어구이
메인디쉬 No.3 명태전
이후...찌개며...
비주류파가 대세인 상태임에도 술이 부족할 것을 서서히 걱정하는 분위기!
그리 맞은 구절초 쑥부쟁이 연출한 산상화원의 아침.
간 밤 타닥 타닥 텐트 위로 빗소리가 들리더니 연하게 구름 드리웠을 뿐 개었다.
구름, 산을 섬 삼아 바다를 이루더니
기어이 산을 넘고야 만다.
뉘라서 별다른 수식을 할까.
그저 아름답다 할 밖에.
아침 식사 후 잠시 반야봉을 다녀갔다.
종주라면 쉽게 찾지 못하는 곳.
돌아오는 길, 저만치 야영지 한 켠이 보인다.
바람 없는 날의 반야중봉은 맞춤의 야영지다.
허기도 채웠겠다 반야도 다녀왔겠다
볼록한 배 두드리며 한껏 게으름이다.
구절초며 쑥부쟁이며 이질풀이며 투구꽃이며
아무 생각 없이 쉬는 날 놀리는 듯.
산에 들면 머리가 맑다 했다.
상식으로도 그렇겠다.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고 잘 걷고 외에
무슨 생각을 더할 터라 머리가 무거울까.
뜻하지 않아도 그리 묵묵히 걷다 보면
최소한의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것이다.
저리 누워 간 밤 손가락으로 헤인 별,
이 밤엔 눈에 멍들만치 쏟아지길 이냥 기다릴까
구름바다를 타고 넘는 바람이며 노을이며
팔베게 하고 다리는 꼬고 저냥 기다릴까
그러나 이 때 필요한 건 뭐?
아쉽게도 현실의 균형감각.
돌아설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 나부랭이가 아니어도
마치 벽(癖)에 걸린 행세는 내겐 욕심일 뿐이다.
청아한 불경 소리 아래 가지런한 고무신을 본다.
저 작은 신발에도 욕심 남았을까.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몇 해 전 정민 선생이 지은 책이 기억난다.
<미쳐야 미친다>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라는 부제를 달았더라.
책 속, 그와는 정반대의 아니 어쩌면 가장 벽(癖)에 가까운
지식인 한명이 '지리산 물고기 /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 편으로 소개 되어 있다.
그리하여 선생이 아정(雅亭) 이덕무에 대해 느낀 '벽'을 옮겨 보며
인용한 아정의 '지리산 물고기' 글에 비추인 선생의 감회도 술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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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가 나를 압도 하는 대목은 호한한 독서와 방대한 저작이 결코 아니다.
그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맑은 삶을 살려 애썼던 올곧은 그의 자세가 나는 무섭다.
...아무도 알아 주는 이 없고 알아줄 기약도 없는 속에서도
제 갈 길을 의심치 않은 그 믿음이 나는 두렵다.
지리산 속에는 연못이 있는데,
그 위에는 소나무가 주욱 늘어서 있어 그 그림자가 언제나 연못에 쌓여 있다.
연못에는 물고기가 있는데 무늬가 몹시 아롱져서
마치 스님의 가사와 같으므로 이름하여 가사어(袈裟魚)라고 한다.
대개 소나무의 그림자가 변화한 것인데, 잡기가 매우 어렵다.
삶아서 먹으면 능히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아정 이덕무 글)
...아~ 나도 그 못 가에서 살고 싶구나.
그래서 그 무늬를 내몸에도 지녀두고 싶구나.
날로 가팔라져만 가는비명 같은 삶의 속도 속에서,
나는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며 생활의 숨결을 골라보았으면 싶은 것이다.
아정의 성품을 가늠할까 하여 그가 인용했다는
송나라 시인 '두준지(杜濬之)'의 시를 재인용 해본다.
차라리 백 리 걸음 힘들더라도
굽은 나무 아래선 쉴 수 없고
비록 사흘을 굶을지언정
기우숙한 쑥은 먹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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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은가?
미치도록?
사람이 좋은가?
미치도록?
'벽'과 가지런한 '고무신' 의 간극 앞에
이도 저도 아닌 나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저 이것도 욕심이요 저것도 욕심임을 알아
때로 산에 들고 때로 현실에 허우적대며 용케 살아내야 하는 것.
안개 지붕 진 한 칸 절집, 묘향암.
하마 스님 불경 소리 그칠까.
간혹의 걸음, 늘상 반갑게 맞아주는 마음에
티끌의 공양이라도 할까 기다리어 머무는 마음.
항시 그 자리 그 마음,
쑥부쟁이 보살의 공양이 미덥다.
한참을 머물러 석간수 마시고 한 켠 겨울 한철 날 채비의 장작가리와
낡아 푸석한 뺄래집게며 태양열 집열판이며 둘러보고 재차 길 잡는다.
갈 길이 멀다.
급경사의 길을 한참을 내려서다 계곡을 따라 차츰 걸어 이끼폭포에 닿아 넋을 놓을 것이다.
사태가 진 길, 그마저도 비에 미끄럽다.
조심 조심 내려서니 어언 허기가 진다.
동행이 금새 쉬어갈 자리를 찾아내고
바랑을 잠시 내려 놓는다.
그리곤 묘향암 스님을 시험하는가.
기름진 삼겹살 구이로 넉넉한 점심공양을 하고 한참을 머물러 간다.
이윽고 이끼폭포에 닿았다.
함박골의 초입이 된다하는데 한창 청춘의 몸매는 아니지만 곱게 세월을 더하는 터다.
이끼폭포골을 내려서 뱀사골로 접어들었다.
제승대 물빛이 무섭도록 푸르다.
와운 마을 지나 원점의 회귀가 되는 반선까지는 6km 남짓.
족히 1시간30분의 거리인데 구비구비 계곡의 미에 잠시도 시선 뗄 수 없으니 어느덧 반선.
그리 터벅 터벅,
문(門)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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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그리울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현실의 문을 들어선다.
내 마음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광기의 산사랑일까.
무욕의 고무신일까.
역시 답은 티끌만치 비워낸 생각.
나머지는 있던대로 두어야 하는 것.
또 갈테지.
미친 척, 아니면 그냥.
어느 것이어도 좋다.
파장의 어느 곳이라도 좋다.
때로 미친 듯이 때로 그냥, 나의 길을 가야지.
점점 비워내야지.
심진스님 / 청산은 나를보고
첫댓글 오호라~ 산객인가벼? 나는 뒷동산 수준인데, 사진 보니... 혁모는 산악인 포스가 짙게 배어있구나. 시간나면 산한번 타자.
화개산 부터... ^-^
무조건 수도권 나들이 계획있으면 연락다오?? 만사 제쳐놓구 달려간다! 짜슥아!! 보고싶다!!!!